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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편: 야심에서 사명으로 ​

초고는 2026년 6월에 썼고, 2026-08-31에 사실의 층위, 공개 범위와 프라이버시, 저자와의 관계 공개 원칙에 따라 퇴고했다. 이 글은 성공 공식이나 투자 조언, 따라 할 수 있는 경로를 주지 않는다. 직접 걸어온 길을 다시 펼쳐 놓을 뿐이다.

누가 내게 창업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젊은 시절의 나라면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창업은 기회이고 야심이며, 마침내 남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길이고, 운명을 낡은 궤도에서 억지로 비틀어 떼어 내는 바로 그 한순간이라고.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창업은 뒤늦게 도착한 거울이다. 그 거울에는 용기와 탐욕이 함께 비치고, 재능과 유치함도 함께 커 보인다. 창업은 사람을 잠시 무대 앞에 세웠다가, 모두가 잠든 어느 깊은 밤 삶의 가장 차갑고 단단한 바닥으로 다시 눌러 앉힌다.

내 이름은 한셴카이이고, 리푸라고도 불린다. 많은 사람이 GitHub에 올린 이 영어 학습 프로젝트로 나를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 뒤에 내가 쓴 이야기, 곧 소프트웨어 회사가 망하고 몸이 무너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출발한 이야기를 읽고 나를 알게 되었다. 이 경험들을 한 토막씩 이어 붙이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숨은 줄기 하나가 보인다.

사람은 도대체 몇 번을 부서져야, 자기가 가진 그만한 능력을 어떤 일에 맡겨야 하는지 깨닫게 될까?

회상, 회고, 계획부터 구분하기 ​

이 글에는 개인적인 회상과 사후 해석, 앞으로의 계획이 함께 들어 있다. 셋은 증거의 기준이 다르다.

층위쓰는 방식독자가 활용하는 방법
이미 일어난 사실날짜, 역할, 제품, 장부나 공개 기록나의 기록으로 받아들이고, 필요하면 원본 증빙으로 돌아가 확인하기
사후 해석어떤 결정이 왜 통했거나 실패했다고 보는지검증해야 할 가설로 보고, 인과의 증명으로 여기지 않기
다시 쓸 수 있는 문턱다음에는 무엇을 먼저 묻고, 무엇을 시험하고, 어디서 멈출지자기 점검을 설계하는 데 쓰고, 내 경로를 그대로 따라 하지 않기
검증 대기 중인 계획들어가고 싶은 산업, 서비스, 공익 활동방향일 뿐임을 분명히 표시하고, 사용자·비용·시간이 답해 주기를 기다리기

금액과 손실은 개인 기억에 기댄 추정치일 뿐이며, 정식으로 판단하려면 재무 증빙이 필요하다. 저자의 신분과 사업 관계는 저자 프로젝트와 현실 실천에 공개한 최신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

창업 편 표지: 사무실의 긴 탁자, 도시와 들판이 맞닿은 곳의 새벽

2016: 처음으로 나를 시장에 내놓다 ​

2016: 책상 하나와 웹사이트 하나에서 시작해 처음으로 나를 시장에 내놓다

2015년 3월 7일, 나는 베이징으로 갔다. 처음에는 인턴 자리 하나를 구하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연이은 면접에서 받은 반응이 젊은이 특유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정말 내 힘만으로 세상에 작은 소리 하나쯤은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었다.

그해 나는 논문 심사(졸업 논문 구술 심사)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졸업한 뒤에는 인턴 문제로 제때 졸업장을 받지 못해 일단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은 번듯하지 못했다. 요리를 배웠고, 관절염도 얻었다. 여러 해가 지나 돌아보니, 인생의 방향 전환은 ‘당장은 갈 데가 없는’ 틈에서 자라나는 경우가 많다. 출발점이 늘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나는 더는 늘어져 있지 않기로 하고 영화 사이트 bt0.com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제품은 아니었지만 실제 사용자가 있었고 실제 피드백이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했다. 누군가 내가 만든 것 때문에 머물고, 쓰고, 평가하는 일을 처음 겪으면 문득 깨닫게 된다. 코드는 편집기를 벗어나야 하고, 제품도 상상을 떠나 낯선 사람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 뒤로 웹사이트 디자인 일을 몇 건 맡아 용돈을 벌었고, 중학교 동창 샹쯔와 첫 창업도 했다. 2016년 3월에 첫 회사를 세웠고, 4월에는 선양에 또 다른 인터넷 회사를 세웠다. 난징에는 세 번째 회사를 신청할 준비를 했는데, 이름은 내가 줄곧 좋아하던 ‘완유인리’로 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젊었고 기세가 등등했다. 그래서 ‘빨리 달리는 것’을 ‘방향이 맞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쉬웠다. 옛 블로그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올해는 자기 띠가 돌아온 해다. 차근차근 일을 제대로 해내고 싶다. 무리하지 말고, 덜 잘난 척하자.”

사람은 흔히 여러 해가 지나서야 자기가 그때 쓴 말을 알아듣는다.

2017: 한 회사에 들어가 나를 걸다 ​

2017년 4월 1일, 나는 평범한 프런트엔드 개발자로 난징의 한 기술 회사에 입사해 변호사와 로펌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제품의 첫 버전은 외주로 만든 것이었다. 코드에는 주석이 없었고, 프로젝트 관리는 엉망이었고, 제품 방향도 사장의 즉흥적인 결정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내가 맡은 타임라인 모듈은 20번 넘게 바뀌었다. 그때 나는 조직 역량이 무엇인지도, 요구 사항 거버넌스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 페이지를 몇 번이고 뒤엎어 다시 만들다 보면 뜨겁던 사람도 무감각해진다는 것만 알았다.

나중에 나는 프런트엔드 프로젝트를 Vue로 다시 짜는 일을 이끌었다. 반년 넘게 걸려 새 버전이 마침내 나왔다. 업계에서 적어도 작은 반향쯤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박수 대신 첫 번째 따귀를 날렸다. 꽤 오랫동안 계약이 한 건도 없었다.

회사 사정은 좋지 않았고, 처우는 나아지지 않았고, 많은 동료가 하나둘 떠났다. 그래도 나는 처음부터 제품의 앞날을 좋게 보았기에, 몇 년 동안 처우가 그대로여도 남기로 했다. 그렇게 평사원에서 부서 리더로, 다시 회사 사장으로 올라갔고, 끝내 한 걸음씩 파트너가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에는 내가 무척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 있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제품을 만들었고, 진지하게 팀을 이끌었고,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버티는 것’을 ‘옳은 것’으로, ‘쏟아붓는 것’을 ‘해자’로, ‘나는 열심히 했다’를 ‘시장은 내게 보상해야 한다’로 착각했다.

창업에서 가장 냉혹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창업은 진심을 허락하고 목숨 건 노력도 허락하지만, 진심과 노력을 이유로 반드시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요식업, 호텔, 현금 흐름: 돈에 가까우면 본질에도 가깝다 ​

소프트웨어 회사 말고도 나는 온천 리조트 호텔과 회원제 클럽에도 손을 댔다가 크게 손해를 보았다. 예전에는 그 경험을 가볍게 언급만 하고 넘어갔다. 어떤 손실은 돈 문제로 끝나지 않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로와 민망함, 무력감까지 딸려 오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작은 음식점이 준 가르침은 오히려 더 직접적이었다.

친척이 난징에서 화이난 소고기탕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되었다. 연구해 본 뒤 나도 가게를 하나 열었고, 결과는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그 뒤로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직접 하고 메뉴를 늘려 두 번째, 세 번째 가게를 냈다. 배달 앱에서 음식이 더 좋아 보이게 하려고 사진과 포토샵을 독학해 제품 사진을 손수 만들었다.

요식업은 고되지만 정직하다. 인터넷 프로젝트에 떠다니는 말들이 없고, 개념만으로 오래 버티게 두지도 않는다. 오늘 손님이 왔는지, 테이블 회전율은 어떤지, 음식이 늦게 나가지는 않는지, 맛은 한결같은지, 나쁜 리뷰는 왜 달렸는지, 현금 흐름으로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답은 모두 그날 나오고,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다.

소프트웨어 회사는 꿈이 비싸다는 것을 가르쳤고, 요식업은 현금 흐름이 진짜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 몇 년 동안 작은 음식점들이 만들어 준 현금 흐름은 내가 나중에 소프트웨어 회사의 파트너가 되는 자금 기반이 되었고, 꿈꾸던 드림카를 살 수 있게도 해 주었다. 하지만 ‘마스크’ 시기가 닥치면서 가게들도 차례로 문을 닫았다.

이 경험은 ‘실물 사업이 인터넷보다 낫다’는 답을 주지 않았다. 어떤 사업이든 결국 거래로 돌아온다. 사용자가 돈을 내는가, 비용 구조가 오래 버틸 수 있는가, 파도가 몰아칠 때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어떤 서사보다 소박하고, 그만큼 잔인하다.

2022: 실패 속에서 제품과 책임의 토대를 보다 ​

2022: 밤이 내린 회의실, 실패 뒤에 남은 빈 의자와 미완성 설계도

소프트웨어 회사는 이후 더 큰 사무실로 옮겼다. 우리는 더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려고 애썼고, 사람을 뽑고, 회식을 하고, 복지를 늘렸다. 나는 아직 인테리어도 끝나지 않은 전시대 앞에 서서 아름다운 미래를 수없이 그려 보기도 했다.

그런데 2022년 초, 판매량이 절벽처럼 떨어졌고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제품은 크고 온갖 기능을 다 갖추었지만 버그가 셀 수 없었고, 고객 피드백은 매우 나빴다. 결정적인 약점을 메우려고 나는 당시 바이트댄스에서 컨테이너 보안을 맡고 있던 고등학교 짝꿍을 데려왔다.

그가 합류한 뒤에야 우리는 치명적인 문제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 구조는 낡았고, 성능과 보안에 심각한 위험이 있었다. 이른바 ‘빅데이터’와 ‘AI’는 훈련 과정과 데이터셋의 뒷받침이 없었고, 많은 기능의 핵심은 여전히 검색과 미리 정해 둔 결과였다.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리는 UI를 다듬고, 여러 기기에 맞추고, 온갖 기능을 쑤셔 넣는 데는 아낌없이 힘을 쏟았지만, 가장 핵심인 데이터와 알고리즘 역량은 제대로 다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우리 손에 핵심 자산이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상당 부분이 쌓아 올린 기능일 뿐이었다. 겉보기에는 북적이지만 토대는 단단하지 않은 건물이었다.

그 단계에 이르자 계속 개선하는 일은 무너질 듯한 건물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 같았고, 다시 짓는 일에는 회사 통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다른 파트너 두 사람과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논의했다. 거액을 투자한 한 주주는 감정이 거의 무너진 채, 이 프로젝트를 도대체 계속할 수 있기는 하냐고 몰아붙였다.

나는 그가 무너지는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천만 위안 넘게 투자했는데 전부 자기 돈이었고, 투자자의 돈은 없었다. 나도 수백만 위안을 넣었다. 몇 줄의 숫자 뒤에는 여러 해의 노력과 신념과 삶의 무게가 있었고, 그날 밤 그 모두가 같은 회의 탁자 위에 짓눌려 있었다.

그 뒤로 회사는 월급을 주지 못하기 시작했고,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관리는 한 걸음씩 강압적으로 변해 갔다. 근태 단속, 복지 축소, 의미 없는 야근, 일일 보고, 시간별 보고, 감시. 내가 반대한 많은 일이 결국 벌어졌다. 2022년 9월이 되자 회사 분위기는 모두 출근하기 싫어할 만큼 나빠졌고, 팀은 한꺼번에 사직했다. 그렇게 이 게임은 막을 내렸다.

당시 내가 갖고 있던 기록으로는 우리 몇 사람의 손실을 합치면 2000만 위안이 넘었다. 호텔과 회원제 클럽 프로젝트까지 더해지면서 압박은 더 커졌다. 이는 개인 회고 속 추정치이며, 회계 감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보다 더 괴로운 것은 미안함이었다.

함께 밤을 새우며 난관을 뚫던 동료들에게, 내가 끌어들인 짝꿍에게, 한때 나를 믿어 준 사람들에게,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회의실에서 호언장담하던 그때의 나 자신에게.

대차대조표 너머에는 더 깊은 타격이 있었다. 한때 그토록 확신하던 일이 토대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2023: 물러난 뒤에는 먼저 살아남기 ​

2023: 고향으로 돌아간 뒤, 이른 아침 햇살 속에서 삶에 대한 통제감을 조금씩 되찾다

2023년 3월 말, 나는 마지막 남은 작은 음식점을 넘겼다. 6월 말에는 짐을 싸서 가족과 함께 난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 내 몸은 이미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위장병, 불면, 식욕 부진, 흐릿한 시야, 온몸을 옮겨 다니는 통증. 의사는 큰 문제는 없다고 했지만, 나는 매일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게임에 빠져 밤낮이 뒤바뀐 채 한 푼도 벌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망한 뒤, 프로그래머로서의 삶까지 함께 닫아 버린 것 같았다. 여러 단체방에서 나오고, GitHub를 닫고, 연락처를 차단했으며, 예전에는 매일 들르던 사이트도 더는 열지 않았다.

가난도 견디기 힘들지만, 사람을 더 괴롭히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버텼을까? 조금만 일찍 멈췄다면, 방향을 바꿨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더 깨어 있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나중에야 천천히 알게 되었다. 바닥에서 기어 나오려면 삶에 대한 통제감을 조금씩 되찾아야 한다.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고, 밖에 나갈 수 있고, 다시 배울 수 있고, 과거를 마주할 수 있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수 있고, 엉망이 된 잔해를 다시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듯한 말은 이런 구체적인 행동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창업자는 ‘다시 출발한다’는 말에 유독 쉽게 빠진다. 그 출발은 대개 자신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실패할 수 있고, 쉬어야 하고, 무엇보다 먼저 몸과 생활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 새 회사는 조금 더 기다려도 된다.

2026: 중국 토큰 클라우드, 그리고 AI로 실물 경제에 힘 싣기 ​

2026: AI가 개념을 벗어나 땅과 산업, 실제 삶으로 들어가게 하다

많은 사람이 그 뒤로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했다.

2026년 4월 22일, 나는 「나의 이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아직 여기 있고, 잘 지낸다.”

2026년 6월, 나는 다시 회사 책임자로서 기술과 제품, 실제 산업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뜨거운 피 하나만 믿고 돌격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제품, 회사 방문, 저자와의 관계는 저자 프로젝트와 현실 실천에 모아 기록했다. 용도, 갱신 시점, 비후원 고지도 함께 적어 두었다. 개인 회고와 사업 소개가 뒤섞이지 않도록, 여기서는 제품의 기능을 더 풀어놓지 않는다.

2026년 6월의 한 업계 방문은 나를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AI가 개념과 소수만 쓰는 도구 상자를 떠나 산업과 땅,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검증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낼 기회가 생긴다.

앞으로 나는 AI가 농업·임업·목축업·어업 같은 실물 산업에 힘을 싣는 길을 찾아 실물 경제의 발전을 돕고 싶다. 특히 농촌 협동조합 쪽에서 무료 AI 교육을 열 계획이다.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AI를 제대로 이해하고 써 보며, 기술로 생산 효율을 높이고 경영의 시야를 넓힐 수 있게 하고 싶다.

이 말은 반드시 현실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실패를 겪은 뒤, 나는 점점 더 이렇게 믿게 되었다. 기술 창업은 ‘내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누가 정말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그것이 실제 업무 흐름에 들어갈 수 있는가’, ‘사용자가 계속 쓸 능력이 있는가’, ‘전달, 규제 준수, 비용, 서비스가 하나의 고리로 닫힐 수 있는가’도 물어야 한다.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멋진 기술 서사라도 다음에 무너질 또 하나의 건물이 될 수 있다.

다음 창업을 위한 다섯 가지 현실 문턱 ​

문마다 다른 사람이 다시 점검할 수 있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창업자의 자신감은 출발점일 뿐이다.

  1. 문제의 문: 누가 어떤 장면에서 문제를 반복해서 겪는가? 실제 인터뷰나 주문, 사용 기록이 있는가?
  2. 가치의 문: 문제가 풀리면 어떤 시간, 위험, 비용이 줄어드는가? 사용자는 어떤 방식으로 결과를 검수하려 하는가?
  3. 전달의 문: 구축, 지원, 교육, 장애 처리는 누가 맡는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도 이어받을 수 있는가?
  4. 생존의 문: 매출, 고정비, 변동비, 최악의 경우가 장부에 적혀 있는가? 언제 일시 중지하거나 철수할 것인가?
  5. 관계의 문: 팀, 가족, 고객, 제3자는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 권한 위임, 프라이버시, 약속은 분명한가?

선택과 경계는 생활 레벨업 워크시트로 정리하고, 시범 사업의 품질은 AI 프로젝트 점수표로 기록하면 된다. 도구는 문제를 보이게 도와줄 뿐, 창업자 대신 책임을 지지는 못한다.

이 몇 년이 남긴 교훈 ​

기능을 쌓는다고 제품이 되지 않는다 ​

첫째, 기능을 쌓는다고 제품이 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거듭 쓰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안만이 제품다운 무게를 얻는다.

그 시절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기능이 많다’를 ‘제품이 강하다’로 너무 쉽게 여겼다. 나중에야 알았다. 사용자는 모듈을 몇 개나 쌓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 문제가 더 빠르게, 더 안정적으로, 더 적은 비용으로 해결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기술 부채는 결국 경영 부채가 된다 ​

둘째, 기술 부채는 결국 모두 경영 부채가 된다.

뒤엉킨 코드, 낡은 아키텍처, 빠진 데이터, 보안 위험. 이런 것들은 짧게 보면 개발 문제 같지만 길게 보면 모두 경영 문제다. 전달 역량을 갉아먹고, 개선 속도를 늦추고, 유지 보수 비용을 끌어올리며, 마지막에는 거꾸로 영업과 고객 지원, 팀의 사기까지 짓눌러 무너뜨린다.

현금 흐름은 기업 가치보다 정직하다 ​

셋째, 현금 흐름은 기업 가치보다 정직하다.

요식업을 하면서 나는 매일의 매출과 비용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싸우는지 보았다. 살아남을 수 있는 작은 장사가 거창하게 들리는 인터넷 프로젝트보다 꼭 하찮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금 흐름은 사업이 현실에 복종하게 만든다.

영웅 서사를 경계하라 ​

넷째, 창업자는 자기 영웅 서사를 경계해야 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이만큼 쏟아부었는데 틀릴 리 없다”, “나를 따르는 형제들에게는 반드시 미래가 있다”. 이런 말은 가슴을 뜨겁게 하지만, 사실로 확인하지 않으면 팀과 가족에게 두 번째 상처가 되기 쉽다.

실패한 뒤에도 배우려는 마음이 마지막 자산이다 ​

다섯째, 실패한 뒤에도 배우려는 마음은 사람에게 남는 마지막 자산이다.

나는 한때 GitHub에서 물러나 기술 세계와 나를 잇는 연결을 끊었다. 지난 일은 지금도 아프다. 그래도 다시 돌아온 까닭은 고통이 판단력으로 가라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하면 실패는 실패로만 남는다.

창업은 자신을 태워 없애는 데 기댈 수 없다 ​

예전에는 창업이 곧 불태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태우고, 몸을 태우고, 관계를 태우고, 저축을 태워도 끝내 성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값어치가 있다고.

나중에 나는 이 믿음을 뒤집었다.

좋은 창업은 나를 점점 더 맑게 깨어 있게 하고, 팀을 점점 더 질서 있게 하고, 사용자에게 점점 더 이롭고, 가족을 점점 더 안심하게 해야 한다. 거대한 서사도, 창업자가 느끼는 고난도 창업에 정당성을 대신 부여해 주지 못한다.

창업에는 물론 모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험이 무모함은 아니다.

창업에는 물론 버팀이 필요하다. 하지만 버팀이 무작정 견디기는 아니다.

창업에는 물론 미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래를 믿는다고 현실을 외면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는 창업을 이해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는 것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든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우직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가면서, 소박해 보이는 질문 하나하나에 분명하게 답하려 한다.

누가 필요로 하는가?

왜 지금 필요한가?

돈은 어디서 들어오는가?

비용은 어디에 있는가?

전달은 무엇으로 보장하는가?

위험은 어떻게 받아 낼 것인가?

실패하면 어떻게 품위 있게 물러날 것인가?

성공하면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로울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 내가 이해하는 창업 편이다.

이 회고는 젊은 날의 성공을 자랑하려는 글도, 중년의 좌절을 고발하려는 글도 아니다. 현실에 산산이 부서진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다시 맞춰 가는지, 그리고 남은 능력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곳에 쓰려 하는지를 기록한 글이다.

관련 경험과 자료 ​

맺음말: 야심이 현실을 통과하게 하라 ​

나는 야심을 잃고 싶지 않다. 야심이 없었다면 나는 거듭 낯선 업계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실패한 뒤에 다시 기술을 배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증을 거치지 않은 야심은 주변의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끌어다 쓴다. 팀의 시간, 가족의 안정감, 고객의 신뢰, 그리고 몸이 마땅히 누려야 할 휴식까지.

다음 창업이 있다면, 그 창업은 몇 가지 소박한 현실을 통과했으면 한다. 문제가 정말 존재하고, 사용자가 기꺼이 쓰고, 장부가 맞아떨어지고, 약속을 지켜 전달할 수 있고, 실패했을 때 어떻게 멈출지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작게 자라도 좋다. 다만 창업자의 이야기만 더 비장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함께한 사람들의 삶을 더 질서 있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회사 하나로 내가 바닥에서 일어섰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내가 강단을 떠난 뒤에도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 끝내 거대한 사업이 되지 못하더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확신의 값을 계속 대신 치르게 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원작: 한셴카이(byoungd)의 『인생 레벨업 가이드』 · 원문 github.com/byoungd/up
본문 CC BY-NC 4.0 · 코드 MIT · 한국어 번역 2lab.ai — 중국어 원문을 한국어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