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sting Times · The New York Times Opinion · 2025-06-26
피터 틸 62분 인터뷰: 스태그네이션 테제, "인터넷 규모"의 AI, 수명 연장, 트럼프와 머스크, 그리고 적그리스도론
기술 리스크의 공포와 정체(停滯)의 안락 —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실존 위험이며, 우리는 그 사이에서 충분히 크게 꿈꾸고 있는가?
Thiel의 좌표축은 좌·우가 아니라 정체 vs 역동성이다. 그는 기술이 폭주하는 미래보다, 실존 위험의 공포를 연료로 "안전"을 약속하며 과학을 멈추는 일세계 질서 — 그가 적그리스도라 부르는 것 — 를 더 큰 위험으로 본다. AI조차 그에게는 유일한 예외이면서 "인터넷 규모"에 불과한, 불충분한 탈출구다.
시간 없는 독자: 챕터 2(01:02 스태그네이션 진단) → 챕터 8(29:32 AI = "인터넷 규모" 평가) → 챕터 12(45:37 적그리스도론)만 읽어도 논지의 뼈대가 선다.
완독 독자: 챕터 순서대로. 특히 26:58(머스크가 화성을 "정치 프로젝트"로서 포기했다는 일화), 38:23("인류가 존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의 긴 침묵 — 이 인터뷰에서 가장 화제가 된 순간), 55:29(Douthat의 역공 — Palantir가 적그리스도의 도구가 되지 않겠는가)를 놓치지 말 것.
예상 소요 — 요약만: 약 5분 / 정리본 완독: 25~35분 (원영상 62분).
피터 틸이 14년 전의 스태그네이션(기술 정체) 테제를 2025년에도 유지하면서, AI·화성·수명연장·트럼프·적그리스도를 하나의 논리로 꿰는 62분 인터뷰. 뼈대는 이렇다: ① 1970년 이후 세계는 비트(디지털)를 제외하면 정체됐다 → ② 성장 없는 사회는 중산층·제도가 붕괴하므로 훨씬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 ③ AI는 그 정체의 유일한 예외지만 "인터넷 규모"이지 사회의 근본 전환은 아니다 → ④ 진짜 실존 위험은 아마겟돈이 아니라, 실존 위험에 대한 공포를 연료로 과학을 멈추는 일원적 세계정부 — 즉 적그리스도의 슬로건은 "평화와 안전"(살전 5:3)이다. 진행자 더댓은 시종 "그 적그리스도가 쓸 도구(팔란티어·감시기술)를 당신이 만들고 있지 않냐", "인류 존속을 원하냐는 질문에 왜 머뭇거리냐"로 틸의 내부 긴장을 파고든다.
더댓이 2011년 National Review 에세이 "The End of the Future"를 소환하며 시작. 틸의 답은 명확하다: "Yes, I still broadly believe in the stagnation thesis." 단, 절대적 정지가 아니라 속도(velocity)가 꺾였다는 주장이다.
더댓의 반론 프레임: 1970년대 이후 서구는 "이만하면 충분히 부유하고, 더 가면 지구가 못 버틴다"는 합의에 도달한 것 아닌가. 틸의 반박:
"내 멍청한 답은 이것이다: AI는 낫싱버거(별것 아닌 것)보다는 크고, 우리 사회의 총체적 전환보다는 작다. 내 플레이스홀더는 90년대 말 인터넷 정도의 규모다 — 정체를 정말로 끝내기엔 충분하지 않을지 몰라도, 위대한 회사 몇 개는 만들어낼 수 있는." — Thiel, 30:42
더댓이 "AI 업계엔 후계종(successor species) 창조나 정신-기계 융합을 꿈꾸는 트랜스휴머니스트가 가득하다. 그건 과대선전인가, 망상인가, 당신이 걱정하는 것인가"라고 묻고, 이어 확인 사살하듯 던진 질문에서 이 인터뷰에서 가장 회자된 장면이 나온다(챕터 시작 37:14, 해당 발화 약 38:14–38:44):
Douthat: "I think you would — you would prefer the human race to endure. ... You're hesitating." (인류가 존속하기를 바라시죠. ... 지금 머뭇거리시네요.)
Thiel: "Well, I— Yes, I would. ... There's so many questions." (음, 저는— 네, 바랍니다. ... 다만 질문이 너무 많아서요.)
Douthat: "Should the human race survive?" (인류는 살아남아야 합니까?)
Thiel: "Yes. O.K. But I also would like us to radically solve these problems." (네. 하지만 동시에 이 문제들[죽음·유한성]을 근본적으로 풀기를 바랍니다.)
이후 틸의 논리 전개 — 머뭇거림은 부정이 아니라 "현 트랜스휴머니즘은 야망이 모자라다"는 역공으로 이어진다:
사실 골격(경력·연도·인용·일화의 뼈대)은 놀랄 만큼 견고하지만, 논지가 걸린 정량 주장에서 반복적으로 과장이 나타난다 — "Alzheimer 제로 진전"과 "아르헨티나에선 원자로를 못 짓는다"는 검증 결과 거짓이고, 인터넷의 GDP 기여치도 근거가 약하다. 즉 사실 주장 정확도는 B(틀릴 때는 항상 자기 논지에 유리한 방향으로 틀린다), 스태그네이션·안티크리스트 서사 자체는 사실이 아니라 논쟁적 해석이므로 별도 평가 대상이다. 원 발화는 2025-06-26이며, 현황성 주장은 2026-08 기준으로 갱신 사실을 각 항목에 명기했다.
정확하다. 에세이는 2011-10-03 National Review 게재 — 2025년 기준 14년 전. 스태그네이션 테제의 원전이며, 이 인터뷰의 달착륙–Woodstock 대목도 이 에세이에 이미 등장한다.
참조: National Review — Peter Thiel and the End of the Future · History News Network
방향은 경제사 주류와 부합한다: Robert Gordon의 '특별한 세기'(1870–1970) 논지와 1970년 이후 총요소생산성 증가율 약 1/3 하락이 이를 뒷받침하고, Concorde 초음속 여객(1976 취항→2003 퇴역)과 Apollo(1969–72) 이후 유인 심우주·초음속 민항이 후퇴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1750년부터 지속 가속"은 단순화 — Gordon 계열 연구는 가속 구간을 1870년 이후 2차 산업혁명에 두며, 측정 누락(디지털 후생) 반론(Nordhaus 등)도 있다. 서사의 뼈대는 실증 논쟁이 살아 있는 '주장 성격'의 역사 해석.
참조: NYRB — Nordhaus, Why Growth Will Fall (Gordon 서평) · IMF F&D — Gordon 요약
연도 모두 정확(1편 1985년작·30년 소급, 2편 1989년작·2015-10-21 도착). 각본가 Bob Gale은 2015년 인터뷰에서 2편의 카지노 재벌 Biff가 트럼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확인했다("We thought about it when we made the movie!"). 단 Gale은 2025년 40주년 인터뷰에서 "1편 Biff는 트럼프 기반이 아니고, 카지노 소유주 버전에 트럼프 영향이 있었던 것"이라고 범위를 좁혔다 — Thiel의 "Trump-like figure in power" 표현은 그 좁힌 범위 안에서도 성립.
참조: Rolling Stone — BTTF Writer: Biff Is Donald Trump (2015) · NME — Gale 발언
이 프레임을 뒷받침하는 대표 실증이 존재한다. Chetty 외 'The Fading American Dream'(Science, 2017): 부모보다 더 버는 자녀 비율이 1940년생 코호트 ~92%에서 1984년생 코호트 ~50%로 하락. 부자(父子) 소득만 비교하면 95%→41%. Thiel이 절대 이동성(absolute mobility) 지표를 정확히 짚었다.
참조: Science — Chetty et al., The Fading American Dream · Opportunity Insights
"제로 진전"은 발화 시점(2025-06)에 이미 거짓. 항아밀로이드 항체 lecanemab(Leqembi)이 2023-07 FDA 정식 승인(20년 만의 신약 정식 승인), donanemab(Kisunla)이 2024-07 승인 — 임상에서 초기 환자 인지 저하를 27–35% 둔화시켰다. 역설적으로 이 성과는 Thiel이 "안 통한다"고 한 바로 그 amyloid 표적 약물이다. 다만 효과가 완치가 아닌 '완만한 둔화'이고, Aduhelm 철회(2024-01)와 2022년 Lesné 논문 조작 파문 등 amyloid 편중 비판 자체는 학계에 실재 — 수사의 방향에는 근거가 있으나 정량 주장("zero", "40–50년")은 틀렸다. 2026-08 갱신: Leqembi 월 1회 유지요법(2025-01)·주 1회 피하주사(2025-08) 승인, 혈액 기반 진단 확산 등 진전이 오히려 가속 중.
참조: AJMC — lecanemab 승인·유지요법 타임라인 · PMC — Anti-Amyloid Therapies: Progress, Pitfalls
전부 정확. Thiel은 1998년 Confinity(→PayPal) 공동창업, Palantir 공동창업. 2016년 트럼프에 $1.25M 후원(당시 실리콘밸리 유일의 저명 지지자, RNC 연설), 2022년 Vance 상원 super PAC(Protect Ohio Values)에 $15M — 당시 단일 상원 후보 대상 역대 최대 개인 후원. Vance는 2025-01부터 현직 부통령(2026-08 현재도 재임).
참조: CNN Money — Thiel $1.25M to Trump (2016) · CBS News — Thiel과 Vance의 부상
배경 사실은 성립: Nosek(자막의 "Luke Nozick"은 오기)은 PayPal 공동창업자가 맞고, Alcor는 실재하는 냉동보존 재단이며 전신 보존(최소 $200k)보다 신경(두부만) 보존이 실제로 저렴하다. 다만 'freezing party' 일화 자체는 Thiel 본인 진술 외 독립 검증 소스를 찾지 못했다 — 회고담 성격의 단일 출처 주장.
Schmidt 건은 완전 확인: 2012-07 Fortune Brainstorm Tech(Aspen) 공개 설전 — Schmidt는 "기술 진보 가속, 사람들은 더 오래 더 부유하게 산다"로 맞섰고 Thiel은 "Google의 선전장관" 발언까지 했다. Andreessen(2013)·Bezos(2014) 대담은 이번 검증에서 1차 기록(영상·전문)을 확보하지 못함 — 존재 자체를 부정할 근거도 없어 미확인으로 남긴다.
독립 보도와 부합. NYT 등의 보도에 따르면 2012년 공동 투자자 Thiel이 연결한 만남에서 Hassabis가 'AI가 인간을 능가하면 화성까지 따라가 죽일 수 있다'고 지적했고 Musk는 말문이 막혔으며("speechless"), 직후 DeepMind에 투자했다. Thiel의 재연은 공개 기록과 골자가 일치. 단 "2024년에 Elon이 화성을 (정치 프로젝트로서) 포기했다"는 후반부는 Thiel의 해석 — SpaceX는 2026년 화성행 Starship 준비를 지속해 왔다.
참조: Yahoo News — NYT 보도 인용, Musk 'speechless' 일화 · Blaze — Thiel 재연 대조
사적 대화라 직접 검증 불가. Musk의 공개 발언과는 결이 다르다: 공개적으로는 "2040년대 지구 전체 10억 대"(2024-01, David Holz 예측에 동의) 또는 "2040년 인구보다 많은 ~100억 대"(2024-10 사우디 FII)를 말해 왔다 — Thiel이 전한 '미국·10년'은 그보다 훨씬 공격적인 버전. 과장 전달인지 실제 사석 발언인지 판별 불가.
참조: IoT World Today — Musk, 2040년 10억 대 예측 동의 · Fox Business
근거가 약한 수치. 미국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1995년 전후 1.4%→~3%로 뛴 것은 사실이나, 그 가속분의 귀속은 논쟁적이다: Gordon은 가속분(~0.6%p)을 사실상 컴퓨터 '제조' 부문에 귀속시켰고, McKinsey 분석은 인터넷 상거래의 직접 기여를 0.01%p 미만으로 봤다. '인터넷 단독, 연 1%p, 10–15년 지속'을 지지하는 표준 추정치는 확인되지 않음 — 자릿수는 그럴듯하나 특정성이 과함.
참조: Brookings — The Internet and the New Economy · McKinsey — US Productivity Growth 1995–2000 (PDF)
통용되는 패러프레이즈이지 축어 인용이 아니다. Bush가 "go shopping"이라고 명령한 기록은 없고, 실제 발언은 항공업 위기 속 "Get down to Disney World in Florida"(2001-09-27)와 "테러리스트가 우리를 겁줘서 장사와 쇼핑을 멈추게 두지 않겠다" 류의 발언들. 다만 '희생 동원 대신 소비 복귀를 촉구했다'는 요지는 역사학계(Bacevich 등)도 공유하는 정당한 압축 — McCain조차 같은 패러프레이즈를 썼다.
참조: TIME — Telling Us to Go Shopping · Washington Post — He Told Us to Go Shopping
날짜는 거의 정확: Apollo 11 월면 착륙 1969-07-20, Woodstock 개막 1969-08-15 — 정확히는 26일(약 3.7주) 뒤로, "3주"는 근사치. 이 대구는 2011년 에세이부터 쓰던 Thiel의 시그니처 문장이다. '그때 진보가 멈췄다'는 인과 해석은 사실 주장이 아닌 주장 성격.
참조: NASA — July 20, 1969 · History.com — 1969 타임라인 (Woodstock 8/15–18)
실재 확인. 1946년 National Committee on Atomic Information 제작·FAS 기술 자문의 9분짜리 단편(전후 최초의 '원자 공포' 영화)으로, 동명의 FAS 에세이집(아인슈타인 등 기고, NYT 베스트셀러)과 함께 나왔다. 원폭이 미국 도시에 떨어지는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리며 국제 통제를 촉구 — Thiel의 요지("핵을 막으려면 하나의 세계") 그대로다. 연도는 'late 40s'보다 1946이 정확.
참조: National Film Preservation Foundation — One World or None (1946) · FAS — 자체 소개
구절 실재 확인(ESV): 살전 5:3은 "평화와 안전"을 말할 때 임하는 갑작스러운 멸망을, 요 15:25는 "They hated me without a cause"(시편 35:19/69:4 인용)를 담고 있다. 장절 지시 모두 정확. 단 '살전 5:3의 화자 = 안티크리스트의 슬로건'이라는 독법은 본문에 없는 Thiel의 신학적 해석(주장 성격)이며, 후반의 반(反)칼뱅주의적 섭리론도 마찬가지로 해석의 영역.
학술적으로 지지된다. 성서 히브리어에는 영어 'nature'에 해당하는 개념어가 없으며(Hastings 성서사전: "the term is not used in the OT, nor was the conception current in Hebrew thought" — 개념 자체가 헬레니즘의 physis에서 유래), 현대 히브리어의 '자연'(teva)은 12세기 마이모니데스 번역기에야 등장한다. 영어 역본에 따라 'nature'가 표기될 수는 있으나 원문 개념 부재라는 Thiel의 논점은 성립.
사상사적으로 정확. Bacon은 History of Life and Death·New Atlantis에서 수명 연장을 실험과학의 최고 목표로 삼았고(당대 의학계의 '노쇠 불가역' 통념에 반기), Condorcet는 Esquisse(1794)에서 출생–죽음 간격의 무한정 연장을 전망했다(Malthus가 이를 정면 반박). '기독교의 육체 부활 약속과 경쟁해야 했다'는 프레임은 Thiel의 해석이지만, 과학적 불멸 추구가 초기 근대의 실제 기획이었다는 골자는 표준 학설(Gruman 1966 등)이다.
참조: JSTOR Daily — Bacon's Fables of Life Extension · De Gruyter — Living Forever in Early Modern Europe
반례가 실존한다. 아르헨티나 CAREM-25는 자국 CNEA가 완전 자체 설계하고 자국 규제(ARN) 하에 2014년부터 건설 중인 세계 최초 착공 SMR로, 부품·서비스의 70% 이상이 아르헨티나산이다(2024년 재정난으로 공정 ~85%에서 중단됐지만 이는 Milei 긴축 탓이지 미국 규제 종속 탓이 아니다). 미 FDA·NRC의 국제적 준거 효과 자체는 부분 사실 — 다수국이 WHO 등재 규제기관 심사에 의존하지만 EMA·일본 PMDA 등은 독립적으로 승인·거부한다(EMA는 lecanemab 조건부 승인, donanemab은 거부). 요지를 살리는 예시로는 아르헨티나 대신 '수출 시장에서의 미국 인허가 프리미엄'이 적합했다.
참조: Wikipedia — CAREM (아르헨티나 자체 설계 SMR) · PMC — 중남미 규제 의존(reliance) 실태
발화 한 달 전 실제로 일어난 일을 가리킨다: 2025-05-23 트럼프가 원자력 행정명령 4건 서명 — NRC 개혁(EO 14300, 인허가 18개월 시한·수수료 상한·LNT 모델 재검토), 국방·에너지부 부지 신속 배치, 2050년까지 원자력 용량 4배(400GW) 목표. 2026-08 갱신: 이 정책 기조는 ADVANCE Act(2024)와 함께 지속 중이며, Palisades·Three Mile Island 재가동 심사 등 실행 단계로 이행했다.
참조: CNBC — Trump 원자력 행정명령 (2025-05-23) · Holland & Knight — 4건 EO 분석
발화 시점 기준 정확. Thunberg는 2025-06-01 시칠리아를 출발한 가자행 구호선 Madleen에 탑승했고, 이스라엘군이 6-09 공해상에서 나포·구금 후 추방했다 — 인터뷰 공개(6-26) 약 2주 전의 일. 2026-08 갱신: Thunberg는 2025-10 Global Sumud Flotilla로 재차 가자행을 시도해 다시 구금됐다. Thiel이 그를 '반(反)성장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쓰는 부분은 주장 성격.
발화 시점 기준 사실. Thiel은 2023-04 로이터 보도로 2024 사이클 후원 중단이 알려졌고, 2023-08 Fortune에 직접 확인("이번 대선은 가장 중요한 문제 — 수십 년의 기술·경제 스태그네이션 종식 — 에 집중하지 않을 것"), Vance의 공개 복귀 요청("get off the sidelines")에도 대선 자금은 내지 않았다. 2026-08 갱신: 중단은 영구적이지 않았다 — 2026-02~03 Club for Growth Action에 $1.5M 등 중간선거 사이클에 복귀(Bloomberg 보도). "왔다 갔다 한다(go back and forth)"는 본인 묘사가 결과적으로 정확했다.
확인된다. Douthat은 2025-05-15 같은 'Interesting Times'에서 AI Futures Project의 Daniel Kokotajlo(AI 2027 시나리오 저자, 전 OpenAI)와 '지능을 끌어올리면 문제들이 풀린다'는 초지능 캐스케이드 논지를 정확히 다뤘다 — 본 인터뷰에서 Thiel이 회의하는 바로 그 명제다.
참조: YouTube — Interesting Times: Daniel Kokotajlo 편 (2025-05-15) · Apple Podcasts
이 완역은 YouTube 공식 업로드의 영문 자막(530개 세그먼트)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NYT 공식 전문(편집본, 페이월)과는 문장 단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화자 표기는 로스 더댓(Ross Douthat, 진행자)과 피터 틸(Peter Thiel, 게스트)의 턴테이킹을 문맥으로 귀속한 것이다.
더댓:
실리콘밸리는 무모할 만큼 야심적인가? 우리는 무엇을 더 두려워해야 하나 — 아마겟돈인가, 침체인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 중 한 명은 왜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걱정하고 있나?
오늘의 게스트는 페이팔(PayPal)과 팔란티어(Palantir)의 공동창업자이자, 도널드 트럼프와 J.D. 밴스의 정치 경력에 일찍 투자한 인물이다. 피터 틸(Peter Thiel)은 테크 우파(tech right)의 원조 실력자로, 다양한 보수적 아이디어와, 그저 역발상적인 아이디어들에 자금을 대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것은 그 자신의 생각이다. 억만장자라는 약간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난 2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우파 지식인이라는 주장에는 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피터 틸, "인터레스팅 타임스(Interesting Times)"에 온 것을 환영한다.
틸:
불러줘서 고맙다.
더댓:
천만에. 와줘서 고맙다.
더댓:
13~14년쯤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데서 시작하고 싶다. 당신은 보수 잡지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에 "미래의 종말(The End of the Future)"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그 글의 요지는 기본적으로, 역동적이고 빠르게 흘러가고 끊임없이 변하는 현대 세계가 사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전혀 역동적이지 않으며, 실제로 우리는 기술 침체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라이프는 돌파구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기대했던 만큼 큰 돌파구는 아니었고, 세계는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것.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당신 혼자는 아니었지만, 디지털 혁명으로 부자가 된 실리콘밸리 내부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특별한 무게가 있었다. 그래서 궁금하다. 2025년인 지금, 그 진단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틸:
그렇다. 나는 여전히 침체 테제(stagnation thesis)를 대체로 믿는다. 애초에 절대적인 테제는 아니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완전히 멈췄다는 주장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주장이었다. 0은 아니었지만 — 1750년부터 1970년까지, 200년 넘는 기간은 가속하는 변화의 시대였다. 우리는 쉼 없이 더 빨라지고 있었다. 배가 더 빨라졌고, 철도가 더 빨라졌고, 자동차가 더 빨라졌고, 비행기가 더 빨라졌다. 그것이 콩코드와 아폴로 미션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런데 그 뒤로는 온갖 차원에서 모든 것이 느려졌다.
나는 항상 비트(bits)의 세계만은 예외로 뒀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인터넷, 모바일 인터넷이 있었고, 지난 10~15년 동안은 크립토와 A.I. 혁명이 있었다. A.I. 혁명은 어떤 의미에서 꽤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질문은 이것이다: 그게 이 일반화된 침체감에서 정말로 빠져나오기에 충분한가?
그리고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에세이들에서 출발할 수 있는 인식론적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가 침체에 있는지 가속에 있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후기 근대(late modernity)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들이 초전문화(hyperspecialized)되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절반을 끈이론 연구에 바치지 않고서 물리학이 진보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양자컴퓨터는? 암 연구와 바이오테크와 이 모든 버티컬들은? 그리고 암 연구의 진보는 끈이론 대비 얼마나 쳐줘야 하나? 이 모든 것에 가중치를 매겨야 한다. 그래서 이론상으로는 감을 잡기가 극도로, 극도로 어려운 질문이다 — 그런데 그 질문에 답하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사실, 점점 더 좁아지는 집단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회의(懷疑)의 근거다. 그래서 그렇다. 나는 우리가 여전히 꽤 갇혀 있는 세계에 있다고 대체로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갇힌 것은 아니지만.
더댓:
그렇다. "백 투 더 퓨처" 얘기가 나왔는데, 우리는 최근에 아이들에게 오리지널 "백 투 더 퓨처"를 보여줬다. 마이클 J. 폭스가 나오는 1편 말이다.
틸:
그렇다, 그건 1955년에서 1985년으로, 30년을 거슬러 가는 얘기였다. 그리고 "백 투 더 퓨처 2"는 아마 1985년에서 2015년으로 가는 얘기였을 텐데, 그 2015년도 이제 10년 전 과거다. 거기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있었다. 그 2015년의 미래는 1985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 2015년 미래에는 비프 태넌(Biff Tannen)이 도널드 트럼프 비슷한 인물로 모종의 권력을 잡고 있긴 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선견지명은 있었던 셈이다.
더댓:
그렇다. 하지만 크게 눈에 띄는 것은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가다. 내가 들어본 침체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 중 하나가 이것이다. 누군가를 타임머신에 태워 여러 시점에서 옮겨 놓으면 — 1860년이나 1890년에서 출발해 1970년에 도착한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그 80년이 한 사람의 생애였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걸 실감할 것이다. 그런데 내 아이들에게는, 2025년의 아이들이 1985년을 봐도, 자동차가 조금 다르게 생겼고 아무도 휴대폰이 없다는 정도지, 세계가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통계적인 논거는 아니지만.
틸:
하지만 그게 상식이다. 그게 상식적인 이해다.
더댓:
그렇다면 우리가 도약(takeoff)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당신을 설득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냥 경제성장인가, 생산성 증가인가. 침체 대(對) 역동성을 가르는, 당신이 보는 숫자들은 무엇인가.
틸:
물론이다. 경제적인 숫자라면 단순하게, 당신의 생활수준이 부모 세대와 비교해 어떤가다. 당신이 30세 밀레니얼이라면, 당신의 부머(Boomer) 부모가 30세였을 때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와 비교해 지금 당신은 어떤가. 지적인 질문들도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정량화하는가. 연구에 투신하는 것의 수익은 어떤가. 과학이나 학계 일반으로 가는 것에는 분명히 수익체감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그 많은 부분이 소시오패스적이고 맬서스적인 기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같은 수익을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하고, 어느 시점엔 사람들이 포기하고 그 판이 무너진다.
더댓:
맞다. 그럼 그 지점을 이어가 보자.
더댓:
우리는 왜 성장과 역동성을 원해야 하는가. 당신이 이 주제에 관한 몇몇 논의에서 지적했듯이, 1970년대 서구 세계에는 일종의 문화적 변화가 일어난다 — 당신이 보기에 세상이 느려지고 침체가 시작되는 바로 그 무렵에. 사람들이 성장의 비용, 무엇보다 환경적 비용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널리 공유된 관점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부유하다. 그보다 훨씬 더 부유해지려고 너무 애쓰면 지구가 우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온갖 종류의 훼손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이 논리의 무엇이 잘못됐나.
틸:
글쎄, 침체가 일어난 데에는 깊은 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해서는 언제나 세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결국엔 그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중간 질문이 있다 —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고갈됐고, 어느 정도는 제도가 퇴락해 리스크 회피적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적 변환들은 우리가 기술(記述)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아주 정당한 걱정을 품었던 측면도 있다고 본다. 가속하는 진보를 계속하면, 환경 아포칼립스나 핵 아포칼립스 같은 것을 향해 가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하지만 우리가 미래로 되돌아가는(back to the future) 길을 찾지 못하면, 이 사회는 — 풀려버린다고 생각한다. 작동하지 않는다. 중산층이라는 것이. 나는 중산층을 "자기 아이들이 자기보다 잘 살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로 정의하겠다. 그 기대가 무너지면 우리는 더 이상 중산층 사회가 아니다. 어쩌면, 그러니까 모든 것이 늘 정적이고 갇혀 있는 봉건 사회를 유지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로 이행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서구 세계가 작동해온 방식이 아니다. 미국이 건국 후 첫 200년간 작동해온 방식이 아니다.
더댓: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결국엔 침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반란을 일으키고, 그 반란의 와중에 주변의 것들을 무너뜨릴 거라고 보는 건가.
틸: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의 제도들이 작동을 멈춘다. 우리의 모든 제도는 성장을 전제로 짜여 있다. 예산은 확실히 성장을 전제로 한다. 이를테면 — 레이건과 오바마를 보자. 레이건은 소비자 자본주의(consumer capitalism)였는데, 이건 형용모순이다. 자본가라면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 저축을 해야 하는데, 빌리는 쪽이었다. 그리고 오바마는 저세율 사회주의(low tax socialism)였다. 레이건의 소비주의 자본주의만큼이나 형용모순이다. 물론 저세율 사회주의가 고세율 사회주의보다는 훨씬 낫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걱정이다. 어느 시점엔 세금이 오르거나 사회주의가 끝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니 깊이, 깊이 불안정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낙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안정된 — 그레타식 미래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굴러갈 수도 있겠지만.
더댓:
그레타 툰베리 얘기다. 분명히 해두자면, 기후변화 반대 시위로 가장 잘 알려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를 가리키는 것이다. 당신에게 그는, 내가 보기에, 반(反)성장의, 사실상 권위주의적인, 환경주의가 지배하는 미래의 상징 같은 존재다.
틸: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아직은 아니다. 실제로 탈성장(degrowth)의 작은 스칸디나비아 마을들 같은 곳에서 산다면 그건 아주, 아주 다른 사회일 것이다. 북한 정도는 아니겠지만, 극도로 억압적일 것이다.
더댓:
내가 늘 인상 깊게 여겨온 것이 하나 있다. 사회에 이런 침체의 감각, 데카당스(decadence)의 감각 — 내가 즐겨 쓰는 단어로 말하자면 — 이 퍼지면, 위기를 은근히 갈망하는 사람들도 함께 생겨난다는 것이다. 사회를 지금 가는 길에서 급격하게 다른 방향으로 틀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 말이다. 부유한 사회에서는 일정 수준의 부에 도달하면 사람들이 아주 안락해지고 리스크 회피적이 되어서, 위기 없이는 데카당스에서 빠져나와 뭔가 새로운 것으로 가기가 정말 어렵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내게 그 원형적 사례는 9·11 이후였다. 외교정책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이런 심리가 통째로 있었다 — 우리는 그동안 데카당하고 침체돼 있었으니, 이제 깨어나 새로운 십자군을 일으켜 세계를 다시 만들 때가 왔다는. 그리고 그건 명백히 아주 나쁘게 끝났다.
틸:
하지만 비슷한 무언가가 — 부시 43(조지 W. 부시)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쇼핑이나 하러 가라고 했다. 그러니 대체로는 반(反)데카당스가 아니었다. 데카당스에서 벗어나는 길이랍시고 라핑(LARPing·역할놀이)을 하던 네오콘 외교정책 서클이 어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배적인 흐름은 부시 43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그냥 쇼핑하러 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더댓:
그렇다면 데카당스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떤 리스크를 기꺼이 져야 하나? 여기엔 위험이 하나 있어 보인다. 반데카당스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은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 "보라, 당신들에겐 이 멋지고 안정적이고 안락한 사회가 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전쟁이나 위기나 정부의 전면 개편 같은 걸 해보고 싶다." 위험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틸:
정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향으로서의 내 답은 "훨씬 더 많이"다. 우리는 훨씬 더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한다. 훨씬 더 많은 걸 해야 한다. 그 모든 버티컬을 하나하나 짚을 수도 있다. 바이오테크를 보자. 치매, 알츠하이머 같은 것 — 우리는 40~50년간 진전이 제로였다. 사람들은 베타 아밀로이드에 완전히 갇혀 있다. 명백히 작동하지 않는데도. 그건 그냥 사람들이 서로를 강화해주는 일종의 멍청한 이권 카르텔이다. 그러니 그렇다, 그 분야에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한다.
더댓:
좋다, 논의를 구체적으로 붙잡아 두기 위해 그 예에 잠깐 머물면서 묻고 싶다. 그게 무슨 뜻인가. 항노화 연구에서 더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것이 — FDA가 물러나서, 알츠하이머 신약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공개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된다고 말해야 한다는 뜻인가. 의료 영역에서 리스크란 어떤 모습인가.
틸:
그렇다, 훨씬 더 많은 리스크를 지게 될 것이다. 병에 걸렸다면 아마 당신이 질 수 있는 리스크가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질 수 있는 리스크도 훨씬 더 많다. 문화적으로 내가 상상하는 그림은 초기 근대(early modernity)다. 그때 사람들은, 그렇다, 우리가 질병을 치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인 수명 연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멸(immortality) — 그건 초기 근대라는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고 콩도르세가 그랬다. 그게 반(反)기독교적이었는지도 모르고, 기독교의 하류(downstream)였는지도 모른다. 경쟁적이었다. 기독교가 육신의 부활을 약속했다면, 과학은 정확히 같은 것을 약속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었다.
1999년, 2000년 무렵이 기억난다. 페이팔을 운영할 때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루크 노섹(Luke Nosek)이 알코어(Alcor)와 인체냉동보존(cryonics)에 빠져 있었다. 사람은 자신을 얼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는 회사 전체를 데리고 냉동 파티에 갔다 — 타파웨어 파티 같은 것이었다. 타파웨어 파는 식으로 냉동 보험을 파는 파티다.
더댓:
머리만 얼리는 거였나. 뭘 얼리기로 한 건가.
틸:
전신도 되고 머리만도 됐다. 머리만 하는 게 더 쌌다. 뒤숭숭한 광경이었다.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냉동 보험 증서를 출력할 수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것 역시 기술 침체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건 쇠퇴의 증상이기도 하다. 1999년에도 이건 주류 견해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기들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 비주류 부머(Boomer)들의 시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세대였다. 나는 늘 반(反)부머지만, 이 비주류 부머 나르시시즘 안에조차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자신의 모든 병을 고쳐줄 거라고 여전히 믿는 부머가 적어도 몇 명은 있었다는 것. 밀레니얼 중에는 그걸 믿는 사람이 이제 아무도 없다.
더댓:
하지만 지금, 다른 종류의 불멸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A.I.를 향한 매혹의 일부는 한계를 초월한다는 특정한 비전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건 정치 얘기를 한 다음에 묻겠다.
더댓:
당신의 원래 침체론은 주로 기술과 경제에 관한 것이었는데, 인상적이었던 점 하나는 그 논리가 꽤 넓은 범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에세이를 쓰던 무렵 당신은 시스테딩(seasteading)에 관심이 있었다 — 경화(硬化)된 서구 세계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정치체(polity)를 사실상 새로 짓자는 발상들 말이다. 그런데 2010년대에 당신은 방향을 틀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몇 안 되는 — 어쩌면 유일하게 저명한 — 실리콘밸리 인사가 됐다. 신중하게 고른 몇 명의 공화당 상원 후보를 지원했고, 그중 한 명은 지금 미합중국 부통령이다.
당신이 하던 일을 지켜본 관찰자로서 내 견해는, 당신이 기본적으로 정치판의 벤처캐피털리스트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 정치적 현상 유지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파괴적(disruptive) 행위자들이 있다, 여기엔 일정한 리스크를 걸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었나.
틸:
물론이다. 여러 층위가 다 있었다. 한 층위는, 그렇다 — 타이타닉이 향하고 있던 빙산에서 뱃머리를 돌릴 수 있으리라는, 어떤 은유를 쓰든, 정치적 변화를 통해 사회의 항로를 정말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훨씬 더 좁은 열망을 말하자면,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말할 때, 최소한 그것에 대한 대화라도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자, 저 구호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고 야심찬 어젠다인가, 아니면 우리가 더 이상 위대한 나라가 아니라는 극히 비관적인 진단에 불과한가.
트럼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무엇을 해낼지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100년 만에 처음으로, 그 느끼한 부시식 헛소리를 늘어놓지 않는 공화당 후보를 갖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게 진보와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대화는 시작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건 터무니없는 판타지였다.
2016년에 나는 두 가지 생각을 갖고 있었다 — 사람은 종종 의식의 표면 바로 아래에 이런 생각들을 품고 있다. 내가 결합하지 못했던 두 생각은 이랬다. 첫째, 트럼프가 지면 내가 그를 지지했다고 화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둘째, 나는 그가 이길 확률을 50 대 50으로 봤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이런 의문이 있었다 — 그가 졌을 때 아무도 화내지 않을 이유가 뭘까. 그냥 워낙 괴상한 일이라 별 문제가 안 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가 이길 확률이 더 — 50 대 50이라고 봤다. 문제들이 깊었고 침체가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품은 판타지는, 그가 이기면 우리가 이 대화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사람들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는, 트럼프로부터 10년이 지난 2025년의 이 시점에는, 그 대화를 할 수 있는 지점까지 우리가 진전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당신은 좀비 좌파는 아니니까, 로스. 하지만 —
더댓:
나는 여러 가지로 불려봤다. 여러 가지로. 얻을 수 있는 진전이라면 뭐든 받겠다. 그럼 당신의 관점에서 — 두 개의 층이 있다고 하자. 하나는 이 사회에 파괴(disruption)가 필요하고 리스크가 필요하다는 기본 감각. 트럼프는 파괴이고, 트럼프는 리스크다. 그리고 두 번째 층은, 트럼프가 미국의 쇠락에 대해 진실인 것들을 실제로 기꺼이 말한다는 것이다.
더댓:
그렇다면 투자자로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 트럼프 1기에서 뭔가를 얻었다고 느끼나. 트럼프가 1기에 한 일 중 반(反)데카당스적이거나 반침체적이라고 느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쩌면 답은 "없다"일 수도 있겠고.
틸:
글쎄, 내가 바란 것보다 더 오래 걸렸고 더 느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지점까지는 도달했다. 2012년, 2013년, 2014년에 내가 하던 대화는 그게 아니었다. 2012년에 에릭 슈미트와, 2013년에 마크 안드레센과, 2014년에 베이조스와 토론을 했다. 나는 "침체 문제가 있다"는 쪽이었고, 세 사람 모두 제각각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의 변주였다. 그리고 적어도 그 세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각을 업데이트하고 조정했다고 본다. 실리콘밸리는 침체 문제에 대해 조정을 마쳤다.
더댓:
그런데 실리콘밸리는 조정 그 이상을 했다. 실리콘밸리의 큰 부분이 2024년에 트럼프 쪽으로 넘어갔다. 가장 유명하게는 물론 일론 머스크를 포함해서.
틸:
그렇다. 내 서사(telling)로는 이건 침체 문제와 깊게 연결돼 있다. 이런 일은 언제나 엄청나게 복잡하고, 이 사람들을 대변하는 건 늘 조심스럽지만, 내 서사는 이렇다. 마크 저커버그나 페이스북, 메타 같은 경우 — 어떤 면에서 그는 그렇게 이데올로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본다. 이런 문제를 깊이 따져보지 않았다. 디폴트가 리버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질문은 늘 이거였다 — 리버럴리즘이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해마다 해마다 답은 "더 하라"였다. 뭔가가 안 되면 그걸 더 하면 된다는 것. 용량을 올리고, 또 올리고, 수억 달러를 쓰고, 완전히 워크(woke)해지고, 그러다 모두가 당신을 미워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시점엔, "그래, 이거 안 되는 것 같은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피벗한다. 그러니 친트럼프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더댓:
친트럼프 문제가 아니라는 건 맞다. 하지만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대화에서 느껴지는 것은, 2024년의 트럼프주의와 포퓰리즘이 — 피터가 외로운 지지자로 나섰던 2016년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 이제는 기술 혁신과 경제적 역동성의 운반체(vehicle)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감각이다.
틸:
지금 그건 상당히, 상당히 낙관적으로 프레이밍한 것이다.
더댓:
당신이 비관적이라는 건 안다. 당신은 그저 이 사람들이 실망하게 될 거고, 실패가 예약돼 있다고 말하는 거겠지. 내 말은 그저, 사람들이 많은 낙관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 물론 재정적자가 우리 모두를 죽일 거라는 종말론적 불안도 표출했지만 — 정부에 들어왔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정부에 들어오면서 기본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기술적 위대함(technological greatness)을 추구한다. 나는 그들이 낙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더 큰 비관 혹은 리얼리즘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고. 그래서 내가 묻는 건 그들의 평가가 아니라 당신의 평가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트럼프 2.0의 포퓰리즘이 당신에게는 기술적 역동성의 운반체로 보이는가.
틸:
여전히 우리가 가진 것 중 단연 최선의 선택지다. 모르겠다 — 하버드가 50년간 안 통한 똑같은 짓을 꾸물꾸물 계속해서 치매를 고칠 것 같은가.
더댓:
그건 "더 나빠질 것도 없으니 파괴나 해보자"는 논거일 뿐이다. 지금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은 이런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포퓰리스트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런데 결국 포퓰리스트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다. 과학에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버드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하버드 지원금을 끊으려 한다. 그리고 결국 실리콘밸리가 원했던 종류의 미래를 향한 투자는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이 틀렸나.
틸:
그렇긴 한데, 우리는 이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 이면에서 과학이 얼마나 잘 굴러가고 있는가. 뉴딜러들은,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든, 과학을 세게 밀었다. 자금을 댔고, 사람들에게 돈을 줬고, 스케일을 키웠다. 반면 오늘날엔, 아인슈타인에 상당하는 인물이 백악관에 편지를 써도 우편실에서 분실될 것이고, 맨해튼 프로젝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가 뭔가를 문샷(moonshot)이라고 부를 때 — 바이든이 암 연구를 문샷이라고 말했던 식으로 — 1960년대의 문샷은 실제로 달에 간다는 뜻이었다. 지금의 문샷은 완전히 허구적인, 절대 일어나지 않을 무언가를 뜻한다. "그건 문샷이 필요하겠는데"라는 말은 아폴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영영,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더댓:
그렇다면 당신은 — 실리콘밸리의 다른 몇몇 사람들과는 달리 — 여전히 이런 모드에 있는 것 같다. 당신에게 포퓰리즘의 가치는 장막과 환상을 찢어내는 데 있고, 트럼프 행정부가 새것을 짓기를, 맨해튼 프로젝트를 하기를, 문샷을 하기를 기대하는 단계에는 꼭 있지 않다는 것. "포퓰리즘은 그 모든 게 가짜였음을 보게 해준다"에 가까운 것.
틸:
둘 다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아주 얽혀 있다. 이를테면 원자력 규제 완화가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엔, 어느 시점엔 우리는 다시 새 원자력 발전소를, 더 잘 설계된 것들을, 어쩌면 핵융합로까지 짓는 데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그렇다, 탈규제적이고 해체적인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엔 실제로 건설에 도달해야 한다. 다 그런 식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로는, 어떤 의미로는 먼저 판을 정리하는(clearing the field) 것이고, 그 다음에 —
더댓:
하지만 당신은 개인적으로는 정치인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틸:
이 문제에 대해 나는 분열적(schizophrenic)이다. 이건 엄청나게 중요하고, 동시에 엄청나게 유독(toxic)하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한다.
더댓:
당신 개인에게 엄청나게 유독하다는 건가.
틸:
관여하는 모두에게, 모두에게다. 제로섬이다. 미쳐 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선, 모두가 당신을 미워하고 당신을 트럼프와 결부시키니까.
더댓:
당신 개인에게는 어떤 식으로 유독한가.
틸:
유독한 이유는, 제로섬 세계에서는 판돈이 정말로, 정말로 높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에는 없던 적(敵)들이 생긴다. 관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독하다.
틸:
"미래로 되돌아가기"에는 정치적 차원이 있다. 이건 2024년에 일론과 나눈 대화인데 — 우리는 이런 대화를 참 많이 했다. 일론과는 시스테딩 버전의 대화도 있었다. 내가 "트럼프가 안 되면 그냥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했더니, 일론이 이렇게 말했다.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없다. 여기가 유일한 곳이다." 그리고 사람은 늘 제대로 된 반박을 나중에야 떠올리는 법이라 —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온 지 두 시간쯤 지나서야 이 생각이 들었다. 와, 일론, 너 이제 화성에 가는 걸 믿지 않는구나. 2024년, 2024년은 일론이 화성을 믿기를 그만둔 해다. 실없는 과학기술 프로젝트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로서의 화성 말이다. 화성은 원래 정치적 프로젝트여야 했다. 대안(alternative)을 짓는 일이었다. 그런데 2024년에 일론은, 화성에 가더라도 사회주의적인 미국 정부가, 워크 A.I.(woke A.I.)가 화성까지 따라올 거라고 믿게 된 것이다.
우리가 주선한 일론의 미팅 중 가장 멍청했던 미팅이 있다. 데미스(허사비스)와의 미팅이다. A.I. 회사 딥마인드를 하던 사람이다. 대화의 골자는 이랬다. 데미스가 일론에게 말한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초인적인 A.I.를 만들고 있다." 일론이 데미스에게 응수한다. "나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나는 우리를 행성 간 종(interplanetary species)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자 데미스가 말했다. "그런데 내 A.I.는 화성까지 당신을 따라갈 수 있을 거다." 그러자 일론은 말이 없어졌다. 내 역사 서술로는, 그 말이 일론에게 정말로 와닿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2024년이 되어서야 그걸 소화한 것이다.
더댓: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화성을 믿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 않나. 화성에 가기 위해서는 재정적자든 워크니스든 모종의 전투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뜻일 뿐이지.
틸:
"화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다. 다시 말하지만, 화성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그저 과학 프로젝트인가, 아니면 — 모르겠다 — 새로운 사회에 대한 높은 비전인가. 그렇다, 하인라인(Heinlein)식의, 수많은 리버테리언들이 사는 낙원 같은 것 말이다. 일론이 그걸 그렇게까지 구체화했으리라 단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구체화를 해보면, 화성이 과학 프로젝트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 정치적 프로젝트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구체화하는 순간, 이런 것들을 따져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워크 A.I.가 따라올 것이고, 사회주의 정부가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화성에 가는 것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댓:
좋다, 그 워크 A.I. 얘기로 가자. 인공지능은 — 우리가 여전히 침체 상태라면 — 침체의 가장 큰 예외로 보인다.
틸:
그렇다. 놀라운 진보가 있었던 곳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이었던 진보다.
더댓:
그리고 방금 정치 얘기를 했지만, A.I.는 트럼프 행정부가 A.I. 투자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던 것을 상당 부분 주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 한발 물러서는 것과 민관 파트너십, 양쪽 모두에서. 그러니 진보와 정부 개입이 겹치는 지대다. 그리고 당신은 A.I. 투자자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에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틸:
글쎄, 모르겠다. 여기엔 층위가 많다. 하나의 질문 프레임은 이것이다 — 나는 A.I.가 얼마나 큰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우문우답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 burger)'보다는 크고, 우리 사회의 총체적 변환보다는 작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내 플레이스홀더는 대략 1990년대 말의 인터넷 규모라는 것이다. 침체를 정말로 끝내기에 충분한지는 확신이 없다. 몇몇 위대한 회사를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할지 모른다. 인터넷은 GDP에 몇 퍼센트포인트를, 아마 10~15년간 매년 1퍼센트 정도를 GDP 성장에 보탰다. 생산성에도 얼마간 보탰다. 그게 대략 A.I.에 대한 내 플레이스홀더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불균형하다는 건 좀 건강하지 못하다. 이것밖에 없다니. 나는 더 다차원적인 진보를 원한다. 화성에 가고 있기를 원하고, 치매 치료법이 나오고 있기를 원한다. 가진 게 A.I.뿐이라면, 그거라도 받겠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이 기술에는 명백히 위험이 있다.
더댓:
그러니까 당신은 회의론자다. 이른바 '초지능 캐스케이드 이론(superintelligence cascade theory)'이라 부를 만한 것에 대한 회의론자. 그 이론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 A.I.가 성공하면 너무나 똑똑해져서 원자(atoms)의 세계에서의 진보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너희는 치매를 못 고치지? 화성 가는 로켓을 만드는 완벽한 공장을 어떻게 지을지 모르지?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디지털의 진보만이 아니라 64가지 다른 형태의 진보를 우리에게 안겨준다는 것. 당신은 그걸 믿지 않거나,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 같다.
틸:
그렇다. 나는 그게 정말로 게이팅 팩터(gating factor·병목 요인)였는지 어딘가 의심스럽다.
더댓:
그게 무슨 뜻인가. 게이팅 팩터라는 건.
틸:
그건 아마 실리콘밸리의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보수보다는 리버럴 쪽의 것인지도 모른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IQ에 정말로 집착한다. 모든 게 똑똑한 사람들의 문제이고, 똑똑한 사람이 더 많으면 그들이 위대한 일을 해낼 거라는 것. 그런데 경제학의 반박 논거는, 실제로는 사람들이 더 못 해낸다는 것이다. 똑똑할수록 더 못한다. 그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모르거나,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고, 그들은 어디에도 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게이팅 팩터는 IQ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깊은 어딘가가 잘못돼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댓:
그건 지능의 한계인가, 아니면 성격 유형의 문제인가.
틸:
인간 초지능이 만들어내는 —
더댓:
나는 그 아이디어에 꽤 공감하는 편이다. 이 팟캐스트에서 A.I. 가속주의자와 에피소드를 했을 때 나도 이 논지를 폈다 — 지능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는 주장 말이다. 지능을 끌어올리면, 짠, 알츠하이머가 풀린다. 지능을 끌어올리면 A.I.가 하룻밤 새 10억 대의 로봇을 만들어내는 자동화 공정을 알아낸다.
틸:
나는 그 의미에서 지능 회의론자다.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증명하긴 어렵다. 이런 건 언제나 증명하기 어렵다.
더댓:
초지능이 실제로 나오기 전까지는, 나도 당신의 직관을 공유한다. 우리에겐 이미 똑똑한 사람이 많았는데, 세상이 갇혀 있었던 건 다른 이유들 때문이었으니까.
틸:
그러니 어쩌면 그 문제들은 풀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게 비관적 견해다. 치매엔 아예 치료법이 없는지도 모른다. 깊이 풀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필멸(mortality)에도 치료법이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문화적인 것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개별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끼워지는가의 문제. 우리는 이단적으로(heterodox) 똑똑한 사람들을 용인하는가. 어쩌면 미친 실험들을 하려면 이단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고, A.I.가 그저 관행적으로(conventionally) 똑똑하다면 — 워크니스를 다시 정의하자면, '워크'는 너무 이데올로기적인 단어니까 그냥 '순응주의(conformist)'로 정의한다면 — 그런 똑똑함은 차이를 만들어낼 종류의 똑똑함이 아닌지도 모른다.
더댓:
그렇다면 이런 그럴듯한 미래가 두려운가 — A.I.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침체가 되는 미래. 고도로 지능적이고, 순응주의적인 방식으로 창의적인. 넷플릭스 알고리즘 같은 것 말이다. 사람들이 보는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를 무한히 만들어내고, 그럭저럭 괜찮은 아이디어를 무한히 생성하고, 많은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내 쓸모없게 만들지만 — 그러면서 어떤 식으로든 침체를 더 깊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그냥 다 외주를 줘버리는 것. 그게 두려운가.
틸:
충분히 가능하다. 분명히 리스크다. 하지만 내가 결국 도달하는 곳은 — 그래도 우리는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은 그냥 총체적 침체뿐이니까. 그렇다, 온갖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를테면 군사적 맥락에서 드론이 A.I.와 결합되고, 그래, 이건 좀 무섭거나 위험하거나 디스토피아적이거나, 뭔가를 바꿔놓을 것이다. 하지만 A.I.가 없다면? 와, 정말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두고도 이 논의의 한 버전이 있다 — 인터넷이 더 많은 순응과 더 많은 워크니스로 이어졌는가. 그리고 그렇다, 1999년에 리버테리언들이 몽상했던 풍요롭고(cornucopian) 다양한 아이디어의 폭발로는 이어지지 못한 온갖 측면들이 있다. 하지만 반사실(counterfactual)로 따지면, 그래도 대안보다는 나았다고 나는 주장하겠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아마 더 나빴을 것이다. 대안보다 낫다는 데 걸겠다. 대안은 아무것도 없음이니까. 그리고 보라, 여기에 침체론이 여전히 강화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우리가 오직 A.I. 얘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만 빼면 우리가 거의 총체적 침체에 있다는 암묵적 인정이라는 것이다.
더댓:
하지만 A.I.의 세계는 분명히, 적어도 겉보기에는 당신이 지금 표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토피아적이고 변혁적인 — 뭐라 부르든 — 기술관(觀)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까 당신이 말했다. 현대 세계가 한때는 근본적 수명 연장을 약속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내 눈엔 아주 분명해 보인다. 인공지능에 깊이 관여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일종의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의 메커니즘으로 — 우리의 필멸하는 육신에 대한 초월로, 그리고 어떤 후계 종(successor species)의 창조라든가 정신과 기계의 융합 같은 것으로 — 보고 있다는 것이. 당신은 그게 전부 부질없는 판타지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냥 과대선전(hype)이라고 생각하나. 기계 신(machine God)을 만들 것처럼 굴면서 돈을 모으려는 것인가. 과대선전인가, 망상인가, 당신이 걱정하는 무엇인가. 당신은 인류가 존속하기를 선호할 것 같은데. …지금 망설이고 있다.
틸:
음, 나는 — 그렇다, 그러기를 원한다.
더댓:
긴 망설임이었다.
틸:
질문이 너무 많이 겹쳐 있어서 그렇다. 인류는 살아남아야 하는가 — 그렇다. 좋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우리가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풀어내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 트랜스휴머니즘의 이상은 당신의 인간적·자연적 신체가 불멸의 신체로 변환되는 근본적 변환이었다. 성(性)적 맥락의 트랜스에 대한 비판이 하나 있는데 — 트랜스베스타이트(transvestite)는 옷을 바꿔 입는 크로스드레서이고,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은 음경을 질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 수술들이 얼마나 잘 되는지는 논쟁할 수 있겠지만 —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변환을 원한다. 비판의 요지는 그게 기괴하고 부자연스럽다는 게 아니다. "야, 그건 애처로울 만큼 시시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크로스드레싱이나 성기 전환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심장을 바꾸고, 정신을 바꾸고, 몸 전체를 바꿀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정통 기독교(orthodox Christianity)가 이런 것들에 가하는 비판도 마찬가지로 "충분히 멀리 가지 않는다"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몸만 바꾼다. 하지만 영혼도 변환해야 하고, 전 존재를 변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댓:
잠깐, 잠깐, 미안하다. 나는 대체로 당신의 신념 — 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 — 에 동의한다. 종교는 과학과 과학적 진보라는 관념의 친구여야 한다는 것 말이다. 신적 섭리(divine Providence)에 대한 어떤 관념이든, 우리가 조상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들을 진보하고 성취하고 해냈다는 사실을 품어 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인다 — 기독교의 약속은 결국, 신의 은총을 통해 완전해진 몸과 완전해진 영혼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계 몇 대를 가지고 그걸 혼자 힘으로 해보려는 사람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등장인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틸:
글쎄 — 이걸 좀 분절해 보자. 뭔가 다른 것을 말하는 이단적 형태의 기독교도 있을 수 있다. 모르겠지만 — '자연(nature)'이라는 단어는 구약성서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유대-기독교적 영감을 이해하는 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자연을 초월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극복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것'에 가장 가까운 말은, 인간이 타락해 있다는 것 — 인간이 엉망이라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의 도움으로 그것을 초월하고 극복하게 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더댓:
하지만 사람들은 — 여기 계신 분은 예외로 하고(present company excepted) — 그 가설적 기계 신을 만들려고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가 야훼(Yahweh), 여호와(Jehovah), 만군의 주(Lord of hosts)와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 힘으로 불멸을 짓고 있다고 생각한다.
틸:
그렇다, 맞다. 우리가 지금 많은 것들 사이를 널뛰고 있는데 — 다시 말하지만 내가 말하던 비판은 "그들은 충분히 야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사람들은 충분히 야심적이지 않다. 그러면 이제 이 질문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도덕적·영적으로 충분히 야심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신체적으로는 아직 충분히 야심적이긴 한가. 그들은 여전히 진짜 트랜스휴머니스트이긴 한가? 여기서 보자 — 인체냉동보존, 그건 1999년에서 온 복고풍처럼 보인다. 요즘 그런 건 별로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은 신체에 대해서는 트랜스휴머니스트가 아니다. 그러면, 좋다, 냉동이 아니라 업로딩(uploading)이라고 하자. 글쎄, 그건 좀 — 나는 내 몸을 갖는 쪽이 낫다. 나를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업로딩은 냉동보존에서 오히려 한 단계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조차 대화의 일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점수 매기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그들이 전부 지어내고 있고 다 가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더댓:
하지만 일부는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틸:
'가짜'라고 하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풍요의 언어(cornucopian language)가 있다. 낙관의 언어가 있다. 몇 주 전에 일론과 이것에 관해 나눈 대화가 있는데, 그가 말했다. "10년 안에 미국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10억 대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재정적자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성장이 어마어마할 테니 성장이 그걸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데 — 그는 여전히 재정적자를 걱정하더라. 이게 그가 10억 대의 로봇을 믿지 않는다는 증명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가 그걸 끝까지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경제적으로 그렇게까지 변혁적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거나, 오차 막대(error bars)가 아주 크다고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 이런 것들은 어딘가 끝까지 사고되지 않은 채로 있다.
틸:
실리콘밸리에 대한 비판을 하나 해야 한다면 — 실리콘밸리는 기술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항상 서툴다. 대화가 늘 현미경적인 데로 흘러간다. A.I.의 IQ니 Elo 점수니, AGI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하느냐니. 그렇게 끝없는 기술적 논쟁으로 빠져든다. 그런데 중간 수준의 의미(intermediate level of meaning)에 있는 질문들이 있고, 그것들이 내겐 아주 중요해 보인다. 이것이 재정적자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정학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에 나눈 대화 중 하나는 이거였다 — 이것이 중국의 대만 침공 계산법을 바꾸는가. 군사 영역에서 A.I. 혁명이 가속되고 있는데, 중국은 뒤처지고 있는가. 낙관 쪽 시나리오는, 그들이 사실상 이미 졌기 때문에 중국이 억지(deterred)된다는 것이다. 비관 쪽 시나리오는, 지금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다는 걸 그들이 알기에 오히려 가속된다는 것이다 — 지금 대만을 잡지 않으면 영영 뒤처질 테니까. 어느 쪽이든 이건 꽤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끝까지 사고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A.I.가 지정학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거시경제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더 밀어붙이고 싶은 건 그런 종류의 질문들이다.
더댓:
당신이 관심을 가진 아주 거시적인(macroscopic) 질문도 하나 있다. 여기서 종교의 실을 좀 당겨보겠다. 당신은 최근에 적그리스도(Antichrist) 개념에 대한 강연들을 해왔다. 기독교적 개념이고, 묵시론적 개념이다. 그게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나. 적그리스도란 무엇인가?
틸:
시간이 얼마나 있나.
더댓:
적그리스도 얘기라면, 당신이 쓸 수 있는 만큼 시간이 있다.
틸:
좋다. 한참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다 되어가니 — 내 생각에 언제나 이런 질문이 있다. 우리가 가진 실존적 리스크들,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을 어떻게 언어화(articulate)할 것인가. 그것들은 전부 고삐 풀린 디스토피아적 과학기술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다. 핵전쟁의 리스크가 있다. 환경 재앙의 리스크가 있다 — 기후변화 같은 구체적인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것들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생물무기의 리스크가 있다. 온갖 SF 시나리오가 있다. A.I.에도 분명히 특정 유형의 리스크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실존적 리스크를 말하는 이 프레임을 가져갈 거라면, 또 다른 유형의 나쁜 특이점(bad singularity)의 리스크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것을 '하나의 세계 전체주의 국가(one world totalitarian state)'라고 부르겠다. 왜냐하면 이 모든 실존적 리스크에 대해 사람들이 내놓는 디폴트 정치적 해법이 바로 하나의 세계 거버넌스(one world governance)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어떻게 하나? 진짜 이빨을 가진 국제연합이 그것을 통제한다. 국제 정치 질서가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A.I.는 어떻게 하나? 글로벌 컴퓨트 거버넌스(global compute governance)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컴퓨터를 통제하는 하나의 세계 정부가 필요하고, 위험한 A.I.를 프로그래밍하지 못하도록 키 입력 하나하나를 전부 로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은 아닌지 계속 의심해 왔다.
무신론적·철학적 프레이밍은 "하나의 세계냐, 무(無)냐(one world or none)"다. 1940년대 말 미국과학자연맹(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이 내놓은 단편영화 제목인데, 핵폭탄이 세계를 날려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니 당연히 그걸 막으려면 하나의 세계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세계냐, 무냐. 그리고 기독교적 프레이밍은 — 어떤 의미로는 같은 질문인데 — "적그리스도냐, 아마겟돈이냐(Antichrist or Armageddon)"다. 적그리스도의 단일 세계 국가를 갖든가, 아니면 아마겟돈을 향해 몽유병처럼 걸어가든가. '하나의 세계냐 무냐'와 '적그리스도냐 아마겟돈이냐'는 한 층위에서는 같은 질문이다.
자, 이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한 가지 질문은 이것이다 — 사람들이 쓴 그 모든 적그리스도 소설들에는 플롯 구멍(plot hole)이 하나 있었다.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세계를 장악하는가? 그가 악마적이고 최면적인 연설을 하면 사람들이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게 플롯 구멍이다. 악마적이라니. 완전히 — 개연성이 없다. 아주 개연성 없는 플롯 구멍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 플롯 구멍에 대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장악하는 방법은 이것이다 — 아마겟돈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실존적 리스크를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규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17~18세기 베이컨적 과학의 그림 —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장악할 기계를 발명하는 사악한 테크 천재, 사악한 과학자라는 그림 — 과는 정반대다. 사람들은 그런 게 통하기엔 너무 겁에 질려 있다. 우리 세계에서 정치적 공명을 얻는 것은 그 반대다. "과학을 멈춰야 한다, 이것에 그냥 스톱을 외쳐야 한다"는 쪽이다. 17세기라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나 에드워드 텔러 같은 인물이 세계를 장악하는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세계에서는 그레타 툰베리 쪽이 훨씬 더 그럴 법하다.
더댓:
좋다, 그 두 선택지 사이의 중간 지대를 하나 제안하고 싶다. 예전에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합리적 공포가 일종의 기술의 마법사(Wizard of technology)였는데, 이제 합리적 공포는 기술을 통제하고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면서 — 당신의 관점에서 보자면 — 일종의 보편적 침체를 안착시키는 사람이라는 것.
틸:
그건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한 내 기술(記述)에 가깝다. 사람들은 여전히 17세기형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한다. 우리는 여전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무서워한다.
더댓:
그러니까 당신 말은, 진짜 적그리스도는 바로 그 공포를 이용해서 이렇게 말할 거라는 것이다. "스카이넷을 피하려면, 터미네이터를 피하려면, 핵 아마겟돈을 피하려면 나를 따라와야 한다."
틸:
그렇다.
더댓:
그렇다면 내 견해는 이렇다. 지금 세계를 보면, 그 공포를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려면 모종의 새로운(novel) 기술적 진보가 필요할 것이다. 세계가 A.I.가 곧 모두를 파멸시키리라 확신하게 된다면, 평화와 규제를 약속하는 누군가에게 세계가 의탁할 수 있다는 건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 지점까지 가려면, 가속주의적 묵시 시나리오 중 하나가 실제로 전개되기 시작해야 한다. 당신의 '평화와 안전'의 적그리스도를 얻으려면 더 많은 기술적 진보가 필요하다. 20세기 전체주의의 핵심 실패 요인 중 하나는 지식의 문제였다 — 세계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평화와 안전'의 전체주의 통치가 가능해지려면 A.I.든 뭐든 그걸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결국은 모종의 진보의 분출이 먼저 있고, 그것이 길들여져서 침체된 전체주의를 부과하는 데 쓰이는 그림이 필요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곧장 거기로 갈 수는 없다.
틸:
글쎄, 갈 수 있다 — 그레타 툰베리는 지중해의 배 위에서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중이고 —
더댓:
나는 그저, A.I.로부터의 안전, 기술로부터의 안전, 심지어 기후변화로부터의 안전이라는 약속이 지금 당장은 강력한 보편적 규합 구호(rallying cry)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속하는 변화와 총체적 파국에 대한 진짜 공포가 없는 한.
틸:
이런 건 점수 매기기가 참 어렵지만, 환경주의는 꽤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세계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어낼 만큼 절대적으로 강력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 지금 형태로도 — 유럽에서 사람들이 아직도 믿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유럽인들은 이슬람 샤리아 법보다도, 중국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접수보다도 녹색(green) 쪽을 더 믿는다. 그리고 미래란 현재와 다르게 생긴 미래의 관념인데, 유럽에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은 셋뿐이다 — 녹색, 샤리아, 전체주의 공산 국가. 그리고 그중 녹색이 단연 가장 강하다. 쇠락하고 부패해가는 유럽에서.
더댓:
하지만 그건 세계의 지배적 플레이어는 아니다.
틸:
언제나 맥락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핵 기술이 작동해온 방식에는 정말 복잡한 역사가 있다. 좋다 — 우리는 전체주의적 단일 세계 국가까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쯤에는, 침체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기술의 고삐 풀린 진보가 몹시 무서워졌다는 것이다. 베이컨적 과학은 (로스) 앨러모스에서 끝났다. 거기서 끝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은 원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1960년대 말 찰스 맨슨이 LSD를 하고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했을 때, 그가 LSD에서 본 것, 배운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반영웅처럼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찰스 맨슨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
더댓:
결정적으로, 그 역사에서 맨슨은 적그리스도가 되어 세계를 장악하지 못했다. 우리가 묵시록적인 데서 끝나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틸:
내 1970년대사(史) 서술은, 히피들이 이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1969년 7월에 달에 착륙했다. 우드스톡은 그 3주 뒤에 시작됐다. 그리고 뒤늦게 보면, 바로 그때 진보가 멈췄고 히피들이 이겼다. 그래, 문자 그대로의 찰스 맨슨은 아니었지만.
더댓:
마무리로 적그리스도 얘기에 머물고 싶다. 당신은 지금 한발 물러서며 "환경주의는 이미 침체 편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좋다, 그거 다 동의한다고 치자. 내 말은, 우리는 지금 적그리스도 치하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침체돼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더 나쁜 무언가가 지평선 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상정한다. 침체를 영구화할, 공포로 추동되는 무언가가. 나는 그게 일어나려면 앨러모스에 비견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기술적 진보의 분출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게 당신에게 던지는 아주 구체적인 질문이다. 당신은 A.I. 투자자다. 팔란티어에, 군사 기술에, 감시의 기술과 전쟁의 기술에 깊이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기술 변화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세계에 질서를 부과하는 이야기를 당신이 내게 들려줄 때 — 그 적그리스도는 어쩌면 당신이 만들고 있는 바로 그 도구들을 쓰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적그리스도라면 이러지 않겠나. "좋아, 기술적 진보는 이제 없다. 그런데 팔란티어가 지금까지 해놓은 건 아주 마음에 든다." 그게 걱정되지는 않나.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면, 적그리스도를 공공연히 걱정하던 바로 그 사람이 뜻하지 않게 그(혹은 그녀)의 도래를 앞당기는 것 아니겠는가.
틸:
보라, 온갖 다른 시나리오들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그거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더댓:
분명히 해두자면, 나도 당신이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영구적인 권위주의 통치에 기꺼이 복종하는 세계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틸:
다시 말하지만, 여기엔 여러 단계적 변형태가 있다. 그런데 — 방금 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렇게 터무니없나? 침체에 대한 넓은 설명으로서, 전 세계가 50년간 '평화와 안전'에 복종해 왔다는 것이. 이건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이다. 적그리스도의 슬로건은 '평화와 안전(peace and safety)'이다. 그리고 우리는 복종해 왔다. FDA는 미국의 약만 규제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전 세계의 약을 규제한다. 나머지 세계가 FDA를 따르기 때문이다.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사실상 전 세계의 원자력 발전소를 규제한다. 모듈형 원자로를 설계해서 아르헨티나에 그냥 지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아르헨티나 규제 당국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따를 것이다. 그러니 왜 우리가 50년의 침체를 겪었는가는 최소한 질문거리다. 한 가지 답은 아이디어가 고갈됐다는 것이다. 다른 답은 문화적으로 무언가가 일어나 그것이 허용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적 답은 상향식(bottom up)일 수도 있다 — 인류가 더 유순한 종으로 변형됐다는 것. 아니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하향식(top down)일 수도 있다 — 정부라는 기계장치가 이 침체 장치로 바뀌었다는 것. 원자력은 21세기의 동력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전 세계적 규모로, 세계 어디서나 궤도에서 이탈해 버렸다.
더댓:
그렇다면 그 서사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로는 이미 온건한(moderate)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 셈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 신은 역사를 관장하고 있나.
틸:
이건, 또 —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선택의 여지는 언제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은, 적어도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지점에서는, 어느 쪽으로도 절대적으로 예정되어 있지 않다.
더댓:
하지만 신이 우리를 온건하고 미지근한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영원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야기가 그렇게 끝날 리는 없지 않나.
틸:
신에게 너무 많은 인과(causation)를 귀속시키는 것은 언제나 문제다. 여러 성경 구절을 들 수 있지만, 요한복음 15장 25절을 들겠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they hated me without cause)."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박해할 이유가, 원인이 없다. 이것을 궁극적 인과에 관한 구절로 해석한다면 — 그들은 "신이 시켜서 박해하는 것이다, 신이 모든 것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기독교적 관점은 반(反)칼뱅주의다. 신은 역사의 배후에 있지 않다. 신이 모든 것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신이 모든 것을 일으킨다고 말한다면, 신을 희생양(scapegoat) 삼는 것이다. 신이 당신의 희생양인 것이다.
더댓:
하지만 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 들어온 것의 배후에는 있다. 신은 우리를 데카당한 로마 제국이라는 침체 속에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으니까. 그러니 어느 시점엔, 어느 시점엔 신이 개입할 것 아닌가.
틸:
나는, 나는, 나는 그런 칼뱅주의자가 아니다.
더댓:
그건 칼뱅주의가 아니다. 그냥 기독교다. 신이, 신이 우리를 영원토록 화면이나 들여다보며 그레타 툰베리에게 훈계나 듣는 처지로 버려두진 않을 것 아닌가. 그 운명에 우리를 유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틸:
거기엔, 모르겠다, 좋든 나쁘든 — 인간의 행동, 인간의 자유가 발휘될 여지가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결정론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겠나. 파국의 선(線)들이 다가오고 있으니, 요가나 하고 기도하는 명상이나 하면서 그 선들이 당신을 삼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댓:
아니, 나도 거기엔 동의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그저 희망을 가져보려는 것이다 — 인간의 자유를 사용해 적그리스도에 저항하려 할 때,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틸:
그건 우리가 동의할 수 있겠다.
더댓:
좋다. 피터 틸, 함께해 줘서 고맙다.
틸:
고맙다.
팩트체크 블록의 검증 레퍼런스는 각 항목에 인라인으로 첨부되어 있다.
원문: Interesting Times with Ross Douthat, The New York Times Opinion (2025-06-26) · 이 문서는 원문 구조를 유지한 한국어 완역과 검증을 담는다 · dosi.d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