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BODA · 철학을 보다 EP.13–EP.21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 떠나는 무한 질문 철학 여행

4시간 52분 44초, 9개 회차, 9명의 화자.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전부 갈라 놓고, 각자의 논증을 하나씩 뜯어봤다.

원본 유튜브 영상 · 채널 보다 BODA · 2026-08-17 업로드 · 문서 작성 2026-08-18

원본 길이17,564초 (4:52:44) 구성EP.13(2025-01-16) ~ EP.21(2026-01-28) 9회차 연속 전사YouTube 자동생성 한국어 자막 9,167줄 · 170,146자 등장인물9명 (MC 1 · 패널 8) 팩트체크21건 판정 · 종합 신뢰도 B

읽기 전에

읽기 전에

핵심 질문

인간과 그 바깥(사물·동물·기계·타인) 사이의 선을 누가 무슨 근거로 그을 수 있으며, 그 선이 결국 우리가 그은 것임을 알고도 왜 지켜야 하는가.

9회차가 다루는 소재는 배·동물·뇌·위선·생명·체벌·AI·공정·배려로 전부 다르지만, 매 회차의 실제 교착점은 같다. 어디까지가 나인가(EP.13), 어디까지가 실험해도 되는 존재인가(EP.14), 어디까지가 내 선택인가(EP.15), 어디까지가 선인가(EP.16), 어느 생명이 먼저인가(EP.17), 어디까지가 인권의 하한인가(EP.18), 어디까지가 인간인가(EP.19), 어디까지가 공정인가(EP.20), 어디까지가 배려인가(EP.21). 그리고 거의 매번 "그 선은 결국 인간이 정한다"까지 합의한 뒤, 그럼에도 선을 지워선 안 된다는 데서 다시 갈린다.

멘탈 모델

MC 정영진과 동양철학자 전호근이 9회 내내 고정 상수이고, 대화 상대만 과학자(EP.13~15) → 종교인(EP.16~18) → 데이터·교육(EP.19~21)으로 교체된다. 즉 이건 강의 시리즈가 아니라 같은 질문을 직능만 바꿔 반복 투입하는 통제 실험이다.

여기에 축이 하나 더 있다 — 정영진은 진행자가 아니라 상설 악마의 대변인이다. 동물실험 찬성, 자유의지 부정, 타노스 옹호, 체벌 조건부 허용, 이종장기이식 옹호, 비정규직 전환 반발 대변까지 거의 매 대립표의 한쪽을 그가 잡는다(본인도 EP.15에서 "여기 4대1로 전투력 발휘해보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읽는 법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같은 도발에 물리학자·스님·빅데이터 분석가가 각각 어디서 멈추는가"다.

선행 개념

권장 경로

통으로 볼 필요는 없다. 4시간 53분은 세 패널기가 각각 독립된 프로그램이고, 세 기(期) 안에서도 논쟁 밀도가 크게 다르다.

요약만 볼 사람 (문서만) 회차별 「쟁점 대립표」 9개만 훑어라. 각 표의 마지막 열 "실제로 합의된 지점"이 이 시리즈의 진짜 산출물이다 — 나머지는 그 합의에 도달하는 경로다.

한 시간만 쓸 사람 (영상 발췌) 밀도 순으로 세 구간:

  1. EP.15 자유의지·결정론 (01:12:06–01:50:18) — 물리학·진화학·정신분석·동양철학이 한 문제에 동시에 붙는 유일한 구간. 이 시리즈 전체의 방법론 견본.
  2. EP.17 생명의 가치 (02:22:14–02:47:14) — 종교인기의 핵. "생명에 경중이 없다"는 만장일치가 이종장기이식·반려동물에서 갈라지는 과정.
  3. EP.19 AI와 인간 (03:08:06–03:54:38) — 유일하게 데이터를 든 사람(송길영)이 철학자들과 붙는다. 나머지 8회와 논증의 재질 자체가 다르다.

전부 볼 사람 (순서 재배치 권장) 방영 순서보다 이 순서가 이득이 크다 — EP.13 → EP.15 → EP.19(나·자유의지·기계, 동일성 축) → EP.14 → EP.17(동물·생명, 선 긋기 축) → EP.16 → EP.18(선악·인권, 규범 축) → EP.20 → EP.21(공정·배려, 사회 축). 같은 개념이 재등장할 때 앞 회차가 이미 깔려 있어 반복 설명을 건너뛸 수 있다.

전호근·정영진 두 사람의 발언만 9회 연속으로 따라가는 읽기도 가능하다 — 상대가 바뀔 때 같은 사람의 논법이 어떻게 조정되는지가 이 시리즈에서만 관찰 가능한 데이터다.

예상 소요

범위소요
이 문서의 대립표 9개만15~20분
이 문서 전체(회차 흐름 + 발언 스크립트 + 인물별 비평)90~120분
문서 + 원본 영상 발췌 3구간2시간 30분~3시간
문서 + 영상 4:52:44 전체6~7시간

점검 질문

  1. 같은 도발("결국 그 기준은 당신들이 정한 것 아니냐")에 대해 물리학자·스님·빅데이터 분석가는 각각 어디서 멈췄는가. 셋 중 가장 먼저 물러선 사람과 끝까지 버틴 사람을 근거와 함께 지목할 수 있는가.
  2. 이 시리즈에서 합의가 성립한 회차와 병존으로 끝난 회차를 가르는 조건은 무엇인가 — 소재의 난이도인가, 패널의 직능 조합인가, 아니면 논쟁을 닫는 방식(규제적 이념 같은 장치)의 유무인가.
  3. 정영진의 반대편 역할을 빼고 같은 9개 주제를 돌린다면, 어느 회차의 결론이 실제로 달라졌겠는가. 달라지지 않는 회차가 있다면 그건 무엇을 뜻하는가.

Executive Summary

Executive Summary

한 문단 요지

이 4시간 53분짜리 몰아보기는 「철학을 보다」 EP.13(2025-01-16)부터 EP.21(2026-01-28)까지 약 1년치 9회차를 시간순 그대로 이어붙인 것이다(원본 합계 18,317초 − 몰아보기 17,564초 = 753초, 전부 회차별 오프닝·엔딩 인사 컷 → 누락된 본편 토론 없음). 겉으로는 테세우스의 배·동물실험·자유의지·위선·생명·체벌·AI·공정·제사라는 아홉 개의 무관한 주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덟 개의 축이 아홉 회차를 가로질러 반복된다 — 그중에서도 "무엇이 어떤 존재를 그 존재로 만드는가"(동일성)와 "누구까지가 도덕적 배려의 대상인가"(지위의 경계)라는 두 축이 배·동물·뇌·AI·흉악범이라는 서로 다른 대상 위에서 계속 다시 던져진다. 이 시리즈의 실제 지적 산출물은 승패가 아니라 구분(distinction)이다 — "결과가 적용 안 된다"와 "그러니 필요 없다"는 다르다(장대익), "규제적 이념"과 "구성적 원리"는 다르다(김석), "사회가 선택했을 뿐"과 "생명에 경중이 있다"는 다르다(성진 스님), "순치"와 "습"은 다르다(전호근). 합의는 거의 언제나 상한(무엇이 선인가)이 아니라 하한(무엇은 하지 말자)에서 났다.


이 영상의 구조 (세 시기)

MC 정영진은 9회 전부, 전호근(동양철학, 경희대)만이 패널 중 유일하게 9회 전부 출연한다. 나머지는 세 덩어리로 갈린다.

시기회차구간패널 구성이 시기의 논증 언어
① 과학자기EP.13~15 (2025-01~02)00:00:00~01:50:18김범준(물리) · 장대익(과학철학/진화) + 전호근 · 김석(서양철학, 건국대)검증가능성 — 리벳 실험, 준비전위, 꼬마선충 회피반응, 탈리도마이드, 양자역학의 확률적 인과율. "그걸 증명할 실험이 있느냐"가 결정타로 쓰인다
② 종교인기EP.16~18 (2025-10~11)01:50:18~03:08:06성진 스님(조계종, 남양주 성관사) · 하성용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 전호근심급과 과보 — 판단의 최종 주체가 누구인가(없음/하느님), 계율(불투도·악구), 육도, 위령제. 실험이 아니라 "누가 판정하는가"가 결정타
③ AI·공정기EP.19~21 (2025-12~2026-01)03:08:06~04:52:44송길영(빅데이터·마인드마이너) ·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 전호근 · 김석데이터와 제도 설계 — 하버드 상대소득 실험, 가석방 판정의 식전/식후 차이, 최소 성취 수준 보장, 무지의 베일, 설명 가능한 AI

EP.15(2025-02-13) → EP.16(2025-10-30) 사이 8개월 공백이 있고, 정확히 그 지점에서 패널이 통째로 갈린다. 시리즈가 중단됐다 재개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공백은 편집상 이음매 없이 지나가므로, 시청자는 01:50:18에서 출연진이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 이 요약에서 가장 먼저 알려줄 만한 사실이다.

회차 제목과 실제 내용의 어긋남 하나: EP.20("장난으로 쓴 이름이 진짜 죽는다면")은 데스노트 사고실험으로 열지만 본편의 8할은 공정 논의이고, EP.21("제사를 그냥 없애면 안 될까")은 제사를 한 쟁점으로만 다루고 본편은 배려·눈치의 강제 가능성이다. 제목만 보고 건너뛰면 이 시리즈에서 밀도가 가장 높은 축(분배 정의)을 통째로 놓친다.


쟁점별 전수 정리

1. 동일성 — 무엇이 어떤 것을 그것이게 하는가

2. 도덕적 지위의 경계 — 누구까지가 배려·권리의 대상인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여러 번, 가장 다른 언어로 반복되는 축이다. 동물(EP.14) → 생명 일반·동물 위계(EP.17) → AI(EP.19)로 대상만 바뀐다.

3. 자유의지·결정론·책임

4. 선악의 기준 — 의도인가 결과인가, 그리고 누가 판정하는가

5. 폭력·처벌·권력 — 죽이는 것, 때리는 것, 가두는 것

6. 기계와 창작·노동

7. 분배 정의와 공정

8. 공동체와 개인 — 배려·의례·눈치를 강제할 수 있는가


시리즈를 관통하는 패턴

① 이기는 수는 반박이 아니라 구분이다. 이 시리즈에서 논쟁이 실제로 진전되는 순간은 예외 없이 누군가가 뭉쳐 있던 개념을 둘로 쪼갤 때다. 장대익 "결과가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다 ≠ 그러니 필요 없다"(01:07:29) / 김석 "규제적 이념 vs 구성적 원리"(01:04:45), "실현 여부 ≠ 존재 여부", "정신분석의 무의식 ≠ 뇌과학의 무의식" / 성진 스님 "사회가 필요한 선택을 했을 뿐 ≠ 생명에 경중이 있다"(02:27:35) / "창작물이냐 ≠ 좋은 창작물이냐"(03:36:42) / 전호근 "순치 ≠ 습"(04:40:38) / 김범준 "발생 시점 ≠ 인식 시점". 반대로 정면 반박은 거의 아무것도 이동시키지 못한다 — 체벌 회차에서 "그래도 안 됩니다"가 반복되는 구간이 이 명제의 대조군이다. 이 시리즈를 보는 가장 실용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여덟 개 주제에서 딜레마를 해체하는 열 가지 이상의 실제 수법을 볼 수 있다.

② MC 정영진은 진행자가 아니라 구조적 악마의 대변인이다. 그는 스스로 "여기 4대1로 한번 제가 오늘 전투력 발휘해 보겠습니다"(01:24:43)라고 선언하고, 매 회차 극단 사고실험으로 논의를 강제로 밀어붙인다 — 고흐 위작 20년(00:19:49), 뇌 업로드, 갤러그 판, 시뮬레이션 가설, 타노스(02:18:20), 임산부냐 아이냐(02:33:14), 이종장기이식(02:41:40), 헬멧 한 대(02:55:35), 학급 전원 합의 처벌(02:57:26), 데스노트, 발표시간 10분, 연예인 기부. 그가 밀지 않으면 패널들은 조기 수렴한다 — EP.17(생명의 가치)이 정확히 그 반례로, 세 사람이 "경중은 없다"에 일찍 합의해버리자 회차의 나머지가 MC의 반론 만들기로 채워진다. 동시에 그의 논점 몇 개는 반박된 게 아니라 회피되고 넘어간다(위작에 쌓인 역사성, 신의 전지성 — 본인도 "약간 비겁하게 회피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시리즈의 지적 동력원이자 동시에 미완결의 원인이다.

③ 전호근의 배치 목적은 승패가 아니라 시간축과 제3항이다. 9회 중 유일하게 전원 출연이며, 패널이 두 번 통째로 갈리는 동안에도 남는다. 그의 기능은 논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동양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로 대립을 2항에서 3항으로 여는 것이다 — 테세우스에 제법무아·연기(00:12:23), 동물실험에 이규보·맹자, 자유의지에 장자의 꿈속의 꿈(01:47:47), 위선에 묵자·벤담·밀 대 칸트·공맹·주자(02:06:31), 인간·동물 위계에 "철학사가 위계파와 무구분파로 거의 반반"(02:37:36), 배려에 맹자·순자와 순치/습. 결정적으로 그는 교착이 생긴 지점마다 프레임을 제공하고 빠진다 — 이 시리즈에서 "양쪽을 담는 그릇"은 거의 항상 그가 만든다. 반면 자기 입장을 스스로 공격하는 습관도 있어(02:26:39 공리주의 극단화의 약점을 본인이 지적) 논쟁자로서의 존재감은 오히려 옅다.

④ 합의는 상한이 아니라 하한에서만 난다. 아홉 회차를 통틀어 "무엇이 선인가 / 무엇이 나인가 / 무엇이 공정인가"라는 상한 질문은 단 한 번도 합의되지 않는다(EP.13은 5인 각자 정의로, EP.16은 3인 각자 정의로 끝난다). 반면 하한에서는 놀랄 만큼 쉽게 만난다 — "해치지 않음"(선의 공통 하한), "최소 인권은 흉악범에게도"(+ 사형 전원 반대),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 "필요하지만 줄여가는 노력", "설명 가능성·납득 가능성", "은근한 압력까지는 허용", "그래도 노트에는 안 쓴다". 이건 패널들의 게으름이 아니라 다원적 토론이 실제로 도달 가능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결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⑤ 같은 질문이 세 시기에 세 가지 언어로 반복된다 — 그리고 매번 인간중심주의를 자백하고 넘어간다. "누구까지가 도덕적 배려의 대상인가"는 과학자기엔 꼬마선충의 회피반응과 탈리도마이드(검증), 종교인기엔 육도와 불성, 하느님의 심판(심급), AI기엔 법인격과 헤겔식 자유 확대(제도)로 던져진다. 대상만 동물→생명 일반→AI로 바뀔 뿐 구조가 같다. 그리고 세 시기 모두 같은 자백에 도달한다 — 선을 긋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00:45:57·00:48:47). 안광복이 EP.19에서 "AI는 흉내만 낸다"는 200년 전 "미개인은 흉내만 낸다"와 같은 논리(03:29:53)라고 말하는 순간이, 이 반복 구조를 시리즈 내부에서 스스로 인식한 유일한 지점이다.


볼 가치 판정

회차밀도볼 이유 / 건너뛸 이유
EP.15 자유의지·결정론 01:12:06~01:50:18최상 (시리즈 1위)여기만 본다면 여기. 물리학(강한 결정론·양자역학의 확률적 인과율)·뇌과학(리벳 400ms 준비전위)·정신분석(프로이트/알프레드 멜)·신학(보에티우스·이신론)·동양철학(장자)이 한 축 위에서 실제로 충돌한다. 시리즈 최고의 순간은 물리학자와 철학자가 서로를 향해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할 실험은 없다"(01:45:03)를 명시적으로 승인하는 대목 — 양쪽이 각자 무기의 사정거리를 스스로 그어 보이는, 이런 토론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MC가 4:1을 자처하며 가장 세게 미는 회차이기도 하다
EP.20 공정 (+데스노트) 03:54:38~04:24:40롤스·무지의 베일·하버드 상대소득 실험·최소 성취 수준 보장·AI 판사까지 추상 원리와 현장 사례가 계속 교차한다. 최고 수확은 "손해가 없어도 싫은 건 비교 욕망 때문"이라는 논점 재정의 — 옳고 그름 다툼을 감정의 문제로 옮겨 교착을 푼다. 송길영(역학) vs 김석(사회 불안)의 1,000배 격차 충돌은 정면으로 갈린 채 끝나 오히려 좋다. 제목("장난으로 쓴 이름이…")만 보고 건너뛰기 쉬운데, 데스노트는 5분짜리 오프너이고 본편은 공정이다
EP.14 동물실험 00:37:46~01:12:06유일하게 2:2 팀 배틀 포맷이 실제로 작동하는 회차. 찬반이 팀과 정확히 겹치고(과학자 2인 찬성 / 철학자 2인 반대), 쟁점마다 반증이 오간다 —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을 전부 통과하고도 기형아를 냈고, 회피 반응이 기준이면 꼬마선충도 회피한다. 김석의 "규제적 이념 vs 구성적 원리"는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재사용 가치가 높은 도구다
EP.19 AI와 인간 03:08:06~03:54:38데이터 실무자(송길영)가 철학자들과 정면으로 다른 전제 위에서 말하는 게 값어치. 안광복의 "AI는 욕망을 참는 기제를 선천적으로 갖췄으므로 고대철학 기준으로는 더 우월하다"(03:31:51)는 시리즈에서 가장 예상 밖의 논변이고, "AI는 흉내만 낸다 = 200년 전 미개인 담론"은 뼈아프다. 감점 요인은 전호근·김석의 발언 배분이 자동자막만으로는 확정되지 않는다는 점 —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따라가기가 다른 회차보다 어렵다
EP.13 테세우스의 배 00:00:00~00:37:46중상소재는 가장 익숙하지만 결론의 근거가 서로 다른 네 학문에서 나와 하나로 수렴하는 과정이 좋다 — 헌 부품 재조립선에 대한 만장일치 "아니다"의 이유가 물리학(구성 환원주의 부정)·과학철학(인공물은 의미 부여 순간 역사적 존재자)·서양철학(형상에 역사가 포함)·동양철학(연기)에서 각각 나와 같은 지점에 닿는다. 시작점으로 가장 적합. 감점은 미결 종료가 많다는 것 — 합의냐 인식이냐, 위작의 역사성, "나"의 정의가 모두 정리 없이 끝난다
EP.16 위선·선악 01:50:18~02:22:14중상종교인기의 개막이자 최고작. 의무론(칸트·공맹·주자) vs 공리주의(묵자·벤담·밀)가 명시적으로 프레이밍되고 좁혀지지 않은 채 병존하는 게 이 회차의 정직함이다. 성진 스님의 임진왜란 사례(살생은 악이되 과보는 우리가 진다 — 계율 전수를 끊고 일부를 금강산으로 보내 보존한 뒤 왜군과 함께 위령제)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밀도 높은 3분이다. "판단의 최종 심급이 없음이냐 하느님이냐"라는 균열은 이후 회차까지 이어진다
EP.21 배려·눈치 (+제사) 04:24:40~04:52:44전호근의 "처벌이 두려워 하는 건 순치이지 습이 아니다"(04:40:38)와 김석의 빅토리아 시대 반례(에티켓 최전성기 = 매독·불륜 최다)만으로 볼 값은 한다. 다만 제목이 내건 제사 존폐 질문은 결론 없이 넘어가고, 후반은 축의금·강연료 잡담 쪽으로 흐른다. 마지막 회차라 마무리 톤이 강해 논쟁 밀도는 낮은 편
EP.17 생명의 가치·트롤리 02:22:14~02:47:14중하조기 합의가 회차를 죽인 사례. 세 패널이 02:26:06에 이미 "살아 있는 사람에게 경중은 없다"로 수렴해버려 남은 20분이 MC의 반론 만들기로 채워진다. 그럼에도 두 대목은 건질 만하다 — 성진 스님의 슬리퍼리 슬로프(게르만 우월론→유태인·집시→같은 아리아인 중 장애인, "필요성으로 경중을 정하면 필요성이 없어진 사람은 죽어도 되는 사람이 된다" 02:29:28)와 "우리 사회가 필요한 선택을 했을 뿐, 그걸 생명의 경중이라 부르지 말라"는 구분. 25분으로 가장 짧아 손해는 적다
EP.18 체벌·인권 02:47:14~03:08:06최하 (건너뛰어도 되는 유일한 회차)패널 3인 전원이 같은 편이라 토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MC 1인 대 3인 구도에서 반박이 "그래도 안 됩니다"(02:55:42)·"열 명이 동의해도 안 된다"로 반복되고, 논증이 아니라 입장 재확인이 대부분이다. 20분 52초로 가장 짧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두 가지는 남는다 — 오리걸음 논쟁에서 한 패널이 "조건으로 부과되는 순간 처벌, 자발이면 수행"이라는 기준으로 자기 입장을 스스로 조정하는 순간(02:57:10, 시리즈 전체에서 드문 실질적 이동), 그리고 사형에 참석자 전원이 반대하는 대목(03:06:17). 시간이 없으면 이 회차를 먼저 버려라

추천 시청 순서 —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EP.15 → EP.14 → EP.20 → EP.19 순으로 네 편(약 2시간 40분)만 봐도 이 시리즈의 지적 산출물은 대부분 회수된다. 나머지 다섯 편은 축을 채우는 역할에 가깝다.


확실성에 대한 주석


신뢰도 · 팩트체크

팩트체크

종합 신뢰도: B

수치 주장은 대부분 실제 통계·논문과 근접하게 맞고(동물실험 459~499만, 스탠퍼드 13%, 바나나 86억, 리벳 400ms) 철학사·저작 귀속도 정확하나, 인물 이름 오귀속(리벳→"리처드")·작품 소재지 오기(별이 빛나는 밤에→루브르)·실험 메커니즘 오설명(가위바위보 로봇을 "뇌 신호 캐치"로 설명) 세 건이 있고, 특히 마지막 건은 자유의지 반박의 근거로 쓰여 시청자가 사실로 오인할 위험이 실질적이다.

판정 분포: ✅ 11 / 🟡 6 / ⚠️ 1 / ❌ 3


판정 목록

✅ 연간 동물실험 희생 규모 "500만 마리 정도"

🟡 "동물의 종수가 현재 아마도 거의 200만 종"

✅ "2024년 현재" 시점을 명시한 동물실험 반대 입장

✅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 대신) 개를 구합니다"

⚠️ "(백신 동물실험이 없었다면) 수명이 50년 100년 늘어났다"

🟡 "인구 10만 명당 … 교육 수준 높은 곳에서 100명쯤" (자유의지 반박용 사회 통계)

🟡 리벳(Libet) 실험 — 인물명 오류, 수치는 근사

❌ "가위바위보 로봇은 사람의 뇌 신호를 캐치해서 100판 100승한다"

✅ 시뮬레이션 가설 대목 — 보스트롬 오귀속 없음, 인용 저작 정확

✅ 데카르트 "동물은 기계" + 아리스토텔레스 위계 + 장자 무차별

🟡 이규보 "모기도 똑같은 생명" + 육식 절제 시도

✅ "2500년 전 불교가 카스트(바라문교)에 맞서 선언했다"

🟡 "전국에 1800여 개 고등학교가 있는데 철학 교사가 30명 정도"

✅ 지브리 스타일 AI 그림 = "모사이지만 창작물" / 스타일 자체의 법적 지위

🟡 "10년 넘은 커즈와일 책이 2030년경 인간 지능 추월을 예측"

✅ 니콜라 테슬라 1935년 로봇 예언

🟡 "스탠퍼드 리서치 — 22년부터 25년, 25살 언더 채용 13% 감소"

✅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인 예술 작품이 86억에 낙찰"

❌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 "AI 그림과 사람 그림의 구별은 올해부터 완전히 없어졌다"

✅ 아이작 아시모프 〈바이센테니얼 맨〉 — 로빈 윌리엄스, 자유·재산권·죽음 선택

✅ 한나 아렌트의 labor / work / action 3구분


회차별 전개

회차별 전개

몰아보기는 편집 컷 12분 33초를 빼면 9편 전체를 순서대로 담고 있다. 원본 9편 합계 18,317초 − 몰아보기 17,564초 = 753초, 회차당 47~129초로 오프닝·엔딩 인사 분량과 일치한다. 빠진 본편 토론은 없다.

EP.13 · 테세우스의 배 · 뇌 이식 · '나'는 누구인가

00:00:00 – 00:37:46 (몰아보기) · 원본 38:47 · 2025-01-16 공개 · 출연 정영진·김범준·장대익·전호근·김석

원제 과학자가 철학자들의 논쟁에 끼면 어떻게 될까? ㅋㅋㅋ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의 배 · 나의 동일성 (00:00:00–00:37:46)

출연자 확정

정본 = 원본 회차 「철학을 보다 EP.13」(youtube.com/watch?v=hSiR6VzmGK4, 2025-01-16, 38:47) 공식 설명란: "오늘은 정프로님과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님, 과학철학자 장대익 교수님, 동양 철학자 전호근 교수님, 서양 철학자 김석 교수님을 모시고 '테세우스의 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 출연자 5명. 아래 표의 전사 근거는 이 명단과 전부 일치한다.

이름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정프로)MC(진행)공식 설명란 · 00:00:06 "오늘 철학을 보다 재밌게 한번 이야기 나눠 볼 저는 정영진입니다." · 00:12:23 전호근이 "정프로님 말씀하신 것처럼" 호명확정
김범준물리학자 —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통계물리학자공식 설명란 · 00:00:23 "저는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이고요. 철학의 로망을 갖고 있는 통계 물리학자인데" · 00:11:31 MC가 "우리 김범주 교수님" 호명 [ASR 오기]확정
장대익과학철학자 — 가천대(석좌교수)공식 설명란 · 00:00:17 "과학으로 철학을 보는 과학 철학자 장대입니다. 가천대 서터 칼리제 있습니다." [ASR: 장대 / 서터 칼리제 → 장대익 / 석좌교수] · 00:16:21 김범준이 "저나 뭐 장대 교수님이나" 호명 · 00:18:10 "장희 교수님" [ASR 오기]확정 (전사상 이름 표기만 ASR 오기)
전호근동양철학자 — 경희대학교공식 설명란 · 00:11:15 "안녕하세요. 전호건입니다. 정희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철학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ASR: 전호건 / 정희대학교 → 전호근 / 경희대학교] · 00:28:38 김석이 "전호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호명확정 (전사상 이름·소속만 ASR 오기)
김석서양철학자 — 건국대학교, 서양 현대철학공식 설명란 · 00:00:10 "저는 서양 현대 철학을 전공하고 있고 현재 건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석이라고 합니다." · 00:26:21 전호근이 "아까 김석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호명확정

전호근은 이 회차 도중(00:11:03 MC 호출)에 합류하며, 몰아보기 편집본에도 자기소개가 남아 있다. 전사에는 위 5인 외의 화자 근거가 없다. 발언 귀속은 아래 전부 전사 내부 증거로만 했다 — 동양철학 준거(제법무아·연기, 리·기, 측은지심, 성선설)는 전호근으로 귀속했다.

논의 흐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부품이 모두 교체된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그렇다 — 점진적 교체로 정체성이 유지되면 100% 바뀌어도 같은 배 (김범준 00:04:43) /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부르면 그렇다 (정영진 00:08:29) /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면 그렇다 (전호근 00:12:23)본질적 속성(마크·엔진)이 바뀌면 다른 배 (장대익 00:05:12) / 전소 후 재제작이면 아니고 개보수면 맞다 — 형상은 질료와 함께 있어야 (김석 00:06:11, 00:07:16)"점진적 개보수로 이어진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는 데는 김범준·김석·장대익·정영진·전호근 모두 사실상 수렴. 갈린 것은 그 근거(물질 연속성 / 본질적 속성 / 형상+질료 / 사회적 합의)
정체성은 객체의 속성인가, 사람들의 합의인가합의·명명이 정체성을 만든다 — 고등어를 모두가 오징어라 부르면 오징어다 (정영진 00:10:34); 개념 확정은 외부 조건이 좌우한다, 제법무아·연기 (전호근 00:12:23)명명만으로는 안 된다 — "주몽이 쓰던 화살"은 믿는다고 되지 않고 근거가 있어야 한다, 개념에는 연쇄가 있다 (김석 00:09:10, 00:10:02); 인식 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근거다 (김범준 00:09:26)명명이 개념의 내용을 바꾼다는 것 자체는 김석도 인정("오징어가 되긴 한다, 오징어의 내용이 바뀌는 거지" 00:10:38). 합의냐 인식이냐의 구분은 제기됐으나(00:13:28) 정영진이 "거기까진 안 들어가겠다"며 미결로 종료
헌 부품을 다 모아 재조립한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전사 내에 이 배가 진짜라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한 화자 없음. 정영진이 "해전에 쓰인 배에 더 가깝지 않냐"고 압박만 함 00:14:39)아니다 — 역사적으로 그 배가 될 수 없다·시리얼 넘버 카메라 (전호근 00:14:24) / 형상에는 역사적 활용·명명·전시 과정이 포함된다 (김석 00:15:26) / 구성 환원주의 부정, 원자를 다 모아 조립해도 나는 아니다 (김범준 00:16:02) / 자연종과 달리 인공물은 의미 부여 순간 역사적 존재자가 된다 (장대익 00:16:35)만장일치로 "아니다". 근거도 사실상 하나로 수렴 — 구성 요소가 아니라 역사(관계·의미·제작 과정)가 동일성을 담지한다
위작·복제물의 지위 (고흐 사고실험)사람들의 인정과 역사성이 20년간 모조품 쪽에 쌓였으면 그쪽 아니냐 (정영진 00:19:49)위작은 위작일 뿐 — 제작 과정의 역사성이 없다(00:20:20), 같은 안료로 똑같이 그려도 고흐의 작품은 아니다(00:20:39), 통으로 훔쳐간 것과 쪼개 재구성한 것은 지평이 다르다 (김석 00:20:29)원본은 원본이라는 데 반대 없음. 다만 정영진의 "인정된 역사성" 논점은 반박되었다기보다 회피된 채 다음 사고실험으로 넘어감
뇌만 보존되면 나인가 (뇌 중심주의)뇌가 정체성을 결정한다 — 이식 중 유일하게 꺼려지는 장기가 뇌, 치매 시 "다른 사람이 됐다"고 한다, 뇌 보존 후 나머지를 갈아끼우면 여전히 그 사람 (장대익 00:22:37); 뇌가 진화한 건 운동 때문, 유전자처럼 월등히 중심적 (장대익 00:27:36)통 속의 뇌는 실제로는 불가능 — 뇌를 가능하게 하는 신체와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나다, 메를로퐁티 (김석 00:28:16, 00:31:51); 뇌만 남기면 데이터·기억만 남는 것 (전호근 00:26:37)양측 모두 "뇌가 곧 나는 아니다"(00:25:31)와 "뇌가 가장 중요하다"(00:25:34)를 동시에 승인. 정영진이 "오늘 의외로 비슷하다"(00:25:36)고 정리. 남은 차이는 강조점 — 김석은 몸의 기억·현상학적 경험, 장대익은 그마저 뇌 가소성으로 뇌에 기록된다(00:32:56)
뇌를 업로드한 컴퓨터는 나인가관계·역사성까지 포함한 정보를 생략 없이 완벽히 복제할 수 있다면 그건 나다 (김범준 00:23:44); 두개골을 통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통 속의 뇌이고, 신호를 정교하게 재현하면 뇌가 느끼는 건 다르지 않다 (김범준 00:30:33)뇌가 곧 정보는 아니다 — 정보만 옮기면 성공해도 다른 형태가 되고, 100% 정보가 되면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김석 00:24:07)미합의. "몸과 뇌를 분리할 수 없다"(00:32:36)는 문장에서만 접점이 생기고, 정보 복제의 충분성 여부는 끝까지 갈림
"나"의 정의합의 시도 없이 5인 각자 정의로 종료: 김석 = 의지(빅터 프랭클) 00:34:17 / 김범준 = 구성 요소 사이 복잡한 상호작용이 만든 패턴, 환원 불가 00:35:01 / 장대익 = 유전자 기계이자 밈 기계 00:35:41 / 전호근 = 물에 빠지는 아이에게 달려가려는 존재, 측은지심 00:36:14 / 정영진 = 지구·대자연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는 부품 내지 유기체 00:36:57

EP.14 · 동물실험 찬반 2:2 토론

00:37:46 – 01:12:06 (몰아보기) · 원본 35:59 · 2025-01-30 공개 · 출연 정영진·김범준·장대익·전호근·김석

원제 과학자와 철학자가 2:2 토론 배틀을 하면 어느 쪽이 이길까? ㅋㅋㅋ (동물실험 찬성 vs 반대)

동물실험 (00:37:46–01:12:06)

출연자 확정
이름 또는 역할라벨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 (MC)진행자01:10:02 다른 출연자가 "근데 정프로님이 하시고자 하는 포인트도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 '정프로'는 채널 고정 MC 호칭. 진행 기능(질문 던지기, 찬반 폴 강제, 마무리 멘트 01:12:01 "오늘 철학을 보다요 정도로 마무리하고요")도 일치.높음
김석 (건국대 철학)서양철학 — 피터 싱어·톰 레이건·칸트 담당, 동물실험 반대00:56:49 맹자 얘기를 한 화자가 "그 사랑을 완전하게 미루기는 김석 교수님 말씀처럼 쉽지 않은 거죠" / 01:03:19 다른 화자가 "김석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을 대하는 어떤 예의". 두 호명 모두 직전 발언(사랑의 불완전성 / 야생의 예절)의 주인을 가리키고, 그 발언 화자는 00:50:30 "제가 아까 24년으로 시점을 한 건"으로 00:43:16 "2024년 현재 동물 시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와 동일인임이 확인됨.높음
전호근 (경희대 동양철학)동양고전 — 이규보·맹자 담당, 동물실험 반대00:55:04 진화학자 화자가 "전호 교수님이 말씀하신 거도 비슷한데"라고 직전 발언자를 호명. 해당 화자는 00:48:02 "고려 시대 이제 이규보라는", 00:55:45 "동아시아 고전 중에 이제 맹자의 재미난 얘기" 등 동양철학 사례를 전담.높음
장대익 (진화학자·과학철학)생물학/진화학 — 모델생물·백신·AI 담당, 동물실험 찬성00:52:07 "저 이제 진화학자니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 00:51:33 "제가 대학원 시절에 제인 구달[ASR: 제인달·제인구다] 선생님을 일주일간 이제 한국에 모시고 다닌 적이 있어요" / 01:01:05 김석이 "얘기하다가 장대(익) 교수님의 책에서 공감의 반경이라는 개념이"라며 현장에 있는 저자를 호명.높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물리학자, 동물실험 찬성외부 정본: 원본 회차 「철학을 보다 EP.14」(youtube.com/watch?v=wIIeaUCoQTA, 2025-01-30) 공식 설명란 — "정프로님과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님, 과학철학자 장대익 교수님, 동양 철학자 전호근 교수님, 서양 철학자 김석 교수님을 모시고 '동물실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전사 내부 대조: ①찬반 폴 네 번째 목소리(00:39:43 "OX로 한다면 찬성입니다") ②00:45:41 "물론 저는 이제 생물학자가 아니다 보니까" ③01:10:34 "중성자 가속기 뭐 그런 설비를 이용해서 신약을 개발하는데 동물 실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 01:10:45 "그 포스텍 공대의 / 방사광[ASR: 방사관] 거기라고. 예. 그 여러 분야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④01:08:45 "저희 학교 그 생물학과 교수님을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데)" — 물리학 설비 1인칭 전문성 + 비생물학자 + 대학 소속. 4인 패널 중 나머지 3인이 실명 확정되므로 잔여 1인 = 김범준.높음(명단) / 중(개별 발언 귀속)

팀 구도: 원제가 "과학자와 철학자가 2:2 토론 배틀" — 과학자 팀 = 김범준·장대익, 철학자 팀 = 전호근·김석. 전사 내용도 이 구도와 일치한다. 단, 찬반은 팀과 정확히 겹친다(과학자 2인 = 찬성, 철학자 2인 = 반대). MC 정영진 본인도 찬성 쪽(00:39:53 "개인적으로 이제 전 찬성 쪽인데").

다만 김범준의 개별 발언 귀속은 여전히 약하다 — 몰아보기 편집으로 자기소개가 잘려 있고 그를 이름으로 호명하는 대사가 전사 안에 한 번도 없다. 아래 김범준 블록 4개는 "물리학 전문성·비생물학자·찬성 폴"이라는 내부 증거로 묶은 것이며, 나머지 찬성 측 발화 중 일부가 그의 것일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귀속 불명' 참조).

논의 흐름 (소주제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동물실험 찬반(OX)찬성(과학자 팀) — 장대익, 김범준 + 정영진(MC). 실험 대상의 절대다수는 꼬마선충·초파리이며 그 유전자는 인간과 상당히 중복된다; 지금 중단하면 인간이 그 단계를 대신 떠안는다반대(철학자 팀) — 김석, 전호근. 동물은 감정·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고 도구로 전제하는 발상 자체에 반대; 인간을 실험 도구로 쓰는 것도 함께 반대네 명 모두 "궁극적으로는 중단이 맞다"(장대익 00:44:38)와 "필요하지만 줄여가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MC 01:09:54, 김석 "규제적 이념")에 수렴
과학기술 발전과 동물실험의 인과동물실험이 있었기에 시뮬레이션·대체기술까지 발전한 것 (정영진 00:42:47); 시뮬레이션도 축적된 동물 모델 데이터 없이는 불가능 (장대익 01:10:52)인과가 반대다 — 과학기술 발전이 동물을 해방시켰다(말→내연기관); 동물실험은 기간 단축·수익 동기 (전호근 00:41:26)현시점에 대체기술(오가노이드·가속기·시뮬레이션·AI)이 아직 전면 대체 수준은 아니다(장대익 00:44:52)는 사실 인식은 공유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가정서적 교감 + 과거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지적 능력 있는 동물부터 중단 (장대익). 단 그 선 긋기 자체가 인간중심주의임을 인정피터 싱어의 고통 감수성 기준(회피 행동 + 생리적 반응)으로 객관화 시도 (김석)선 긋기의 기준은 결국 인간이 정한다 = 인간중심주의라는 데 양측 합의(장대익 00:45:57, 전호근 00:48:47 "동물 보호도 사실은 인간 중심주의", 김석 "인간 중심인 건 맞는데")
고통 기준의 일관성회피 반응만으로 판단하면 꼬마선충도 회피한다 → 고등동물 실험을 반대하면 같은 논리로 선충 실험도 반대해야 한다 (장대익 00:47:15)고통은 생리학적으로 분석 가능하며 대합조개 같은 경계선을 과학이 판정한다 (김석 00:46:42)고통이 개체의 주관적 경험이라 제3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양측 공유; 김석은 이후 "내재적 가치에도 위계가 있다"로 일관성 요구를 위계로 수용
동물실험의 효용 실증백신 연구 대부분, 카나리아식 선행 노출이 원형; 1마리로 만~10만 명을 구할 수 있다면 권장할 일 (장대익·MC)동물실험 결과가 인간에 적용되지 않는 반례가 많다(코로나, HIV는 원숭이엔 무해);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을 다 통과하고도 기형아 발생 (김석·장대익 본인도 인정)장대익이 논점을 분리해 정리: "결과가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다"와 "그러니 필요 없다"는 다른 얘기 / "필요하지만 충분하진 않다"(01:07:29)
먹는 것 vs 실험하는 것먹는 게 더 나쁘다 — 사람 1명당 1마리 희생인 반면 실험은 1마리로 수만 명을 구한다 (MC 00:58:00, 공리주의로 명명됨)먹는 것에 대한 반대는 아님 — 김석 "동물 실험을 반대하지만 고기를 먹지 말란 건 아니다"(01:11:28), 전호근 존 버거 인용(농촌은 사랑하며 키우고 잡아먹는다)학대는 별개로 금지 대상이라는 데 이견 없음(MC 00:58:23 "가장 힘이 약한 쪽에 먼저 해를 가하는 것… 진짜 막아야 된다")
의례·'예의'의 의미코셔·할랄·곰 제사는 "인간들이 스스로 나쁜 놈은 아니라고 서로 보여 주는 의미만 있지" 동물 입장에선 무의미 (MC 01:03:53)연구자 위령제·야생의 예절은 생명 존중을 담아내는 방식 (전호근 01:03:09, 김석 00:59:51). 예의란 상징 의례만이 아니라 불필요한 살상·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을 포함 (김석 01:04:45)고통 지속시간을 최소화하는 도축(가스·전기충격)이 실질적 동물복지라는 데 양측 동의(장대익 01:04:25 "이런 주장은 많이 있어요", MC 01:05:37, "그거는 약간 동의합니다")
이념의 지위칸트식으로 "동물도 존중해야 한다"는 이념 자체는 옳지만, 이를 구성적 원리로 만들어 법제화하고 "동물실험 반대한다면서 소고기를 먹느냐"고 하는 건 아니다 → 규제적 이념으로 둬야 한다 (김석 01:04:45, 01:09:59)이 정식화에 대해 명시적 반박 없음 — 회차의 사실상 결론 프레임. MC의 마무리도 같은 취지: "동물들의 고통이 최소화된 방향으로 가기를…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겠죠"
# 확정하지 못한 것 (근거 부족)
  • 김범준의 발언 총량. 명단은 원본 회차 공식 설명란으로 확정됐지만, 전사 안에서 그를 이름으로 호명하는 대사가 한 번도 없다. 위 4개 블록은 "비생물학자 + 물리학 설비 1인칭 전문성 + 찬성 폴"이라는 내부 증거로 묶은 것이고, 나머지 찬성 측 발화 중 일부(특히 00:44:57, 00:58:00, 01:08:26 블록)가 MC가 아니라 그의 것일 가능성이 남는다. 다섯 화자 중 발언 블록 수가 압도적으로 적게 잡힌 것도 이 불확실성 때문이다.
  • 00:38:00 전후 반려동물 라운드에서 "강아지"·"없습니다"·"동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가 각각 누구인지. 확정하면 이후 호명 없는 구간의 목소리 매칭에 쓸 수 있었을 앵커지만 >>만으로는 특정되지 않는다.
  • 산낙지를 좋아한다고 MC가 01:11:35에 지목한 대상의 이름. 00:56:56 "산낙지를 왜 샤부샤부로 먹어요"·00:57:37 "탕탕이 아주 좋아합니다" 화자와 동일인으로 보이나 호명이 없다.

EP.15 · 자유의지 · 결정론 · 시뮬레이션 가설

01:12:06 – 01:50:18 (몰아보기) · 원본 39:42 · 2025-02-13 공개 · 출연 정영진·김범준·장대익·전호근·김석

원제 타고난 운명을 나의 의지로 바꿀 수 있을까? (자유의지 vs 결정론)

자유의지 · 결정론 (01:12:06–01:50:18)

출연자 확정
이름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 (MC, '정프로')진행01:24:04 "그게 지금 이제 정프로님이 당연한 것처럼 말씀을 하셨는데" 직후 01:24:07 본인이 "아 저랑 칸트랑 또 같은 느낌이 달라요"로 응수 / 01:24:43 "여기 4대일로 한번 제가 오늘 전투력 한번 발휘해 보겠습니다"(패널 4 : MC 1) / 01:49:47 클로징 멘트높음
김범준물리학자, 성균관대 (게스트)01:13:00 "우리 저 김범중 교수님[ASR: 김범중]은 어떻게 보십니까?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결정론은…" / 01:23:27 "김범 교수님이 말씀을 하신 거죠. 그런 행위에 자기 유전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 01:50:01 "김범진 교수님[ASR: 김범진]과 함께 나들이 한번 왔다가"높음
김석서양철학자, 건국대① 01:15:40 전호근이 "기본적으로 이제 김석 교수님 주장과 약간 비슷해요"라며 요약한 내용("물리적 차원/생물학적 차원/인간 의지의 차원은 범주가 다르다")이 01:12:30 첫 발언("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결정론을 따른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영역이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과 일치 → 첫 발언자 = 김석. ② 01:46:54 "그래서 아까 저도 서두에 말씀드린 게 완전한 자유의지는 없어요"로 서두 발언자와 후반 발언자가 동일인임이 자기지시됨. ③ 01:32:14 "무의식 전문가니까" 지목 뒤 정신분석 대 뇌과학의 무의식 구분(프로이트·알프레드 멜) 전개높음
장대익과학철학자, 가천대① 01:14:11 두 번째 소개 순번("교수님께서는요")에서 "결정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없지만, 맞는다 하더라도 자유의지는 가능하다"(양립가능론). ② 01:14:41 "자유의지를 어떤 행위를 피할 수 있느냐라고 한다면 피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논변이 01:36:45 "각 의사결정의 노드마다 두 개 이상의 길이 존재한다… 그러면 자유의지가 있다"로 반복. ③ 01:46:21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유의지는 물리적 실체나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가 01:18:52 발언을 자기인용. ④ 진화적 해석·리벳 실험·편도체 등 과학 논거 담당높음
전호근동양철학자, 경희대① 01:15:38 "제 의견을 이야기하겠습니다" → 01:15:40 "김석 교수님 주장과 약간 비슷해요"(따라서 김석 아님, 세 번째 순번). ② 01:15:57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모든 사물도 생성 유지 소멸"(동양 어법). ③ 01:47:47 "이런 상상도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장자에 나옵니다" ④ 01:42:14 MC가 앞선 발언에 "아, 동양철학적인 발상"으로 반응높음

ASR 인명 표기 실태: 김범준 → "김범중/김범/김범진", 벤저민 리벳 → "리처드 리베/리베/리벳/벤자민 니벳", 프로이트 → "프로이드/프로젝트", 무의식 → "무식", 쉰들러 → "신들러", 아이히만 → "아이만", 가위바위보 → "가이바이보/바이바이버".

논의 흐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B 입장실제로 합의된 지점
물리적 결정론의 사정거리김범준: 물리학의 결정론은 "나를 포함한 우주 모든 것의 미래 상태가 딱 하나로 주어져 있다"는 강한 결정론이며, 인간 정신을 별도 레이어로 두는 이원론을 물리학자는 쓰지 않는다 →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김석·전호근: 물리·생물·인간 의지는 범주(레벨)가 다르다. 물리적 세계가 결정론을 따르는 것과 인간의 삶이 설명되는 것은 별개물리적·생물학적 한계(100년 안에 죽음, 3m 점프 불가, 영하 10도)는 의지로 넘을 수 없다는 데 전원 동의. 쟁점은 "그 안의 선택지 사이"에서 무엇이 성립하느냐로 좁혀짐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장대익·김석: 양립 가능. 자유의지 = "그 행위를 피할 수 있었느냐", 의사결정 노드마다 두 개 이상의 길이 있으면 성립김범준: 뉴턴 고전역학의 엄밀한 결정론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다(단, 본인은 결정론 지지자가 아님)결정론도 비결정론도 증명할 수 없다(김범준 01:37:28). 실제로 밟은 경로는 하나뿐이라 반사실적 선택지는 검증 불가
자유의지의 증거MC: 뜨거운 것 반사행동, 무의식·장내 미생물, 갤러그 판, 교육·압력의 축적, 10만 명당 100명 대 1~2명 통계 → 자유의지는 사후 정당화김석: 반사행동은 의사결정이 아니다. 실현 여부(매달림)와 존재 여부는 별개 — 하고 싶었으나 못한 사람도 있다. 장대익: 아이히만 대 쉰들러의 차이가 곧 의사결정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할 실험은 없다는 데 물리학·철학 양쪽이 명시적으로 합의(01:45:03·01:45:08). 반대 방향("난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도 사후 회고라 애매하다는 점까지 인정
리벳 실험의 함의장대익: 의식적 보고보다 400ms(0.4초) 앞서 준비전위가 발생. 가위바위보 로봇은 100판 100승 → 결정이 먼저, 의식이 나중김범준: 발생 시점과 인식 시점이 다를 뿐. 김석: 좌우·가위바위보 같은 단순 선택의 결과를 중요한 결정 전반으로 확장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단순 운동 선택에 대해 뇌 신호 선행은 사실로 인정. 다툼은 "그것을 결정론으로 번역할 수 있는가"에 국한
무의식의 정의MC: 무의식(생리·미생물·트라우마)이 결정하고 의식은 명분만 준다김석: 정신분석의 무의식 ≠ 뇌과학의 무의식.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만든 건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무의식은 있는데 자유의지는 없다"는 모순 진술. 알프레드 멜의 총체적 과정 개념의지로 안 되는 영역(환공포·트라우마·나쁜 습관)이 실재한다는 것은 김석도 인정. 그래서 "자유의지"보다 '자유'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이동
도덕적 책임·형벌장대익: 사이코패스는 편도체 문제, 현대 형법은 선택의 자유가 없으면 처벌 불가(심신미약) → 자유의지 부정은 심각한 실무 문제. MC: 처벌·칭찬은 사회 유지 장치일 뿐, 나는 처벌하는 롤을 맡았을 뿐김석: 그래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판단은 할 수 있으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로크 — 결정론을 인정해도 도덕적 책임은 물을 수 있다자유의지 부정이 도덕철학과 형법의 근거를 흔든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전원 공유. 그리스·중세부터 이어진 오래된 문제라는 점도 합의
신의 전지성 대 인간의 선택MC: 신이 물 마시는 것까지 다 안다면 그건 그분이 짜 놓았기 때문이다 → 결정론김석(기독교인): 아는 것과 개입하는 것은 다르다. 보에티우스 — 신은 과거·미래를 한 번에 보는 초월적 존재. 데카르트의 이신론 — 설계했으나 개입하지 않는다신의 전지성과 인간 선택권의 양립 문제는 이미 고대·중세에 논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 MC는 "약간 비겁하게 회피한 것 같다"며 미합의로 남김
양자역학이 여는 공간김범준: 양자역학 이후 인과율은 성립하되 결정론적 인과율이 아니라 확률론적 인과율. 확률은 정확히 알지만 결과는 모른다(내일 비 올 확률 비유)(반대 없음) 다만 김범준 스스로 자유의지와 양자역학을 강하게 연결하려는 일부 물리학자에게는 선을 그음"뉴턴의 고전역학적 결정론적 인과율은 자연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 여기까지가 물리학이 말할 수 있는 전부라는 데 이의 없음. 스티븐 호킹의 "자유의지는 환상, 인간은 생물학적 기계"는 고전역학적 세계관의 산물로 정리
시뮬레이션 가설MC: 우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 살고 있을 뿐 아닌가김범준: 시뮬레이션 = 결정론이라는 건 오해(랜덤 넘버). 김석: 지젝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인간의 삶은 불확실하며 뒤엉킴이 삶을 형성한다. 장대익: 네오처럼 밖으로 나가야 알 수 있고 그러려면 패턴 있는 에러가 필요한데 그런 건 없다시뮬레이션이라 해도 결정론적일 이유는 없다는 데 합의. 장자의 꿈속의 꿈(전호근), 통 속의 두뇌·데카르트의 악마(장대익)로 같은 문제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확인

EP.16 · 위선 · 선악의 기준 · 타노스 · 악플

01:50:18 – 02:22:14 (몰아보기) · 원본 33:08 · 2025-10-30 공개 · 출연 정영진·전호근·성진 스님·하성용 신부

원제 수백만 명을 살리기 위한 살인은 악행일까?

위선 · 선악의 기준 (01:50:18–02:22:14)

출연자 확정
이름 또는 역할라벨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MC원본 회차(「철학을 보다」 EP.16, 2025-10-30) 공식 설명란 "1.MC 정영진" / 전사 보강: 01:50:36 "오늘 세 분과 함께 깊이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 철학을 보다" / 02:01:58 "그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정[ASR: 정로]님밖에 없죠"확정
전호근동양철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원본 회차 공식 설명란 "2.동양철학자 전호근 교수" / 전사 보강: 01:51:30 MC "우리 교수님께서는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신지 얼마 되셨어요?" → 01:51:33 "1991년부터 시작했으니까 35년 차네요" / 01:51:50 "질문을 던지는게 철학인데" / 02:06:31 의무론(칸트·공자·맹자·주자) vs 공리주의(묵자·벤담·존 스튜어트 밀) 정리확정
성진 스님대한불교조계종, 남양주 성관사 주지원본 회차 공식 설명란 "3.성진 스님" / 전사 보강: 01:50:27 "남양주 성관사에서 머물고 있는 성진 스님입니다. 반갑습니다." / 01:55:05 전호근이 "저는 성진 스님 의견과 같은데요"라며 3인칭 호명확정
하성용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원본 회차 공식 설명란 "4.하성용 신부님" / 전사 보강: 01:50:31 "[ASR: 현조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에서 근무하고 있는 [ASR: 하송용] 신부입니다." — ASR "하송용"은 오기, 정확한 표기는 하성용확정

도입부 자기소개 3건 중 성진 스님·하성용 신부 2건만 01:50:27–01:50:34 구간에 남아 있고, 전호근 교수의 자기소개 문장은 이 TSV 시작(01:50:18) 이전으로 잘려 있다(MC가 01:50:19에 세 사람을 "머물고 계시고 / 이야기 나누고 계시고 / 근무하고 계시고"로 대비하는데, 그중 "이야기 나누고 계시고"가 전호근에 대응). 발언 귀속은 아래 전부 전사 내부 증거(호칭·1인칭 준거·화제 연속성·>> 전환)로만 판정했다.

논의 흐름 (소주제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위선도 선인가선이 될 수 없다 — 위(僞)는 거짓이므로 단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성진 스님 01:53:29·01:53:33 / 전호근 01:55:05)위선 자체가 진짜 선은 아니지만 선이 될 수 있다 — 결과가 선하게 얻어걸리고 칭찬·기쁨에 빠지면 마음을 고쳐먹게 되므로 (하성용 신부 01:54:06)세 사람 모두 "위선은 선이 아니다"에 대체로 동의(MC 02:21:38). 단, 행하다가 의도 자체가 바뀌면 그때부터 선으로 본다는 예외는 성진 스님도 인정(02:06:10)
선의 정의좋음(good/eu-) — 타인을 해치지 않고, 타인과 나에게 이롭고, 나누고 베푸는 것 (전호근 01:57:48·01:58:03)의로움 — 좋음은 선택 없이도 가능하지만 의로움은 반드시 선택이 필요 (하성용 신부 01:59:25·02:00:22) / 악을 하지 않는 것 — 십악 앞에 불(不)을 붙인 것이 십선, 악을 멈추는 것 (성진 스님 01:58:16·01:58:28)"해치지 않음"이 공통 하한선. MC가 세 정의를 병렬로 정리(02:00:28)하고, 마무리는 "나쁜 짓만 안 하고 살자"로 스님 정의 쪽에 수렴(02:20:47→02:20:58)
선악 판단의 주체의도는 행위자 본인만 알고 타인은 결과만 보고 감사할 뿐, 의심하면 꼬인 사람 (전호근 02:01:57–02:02:26)판단은 나도 상대도 아닌 하느님이 한다 — 내가 좋은 일을 했다 해도 하느님 보시기에 아니면 선행이 아니다 (하성용 신부 02:02:26) / 심판의 신이 없으므로 의도·행위·인과가 다 연결되고 스스로 지킨다 (성진 스님 02:03:24)행위자의 의도는 외부에서 확정 불가라는 점은 공유. 판단의 최종 심급이 '없음(불교)'이냐 '하느님(그리스도교)'이냐에서 갈린 채 정리
이기적 의도의 선행(정치인 봉사)의도가 이기적이면 첫 행동은 선이 아니다. 꾸준하면 선, 선거철에만이면 위선. 결과가 좋고 의도까지 바뀌면 그때 선 (성진 스님 02:04:45·02:06:10·02:06:29)그 점에서 다르다 — 공리주의(묵자·벤담·밀)로 보면 결과가 이로우면 선.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이면 선이 아닐 이유가 없다(빵집 주인) (전호근 02:06:31·02:07:39·02:08:07)의무론(칸트·공맹·주자)과 공리주의의 대립으로 명시적으로 프레이밍되고, 좁혀지지 않은 채 병존. 다만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은 양쪽 공통
다수를 살리기 위한 살인정당방위는 인정되나 사적 복수가 아니어야 하고 과하면 안 된다(칼 대 기관총, 총 대 핵폭탄). 안중근은 신앙의 증거 (하성용 신부 02:10:04·02:12:00)살생은 악이지만 어머니가 호랑이 앞에서 아이를 지키는 마음으로 나가되 살생의 과보는 우리가 진다 — 계율 전수를 끊고 일부는 금강산으로 보내 보존, 이후 왜군과 함께 위령제 (성진 스님 02:08:40)"정당방위 상황의 살생은 악행으로 단죄하지 않는다"에 접근(MC 02:11:52 확인). 차이는 그리스도교가 '의로운 행위'로 승인하는 반면 불교는 '악이되 과보를 감수하는 선택'으로 남긴다는 것
뺏긴 것을 되빼앗기종교적으로 이미 불투도 위반 — 폭력·절도로 되찾으면 저쪽이 다시 일으키고, 그 마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성진 스님 02:14:46·02:15:08·02:15:23)힘으로 빼앗았다고 비난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되빼앗는 건 정당화하기 어렵다 — 일본에서 온 우리 불교 문화재도 경로가 정당하지 않아 돌려줬다. 단 전쟁이라는 특수 조건이면 다르다 (전호근[추정] 02:16:09·02:16:52)양쪽 모두 "방법도 선해야 한다"(성진 스님 02:16:44)로 일치. 전쟁이라는 예외 조건만 전호근이 추가
타노스식 계산(전체를 위한 절반 희생)전제가 이미 잘못됐다 — 절반을 죽이는 해결책을 고른 의도 자체가 선하지 않고, 생명을 수단으로 보는 순간 못 할 게 없어진다 (성진 스님 02:18:02·02:18:08·02:19:17)그 사람에겐 선하다, 어리석을 순 있어도 — 미래까지 다 아는 사람은 없다 (MC 02:18:20·02:18:26)자율성 존중이 선의 조건이라는 지적(하성용 신부[추정] 02:18:46)으로 정리 — 과거에 착한 일이 없었다 해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무인도 100명 중 50명의 자율적 합의도 스님은 "어리석음"으로 일축
악플과 공감악한 마음으로 하는 표현은 악구(惡口), 업을 짓는다. 슈퍼챗 5만 원을 얹어도 악으로 선을 덮을 수 없다 (성진 스님 02:19:55·02:20:12)표현은 자유지만 아무 표현이나 하는 게 자유는 아니고, 보는 사람이 불편하면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감 500개를 받아도 소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성용 신부 02:20:17·02:20:29)두 입장이 충돌하지 않고 보완. 언어의 과보까지 종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스님의 정리(02:20:37)로 수렴, MC는 "좋은 댓글을 거짓으로라도 달아보라"로 마무리(02:21:58)

EP.17 · 생명의 경중 · 트롤리 · 이종장기이식

02:22:14 – 02:47:14 (몰아보기) · 원본 26:29 · 2025-11-13 공개 · 출연 정영진·전호근·성진 스님·하성용 신부

원제 생사가 갈린 순간에 스님은 누구를 먼저 살릴까? (가족이 포함된다면...?)

생명의 가치 · 트롤리 (02:22:14–02:47:14)

출연자 확정

정본 출처: 원본 회차 「철학을 보다 EP.17 — 생사가 갈린 순간에 스님은 누구를 먼저 살릴까?」(youtube.com/watch?v=Lgfg3thiqaY, 2025-11-13 공개, 26:29) 공식 설명란 출연자 명단 — "1.MC 정영진 / 2.동양철학자 전호근 교수 / 3.성진 스님 / 4.하성용 신부님". 실명은 이 명단이 근거이고, 전사 인용은 각 실명을 발화 블록에 배정한 근거다.

이름소속·정체성확정 근거(설명란 + 타임스탬프·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MC(진행자). 고양이 반려인설명란 "MC 정영진" · 02:22:16 "여러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세 분 대단히 고생 많으셨고요" · 02:47:01 "그렇게 오늘은 결론을 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 02:46:11 "저는 동물들이 참 좋아요. 고양이 키우는 입장에서" · (약한 방증) 02:45:28 스님이 진행자를 "우리 정(영진)"[ASR: 정호]으로 지칭높음
성진 스님대한불교조계종, 남양주 성관사 주지설명란 "성진 스님" · 02:22:24 MC "스님[ASR: 수님]께서는 모기가 설령 내 볼에서 내 피를 빨아먹고 있어도…" · 02:25:10 MC "스님께서는" → 02:25:11 "불교[ASR: 불균]는 생전이든 사후[ASR: 사우]든 경중의 문제를 보지 않습니다" · 02:38:07 "불교에서는 육도라고 해 가지고" · 02:39:40 "불교는 똑같은 가치로 인정합니다"높음
하성용 신부천주교 사제 (ASR "하송용"은 오기)설명란 "하성용 신부님" · 02:24:18 MC "우리 신부님부터 한번 여(쭤)겠습니다" → 02:24:23 "없죠… 생명의 경중이 있다라는게 그리스도적인 가르침인 거죠" · 02:26:04 "그렇죠. 하느님이 하는 거죠. 저희 그리스도(교)" · 02:36:04 "그리스도교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이 가장 존엄[ASR: 전놈]하고 가장 소중하다"높음
전호근 교수동양철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설명란 "동양철학자 전호근 교수" · 02:24:56 MC "혹시 우리 교수님께서 어떻습니까?" → 02:24:59 "저는 사후는 어떻게 되는지 알 도리가 없고요" · 02:36:26 "동물과 사람의 위계를 인정하는 철학자들이 있고요… 근대의 데카르트" · 02:36:4202:37:10 유가·노장·장자·이규보 등 동양 고전 계열 인용 집중 · 02:46:00 MC "교수님은" → "여러 철학에 여러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뭐 제가 대표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높음

화자 판별에 쓴 내부 discriminator

  • 성진 스님 = "불교는/불교에서는" 자기지칭 + 참선·예불·승가·육도·축생계·석가모니 + 반복 어투 "~하는 순간부터는 (위험)", "자칫(하면)"
  • 하성용 신부 = "저희는/그리스도교는" 자기지칭 + 하느님·천국·지옥
  • 전호근 교수 = 공리주의·데카르트·아리스토텔레스·유가·장자·이규보 등 철학사 레퍼런스 + "철학자들이 있고요"
  • MC 정영진 = 질문형·주제 전환·"세 분"·악마의 대변인식 반론

논의 흐름 (소주제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죽은 사람에게 생명의 경중이 있는가있다 — 살아 있을 때의 행위에 따라 천국/지옥으로 갈리며, 허락된 시간이 끝났으므로 (하성용 신부, 02:24:23)없다 — 불교는 생전·사후 모두 경중을 보지 않고 지옥에 있어도 불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진 스님, 02:25:11) / 사후는 알 도리가 없다 (전호근 교수, 02:24:59)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경중이 없다는 점은 세 사람 모두 일치 (MC 요약 02:26:06 "세 분 다 생명의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건데")
산 자의 가치를 누가 판단하는가하느님이 판단한다 — 인간은 함부로 판단해서도, 판단이 맞다고 확신해서도, 지금 모습이 지속될 거라 단정해서도 안 된다 (하성용 신부, 02:25:50·02:26:04)(명시적 반대 없음)인간이 타인의 생명 가치를 심판해선 안 된다는 데 이견 없음
약이 하나뿐일 때 누구에게 주나더 필요한(급한) 사람에게, 공적 선택에서는 돈·공로 아닌 순서/위급도 기준 (전호근 교수, 02:26:15·02:28:48)공리주의로 극단화하면 회복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간다 — 그게 약점 (전호근 교수 자기비판, 02:26:39·02:26:51) / MC는 "선행자 우대가 사회에 좋은 유인이 된다"고 반론 (02:27:19)사회는 선택을 하되 그 기준을 생명의 경중이라 불러선 안 된다 — "우리 사회가 필요한 선택을 했을 뿐"(성진 스님 02:27:35), 응급실도 도착순이 아니라 위급도순(성진 스님 02:29:00)
경중을 인정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인류 숫자가 급속히 줄어든다 — 게르만 우월론, 유태인·집시, 같은 아리아인 중 장애인 학살로 번진다. 필요성으로 경중을 정하면 필요성이 없어진 사람은 죽어도 되는 사람이 된다 (성진 스님, 02:29:28·02:29:44)(반대 입장 없음; MC가 "그런가요?"로만 확인 02:29:43)필요에 의한 경중 산정의 위험성에 합의
임산부·어린이·노인 중 누구를 먼저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 — 분별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석가모니의 "아버지냐 도둑이냐"에 대한 답은 "나는 그때 평온하고 싶다" (성진 스님, 02:31:50·02:32:08)임산부(두 생명)→아이(남은 7·80년) 순 — 가정하고 판단한다면 (MC 정영진, 02:33:14)한 명과 두 명의 가치도 경중할 수 없고, 그 순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맞다 (MC가 이 결론으로 회차를 닫음 02:46:50)
인간과 동물의 위계있다 — 모든 생명이 존엄하나 사람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고, 택해야 하면 무조건 사람 (하성용 신부, 02:36:00·02:36:09; 교수도 02:46:00에서 "저도 신부님과 비슷한")없다 — 육도 중 축생계만이 인간계와 시공간을 공유하며, 반려동물과의 인연 깊이는 인간과 같을 수 있다. 복제동물도 똑같은 가치 (성진 스님, 02:38:07·02:38:45·02:39:40)철학사 자체가 위계파(데카르트·아리스토텔레스·유가)와 무구분파(노장·장자·이규보)로 거의 반반이라는 교수의 정리(02:37:36)가 양쪽을 담는 프레임으로 수용됨
이종장기이식 vs 육식이식이 더 나쁘다 — 이식만을 위해 존재하고 이식 후 버려지는 사육은 전적인 수단화. 연구용 동물실험은 필요 (하성용 신부, 02:40:25·02:40:30·02:41:54). 사자가 사냥하는 건 비윤리가 아니지만 사자를 살리려 다른 동물을 쓰면 비윤리 (전호근 교수, 02:42:49)이식이 더 윤리적 아니냐 — 어차피 윤리적으로 죽여도 식용이고, 이거 없으면 죽는 사람을 살리는 쪽이 낫지 않나. 먹는 것도 수단이고 나도 생존을 위해 이식받는 것 (MC 정영진, 02:41:40·02:42:42·02:42:47)신부는 "가치 있는 일일 순 있으나 전적인 수단이 되면 안 된다"(02:41:54)로 선을 긋고, 식용도 무분별한 학살·고통 최소화 없는 도살은 안 된다는 조건을 붙임. 스님은 양쪽 모두(먹기 위해 잡든 장기 위해 잡든) 불가
이미 통용되는 관행(계란·삼겹살)다수가 통용한다고 옳은 건 아니다 — 환경 문제도 죄의식 없이 하다 "죽겠구나" 하고서야 멈췄다. 알탕 한 번이면 몇 만 마리 (성진 스님, 02:44:32·02:44:50)계란 프라이엔 아무 거리낌이 없고, 운동하는 사람은 20개씩 먹는다 (MC 정영진, 02:44:13·02:44:20)이미 해 온 건 그냥 지나가고 새로 할 것만 논의하는 사회의 습관 때문에 과거 관행이 재검토되지 않는다는 진단에서 만남 (성진 스님 02:45:18)

EP.18 · 체벌 · 군대 · 흉악범의 인권

02:47:14 – 03:08:06 (몰아보기) · 원본 22:15 · 2025-11-27 공개 · 출연 정영진·전호근·성진 스님·하성용 신부

원제 체벌이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 (범죄자들한테는...?)

체벌 · 인권 (02:47:14–03:08:06)

출연자 확정
이름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MC(진행자)원본 회차 공식 설명란("MC 정영진"). 전사 내부 교차 근거: 전 구간 질문·시나리오 제시·마무리 멘트(03:07:38 "알겠습니다. 여튼…" ~ 03:08:06), 패널이 두 번 이름으로 호칭 — 02:53:46 "이거를 정님 말대로 '자 그럼 학교 못 간다'", 03:06:41 "우리 정님께서 하루만 갔다 오시(면)". 03:03:24 "혹시 세 분께서는" → 패널 3인높음
성진 스님조계종 승려(남양주 성관사 주지), 교정시설 법회공식 설명란("성진 스님"). 전사 내부 교차 근거: 02:48:36 MC가 직접 지목 "스님께서는 이 모든 종류의 체벌은 인권 침해라고 보세요?"; 02:48:44 죽비 설명 "죽비가 가운데가 비어 있어요"; 02:50:42 "절(3천배) 하는 데 강제는 없어요… 내 다리로 하는 거잖아"; 02:50:57 "불교에서 하는 것은… 수행의 목표 선택을 하는 것"; 03:03:53 교도소 서술 중 "법회는 들어오긴 하지만 범죄 이력이 살인이나 중범죄인 경우는…"정체성=높음 / 개별 발언 귀속=아래 (추정) 표기 참조
하성용 신부천주교 사제공식 설명란("하성용 신부님"). 전사 내부 교차 근거: 02:51:27 "예. 천주교 사제를 하면 보통 술을 잘 먹는다 하잖아요… 우리 문화는 다 술 먹는 사람들이니까 너도 강제로 먹어,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내부자 화법); 02:51:44 "성직 길 자체가 언제든지 나 스스로 나가는 거예요"; 02:52:45 MC "여기 지금 사제분들도 위에 분이 위계가 있잖아요… 우리는 이미 저 신부님들인데"정체성=높음 / 개별 발언 귀속=중간
전호근 교수동양철학자(경희대)공식 설명란("동양철학자 전호근 교수"). 전사 내부 교차 근거: 02:49:36 MC가 지목 "아니, 교수님도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체벌은 안 된다, 인권 침해다"; 02:49:42 다른 패널이 "왜냐면은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라고 인용(→ 그 발화자는 전호근이 아님)정체성=높음 / 개별 발언 귀속=중간

참고: 이 회차에 김석·안광복·장대익은 출연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체벌·교사 관련 회고가 나와도 그들 중 누구도 아니다.

논의 흐름 (소주제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동의하면 체벌이 정당해지나합의·동의로 수위를 정하면 되지 않나 (정영진, 02:49:06 / 02:52:30 / 02:58:33)인권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 (귀속 불명, 02:49:14); 위계 하 동의는 진정한 동의가 아니다 (하성용 신부 추정, 02:52:37); 강요·가스라이팅 동의 문제 (귀속 불명, 02:49:42); "동의의 문제가 아니다" (성진 스님 추정, 02:58:36)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신체·정신에 벌을 가하는 것은 불가. 단, 사전에 전부 공개된 규율의 자격 상실(성직 이탈 등)은 체벌이 아니라는 데 이견 없음
자발적 고행(3천배·푸시업)은 체벌인가"절 3천 번 시키면 체벌 아니냐" (정영진, 02:50:37)강제가 없고 목표를 스스로 선택하면 수행이지 체벌이 아니다 — 역기 선수 50kg 비유 (성진 스님, 02:50:42~02:51:16)조건(벌)으로 부과되는 순간 처벌, 자발이면 아님. 오리걸음 논쟁에서 한 패널이 이 기준으로 자기 입장을 조정(02:57:10)
군대의 체벌사고 위험이 큰 곳이라면 목적이 정당화하지 않나, 30분 체조보다 헬멧 한 대가 낫다 (정영진, 02:54:32 / 02:55:35 / 02:55:44)체조는 벌이 아니라 긴장·정신 유지 훈련이고, 때리는 건 도움이 안 된다 (귀속 불명, 02:54:44 / 02:55:53); "그래도 안 됩니다"(성진 스님 추정, 02:55:42)군은 기본 인권이 일정 부분 제약되는 특수성이 있고 그것을 "필요악"으로 표현하되, 그 제약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며 신체적 위해로는 갈 수 없다 (02:55:18 / 02:55:27)
학급 전원이 합의한 처벌 규율위계가 아니라 수업 방해 때문에 전원 합의로 정한 쪼그려 앉기 10분이면 되지 않나 (정영진, 02:57:26)"집단적인 체벌일 뿐", 열 명이 동의해도 안 된다 (성진 스님 추정, 02:57:46 / 02:58:16)제재 자체는 가능 — 분리·다른 방 모니터 수업 등 불이익은 허용, 신체·정신 고통 부과는 불허
체벌 금지의 범위신체적 위해가 전혀 없으면? (정영진, 02:59:36)정신적 영역도 포함 — 욕설·묶어두기·"지각생" 명찰·격리 원통 (성진 스님 추정, 02:59:40~03:00:18)기준은 물리적·정신적 양쪽 모두 타이트하게 잡고, 그 위에서 공동체가 인식·합의한 선까지만
인권 절대주의가 다른 학생의 권리를 방치하나벌점이 안 먹히는 학생 앞에서 수업권·교육권이 침해돼도 처벌 못 하는 상황 아니냐 (정영진, 03:01:20 / 03:02:00)체벌만 선택지에서 빼자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말자가 아니다 (성진 스님 추정, 03:02:18)상담·정서 교육 등 더 복잡하고 비용이 큰 대체 경로에 사회가 에너지를 쓰자, 다만 그 노력이 전부를 막지는 못한다는 것도 인정(03:01:39)
흉악범의 인권 / 교도소 처우죄질 차이, "속이 안 풀린다", 좁은 독방, 강제 노역 요구 (정영진, 03:05:15 / 03:05:26 / 03:06:45 / 03:07:12)인권은 기본권의 기본권, 최소 인권은 흉악범에게도 지켜져야 하고 한 사람의 인권 보장이 타인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전호근 교수 추정, 03:04:42); 자유 박탈 자체가 이미 큰 형벌 (성진 스님, 03:04:15)분노 자체는 공유("저도 분노하죠", 03:05:17)하되 인간을 짐승으로 대하지 않는 최소선은 지킨다. 사형에는 참석자 전원 반대(03:06:17). "호화 생활"은 사실이 아니고, 징역은 이미 노역을 포함한다(03:07:17)

EP.19 · AI의 자아 · 지브리 모방 · 10년 후 노동

03:08:06 – 03:54:38 (몰아보기) · 원본 47:55 · 2025-12-16 공개 · 출연 정영진·송길영·안광복·전호근·김석

원제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은 누구일까? (10년 뒤에는 아마...)

AI와 인간 (03:08:06–03:54:38)

출연자 확정
이름 또는 역할라벨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MC원본 회차 공식 설명란("1. MC 정영진"). 전사 내 역할 근거: 03:08:35 "오늘은 인간 그리고 AI 요런 이야기를 주제로 …", 03:11:37 "AI가 인간과 차이가 있다는 거는 뭐가 차이가 있는 거라고 우리가 좀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03:54:06 마무리. 전사 안에는 MC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음이름=높음(공식 설명란) / 발화 귀속=높음
송길영 [ASR 표기: 송결령(03:08:25)·송기령(03:08:39, 03:23:23)·송령(03:24:15)·성기령(03:53:14) — 모두 오기]빅데이터 전문가·마인드마이너, 전공은 컴퓨터, 저서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공식 설명란("2.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박사",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전사: 03:08:25 "데이터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캐는 일 … '시대예보' 책으로" · 03:16:38 "저는 전공이 컴퓨터니까" · 03:32:55 "제가 처음 했던 일은 …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남긴 글을 잔뜩 분석하는 일" · 03:47:31 "제가 요번에 책을 쓸 때 좀 참조했던"높음
안광복중동고등학교 철학 교사, 서양 고대철학 전공, 저서 「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공식 설명란("3. 철학교사 안광복 박사"). 전사: 03:08:18 "안녕하세요. 안광복입니다. 중동고등학교 철학 교사하고요.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 03:31:51 "저는 서양 고대 철학을 전공을 했는데" · 03:23:25 "제 제자 중에 외과 이사(의사)가 있어요" · 03:29:17 "안광보(안광복) 선생님한테 어떤 질문을 할지를 뽑아왔습니다 … 저 대신 답변해서"높음
전호근동양철학자(경희대)공식 설명란("4. 동양철학자 전호근 교수"). 전사 귀속 근거: 03:12:49 MC "혹시 우리 교수님께서 어떻게 보십니까?" → 03:12:51 답변 · 03:42:59 송길영 "공장만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아마 마찬가지실 텐데" · 03:51:15 송길영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소속에 대한 부분이"(직전 발언 = 03:50:47) · 03:13:08 인간 정의를 "동양의 예(禮) 예제가 있고 서양에서는 그리스에서 …"로 대비하는 화법명단=높음 / 전호근↔김석 발언 배분=중간 (아래 주 참조)
김석서양철학자(건국대), 라캉·정신분석 준거공식 설명란("5. 서양철학자 김석 교수"). 전사 귀속 근거: 03:26:24 "정신분석 이론의 결핍", 03:26:55 "실존주의가 말하는 인간의 고통", 03:32:25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성욕타자의 욕망" — 서양 현대철학·정신분석 준거가 일관 · 03:11:43에서 안광복을 3인칭("우리 안광복 선생님께서")으로 지칭 + 03:12:38 "저는 이제 철학하는 입장에서선" → 안광복·송길영 아님명단=높음 / 발언 배분=중간

전호근↔김석 배분 방법과 한계: 전사에는 이 두 사람의 자기소개도 실명 호명도 남아 있지 않다(03:08:16 이후 자기소개는 안광복·송길영 2인분뿐). 두 사람은 MC에게 모두 "교수님"으로 불릴 수 있어, 배분은 ①03:12:49 MC의 "교수님" 호명이 직전 발언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한다는 점, ②송길영의 03:51:15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이 03:50:47 발언을 지목한다는 점, ③서양 현대철학·정신분석 준거(라캉·프로이트·실존주의)는 김석 쪽이라는 코디네이터 단서 — 이 세 가지에 근거한 논지 계열 추정이다. 개별 발언 단위로는 뒤바뀔 수 있으며, 근거가 부족한 발언은 '귀속 불명'에 남겼다.

패널 인원수 교차 확인(전사 내부) — 공식 설명란의 4인 패널과 일치한다:

  • 03:10:51 MC "오늘 어 우리 내분(네 분)의 철학자분들 분야의 또 대표적인 전문가분들과 함께"
  • 03:16:56 송길영 "오늘 같은 경우에도 MC와 네 명의 패널이 왔단 말이죠"
  • 03:20:41 MC "내분(네 분)이 보실 때 인간과 아주 고도로 발달한 AI 로봇과의 경계는"

(파일 1~5행 03:08:07–03:08:15 "자 세분 오늘 가르침 대단히 감사하고요…"는 직전 회차의 마무리 멘트이며, EP.19 본편은 03:08:16 ">> 반갑습니다."부터 시작한다.)


논의 흐름 (소주제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AI에 인격/권리를 부여해야 하나부여하게 된다 — 법인처럼 법인격 부여가 2~3년 내 논의될 것, 헤겔식 자유 확대의 다음 단계, 다마고치·가족용 로봇 학대는 이미 현실 윤리 문제 (안광복, 03:14:38·03:15:11)권리 확대는 인정하되 근거가 다르다 — 로봇권은 자연권처럼 확대되는 것이지 "인간을 닮아서"가 아니다 (김석, 03:18:23·03:26:55) / AI는 인격도 자아도 의식도 없는 피조물이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존재한다 (송길영, 03:16:38·03:17:00)자유·권리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전원 동의(송길영 03:17:24 "저 정확히 동의"). 근거를 '인간 유사성'에 둘지 '인식·관계'에 둘지에서만 갈림
AI와 인간의 경계는 무엇인가의미·실존·고유성 (김석, 03:11:43) / 몸(신체성) (귀속 불명, 03:20:48) / 생명·유기체 (귀속 불명, 03:30:50) / 욕망 (MC 정영진 추정, 03:24:49·03:31:06)기존 정의는 다 무너졌다 — 호모 에티쿠스·하빌리스·루덴스가 알파고·드론으로 모두 붕괴 (전호근, 03:12:51) / 자아는 없다, 통계적 모사의 총합일 뿐이며 AGI 엔진은 아직 없다 (송길영, 03:21:29·03:22:40)"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데는 합의. 안광복은 그럼에도 "AI는 AI, 인간은 인간"이라는 명제 자체는 유지된다고 정리(03:20:02). 결국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로 이동(03:23:49 안광복, 03:26:04 귀속 불명)
AI가 욕망을 가질 수 있나흉내 이상은 아니다 / 욕망은 DNA에서 왔다 (MC 정영진 추정, 03:31:06) /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자 인간의 한계성 (김석, 03:26:24)인간도 마찬가지다 — 라캉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AI에도 적용되고, 200년 전 "미개인은 흉내만 낸다"는 논리와 같다 (안광복, 03:29:53·03:31:00). 나아가 AI는 욕망을 참는 기제를 선천적으로 갖춘 존재이므로 고대철학 기준으로는 더 우월하다 (안광복, 03:31:51)우월 판정은 보류 — "우월을 가리긴 어렵지만 여튼 다르다"(03:32:20). 다만 결과만으로는 구분 불가라는 데 동의
AI 그림·지브리 모방이 창작물인가창작물이다 — 인간 작품이 아니면 AI 것이고, 구별도 안 된다 (귀속 불명 03:34:31 / 송길영 03:37:48 "완전히 없어졌습니다")창작물이되 '예술 활동'은 아니다 — 창작물이냐와 좋은 창작물이냐는 별개이고, 그리면서 느끼는 즐거움까지 포함하면 AI 창작은 창작이라 할 수 없다 (전호근, 03:36:42·03:39:07)"창작물은 창작물이다"까지는 합의(03:35:14 MC 정리, 03:37:30 안광복 "좋은 창작물은 아니지만 창작물이죠"). 갈리는 지점은 평가·향유의 층위
AI 창작물이 인간 창작물을 대체할까아니다 — 사람이 한 것을 좋아하는 편향, 이세돌 은퇴 후에도 사람들은 AI 바둑에 감탄하지 않는다 (안광복, 03:35:20·03:35:57)그렇게 된다 — 기계는 사람을 바꾼다, 자동차에 몸이 적응하듯 AI 패턴에 취향이 맞춰진다 (송길영, 03:36:28)미해결. 다만 예술계 기준이 기교에서 '왜 만들었나·독창적 아이디어'로 이동했다는 데는 양측이 같은 방향(송길영 03:38:05, 귀속 불명 03:38:43)
일자리 총량은 유지되나새 직업이 생긴다 — 틱톡커·유튜버·네일 아티스트·스트리머는 없던 직업, 농업→공업·서비스처럼 이동한다 (송길영, 03:40:56·03:41:23)문제는 총량이 아니라 전환 코스트와 속도 — 이번엔 고학력 화이트칼라에 정확히 포커싱됐고, 인터넷 혁명은 10~15년 걸렸는데 지금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며 거의 모든 분야에 한꺼번에 왔다 (송길영, 03:41:43·03:42:25)송길영 내부에서 이미 결합된 입장이고 MC도 수용. "조직 단출화 → 전체 고용 총량 감소""새 일자리 생성"이 동시에 참이라는 데 반박이 나오지 않음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은 무엇을 하나놀이가 곧 노동이 된다 — "어떻게 놀 거냐"가 미래 일자리 문제이고 잘 노는 사람·노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최고 소득자 (안광복, 03:46:50·03:46:59). 기본소득·시민노동(울리히 벡)은 이미 논리가 준비됐다 (03:45:48)자아실현은 단계로 나뉘지 않는다 — 소속감·인정도 자아실현의 일부이고 직업이 아닌 자기 나름의 일(목공·취미)이 있으며 매슬로우의 층위는 다 뒤섞여 있다 (전호근, 03:50:47)매슬로우 해석에서는 "아래가 채워져야 위로 간다는 건 매슬로우가 한 말이 아니다"로 안광복이 먼저 정정(03:50:06)해 양측 간극이 좁아짐. 남은 공통 결론은 "공허해진 자기를 채울 무엇에 대해 인류가 아직 고민한 적 없다"(03:50:44)와 "풍요로워도 궁핍해도 철학은 필요하다"(안광복, 03:53:06)

EP.20 · 데스노트 · 공정 · 비정규직 · AI 판사

03:54:38 – 04:24:40 (몰아보기) · 원본 32:11 · 2026-01-09 공개 · 출연 정영진·송길영·안광복·전호근·김석

원제 장난으로 쓴 이름이 진짜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공정 (03:54:38–04:24:40)

출연자 확정
이름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MC03:55:41 패널이 "그 정프로님이 아시겠죠?" / 03:57:33 "오늘 이제 본격적으로 네분과 함께 이야기 나눌 거는 공정의 이슈인데" — 진행·질문·반대편 대변 역할상 (설명란 명단 + 호칭)
송길영빅데이터 전문가(마인드마이너)04:06:44 김석 "아까 송대표님이 말씀하셨듯이" / 04:15:45 안광복 "아까 송박사님 말씀처럼" / 04:18:00 안광복 "이거는 한번 좀 그 송박사님한테 여쭤 보고 싶어요" / 04:12:09 김석 "박사님 말씀하신 이제 효율 중심의 이야기" — 성(姓)이 전사에 직접 등장하는 유일한 패널
안광복철학교사(중동고)04:04:33 "고등학교에 딱 오면… 최소 성취 수준 보장지도라는게 있어요" / 04:04:50 "학교에서 저항은 만만치 않아요" / 04:15:22 "저도 올해로 직장생활 30년 차인데… 저희 학교만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 철학사 인용 담당(에피쿠로스·라이프니츠·벤담·몽테스키외) + 상용구 "기시감"상 (교실 단서 + 철학사 인용, 명단 단서와 일치)
김석서양철학자(건국대)03:59:12 "이제 롤스가 말했듯이 최소 수혜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 → 직후 03:59:36 MC "그러니까 우리 교수님의 판단은" / 04:12:52 하버드 상대소득 실험 / 04:16:58 "2001년 월가 시위처럼 99% 1%" — 서양 현대철학·사회이론 준거중상
전호근동양철학자(경희대)이 구간 전사 안에 동양 고전 인용·자기지시 단서가 없다. 명단상 참석은 확정이나, 개별 발언을 그에게 고정할 내부 증거가 없어 해당 후보 발언은 아래 '귀속 불명'에 둔다하 (참석은 확정, 발언 귀속 불가)

규칙: 아래 스크립트에서 [확신도: 중]·[확신도: 하] 태그가 붙은 항목은 어투·주제 연속성만으로 붙인 것이고, 태그가 없으면 이름 호칭·자기지시 같은 직접 단서가 있는 항목이다. ASR 자동전사라 >> 전환 표시가 불완전하며, 한 줄에 두 화자의 말이 붙은 구간이 있다.

논의 흐름 (소주제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데스노트에 이름을 쓴 것은 살인인가살인이다 — 인과 입증은 안 되지만 의도가 있었고, 반복되면 확신할 경험이 쌓여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벌을 받는 편이 죄책감의 감옥보다 낫다 (귀속 불명 패널 2인 이상)살인이 아니다 — 개연성이 없고 과학적 사고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귀속 불명, '과학적 사고' 준거 화자) / 나는 안 썼을 것이다 (MC)법적 판단과 종교적·도덕적 판단은 다르다 — 형사법으로는 입증 불가라도 종교적 판단으로는 살인. 그리고 "그래도 노트에는 안 쓴다"는 데엔 전원 동의
결과의 평등 vs 기회의 균등결과 쪽에 방점 — 욕구의 상한선을 사회적 컨센서스로 정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 설계 (안광복, 에피쿠로스 준거)두 차원은 다르다 — 결과는 복지 정책 영역, 지금 예민한 건 기회 균등이고 그게 진짜 공정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 (김석) / 결과 평등은 지원·관리 시스템을 무겁게 하고 유인을 죽여 생산성을 낮춘다는 검증이 있다 (송길영)두 사람 다 현행 기회 균등이 곧 공정은 아니다에 동의. 송길영은 선발 자체가 사라지며 갈등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임
성과 차등 보상이익을 더 내는 사람에게 더 준다 — 출퇴근 시간 기준 급여는 위험하다 (송길영)성과는 단독 생산물이 아니다 — 펀드매니저의 실적은 애널리스트에 달렸다 (MC), "너 혼자 한 게 아니야"(「김부장」 플롯)팬데믹 재택 + AI 증강으로 개인별 퍼포먼스 측정이 실제로 쉬워지는 중이라는 사실 인식은 공유
말 느린 학생에게 발표시간을 더더 줘야 한다 쪽 — 최소 성취 수준 보장이 새 교육 패러다임이고 그게 더 공정하다는 흐름이 있다 (안광복)학생들은 똑같이 10분을 요구할 것 — 에브리타임 사례처럼 "노력 없이 얻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크다 (MC·송길영)그런 반발이 나오도록 사회가 그 사람을 만들었다는 진단(수평적 단일 평가·직업 다양성 부재·물질주의)에 이견 없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불공정하지 않다 — 손해를 끼치지 않으며, 노력의 보상은 성취(역량 향상)로 받는 것이고 노동의 보상은 별개 (귀속 불명 패널) / 같은 일을 하는데 한쪽만 신분이 불안한 게 정당하냐 (김석)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 — 올림픽에서 다 금메달 주지 않듯 결과에 리워드를 줘야 한다 (MC 대변)손해가 없어도 싫은 건 비교 욕망 때문(하버드 5만/1만 vs 10만/20만 실험)이라는 설명에 수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감정 문제로 재정의
사내 1,000배 연봉 격차역학의 문제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 급하면 3,000억도 낸다 (송길영)극단화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폭동까지 갈 수 있다 (김석)조직 수명이 짧아지면 인성 중심 채용이 해체되고 능력만으로 공정을 가리는 쪽으로 이동할 것 (안광복+송길영), 한국의 높은 연공서열성이 갈등의 배경
1인 1표차등 투표 검토 가능 — 라이프니츠식 계산기를 AI로 구현해 정량 평가할 수 있지 않나 (안광복)미래 시제와 주관성 때문에 계산이 어렵다 — 기후 불안처럼 세대별로 현실감이 다르다 (송길영)무지의 베일(주관을 벗어난 결정 절차)과 설명 가능성·납득 가능성이 공정의 실질 기준이라는 데 수렴. 단, 설명할 사람·들을 준비·매개가 모두 깨져 있다는 진단도 공유
AI 판사AI가 더 낫다 — 목적은 오심이 아니라 편파 축소이고 인간 판사는 편파적이다 (귀속 불명) / 벤담의 공리 계산식을 구현하고 인간적 묘미를 더하면 수용 가능 (안광복) / 식전·식후로 가석방 판정이 달라진다 (송길영)경우에 따라 못 받아들인다 — 장발장법 같은 사례가 있다 (김석) / 인생을 좌우하는 판단은 증강된 인간이 해야 하고, 상대가 사람이길 바라는 업이 있다 (송길영)최종 선고는 인간, 그 전 단계는 점점 AI가 지원하는 형태로 간다. 전제는 블랙박스가 아닌 설명 가능한 AI(익스플레이너블 AI)

EP.21 · 제사 · 노약자석 · 눈치 · 기부 압박

04:24:40 – 04:52:44 (몰아보기) · 원본 28:51 · 2026-01-28 공개 · 출연 정영진·송길영·안광복·전호근·김석

원제 명절만 되면 싸움 나는 제사를 그냥 없애면 안 될까?

배려 · 눈치 (04:24:40–끝)

출연자 확정
이름소속·정체성확정 근거(타임스탬프 + 전사 인용)확신도
정영진MC공식 설명란. 전사 내에 이름은 없고 역할만 확인 — 04:24:57 "자 오늘은 겁쟁이는 가라 특집입니다", 04:25:32 "선생님부터가 볼까요?", 04:27:10 "우리 작가님께선 어떻게 보십니까?", 04:28:42 "끝까지 도망가시겠습니까?", 04:52:14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요"명단=정본 / 역할 귀속=높음
송길영 [ASR: 송기령]빅데이터 전문가·마인드마이너① MC가 04:27:10 "우리 작가님께선 어떻게 보십니까?"로 3번째 지명 → 04:27:11 "제가 데이터를 계속 보았던게…" ② 04:27:46 "제가 얘를 마이닝 마이너스[ASR — '마인드 마이너'로 추정]라고 정의해 본 거예요… 배려에 대해서 한 2015년도쯤에 썼던 책들이 좀 있거든요" ③ 04:52:08 다른 출연자가 "송기령 교수님이 [쓰신] 『경량문명의 탄생』[ASR 원문]이라고 제가 정말 감명 깊게 읽은" → 즉시 04:52:12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라는 저자 본인의 응답높음
안광복 [ASR: 안강복]철학교사 박사 (중동고)① 04:40:51 다른 패널이 3인칭 호명 — "아까 이제 안강복 선생님 말씀하신 거는 습이라고 하는 거예요"(직전 04:37:25 "그게 교육에서 보는게 습이라고 얘기하거든요" 화자를 지칭) ② 자기소개 04:47:42 "제가 평범한 교사라 그게 스트레스가 많지 않은데 부조할 때 스트레스 받아요" ③ 04:29:20 "제가 1년에 한 300명 정도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면은" ④ 04:31:56 "요새 학교의 리추얼이 거의 사라지는 추세예요. 옛날 같이 애국 조회 같은 거 안 합니다" ⑤ 04:38:40 송길영이 "박사님"으로 지칭높음
전호근동양철학자 (경희대)① 04:29:57 안광복이 3인칭으로 "그게 이제 전호[근] 교[수님] [영역]이지만 동양에서 예 개념이에요" ② 04:39:36 "근데 이제 우리 이제 전호 교수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동양의 대표적인 맹자하고 순자를 비교할 때" — 둘 다 3인칭 지시이므로 본인 발언에는 이 표지가 없다. 귀속은 동양 고전·유교 의례 시그니처(조선 왕릉 어도 04:34:10, 성리학·불교 04:41:14, 순치/습 구분 04:40:38)로 판정참석=정본 / 발언 귀속=중간
김석서양철학자 (건국대)전사 내 이름 등장 없음. MC가 04:25:57 "자, 우리 교수님"으로 2번째 지명한 화자(코로나 마스크 사례로 "대원칙은 배려를 강제할 순 없다")와, 프로이트·빅토리아 시대·무의식 서양철학 준거 블록(04:42:15, 04:42:44)을 귀속했다. 근거는 소거법(나머지 4인의 표지가 모두 확인됨) + 서양철학 시그니처참석=정본 / 발언 귀속=중간~낮음

호명 순서로 본 발언 순서(패널 4인): 04:25:32 "선생님부터"(→ 전호근 추정) → 04:25:57 "우리 교수님"(→ 김석 추정) → 04:27:10 "우리 작가님"(→ 송길영, 확정) → 04:28:42 "끝까지 도망가시겠습니까?"(→ 안광복, 확정). 소거법의 한계: 전호근·김석 두 사람 사이의 배분만이 추정이다. 두 사람이 서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는 블록은 각 항목에 표시했다.

논의 흐름 (소주제별)
이 회차의 쟁점 대립표
쟁점A 입장(누가)B 입장(누가)실제로 합의된 지점
배려를 강제할 수 있나강제 필요 — 알아서 하라고 두면 300명 중 3명만 한다, 사회공학적으로 프레셔를 줘야 습관이 되고 전체 이익이 커진다 (안광복 04:29:31)강제 불가가 대원칙 — 배려엔 수위가 있고 버스 양보 같은 건 개인에게 맡길 일. 다만 공공 안전·사회 질서가 걸리면 예외(코로나 마스크) (김석 04:26:02)법적 제재가 아닌 은근한 압력(안내방송·시선·수치심) 선까지는 허용. MC 최종 정리 04:51:04 — "강제는 불가능, 대신 은근한 압력으로 배려가 늘어나는 걸 기대"
배려의 방향성주는 쪽의 의무로는 긍정 (전호근 04:25:37)받는 쪽의 권리로는 부정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김석이 영화 대사로 받음, 04:26:02)의무·권리의 비대칭에 이견 없음. 회차 전체의 전제로 통과
규칙화·의무화의 부작용규칙화되면 의무가 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규칙은 중첩되고 사회가 경직된다 (송길영 04:28:16 / 04:44:38)관습·예는 공동체가 좋아졌다는 경험치의 축적물이고, 표면상 불필요해 보이는 의례에도 숨은 기능이 있다 (안광복 04:30:25 / 04:31:23)규칙을 만들 때 여러 사람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데까지는 접점. 한 사람의 주장이 규칙이 되는 것은 양쪽 다 반대
제사·홍동백서 존폐 (영상 제목의 쟁점)지금 불필요한 걸 다 안다면 빨리 없애는 게 맞다 (정영진 04:31:00)고장난 부분만 고치는 게 진짜 보수주의, 제사는 가족 공동체 내 위치를 확인시키는 사회적 기능이 있다 (안광복 04:31:23–04:32:29, 후반 제사 해설은 전호근 가능성)존폐 결론 없이 다음 쟁점으로 이동. 다만 "의미는 있었을 텐데 표현 방식에 시간차·멀미가 있다"(송길영 04:33:03)는 진단이 공통 착지
노약자석·임산부석비워두는 걸 강제하는 게 맞다 — 왕릉 어도처럼 존재에 대한 공간적 존중 (전호근 04:34:10 / 04:34:31)본인이 제일 피곤하다고 생각하면 앉으면 된다 — J.S. 밀 위해 원칙, 주변에 불편한 사람이 없으면 허용 (안광복 04:35:16)판정 기준은 주변에 불편한 사람이 있느냐. 불편한 사람이 많은데 굳이 앉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대한 공격이라는 데 합의. 개인 실천 차원에서는 "비워두되 남에게 눈치는 주지 않는다"(전호근 04:34:03)
압력이 만드는 사회는 좋은 사회인가좋은 습이 퍼진 게 선진국 — 반복이 성품을 만든다(아리스토텔레스), 플랫폼 상호평가도 선함을 제조 (안광복 04:37:22 / 송길영 04:38:27)억눌린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 빅토리아 시대는 에티켓 최전성기이자 매독·불륜 최다, 예의를 반강제당하는 사회가 썩어가지 않나 (김석 04:42:15 / 04:42:44)강제와 비강제의 사이 정도는 허용된다(04:43:56). "처벌이 두려워 하는 건 순치이지 습이 아니다"(전호근 04:40:38)가 양쪽을 가르는 기준으로 채택
연예인 기부 압박오지랖이다 — 기부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 남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귀속 불명, 04:46:40)사랑받아 이룬 부는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는 댓글 논리도 있고, 압력이 습이 되면 미국 기업인처럼 기부가 상식인 문화가 될 수 있다 (정영진 04:47:19)기부의 문화화 가능성은 열어두되, 강요·눈치 주기는 오지랖이라는 선에서 정리
관계·선의의 정량화(부조금·강연료·보상)공정가를 매기는 순간 관계가 규정돼 기분이 상한다 — 폴라니의 이중운동, "7만 원만 받아라" 하는 순간 관계가 확정 (귀속 불명 04:48:31, 후보 김석/송길영)정량화가 없으면 매번 스트레스 — 축의금 얼마 할지가 제일 큰 스트레스(안광복 04:47:42), 그래서 관계×수입×예식장 종류의 공식까지 만들었다(귀속 불명 04:48:09)어중간한 보상이 최악(댓글 보상 실험 — 아예 많이 주거나 아예 적게 줘야 함, 송길영 04:49:45). 무보수 봉사 요청엔 흔쾌히 응하지만 "8만 원 드릴게요"는 오히려 기분이 상한다는 데 웃음으로 동의

인물별 발언과 비평

인물별 발언과 비평

아홉 명 각각에 대해 ① 검증된 프로필 ② 이 영상에서의 논증 스타일·강점·약점 ③ 반복 패턴 ④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를 붙였다. 비평은 전부 타임스탬프와 실제 발언 인용에 묶여 있다 — 인상 비평, 동기 추정, 인신공격, 신앙·학파 자체에 대한 평가는 배제했다. 평가 대상은 오직 공개 토론에서의 논증 수행이다.

발언 블록 수는 자동자막 기준 실측치다. 화자 귀속이 불가능한 구간(회차별 2~25%)은 어느 인물에도 배정하지 않았으므로, 이 수치는 실제 발언량의 하한이다.

발언 블록 실측 (자동자막 기준)
인물정체성출연발언 블록
정영진진행자 · 방송인9/9474
전호근동양철학자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9/9105
김석서양철학자 · 건국대 철학과6/9107
김범준물리학자 · 성균관대 물리학과3/947
장대익과학철학자 · 진화학자 · 가천대3/972
성진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승려 · 성관사 주지3/9108
하성용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3/943
송길영빅데이터 전문가 · 마인드마이너3/981
안광복철학교사 · 중동고 · 철학 박사3/966

정영진

진행자 · 방송인

출연 9/9 · 발언 블록 474

전 회차 진행. 이 시리즈에서 단일 최다 발언자.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본명정영진 (예명 사용 근거 미확인)위키백과
출생1975년, 대전나무위키
학력대전대성고 → 충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나무위키
철학 훈련 여부철학 전공 아님. 학부·대학원 철학 과정 이력 확인 안 됨 → 이 시리즈에서 유일한 비전공 고정 출연자위 학력 출처 (반대 증거 미발견)
직업 이력아나운서 지망 → 1인 미디어 '위키프레스' 창간·편집장 → 시사평론가·팟캐스터. 《정영진의 불금쇼》→《정영진 최욱의 매불쇼》(2023년 8월 건강 사유 하차) 기획·진행나무위키 매불쇼
기획·진행 이력삼프로TV, 일당백, 지구본연구소, 편의점클라스e 등 다수 콘텐츠를 직접 기획·진행나무위키
이 시리즈에서의 역할〈보다 BODA〉 고정 MC. 「과학을 보다」 진행자이자 공저자(『과학을 보다』 1·2, 알파미디어)이며, 「철학을 보다」는 초대 MC 김환에 이어 정영진이 진행나무위키 보다(유튜버) · 예스24 저자

즉 그는 철학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 철학을 처음 듣는 사람을 대리해 앉아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은 그 역할 자체를 흠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그 역할의 수행 품질만 본다.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9/9 (EP.13~EP.21 전 회차 진행)
  • 발언 블록 수: 474개 (원문 파일 타임스탬프 항목 직접 집계)
  • EP.13 55 · EP.14 41 · EP.15 59 · EP.16 88 · EP.17 64 · EP.18 44 · EP.19 39 · EP.20 52 · EP.21 32
  • 어느 회차에서도 개별 패널보다 발언 블록이 많다. 4시간 53분 전체에서 단일 최다 화자다.
  • 맡은 기능 한 줄: 논제를 이분 선택지로 잘라 세우고, 패널 다수 의견의 반대편에 스스로 서서 사례를 극단으로 밀어 붙여 답을 뽑아내는 도발형 진행자.

자료상 주의: EP.21 구간은 전사 원문에 MC 실명 근거가 없고 "고정 MC = 정영진으로 알려짐"으로만 표기돼 있다. 또 EP.14의 00:58:23·01:03:53, EP.19의 03:24:49·03:31:06, EP.20의 04:00:13·04:06:19 등은 원문에 귀속 확신도 '중/하'로 표시돼 있어, 아래 비평의 핵심 근거로는 쓰지 않았다.

논증·진행 스타일

1. 논제를 즉시 이분법으로 자르고, 중간지대 답변을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00:38:28

"동물 실험은 최소한으로 좀 하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되 필수적인 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 이런 애매한 답변… 그런 건 다 제가 배제하겠습니다."

02:48:36

"스님께서는 이 모든 종류의 체벌은 인권 침해라고 보세요? 심플하게."

03:57:33

"결과가 평등한 것과 기회가 평등한 것, 무엇이 더 우선인가."

2. 사례를 계단식으로 극단화한다 — 한 번의 반례로 안 끝내고, 패널의 답이 나올 때마다 조건을 한 단계 더 가혹하게 바꾼다.

  • EP.13: 부품 전량 교체 → 훔친 부품으로 재조립(00:13:54) → 레고 작품(00:17:29) → 고흐 진품/모작(00:19:49) → "반쪽만 훔쳐 갔다고 하자"(00:20:47) → 신체 기계화(02:22:03 계열) → 뇌 업로드(00:23:31).
  • EP.16: 침략군 폭사(02:08:17) → 원폭 투하(02:12:30) → 굶주린 마을의 곡식 절도(02:14:06) → "그 동네는 곡식이 풍년이라 다 버리는 상황"(02:14:41) → "그 곡식이 알고 보니 딴 데서 다 훔쳐 온 것"(02:15:03) → "우리 마을 것도 뺏어 갔는데"(02:15:14).

3. 자기 입장을 먼저 공개하고, 다수 패널의 반대편을 자처한다.

00:38:53

"개인적으로 이제 전 찬성 쪽인데" (동물실험)

01:24:41

"여기 4대일로 한번 제가 오늘 전투력 한번 발휘해 보겠습니다."

03:57:33

"아마 답은 네 분이 비슷하게 주실 것 같아 나는 어쩌면 반대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4. 추상 개념을 자기 일상 소품으로 번역한다.

00:03:47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밑창·윗부분을 번갈아 갈아 끼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테세우스의 배를 도입.

01:35:45

"갤러그… 100만 점 넘었다… 결국은 짜여진 판 안에서 이렇게 공격하거나 저렇게 공격해 좀 더 잘 피하거나 그것밖에 없는 것 아니냐" — 결정론 비유.

00:50:45

거북 등의 따개비를 떼주며 "잘 가라, 넌 행복해야 돼" 하는 영상을 두고 "그 따개비들이 무슨 죄입니까?"

5. 패널 입장을 실시간으로 정렬해 다시 읽어준다.

00:11:19

네 사람의 입장을 한 문단으로 순서대로 요약한 뒤 자기 입장을 마지막에 붙임.

04:29:36

"무슨 말씀 하시려고 빌드업 하나 했더니 — 배려를 그냥 알아서 하라고 놔두면 거의 안 하더라… 전체 이익을 위해 배려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

강점

1. 시청자의 첫 질문을 대신 던진다 — 전문 용어를 그 자리에서 붙잡아 세운다.

01:19:04

"자유의지라는 게 (도대체) 뭐예요?"

02:00:16

~02:00:28 세 패널의 선(善) 정의를 한 문장씩 정리한 뒤 "이 정도도 받아들일 만한가"로 합의 가능한 작업 정의를 만들어 냄.

01:10:16

"오가노이드가 뭐예요?" — 모른다고 말하는 데 주저가 없다. 비전공 진행자가 가진 최대 자산을 실제로 쓴다.

2. 회차를 반드시 착지시킨다. 결론 없는 산발로 끝내지 않는다.

01:09:25

→ 동물실험 전원 합의점 "필요하지만 줄여가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로 수렴.

02:21:38

"위선은 선인가 해서 답은 '선 아닌' 걸로… 간혹 예외 사항은 있을 수 있다 — 위선이라도 행하다 보니 의도 자체가 스스로 바뀌어 선으로 가는 경우."

04:51:04

"당연히 강제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고, 대신 은근한 압력… 이 정도로 결론 내면 될까요?" — 결론을 패널에게 승인받고 닫는다.

3. 자기 진영에도 같은 칼을 댄다.

00:50:45

인간의 공감 편향을 비판하며 자기 자신을 사례로 쓴다 — "킹크랩처럼 생겼어, 이런 애들한테 전혀 공감하지 않거든요."

02:46:09

"저는 동물들이 참 좋아요, 고양이 키우는 입장에서. 제가 약간 딜레마에 빠지는 건 예쁜 고양이를 공격하는 다른 (동물) — 걔네들은 내가 막 죽이고 싶거든요. 그러면 그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인간일 수 있잖아요."

01:05:37

동물실험 반대자를 "위선적"이라 의심한다고 말하면서, 같은 회차에서 자기 입장의 불편함도 함께 밝힘(01:09:25 "여전히 좀 동물 실험은 마음이 좀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4. 추상 논의를 현실 제도 문제로 되돌린다 — 철학 담화가 관념으로만 뜨는 것을 막는다.

02:04:19

"약간 관념적으로 얘기가 흐르니 구체적으로 여쭤보겠다" → 표를 노린 정치인의 봉사활동.

04:09:56

공항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란을 꺼내 "그때 그들을 설득할 논리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설득할 논리가 있나?"

03:02:49

교도소 인권을 북유럽/필리핀 대비로 놓고 "현재 우리나라의 교도소 정도면 최소한의 인권을 지키는 정도라고 보세요?"

약점·문제점

1. 극단 에스컬레이션이 답을 뽑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 목적이 되는 구간이 있다. 본인도 이 사실을 자백한다.

00:20:47

"여러분이 워낙 이렇게 나오시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밀어붙이는 거다."

02:59:51

"얘기를 하면 할수록 하나씩 계속 나오니까 제가 지금 계속하는 거(예요)."

02:26:37

"굳이 만약에 얘기하자, 극단으로 따져요."

  • EP.16 곡식 마을 연쇄(02:14:0602:15:33)에서는 조건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새 논점이 추가되지 않고 사례만 갱신된다. 패널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답해야 하므로 어떤 답도 정착하지 못한다.

2. 패널의 답을 평가절하하거나 자기 편으로 재기술하는 요약이 나온다.

00:08:18

"왜 이렇게 세 분이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러운가" — 답변 내용이 아니라 답변자를 평가.

00:13:12

~00:13:15 전호근의 답에 "그건 제 주장이다… 제행무상·제법무아 이르지 마시고 '정영진의 한 표' 이렇게 말씀하시면 심플하게 끝난다." 상이한 전제에서 나온 결론을 자기 결론과 동일시해 근거를 삭제한다.

01:42:42

"약간 비겁하게 회피한 것 같은데요" — 김범준의 구분("모든 것의 진행을 아는 것과 누군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계획했다는 건 다른 문제", 01:42:16)은 회피가 아니라 실제 논점 분리인데, 반박 대신 태도 평가로 처리한다.

3. 수치·사실 주장을 출처 없이 던진다. 사고실험이 아니라 사실 진술의 자리에서 나온 것들이라 문제다.

00:38:13

동물실험으로 "한 해 약 500만 마리"가 희생된다 — 출처 미제시("주장이 있다"로만 처리).

01:26:14

"인구 10만 명당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이 교육 수준이 높은 곳에서 100명쯤 나온다고 칠 때, 그런 게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한두 명 나올까 말까." 자유의지 반박의 결정적 근거로 쓰이는데 숫자의 출처가 없다.

03:10:51

"최근 튜링 테스트에서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 어떤 실험인지 특정하지 않은 채 회차 전체 전제로 사용.

  • 반례로, 01:44:47 "스티븐 호킹이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기계다'라고 한 게 사실입니까?"처럼 확인 질문 형태로 넘긴 경우도 있다. 즉 그는 확인할 줄 알면서 확인하지 않은 곳이 있다.

4. 어려운 논점에서 화제 전환·농담으로 빠져나가는 구간이 있다.

  • EP.14: 고통의 선 긋기 문제(00:52:51 "고통을 느끼는 친구들은 굳이 먹지 말자는 이유는 뭐예요? 보기 싫어서?")가 정면 답변을 요구하는 지점에서 01:02:05 파블로프 실험의 잔혹성으로 화제를 옮기고, 01:11:35 "낙지 얘기할 때 살짝 침이 고이는 걸 느꼈습니다"라는 패널 놀리기로 마무리로 넘어간다.
  • EP.13: 뇌 업로드 논의 중 00:29:50 "뇌를 혹시 저랑 바꾸면?… 행복하실 텐데"로 농담 전환.
  • 이 전환들은 분위기를 살리지만, 직전에 열린 물음(고통의 도덕적 지위, 개인 동일성의 기준)은 닫히지 않은 채 남는다.

5. 발언 지분 독점. 474블록 / 9회차 전원 중 최다이며, 특히 EP.16(88블록)에서는 01:50:57~01:52:56까지 약 2분간 사전 질의응답을 혼자 끌고 가다 01:52:56에서 "여러분도 '나도 지금 정박해 있나' 생각이 들었다면 정박해 있는 게 맞다"는 자기 훈화로 주제를 연다. 진행자의 소견이 논제 프레임을 선점하면, 패널은 그 프레임에 대한 반응부터 시작해야 한다.

6. 악마의 대변인이 회차 내내 한 방향으로만 고정되는 경우가 있다. EP.18(체벌·인권)에서 그는 인권 옹호 측만 반복 압박한다 — 03:00:45 "어떠한 형태의 벌도 안 주려고 극단적으로 노력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건 뭐예요?", 03:02:00 "인권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될 가치라는 그 말에 우리가 너무 갇혀서", 03:06:45 "그 사람이 얼마나 더 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03:07:12 "강제 노역이라도 매일같이 좀 시켰으면". 반대 방향(체벌 허용 시의 위험)에 같은 강도의 압박은 이 회차에 나타나지 않는다. 악마의 대변인은 양쪽에 쓸 때만 도구고, 한쪽에만 쓰면 주장이다.

ASR 관련 면책: 02:48:20 "적절한[ASR: 격절한]", 03:02:49 "북유럽[ASR: 북일럽]", 03:10:51 "튜링 테스트[ASR: 튜닝 테스트]", 03:08:35 "송기령[ASR]" 등은 자동자막 오류로 표기된 항목이며 화자의 실수로 계산하지 않았다.

반복 패턴

9회차를 이어 보면 다음 여섯 가지가 거의 회차마다 같은 순서로 나온다.

  1. 입장 강제 오프닝 — 주제 제시 직후 "심플하게", "결론부터 한 문장씩"으로 패널 전원의 좌표를 찍고 시작한다(01:12:07, 02:48:36, 03:57:33).
  2. "조금 더 극단적으로 가 보겠다" — 이 문구 또는 동의어가 회차 중반의 전환 신호다(02:08:17, 02:26:37, 00:20:47).
  3. 소수파 자처 선언 — "저는 반대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4대일로 전투력 발휘"(01:24:41, 00:38:53, 03:57:33). 이후 그가 하는 발언은 신념 진술인지 역할극인지 시청자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4. "~라는 말씀이시죠?" 확인 요약 — 패널 답을 자기 문장으로 되받아 확정한다(01:16:45, 02:26:01, 03:18:15, 04:26:46). 대개 정확하지만, 위 약점 2의 사례처럼 어긋날 때 정정 기회 없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5. 자기 일상 소품 비유 — 아디다스 슬리퍼(00:03:47) · 레고(00:17:29) · 갤러그(01:35:45) · 고양이(02:46:09) · 산낙지(00:56:53).
  6. 클로징에서 주제를 좋아요·댓글로 접붙이기00:37:27 "생각이 안 날 때는 좋아요를 눌러 주시면", 02:22:01 "좋은 댓글을 거짓으로라도 한번 달아보시라"(위선 편), 04:51:23 "좋아요·댓글 남기는 습관을 들이면"(습관 편). 세 번 다 그날 결론의 어휘를 그대로 재활용한다. 알아차리면 완전히 예측 가능하다.

없었다면 잃었을 것

고유 기여 1 — 대립각의 인공 공급. 이 시리즈의 패널 구성(철학 교수·신부·스님·과학자)은 서로 예의를 지키며 수렴하는 경향이 강하다. EP.16 01:57:18에서 그가 직접 말한다: "지금 세 분이 사실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그러면 '위선도 매우 선이다'로 가겠다." 그가 빠지면 상당수 회차는 합의 확인 대담이 된다. 갈등을 만들어 넣는 것이 그의 실질 기능이다.

고유 기여 2 — 무지의 권리 행사. "오가노이드가 뭐예요?"(01:10:16), "자유의지라는 게 뭐예요?"(01:19:04)는 전공자 패널끼리는 서로 묻지 않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없으면 시청자는 정의되지 않은 용어 위에서 4시간 53분을 듣게 된다.

고유 기여 3 — 착지 강제. 매 회차 결론을 문장으로 만들어 패널의 동의를 받고 닫는다(01:09:25, 02:21:38, 04:51:04). 이 기능이 없으면 시청자는 요약 없이 종료 화면을 맞는다.

대체 가능성 평가. 기능 2·3은 훈련된 방송 진행자 다수가 대체할 수 있다. 대체가 어려운 것은 기능 1이다 — 전공자 앞에서 "그건 내가 이따가 하나하나 다 깨 드리겠다"(00:06:08)라고 말하고 실제로 회차 내내 밀어붙이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배짱과 순발력의 문제이며, 이 조합은 흔치 않다. 다만 그 배짱이 약점 1·6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이 인물의 강점과 약점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그의 주장은 신념과 역할극이 섞여 있고, 대부분의 경우 어느 쪽인지 표시되지 않는다. "4대일로 전투력 발휘"(01:24:41) 같은 선언이 있는 구간은 도발이지만, 표시 없이 밀어붙이는 구간도 많다. 그의 발언은 결론이 아니라 반박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으로 두고, 판단은 패널의 답변 쪽에서 취하는 편이 안전하다.
  2. 그가 던지는 숫자와 "~라고 한다"는 인용은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500만 마리(00:38:13), 10만 명당 100명(01:26:14), 튜링 테스트 결과(03:10:51) 모두 출처가 제시되지 않았다. 논증의 결론이 그 숫자에 걸려 있을 때 특히 그렇다.
  3. 그의 요약을 패널의 최종 입장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요약은 대체로 정확하지만(00:11:19), 자기 결론과 겹칠 때 근거가 삭제되는 경우가 있다(00:13:15). 원 발언을 되짚어 듣는 편이 낫다.
정영진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3 — 테세우스의 배·나의 동일성 (2025-01-16)

[원 소제목] 정영진 (진행)
00:00:02

"과학은 다 뗐습니다. 이제 철학 공부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 오늘 '철학을 보다'를 함께 이야기 나눌 진행자 정영진이다.

00:00:34

오늘은 철학자들 + 과학자를 포함해 철학 얘기를 해 보겠다. 김범준에게 — 철학이 로망이라고 했는데 원래 이렇게 좋아했나.

00:01:30

[추정] 철학은 진짜 매력이 있다. 수많은 것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게 다 과학 분야인데, 그 연구하는 주체가 되는 사람, 그 사람을 연구하는 게 철학이냐.

00:03:32

주제 도입 — 철학의 오래된 문제 중 하나, 테세우스의 배. 배 부품을 하나씩 뜯어 갈다 보면 원래 부품은 하나도 안 남는데, 그래도 이게 테세우스의 배냐는 질문이다.

00:03:47

나는 이미 비슷한 현상을 고등학교 때 겪었다.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 보통 신는 건 2,000원짜리지만 오리지널 아디다스는 가격이 좀 나간다. 신다 보면 바닥이 해지고 위 껍데기와 밑바닥이 분리된다. 처음 분리됐을 땐 싼 걸 사다 갖다 붙이니 밑은 이미 새 부품이 됐다. 나중엔 위도 너덜너덜해져 흰색 플라스틱만 좀 남고 검은 부분이 다 해져서 또 분리해 다시 붙였다. 오리지널 아디다스의 원래 부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도 그걸 끊임없이 아디다스라고 주장하는 애가 있다.

00:04:28

(상표는 유지돼야 한다는 지적에) 상표는 유지가 돼야지, 그것마저 없어지면 안 된다.

00:04:31

그래서 이게 원래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느냐, 아니면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없느냐 — 이 주제로 오늘 이야기하겠다.

00:04:40

일단 교수님은 어느 쪽인가. 부품 다 바뀌었어, 테세우스의 배인가.

00:05:44

[추정] 그건 굉장히 약점이 많은 주장이라고 본다. 본질이 뭐냐부터 문제다 — 누구는 엔진이라 할 수도 있고.

00:05:58

[추정] (아우디 예에 대해) 앞에다 벤츠 삼각별을 달았는데도 아우디냐 — 엔진 자체가, 차대번호가 중요하다는 얘기냐.

00:06:08

[추정] 문제가 많다. 이건 내가 이따가 하나하나 다 깨 드리겠다.

00:07:44

(김석에게) 아니라는 거네, 그렇죠? 다 바뀌면.

00:08:18

나는 이걸 심플하게 답을 낸다. 왜 이렇게 세 분이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러운가.

00:08:29

내 입장 — 사람들 모두가 테세우스의 배라고 얘기하면 얘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본다.

00:08:33

아디다스 슬리퍼랑 똑같은 얘기다. 모두 바뀌어도 나는 상관없다. 사람들이 모두 테세우스의 배라고 이야기한다면 이건 테세우스의 배가 맞다.

00:08:43

(논리의 구멍이 있다는 반응에) 구멍 한번 찾아보시겠나.

00:09:06

(슬리퍼를 배라 부르는 반례에) 맞다, 배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걔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하는 순간 걔는 배가 되는 거다.

00:09:39

슬리퍼의 기본적인 정의가 있다고 가정하시는 것 아닌가. 밑에 바닥이 있고 위에 껍데기가 있는 걸 슬리퍼라 부르기로 한 것뿐이다. 사람들 모두가 얘를 배라고 부르는 순간 얘는 배가 되는 거다.

00:09:58

[추정] 이걸 탁자라고 부르지 않고 의자라고 부르자 — 그럼 그냥 의자가 되는 것 아닌가.

00:10:34

고등어라는 생선이 있다. 사람들 모두가 얘를 오징어라고 부른다. 그럼 얘 오징어 되는 거 아닌가.

00:11:03

(내 편이 하나 필요한 것 같다며) 이야기 도중, 이 정도로는 얘기가 안 된다며 답답한 나머지 급히 오신 분이 계시다 —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00:11:19

지금까지 나온 입장 요약 — 김범준 교수님: 서서히 시간이 지나며 바뀌면 다 바뀌는 순간이 되더라도 테세우스의 배다. 다음: 배의 본질(아주 중요한 부품, 핵심적인 명패 등)이 유지되면 테세우스의 배다. 다음: 형상과 질료를 잘 봐야 된다(나도 다 이해하진 못했다). 나: 모두가 테세우스의 배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테세우스의 배가 맞다.

00:12:06

이거 부품이 다 바뀌어도 테세우스의 배인가, 아닌가.

00:12:17

정체성이 확인돼야 한다면, 어떤 조건이 되면 테세우스의 배라는 건가.

00:13:12

(전호근의 답에) 그건 제 주장이다.

00:13:15

교수님 생각이 저랑 비슷한 거다. 그럴 땐 제행무상·제법무아 이르지 마시고 "정영진의 한 표" 이렇게 말씀하시면 심플하게 끝난다. 정영진에게 한 표 주신 거다. 이제 나도 든든하게 우군이 생겼다.

00:13:54

두 번째 문제 — 어떤 못된 놈이 교체된 부품을 다 몰래 갖고 있다가, 교체된 부품을 다 모아 다시 조립했다. 원래 테세우스의 배 부품은 모두 그쪽으로 간 거니 어찌 보면 얘가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수선된 테세우스의 배는 이미 깔끔하게 저기 놓여 있다. 재조립한 이 배는 뭐라고 해야 하나.

00:14:39

그 해전에서 쓰였던 배는, 새 부품들보다 하나씩 교체됐던 그 부품들로 조립한 게 훨씬 더 가깝지 않나.

00:15:21

그러니까 헌 부품들로 만든 그 배가 테세우스의 배냐는 질문에 그게 맞다고 말씀하시는 건가.

00:15:54

모든 부품을 완벽하게 새로 재조립한 이 배가 맞는데도?

00:17:29

여러분이 얼마나 취약하신지 다시 일깨워 드리겠다 — 전시장에 '정프로의 레고 작품'이라고 열 개짜리 레고 부품으로 만든 핸드폰이 있다. 하나씩 도둑맞을 때마다 내가 계속 내 걸 꽂아 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결국 열 개의 부품을 모두 그놈이 가져갔고, 그걸로 열 개짜리 똑같이 새로 구성했다. 그럼 어떤 게 정프로의 레고 작품인가.

00:18:25

저 제 낙인(사인)도 있는데.

00:19:49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데 누가 훔쳐갔다. 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으니 거의 똑같이 그려 놓고 20년째 걸어 놨다. 20년 후에 훔쳐간 쪽이 "이게 진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하면 — 고흐 사인도 있고 진짜 고흐가 그린 것이다. 그런데 말씀하신 역사성,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것, 그동안 인정받은 역사성은 다 모조품 쪽에 있다.

00:20:24

그럼 위작은 위작일 뿐인가.

00:20:47

반쪽만 훔쳐 갔다고 하자. 반을 훔쳐 가면 나머지 반을 잘 붙여 놓고, 다음에 또 반을 쪼개서 원래 있던 쪽을 뜯어 가면 또 나머지를 갖다 붙여 놨다. 여러분이 워낙 이렇게 나오시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밀어붙이는 거다. 결국 훔쳐간 애가 두 개를 다 갖고 있다 — 이때 어떤 게 진짜인가.

00:21:12

자, 빨리 얘기해 보시라.

00:22:03

(1년 전 얘기로 받아) 비슷하게, 요즘 사람의 신체 기관을 강화하는 로봇 기술이 굉장히 발달하고 있다. 내 머리만 빼고 나머지 몸을 다 기계화했다 — 그거는 여전히 나인가, 맞나.

00:23:31

요즘 뉴럴링크 같은 기술도 나온다. 모든 뇌 활동을 전기화해 컴퓨터에 업로드해 놨다. 뇌가 워낙 중요하다고들 하시니 — 그 컴퓨터가 그럼 내가 되는 건가.

00:24:04

그러니까 현재 상태의 내 뇌를 완전하게 업로드할 수 있다면.

00:24:42

그럼 대충 경계를 생각해 놓으신 데가 있나.

00:25:14

[추정] 지나치게 뇌 중심적 사고 아닌가.

00:26:05

리(理)와 기(氣)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 주셔야 한다.

00:26:26

(기 설명을 듣고) 그래서 우리가 화투 칠 때 "기리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나.

00:29:50

[추정] 뇌를 혹시 저랑 바꾸면? 물론 안 되고 상상 얘기지만 — 행복하실 텐데.

00:30:06

그러면 저희는 사람이 바뀐 건가. 뇌가 그렇게 바뀌면 생각하는 방식도 제 생각처럼 하실 거고.

00:30:31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00:32:39

[추정] 어떤 양궁 선수가 1년 동안 다쳐서 몸을 못 써 근육이 다 빠졌다. 다시 활을 들었을 때 뇌는 그대로니 잘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지 않나 — 몸이 안 따라주니까. 이 경우 뇌가 아무리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00:33:56

상호작용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다.

00:33:58

원래 테세우스의 배에서 시작해 뇌와 나의 정체성까지 이야기했는데, "나는 무엇이다"를 한 말씀씩 듣고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다. 철학을 하셨으니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해 놓으셨을 거라 생각한다.

00:35:17

(김범준의 답에) 와우. 거의 이제 철학 쪽으로 오셔도 되겠다.

00:35:38

아무것도 안 읽은 사람은?

00:36:43

인간을 되게 낙관으로 보시는 것 같다.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00:36:57

내 답 — 좀 비루하게 나를 보고 있는데, 지구 혹은 대자연이라고 해도 좋다, 이들이 내린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는 부품 내지는 유기체 정도로 생각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는 스스로를 아주 비하했다. 그러나 그 명령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나는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 명령의 일부다.

00:37:27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남겨 주시면 좋겠고, 생각이 안 날 때는 좋아요를 눌러 주시면 좋겠다.

00:37:40

[추정] 함께 해주신 철학자·과학자분들 감사하고, 시청해 주신 분들도 감사하다.

EP.14 — 동물실험 (2025-01-30)

[원 소제목] 정영진 (MC)
00:37:50

"과학으로 철학을 보시고 철학으로 또 과학도 보시는 교수님도 계시고요" — 출연진 소개(이름은 편집으로 잘림). 본인은 고양이를 키운다고 밝힘.

00:38:13

오늘 주제 도입 — "어떤 동물들 너무 예쁘고 어떤 동물들은 맛있기도 하고". 동물실험은 결국 인간을 위한 실험이며 한 해 약 500만 마리가 희생된다는 주장이 있다고 인용.

00:38:28

찬반을 명확히 하라고 강제 — "동물 실험은 최소한으로 좀 하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되 필수적인 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 이런 애매한 답변… 그런 건 다 제가 배제하겠습니다."

00:38:58

반대 표명에 도발 — "사람이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 / "동물 실험에서 안정성 키우는 건데 사람이 이제 실험 되는 거죠, 뭐."

00:39:15

찬성 표명에도 도발 — "아이, 뭐 동물들이야. 어차피 동물들인데 그냥 뭐 2천만 마리가 죽든 뭐 1억 마리가 죽든."

00:39:39

"항의가 지금 벌써부터 예상이 좀 되네요."

00:39:53

본인 입장 공개 — "개인적으로 이제 전 찬성 쪽인데" 왜 반대하는지 듣겠다. 동물실험 하면 피터 싱어를 떠올릴 것이라고 화제 제시.

00:41:00

반대 논거 압박 — "안 할 수 있으면 가능한 좀 덜하는 건 좋습니다. 근데 안 해야 되는 이유가 됩니까? 그게 인간보다 더 소중하진 않을 거 아니에요."

00:41:14

"발명된 수많은 의약품, 그동안 우리에게 쓰여진 그 많은 것들은 동물 실험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 같은 느낌이 좀 있는데."

00:42:05

핵심 반론 — 백신 실험을 못 해서 "한 50년 100년 늘어났다고 생각을 하면 그동안 수없이 많이 살렸던 우리 사람의 생명들, 그 사람들은 죽었을 거 아닙니까? 그것도 괜찮은 거예요?"

00:42:47

"이것조차 저는 약간 착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만용이라고 봅니다." 시뮬레이션도 동물실험이 있었기에 발전한 것이지, 동물실험이 아예 없었다면 시뮬레이션도 없었을 것.

00:43:24

반대 측 입장 요약 — "지금 현재 상황을 보자면 이제는 안 하는 게 맞다." 찬성 측으로 발언권 이동.

00:43:58

"보통 동물 실험하면 토끼나 흰쥐 이런 걸 많이 (떠올린다)."

00:44:42

찬성 측에 목적을 캐물음 — "뭘 위해서죠? 사람을 위해서요?"

00:44:57

(찬성 측 요약 겸 반문) 결과적으로 멈춰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지금 현재 시점으로 보면 우리가 동물 실험을 중단하는 순간 엄청나게 많은 인간의 위험이 된다"고 생각. 강아지·침팬지 등 영장류는 반대하시는 것 같은데, 그 단계를 건너뛰면 결국 사람에게 바로 하게 되어 "훨씬 더 위험해지잖아요."

00:46:42

"먹을 수 있는 (존재인가)" — 김석의 기준 제시를 되받아 확인.

00:48:41

"사자가 소 잡아 먹는 것도 비판을 해요?" (이규보 논지에 대한 확인 질문)

00:50:14

"더 가치 있는 걸 구한다 이거겠죠?"

00:50:45

인간의 공감 편향을 자기 사례로 비판 — 검은 눈 크고 털 복슬복슬하면 편을 들지만 "킹크랩처럼 생겼어, 이런 애들한테 전혀 공감하지 않거든요." 유튜브에서 거북이 등의 따개비를 칼로 다 떼주고 "잘 가라, 넌 행복해야 돼" 하는데 "그 따개비들이 무슨 죄입니까? 따개비들은 누가 챙겨 줄 거냐고."

00:52:51

"고통을 느끼는 친구들은 굳이 먹지 말자는 이유는 뭐예요? 보기 싫어서?"

00:53:47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는 게 중요한 거지, 어떤 선을 딱 그어서 모든 걸 하지 말자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정말 많은 인류를 살린 동물실험 사례를 요청.

00:56:53

"하나만 좀 체크 좀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혹시 그 산낙지 샤부샤부 드세요?"

00:57:05

"드신다는 거죠?" / "산낙지는 드시고 문어는 불쌍하다." / "탕탕이 먹어요?"

00:57:47

"그 친구들이 막 꼬불꼬불 하는 것도 어쨌든 회피 반응일 거 아니에요."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얘기에 "그거 보더니 문어는 진짜 먹지 말아야겠다라고 하다가."

00:58:00

공리주의 논변 — "저는 차라리 먹는 게 더 나쁘지 실험은 (낫)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먹는 거는 그 사람 한 명을 위해서 한 마리가 희생되는 거잖아요." 반면 "동물 실험에 쓰인 거 한 마리로 인해 만약에 만 명, 10만 명의 사람이 구해질 수 있다면 저는 그거는 권장해야 될 일이지 막아야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00:58:23

다만 학대는 별개 — 질질 끌고 다니거나 고양이에게 계속 (해를) 가하는 사람들은 "인간 관계에 있어도 문제가 있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가장 힘이 약한 쪽에 먼저 이 해를 가하는 거예요. 그거는 진짜 막아야 된다." 그러나 "육식(관문)을 지난 인간으로서… 가축도 사실 먹으려고 다 키운 것들이거든요. 그것까지 부인할 필요 없다." (귀속 확신도 중 — 어조·입장은 MC와 일치하나 >> 전환이 불명확)

01:00:14

"대우를 어떻게 해주(나요)?" / "그럼 재미로 사냥하는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01:02:05

잔혹 실험으로 화제 전환 — "동물 실험 가능한 좀 줄이자는 거에는 대체로 다 동의하시는 거 같은데", 대표적 사례인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잔인하게 진행됐다는데?

01:02:32

"침이 이렇게 밖으로 흐르게."

01:03:53

의례에 대한 회의 — 곰 제사, 코셔, 할랄(동물의 목을 베어 피를 다 땅에 흘리는 것) 같은 예의 갖추기가 "이게 인간들이 스스로 '야 우리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야'라는 거를 서로 보여 주는 그 의미만 있지", 동물 입장에서 "그래도 나한테 절하고 죽이는구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예요." (귀속 확신도 중)

01:05:37

"가스 아니면 무슨 전기 충격으로 그 고통을 느낄 시간조차 주지 않는 정도의 그런 발전은 괜찮을 것 같다." 불편한 점은 "동물들을 내가 너무 사랑해서… 다른 사람들이 동물 (실험) 하는 거에 반대한다거나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혹시 좀 위선적인 건 아닌가."

01:06:11

"동물 실험이 생각보다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은 거 같다는 주장도 있어요."

01:07:33

"동물 실험을 통과했더라도 실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꽤나 많다."

01:07:49

"동물 실험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게… 맨날 이제 쥐들 갖고 막 암 걸리고… 왜 이렇게 쥐를 많이 하는 거예요? 싸서 그래요?"

01:08:26

"통제하기가 실험할 때 편리하죠. 코끼리를 가지고 (실험)한다고 생각해 보시면 (상상)이 안 되잖아요. 코끼리는 크기도 하고… 한 마리 정도씩 (낳)는데 마우스는 한 번 (낳)으면 한 다섯 마리에서 열 마리 정도 나오니까." (귀속 확신도 중 — 장대익과 번갈아 말하는 구간)

01:09:17

"저작권 위반 아니냐? 지금 / 새로운 주(장)인데 / 그럴 권리가 (있는 게) 아니냐?"

01:09:25

본인 최종 입장 — 카나리아처럼 "사람이 먼저 가실 수도 있는 상황에서 먼저 새를 보내서 얘가 괜찮으면 사람도 괜찮다, 요렇게 하는 게 일종의 동물 실험의 원형". 그게 사람의 생명을 굉장히 많이 살렸다면 "저는 동물실험을 여전히 지지할 수밖에 없는… 왜냐면 전 인간이 그래도 더 소중하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래도 여전히 좀 동물 실험은 마음이 좀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 전원 합의점: "필요하지만 줄여가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01:10:13

"그거를 지금 자꾸 얘기하시는 거, 그러니까 그런 거는 좀 아니지 않는가?"

01:10:16

"동물 실험 대체할 만한 것들은 지금 과학 분야에서 어떤 것들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뭐 오가노이드?" / "오가노이드가 뭐예요?" / "중성자 가속기요?"

01:11:35

"교수님, 아까 제가 살짝 뭐 눈치 챘습니다만 낙지 얘기할 때 살짝 침이 고이는 걸 느꼈습니다. 낙지를 엄청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산낙지 얘기하니까 살짝 얼굴에 화색도 좀 (도)시고."

01:11:50

마무리 — "동물들의 고통이 최소화된 방향으로 가기를, 이 마음은 아마 누구도 아마 부정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겠죠. 자, 오늘 철학을 보다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요."

EP.15 — 자유의지 vs 결정론 (2025-02-13)

[원 소제목] 정영진 (MC)
01:12:07

오프닝. 오늘 주제는 "인간의 운명은 결정이 돼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얼마든지 바뀌는 것인가" — 각자 결론부터 한 문장씩 요청.

01:12:44

"물리적으로는 결정론이 맞아요."

01:13:00

김범준에게 질문: 물리학에서 말하는 결정론은 무엇인가.

01:13:18

"예측이 가능하다."

01:13:53

"결정되어 있지 않다."

01:13:59

확인: 물리학적 결정론은 모든 요소를 다 알고 있다면 그 뒤의 것들은 다 정해져 있다는 것.

01:14:09

"알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요." (다음 패널로 넘김)

01:14:24

의심 제기 — 그 이야기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 사이의 명백한 단절을 말하는 것 같다.

01:15:21

~01:15:36 끼어들기: 인간의 세상이 자연과 우주와 독립적으로 저 위에 있는 것 같다는 인상.

01:16:45

"그 자유의지가 얼마든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01:16:50

운명론 예시 — 사슴이 호랑이한테 쫓기다 왼쪽으로 가면 살고 오른쪽으로 가면 죽는데, 그때 상황 판단으로 어느 쪽으로 가든 그게 다 결정돼 있다는 게 결정론이냐.

01:17:52

"그러니까 우리가 증명할 수 없다고 그게 맞다고 할 수 없잖아요."

01:18:49

"알기 어렵죠."

01:19:04

"자유의지라는 게 (도대체) 뭐예요?"

01:20:38

도발 — 자유의지가 다 당연히 있다고 가정하는 것 같으니 반대쪽을 주장하겠다. 아주 뜨겁게 달은 것을 팔 옆에 갖다 대면 나의 의지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당연히 피하게 된다. 내 행동이 내 의지에 반해 나왔으니, 이건 자유의지가 없다는 증거로 작동할 수 있지 않나. "네가 자유의지가 있었으면 몸을 너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되는데 너의 의지는 가만히 있는 것이었으면서 왜 그 뜨거운 불을 피했느냐?"

01:21:20

"잠깐 피했다 치고 다시 갖다 대라."

01:21:41

반박 — 3m 뛰어오르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불에 내 얼굴을 갖다 대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안 하게 되는 것이다. 둘은 다르다.

01:22:03

~01:22:19 조건 수정 — 여기에 갖다 대야만 네가 사랑하는 사람(→ 아이)이 살 수 있다면? "그러면 갖다 댈 수 있죠."

01:22:49

~01:23:13 재도발 — 정말 나와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 "한번 해 보세요,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같은 설득에 넘어가 불에 대겠나. 안 할 것이다. 아이 정도는 돼야 그 일을 한다는 건, 내 DNA 즉 나의 생명체 정보를 계속 전달하려는 자연의 의지를 마치 내 의지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 아니냐.

01:23:14

조건 재수정 — 나치 수용소처럼 나와 상관없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버티는 경우도 있지 않나. "피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01:24:07

"아 저랑 칸트랑 또 같은 느낌이 다르네요."

01:24:41

"여기 4대일로 한번 제가 오늘 전투력 한번 발휘해 보겠습니다." 친구를 밀고하지 않는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건 살아오면서 "친구를 배신하는 건 비열한 짓이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나쁜 놈이야" 같은 압력이 켜켜이 쌓인 결과 아니냐. 그런 소리를 전혀 안 들었던 사람이 친구랑 재밌게 놀다가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그 선택을 했겠느냐. 아니라는 것이다.

01:25:24

"아 살아 계셔야 물어보죠."

01:25:30

"그걸 해야 되는 이유가 뭐죠?"

01:25:35

"바로 그겁니다. 도덕적 동기라는 게 그 사람이 자연 상태에서 살면서 그냥 얻어진 게 아니고, 수많은 사회적 (압력)과 교육 이런 것들이 나에게 쌓여서 생긴 게 도덕적 동기라는 거죠."

01:26:14

통계 반박 — 인구 10만 명당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이 교육 수준이 높은 곳에서 100명쯤 나온다고 칠 때, 그런 게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다. 자유의지 주장이 맞으려면 A그룹과 B그룹에서 비슷한 숫자가 나와야 하지 않나.

01:26:49

"생각, 그러니까 내 안에서 생각하는 것조차도 그건 자유의지에 들어갈 수 있다."

01:27:22

"강요된 선택이면 좋은 일을 해도 칭찬할 수가 없어."

01:27:35

처벌과 칭찬의 이유 설명 — 인간이 개별적으로는 다를 수 있으나, 사회를 구성하는 상황에서 신상필벌 같은 것이 있어야 그 사회가 다른 집단에 비해 유지하기가 좋아지니까 처벌과 칭찬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점점 사람들에게 강요되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처벌을 피하거나 칭찬을 더 받기 위해 그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 이걸 자유의지라 할 수 있느냐.

01:28:57

"우리는 의지가 있다고,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01:29:56

"아 저는 (가위바위보 로봇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위를 내는 척하다가."

01:30:57

"하루에도 뭐 수십 번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까?"

01:31:07

재도발 — 우리의 결정이 의식의 결과물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어릴 때 아팠던 기억이 무의식에 잠재돼 있고 결정은 무의식이 내리며 의식은 이미 내려진 결정에 정당화·명분을 주는 정도로만 작동한다. 또 다른 예로 장내 미생물이 뿜는 화학 성분이 이미 결정을 해놨는데(내 위가 짠 걸 원해서 오늘 짜장면을 결정했는데), 머릿속에서는 "간만에 중국집 갈까, 오늘은 누굴 만날까" 하고 내가 결정한 것 같지만 사실 몸이 다 결정해 놓은 것에 명분만 주어지는 과정, 그게 결국 의식이라는 것이다.

01:32:12

"아 마음에 안 드세요?" / 01:32:14 "무의식 전문가니까."

01:33:13

환공포증 사례 — 육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동그란 것이 모여 있는 걸 보면 무서워한다. 날카로운 걸 못 보는 사람도 있다. 내 의지가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바라보며 안 무서워해야 하는데,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그걸 못 한다.

01:33:55

"그것도 본인의 의지로 했어야 자유의지가 서는 것 아니냐."

01:34:26

트라우마 사례 — 전쟁에서 끔찍한 걸 보고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은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시 어마어마하게 시달린다. 자유의지로 "지금은 전쟁 상황이 아니니 공포를 떨쳐 버려야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화학적인 약을 먹으며 겨우 벗어나거나 못 벗어난다.

01:35:26

"우리가 보통 정신 승리라고 하잖아요. 정신 승리가 안 되는 게 많죠."

01:35:45

갤러그 비유 — 100만 점 넘었다. 비행기가 출동하면 화면 안에서 나오는 적들을 잘 쏘느냐 못 쏘느냐 그것밖에 없다. 그런데도 "내가 오늘은 저 적들을 물리쳤어, 자유의지로 공격했고 마지막 왕까지 깼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짜여진 판 안에서 이렇게 공격하거나 저렇게 공격해 좀 더 잘 피하거나 그것밖에 없는 것 아니냐. 인간도 갤러그 게임 안의 비행기처럼 주어진 몇몇 것들 중 오늘은 이거, 내일은 저거를 선택했지만 그것도 완전한 의지가 아니라 내 몸의 여러 상태에 의해 다 정해진 것 아니냐.

01:36:30

"이렇게 선택이 된 게 (아니라)…"

01:38:29

반박 — 처벌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설령 본인 잘못이 아닌 신체 반응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더라도, 나는 처벌하는 롤을 맡은 사람일 뿐이다. 그가 잘못을 저지르는 롤이었다면 나는 처벌하는 롤이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을 감방에 집어넣는다.

01:39:09

"아, 그래요?" (형법에서 처벌 불가라는 말에)

01:40:08

"교수님께서는 신을 믿으세요." / 01:40:12 "신의 전지전능함 역시 믿으세요."

01:40:57

~01:42:04 반박 — 물 마시는 것까지 신은 아실 것 아닌가. 그분이 아신다는 얘기는 교수님이 마시는 것이 결정돼 있다는 얘기다. 물을 누군가 채워줬다는 것, 그 과정, 뱃속에 들어가 소화되는 것까지 모든 걸 알고 계시다는 건 그분이 짜놓지 않은 상황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왜 하필 저 사람이 여기다 물을 넣었고 왜 그걸 드셨으며 그래서 바뀌는 수많은 원자 이동·분자 이동을 다 알고 계시다는 건, 그분이 짜 놨기에 알고 계신 것 아니냐.

01:42:14

"아, 동양철학적인 발상."

01:42:16

~01:42:23 "재밌는 아이디어이긴 한데 모든 것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안다는 것과, 누군가가 그걸 의도적으로 계획했다는 건 또 다른 문제죠."

01:42:42

"약간 비겁하게 회피한 것 같은데요." / 01:42:44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또 다른 얘기 없어요? 신 말고. 더 센 거."

01:44:07

"그러면 그 관점에서 보면 자유의지가 설 공간이 더 생기나요?"

01:44:47

"스티븐 호킹이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기계다'라고 한 게 사실입니까?"

01:44:56

"자유의지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 같은 건 있습니까?"

01:45:16

"근데 그게 좀 애매하잖아요. 다르게 할 수 있었다는 건 막상 선택이 일어난 시점에서 다시 과거를 보는 거잖아요."

01:45:40

"우리가 고차원이라고 자꾸 생각하고 믿어 버려서 그렇지 별로 안 고차원인 건 아닐까요?"

01:46:09

~01:46:14 "의지가 있다, 가겠습니다." / "예."

01:46:18

"아니, 개념을 우리가 나눌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존재한다고 할 수 없잖아요."

01:46:44

"우리의 상태를 그러면 통제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봐야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어 재밌네요. 의지와 자유의지의 관계가 지금 말씀 들어보니까 같은 얘기 아니에요?"

01:47:04

마지막 질문 — 요즘 과학 쪽에서 많이 얘기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가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시뮬레이션 안에서 살고 있을 뿐, 일종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중 하나다.

01:48:00

"장자예요?"

01:49:33

"우리가 봤는데도 오류인지 모르는 건 아닐까요?" / 01:49:39 "오류 같은 애들이요?" / 01:49:42 "스미스 요원."

01:49:47

클로징 —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건 과연 정말 철학을 보다였을까요? 여러분은 지금 보신 것을 너무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철학이라는 것도 어려운 이름이 붙어서 그렇지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저런 고민·상상·몽상도 상당 부분 철학과 맞닿아 있는 것 같으니, 재밌는 질문을 많이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철학하는 것 아닐까.

EP.16 — 위선·선악의 기준 (2025-10-30)

[원 소제목] 정영진 (MC)
01:50:36

오늘 세 분과 함께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 '철학을 보다'. 소개하는 데서 이미 세 분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 "머물고 계시고, 이야기 나누고 계시고, 근무하고 계시고. 세 분이 정말 다른데요."

01:50:57

근무를 얼마나 하셨나.

01:51:05

일찍 출가하셨다.

01:51:08

세상 즐거움 좀 더 보고 하셔도 괜찮은데.

01:51:14

지금 조금 후회하시나.

01:51:27

"벌써 다 깨달았습니다."

01:51:30

우리 교수님께서는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신 지 얼마나 되셨나.

01:51:37

91년이면, 나눌수록 학생들의 수준이 더 올라가나 예전만 못 하다는 생각이 드나.

01:51:46

시대가 바뀌어도 그 나이 때 생각하는 건 학생들이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01:51:55

질문 던질 때마다 답도 비슷한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나.

01:52:03

요즘 학생들은 뭐에 가장 큰 가치를 두나 — 부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01:52:11

점점 (부로 쏠리는 게) 좋은 건가.

01:52:16

뭐로 더 쏠리면 더 기쁘시겠나.

01:52:21

우정과 사랑으로 쏠렸던 시대가 있긴 있었나.

01:52:24

진짜 중요한 건 돈보다 우정과 사랑.

01:52:46

누군가의 마음의 바다로 풍덩 빠져 들어야 되는데 요즘 다들 겁이 많아지고 정박해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졌다.

01:52:56

여러분도 "나도 지금 정박해 있나" 생각이 들었다면 정박해 있는 게 맞다. 바로 옆 사람, 가까운 데부터 찾아보고 사랑할 사람·우정을 나눌 사람을 많이 만드시라. 오늘 주제는 "위선도 선인가" — 위선은 거짓 선으로, 착한 행동인데 사실 그 사람 마음에 착한 마음이 있지 않았던 경우다.

01:53:33

"아 그래요?"

01:54:00

위선은 선이라고 볼 수 없다가 기본 입장이시나 그래도 예외가 조금 있다. 신부님 생각은 어떠신가.

01:54:42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건 위선이 아닌 것 아닌가.

01:55:00

위선도 선인 경우가 종종 있다.

01:55:18

단어 자체가 (그렇다).

01:55:41

누군가의 행동을 판단할 때.

01:56:07

악보다 위선을 더 싫어하는 경우들이 있다 — 속았으니까.

01:56:11

위악적인 행동도, 물론 단어는 없는 얘기지만 종종 있지 않나 — 일부러 겉으로 나쁘게 행동하지만 사실 그 친구를 위한 행동을 의도로 가지고 한다든지.

01:56:25

아, 거꾸로 가서요.

01:56:35

반면교사를 삼아.

01:56:48

가끔 가르침을 주기 위해 악행을 보이다가 그게 본인의 진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01:57:18

지금 세 분이 사실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그러면 "위선도 매우 선이다"로 가겠다.

01:57:32

요게 바로 위악이다. 먼저 선을 정의해야 위선이냐 가식이냐를 따져볼 수 있다 — 선하다·착하다는 무슨 의미인지 정의를 내려 주실 수 있나.

01:58:00

타인에게 이롭고 나에게 이로운 것.

01:58:10

그건 선의 여러 모습들인 것 같은데, 선을 무엇이라고 정의는 안 하나.

01:58:25

아, 악을 하지 않는 것.

01:58:50

그러면 선은 나쁜 짓만 안 하면 선인가. 불교에서는 나쁜 짓을 멈추는 것.

01:59:23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

02:00:14

그게 이제 선.

02:00:16

비교적 명료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 건 "의로운 것이 선이다".

02:00:28

액션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의로움이 선이고, 교수님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이로운 것·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이로운 것 — 이게 대체로 선의 정의다. 저는 나 아닌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이롭게 해 주는 행위를 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도 받아들일 만한가.

02:00:52

대가를 받는 건 착한 행동이나 선이라고 볼 수 없고 그냥 대가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대가 없이 해야 그게 선인 것 같다.

02:01:32

선을 판단하는 주체는 행하는 사람인가 받는 사람인가, 아니면 둘의 이해관계가 아닌 제3자·관찰자가 판단해야 하나. 예를 들어 제가 교수님한테 이거 하나 드리고 "나는 선행을 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교수님이 "정말 정영진은 착하구만" 하실 수도 있고, "유통기한을 확인해 봐야" 하실 수도 있다.

02:02:02

의도는 저만 알고 있기 때문에.

02:02:09

선을 판단하실 수 없는 것이군요, 대신.

02:02:25

"꼬인 사람이죠."

02:02:57

당근마켓에서 그래도 거래라도 되는 건데.

02:04:19

약간 관념적으로 얘기가 흐르니 구체적으로 여쭤보겠다. 정치인이 목표는 선거에서 표를 많이 받기 위함인데 열심히 봉사활동을 한다. 본인 의도 역시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보다 나 당선되려고 하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한다 — 이건 선인가 위선인가.

02:06:03

그때부터 선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의도가 선해야 되고 과정도 선해야 되고 결과도 선해야 되는 것이다.

02:06:18

그럼 그 사람이 이제 선으로 바뀌는 것이다.

02:06:20

의심할 필요가 없다 — 나중에 의도도 좋아지고 과정도 좋아지고 결과도 좋아진 거니까. 그럼 첫 번째 행동은 선인가 아닌가.

02:07:37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건 어떤 경우인가.

02:08:03

그러면 이기적인 목적으로 한 정치인의 (봉사도).

02:08:17

조금 더 극단적으로 가 보겠다. A란 나라를 침입한 B나라가 있는데, A나라의 한 사람이 폭탄을 들고 와서 B나라 장군들이 모여 있는 데 가서 다 터뜨려 죽여 버렸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대신 훨씬 더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게 됐다 — 이건 선인가 악행인가.

02:08:45

승병들이 목숨을 뺏어도 되냐 / 명분이 뭐냐.

02:10:02

비교적 명확하신 것 같다.

02:10:45

글로벌하게도 인정되나. 그럼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예전에 남미의 어느 국가로 정복하러 갔다 — 물론 명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러 갔다고 했겠지만,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침략해 온 게 너무나 명백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죽이려 했는데 그 그리스도교인들이 죽임을 당하는 경우에 "그건 우리가 잘못한 거니까 괜찮아" 이렇게 가나.

02:11:25

(2000)년이면 한참 지나서.

02:11:52

누군가를 해하려 할 때 그걸 막는 행위로서 발생한 살생이든 피해를 입힌 것이든 이건 인정해 주는군요, 악행이 아니다.

02:12:16

그런 룰도 있나.

02:12:30

그러면 좀 어려운 문제가, 일본이 거의 패망 직전이었고 제공권도 완전히 장악된 상태였는데 원자폭탄을 두 개나 떨어뜨렸다. 그건 총이 아니고 물리적 힘 자체가 다른데.

02:13:14

원폭 자체가 선이라기보다는 교훈을 목적으로 떨어뜨리진 않았을까.

02:13:29

그건 사후에 판단하는 것이고, 제가 (듣기)에도 변명처럼 들린다.

02:14:06

옆 마을을 쳐들어가서 곡식을 훔쳐 먹고 살게 됐다. 물론 거기엔 재산상 피해도 많이 줬겠지만 죽는 목숨을 살린 것 아닌가.

02:14:19

악행이지만 어쩔 수 없이 행하는.

02:14:41

그런데 그 동네는 곡식이 너무 풍년이라 음식이 남아돌아 다 버리는 상황이다.

02:15:03

그럼 그 마을 곡식이 알고 보니 딴 데서 다 훔쳐 온 것이다 — 아주 악을 많이 행한 동네다.

02:15:14

그것도 악행인가 / 심지어 그 곡식에 우리 마을 것도 있다, 우리 마을 것도 뺏어 갔는데.

02:15:21

찾아오는 것도 악행인가.

02:15:29

그렇죠, 반대편도.

02:15:33

우리 건 안 뺏기려 노력했는데 그쪽 힘이 강해 다 뺏어갔고, 다시 찾아오려는데 그렇게 뺏어간 놈들이 달라고 한다고 주겠나. 그래서 밤에 기습 작전을 통해 뺏긴 것들을 다시 갖고 왔다 — 어찌 보면 훔친 거지만 사실 내 것 아닌가.

02:16:37

매우 어렵다. 아까 선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누구에게도 피해가 안 가는 것,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었다.

02:16:46

내가 지금 뺏긴 걸 다시 찾아오는 건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02:17:06

전쟁이라는 것도 우리가 뺏는 행위가 점점 커지고 나중에 국가가 성립되면서 전쟁이라고 명명하는 것이지, 예전에는 옆 마을에서 서로 옥수수밭 뺏고 저쪽에서 우리 소를 가져가고 — 이게 전쟁이었을 것 아닌가.

02:17:36

의도와 결과 관련해서 하나만 더 여쭙겠다. 타노스라는 사람이 손가락을 튕겨 지구의 절반, 생명체들을 없애 버렸다. 이유는 지구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이대로 가면 전쟁도 너무 많이 일어난다, 인구가 절반쯤 줄어들어야 자연도 비로소 살아나고 사람들 사이 반목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좋은 의도로 손가락을 튕겼다.

02:18:05

지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의도).

02:18:20

그 사람에겐 선하겠다 — 지구를 살리고 싶은 거니까. 그 사람이 어리석을 순 있지만.

02:18:26

그렇다고 그렇게 현명한, 미래까지 다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02:18:33

아, 나 포함해서.

02:18:42

일단 타노스부터 제거하고 그다음에 생각하자.

02:19:02

자율성을 말씀해 주셨으니 — 100명이 무인도만 한 데 있는데 50명 이상 살면 큰일 난다, 그래서 50명은 죽어야 한다고 다 같이 자율적으로 합의했다. 50명은 죽기로 결정을 내렸다. 선한 의도 아닌가.

02:19:17

또 어리석다고, 맨날 다 어리석다고 (하신다).

02:19:45

진짜 마지막으로, 이 영상 보시는 분들이 "더럽게 재미없네, 이런 걸 왜 몇십 분을 하는 거냐" 이렇게 댓글을 단다 — 이건 선한 행동인가 아닌가.

02:20:08

악플 쓰면서 대신 슈퍼챗을 쏜다, 한 5만 원. 무척 선행 아닌가.

02:20:27

그렇게 썼는데 사람들이 공감을 막 500개씩 (누르면).

02:20:47

듣다 보니 웬만하면 다 어리석은 일 아니면 악행이고, 스님 말씀 들어보니 착한 일이 없다. 세상에 착한 짓까지는 몰라도 하여튼 나쁜 짓만 좀 안 하고 살자, 이 정도로.

02:21:01

그건 비교적 명확할 테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다 — 나쁜 놈에게 나쁜 짓을 해서 좋은 결과를 또 많이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나.

02:21:15

아, 내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02:21:20

정신 승리인 거죠.

02:21:38

오늘 "위선은 선인가" 해서 답은 "선 아닌" 걸로 대략적으로 세 분이 다 동의해 주시는 것 같고, 간혹 예외 사항은 있을 수 있다 — 위선이라도 행하다 보니 의도 자체가 스스로 바뀌어 선으로 가는 경우, 그런 경우는 참 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 여러분도 좋은 댓글을 거짓으로라도 한번 달아보시라.

02:22:01

달아보시다 보면 "요게 오히려 이런 재미가 있네" 느끼면서 점점 좋은 댓글을 많이 다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늘 해 봤다. 우리의 생각을 알아보는 시간 '철학을 보다'.

EP.17 — 생명의 경중 (2025-11-13)

[원 소제목] MC 정영진
02:22:15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 여러분 찾아뵙겠다 — 세 분 대단히 고생 많으셨고 다음 시간에 뵙겠다, 고맙다 (직전 회차 클로징).

02:22:24

스님께서는 모기가 설령 내 볼에서 내 피를 빨아먹고 있어도 볼을 찰싹 때리거나 모기를 살생하는 일은 없다고 봐야겠죠.

02:22:36

아, 그때요? / 02:23:05 하도 많이 빨아서.

02:23:09

참 모기도 어리석다, 그죠?

02:23:24

아 그래, 일단 죽이지 않는다 — 참선하실 때는 절대 움직일 수 없나요.

02:23:30

몇 시간씩 앉아 계시는 거예요?

02:23:40

안 졸았다는 건 그분한테 어떻게 표현해요?

02:23:51

오늘의 주제 제시 — "과연 생명에도 가치가 다 다른가". 동식물까지 가면 너무 길어지니 사람으로만 생각해 보자. 정말 훌륭한 업적을 많이 쌓은 사람도 있고 인류·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사람도 있는데 각기 생명의 경중이라는 게 있는가. 신부님부터 — 예를 들면 교황과 연쇄살인마 두 사람 사이에 생명의 경중이 있습니까?

02:24:54

아 굉장히 흥미롭네요, 죽은 사람은 경중이 있다 — 혹시 우리 교수님께서는 어떻습니까?

02:25:09

아, 이건 뭐 굉장히 명확하시네요 — 스님께서는?

02:25:23

(신부에게) 어떤 사람이 진짜 못된 짓을 많이 한 것 같아도 그 사람의 내면은 누구도 모르잖나. 겉으로는 못된 짓도 많이 하고 사람들한테 불친절해 보일 수 있으나 내면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데,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 가치를 판단하는가, 아니면 신이 판단하시는 건가.

02:26:01

죽어 있는 상태에서도 인간들이 판단한다는 건 아닌 거죠.

02:26:06

하여튼 세 분 다 생명의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건데, 사람 살릴 수 있는 약물이 딱 하나 있고 둘 중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하니까 — 그러면 운에 맡기나요?

02:26:32

근데 둘 다 내일이에요 (둘 다 내일 죽는 상황으로 극단화).

02:26:37

굳이 만약에 얘기하자, 극단으로 따져요.

02:26:48

아 어쨌든 (의)학을 모았을 때 잘 살아날 사람을 (살려야지).

02:27:03

그동안 정말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던 사람이든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든 상관없다는 거예요?

02:27:09

너무 좀 잔인하지 않나요? 누굴 (위해) 그렇게 하는 거예요?

02:27:19

만약 그렇다면, 착한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에게 알약을 주는 것이 — 앞으로 공동체의 역사가 쭉 이어질 텐데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위급한 상황에서 조금 더 우선권이 주어지는구나, 우리도 좋은 일 많이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잖아요.

02:28:16

아, 네 생명이 소중해서 널 살린 게 아니고 우리 사회가 필요해서 너를 일단 살린 거다.

02:28:36

그 생명의 경중은 어느 때 쓰이나요? 실제 현실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나 더 많은 공(로)을 세운 사람이 다 가져간다고 하면, 생명의 경중을 언제 따질 필요가 있나요.

02:29:43

그런가요?

02:30:16

그게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예전에는 안 그랬을 것 같은데, 15세기 신분 사회에서는 생명의 경중이 충분히 있었고 — 신분이 무너지면서 모든 생명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로 바뀐 건가요?

02:31:18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건 굉장히 아름다운 얘기고 우리가 지향해야 될 방향인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문화권·사람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잖아요. 누굴 먼저 구해야 할까가 가장 극단적인 경우니까 순서를 정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 예를 들어 임산부도 있고 다섯 살 어린이도 있고 여(든) 살 노인도 있는데, 이 세 분이 위급한 상황에 놓이면 누구부터 꺼내는 게 맞습니까?

02:31:51

그럼 어린이? / 02:32:02 오히려 기회를 / 02:32:07 당장.

02:32:31

(반복) 평온하고 싶다.

02:32:39

와, 그거는 석가모니니까 할 수 있는 얘기긴 하겠습니다만 — 우리 아버지인데.

02:33:08

참기름을 좀 더 뿌려주는 / 02:33:11 단골한테 좀 깨 좀 더 넣어주는.

02:33:14

막상 그 상황이면 저도 비슷한 선택을 하겠죠. 당장 내 손에 잡히는 사람을 끌어당기겠지만, 그래도 이걸 가정하고 판단한다면 — 일단 임신한 분이라면 당장 두 명의 생명이 될 것 같고 두 명의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이라면 앞으로 평균만 따져도 한 7·80년 이상은 더 살 테니까 이 세상을 훨씬 더 많이 볼 테니까, 그런 순으로 되지 않을까.

02:33:53

미래는 모르죠.

02:34:12

한 명과 두 명도 — 한 명 살릴 수 있는 것과 두 명 살릴 수 있는 것도 비교하지 (않나요).

02:34:18

할 수 있는 거를 하는.

02:34:47

그 한 명 버린 대신 이 두 명을 구했다, 이런.

02:35:45

세 분이 다 명확하게 얘기해 주시니까 이견이 별로 없으실 것 같고 — 그러면 동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동물의 생명의 가치와 인간의 생명의 가치는 비교하기 어렵죠.

02:35:57

그리스도교는 간단하(겠고) / 02:35:58 기독교는 간단해질 것 같고.

02:36:08

아, 그건 명확해요.

02:36:11

소 만 (마리) 중에 20만 명 먹을 수 있지만.

02:36:24

아, 그래요? 동물과 사람인데도.

02:36:55

나비 한 마리 죽이는 거나.

02:37:23

어, 앞선 베지테리언 같은 거 / 02:37:27 (비건 선언을) 하신 거네.

02:37:33

인간을 확실히 (위에) 두는 철학자들도 꽤 많이 계시고.

02:38:07

불교는 어떻습니까?

02:38:43

그러면 (인간계와 축생계 사이에) 위계가 있는 거 아닙니까?

02:39:33

그만큼 모든 생명체를 똑같이 동등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 복제된 동물도 역시 같은 무게를 가지는 건가요?

02:40:09

그러면 사람을 꼭 만드는 건 아니지만 인공(장기)를 만드는 건 괜찮아요, 윤리적으로?

02:40:54

실험은 되는데 인간을 살리기 위한 장기 이식이 안 된다는 건 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02:41:16

그러니까 식용으로 키워서 먹는 건 괜찮아요?

02:41:40

아무리 윤리적인 방법으로 죽인다 하더라도, 식용으로 키워서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거 없으면 죽는 사람을 위해서 장기를 이식시키고 생명을 돼지가 (내놓는) 게 차라리 더 윤리적인 거 아니에요?

02:41:59

아 이건 좀 이해하기 어렵긴 합니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긴 있어요.

02:42:13

전자가 더 안 좋은 거예요?

02:42:16

지금 이 사람이 이식 받지 못하면 죽는데, 그 이식을 위해서 돼지가 희생하는 것보다 돼지 삼겹살 먹는 게 더 윤리적이거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얘긴가요?

02:42:42

아니, 먹는 것도 수단이잖아요. / 02:42:47 생존을 위해서 저도 이식 받는 건데요.

02:43:00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그냥 삼겹살로 먹으니까 우리 모두가 죄의식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여기에 대해선 괜찮다고 얘기하고, 이식은 그 과정을 생각하면 돼지를 성장시켜서 (장기) 하나 떼놓고 죽여 버린다는 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니까 사람들이 안 된다는 거고 삼겹살 먹는 건 괜찮다는 거 아니냐.

02:44:13

그런 것 같아 — 특히 과거부터 많이 했던 것, 예를 들면 계란 깨서 프라이 해 먹는 게 아무 거리낌이 없잖아요.

02:44:20

소중한 생명일 텐데, 동물 실험이든 예쁘게 생긴 애 하나 죽어 나가는 걸 상상하니까 되게 미안하고 잘못하는 것 같고 — 그렇지만 요즘 운동하는 사람들은 계란 20개씩 까서 먹기도 하거든요.

02:45:06

만약에 시간이 지나서 오는 민족이 "우리는 병아리 원래 발로 차"라고 해서, 천 명이 모여 천 명이 다 (병아리를) 차는 게 알 깨는 것과 같다는 (관)념을 가지면.

02:45:36

조금 생각이 좀 다르긴 합니다만 — 여기(스님)는 명확한 기준, 뭐고 뭐고 "죽이지 마" 요거죠.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보면 모든 생명이 (가치가) 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굳이 경중을 따지면 인간이 가장 존귀하고, 인간을 위해서 다른 동물들이 희생되는 건 좀 마음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그러나.

02:46:00

교수님은?

02:46:08

아 그렇습니까?

02:46:09

역시 오늘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물들이 참 좋아요, 고양이 키우는 입장에서. 제가 약간 딜레마에 빠지는 건 예쁜 고양이를 공격하는 다른 (동물) 같은 거 — 걔네들은 내가 막 죽이고 싶거든요. 그러면 그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인간일 수 있잖아요.

02:46:29

그죠? / 02:46:29 예, 그러니까 저는 인간인 거죠.

02:46:33

다행이다, 저는 살아남은 걸로. 생명에 대해서는 영화 같은 데 보면 특히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잖아요 — 우주선에서 누군가 구해야 하는데 양쪽 팔을 잡고 있고 누굴 구해야 할까, 그런 딜레마들이 많이 있고, 그때마다 보통 우리는 주인공을 구하라고 마음이 이입됩니다만.

02:46:50

(결론) 모든 인간은 과거에 잘못했든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쌓았든 그 가치를 따질 순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순간 혹시 구할 수 있다면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게 맞다 — 그렇게 오늘은 결론을 내리겠다.

02:47:03

지구 저 반대편 쪽에서 정말 간절한 분들도 많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런 분들을 구하는 것이 어쩌면 불구덩이나 교통사고 현장에서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수도 있는데 (구간 종료로 발언 절단).

EP.18 — 체벌·인권 (2025-11-27)

[원 소제목] 정영진 (MC)
02:47:25

"예전에 체벌들은 아마 많이 받으셨죠." / 02:47:29 "뭐 때문에 많이 혼나셨어요?"

02:47:33

"학생이 볼 땐 이유가 없었는데 선생님이 볼 땐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02:48:20

문제 설정 — "적절한[ASR: 격절한] 체벌은 오히려 훈육·양육에 도움이 된다는 분들도 계신 것 같고(아이들이 너무 선 넘게 뛰어다니기도 하니까), 모든 종류의 체벌은 아예 인권 침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 02:48:36 "스님께서는 이 모든 종류의 체벌은 인권 침해라고 보세요? 심플하게."

02:48:52

"아, 맞는 사람이" / 02:49:00 "학생도 혹시 동의를 할 수도 있잖아요."

02:49:06

가정 — "선생님 때 말고 지금, 네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했을 때는 합의를 해서 너의 체벌 정도를 정하겠다 이러면 어때요?"

02:49:36

"교수님도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체벌은 안 된다, 인권 침해다(라고 보시나)?"

02:50:06

"치열한 두뇌 싸움이 시작되는데" / 02:50:08 "작게 부르면 더 맞을 것 같고" (몇 대 맞을래 회고에 대한 반응)

02:50:37

"아니면 절을 한 3천 번을 시켜요. 어때요?"

02:50:48

"이게 무슨 날이 되면 하시잖아요." / 02:51:04 "고통을 유발하지만"

02:51:17

"사제분들도 굉장히 엄격한 생활 하지 않아요? 하면 안 되는 것도 되게 많죠. 뭐 뭐예요?"

02:51:41

"그 사람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는 없다." / 02:51:48 "근데 그걸 못 하게 되는 거잖아요. 나는 하고 싶은데 내가 이 행동을 함으로 해서 이걸 못 하게 됐어요."

02:52:19

가정 — "너 하루에 다섯 시간씩 공부해. 이건 우리 집안의 규율이야. 못 하면 넌 학교 때려쳐야 돼. 그래서 애가 매일 다섯 시간씩 공부해요. 이건 체벌 안 들어가요?"

02:52:30

"내가 동의를 했으면 괜찮아요? … 과연 아이가 그 동의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02:52:45

"여기 지금 사제분들도 위에 분이 위계가 있잖아요. 너네는 아직 들어온 애들이고 우리는 이미 신부님들인데, 신부님이 정한 규율에서 너네가 벗어나면 너네는 그냥 아웃이야."

02:53:35

"하루에 5시간씩 공부시키는 거는 (체벌) 아니에요? 아이는 원해서 하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02:54:16

"그 기준이 계속 바뀌는 거겠죠. 그때는 학대라고 생각 안 하셨을 거고 지금은 하면 큰일 나고 잡혀가는 건데. 체벌은 그러면 어떤 목적도 정당화되지 않나요?"

02:54:32

"군대에서 수류탄 던지기 전에 별거 다 시키잖아요. 심지어 때리기도 합니다. 사격장은 특히나 정신 바짝 차려야 되니까. 그건 어떻게 돼요?"

02:54:48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02:54:56

"제가 '어떤 목적도 정당화될 수 없냐'고 여쭤본 이유가, 군대라는 곳이 그런 위험한 것들이 놓여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막기 위한 체벌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여쭤보려고 그런 건데"

02:55:08

"체조를 억지로 시키는데, 군대에서 정말 하고 싶어서 체조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 내 의사에 반해서 시키는 거잖아요." / 02:55:16 "아 힘들지, 군대가"

02:55:35

"억지로 체조를 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머리 한 대 빡 맞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그 맞는 사람 입장에서는"

02:55:44

"체조로 30분씩 시키잖아요. 그보다는 차라리 예전에 사격할 때 헬멧 위를 많이 때렸지 않습니까? 정신 차리라고. 그게 차라리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02:56:02

"학교에서 지각한 애들 오리걸음 시켜요. 그거는 어때요?"

02:57:26

가정 — "지각을 자주 하는 친구가 있어요. 반에서 선생님·학생 모두 다 같이 규율을 정합니다. 위계 때문이 아니라 자꾸 늦는 친구 때문에 수업이 방해되니까 '지각하는 애들은 뒤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시간 10분 하고 자리에 앉도록 하자'고 다 같이 합의해요. 이거는 돼요?" / 02:57:45 "왜 안 되죠?" / 02:57:48 "집단적인 체벌이다."

02:57:53

"그 친구가 수업 시간에 아무리 떠들고 수업을 방해하든 간에 아무 제재도 할 (수 없나)"

02:58:01

"인권을 극단적으로 보호하자면 그 친구가 이동할 권리를 왜 빼앗는 거죠?"

02:58:11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은 그 친구에 대해서 다 같이 합의를 해서" / 02:58:33 "설령 그 친구도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02:58:37

"그 정도로 보호할 것 같으면 다른 방으로 격리시키는 그 인권 침해는 왜 하는 거예요? 다른 방에 앉은 친구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있는 클래스에 참여하지 못하는 그 아픔이 너무 마음 아프고 견딜 수 없다. 차라리 나는 쪼그려 앉겠다'(고 하면)"

02:59:22

"고통은 매우 주관적이지 않나요?" / 02:59:36 "그러면 예를 들어서 신체적으로 전혀 위해를 가하지 않고"

02:59:51

"얘기를 하면 할수록 하나씩 계속 나오니까 제가 지금 계속하는 거(예요)"

03:00:45

"그렇게까지 어떠한 형태의 벌도 안 주려고 극단적으로 노력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건 뭐예요?"

03:01:20

"수업 분위기를 망친다거나, 벌점 don't care — '나는 어차피 성적에 관심도 없으니까 벌점 먹일 대로 먹이세요.' 이 학생에게는 아무런 제재가 되지 않아요." / 03:01:33 "정말 누군가를 심하게 두드려 패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잘해 봐야 봉사활동 정도 시킬 텐데 또 안 하죠."

03:02:00

"인권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될 가치라는 그 말에 우리가 너무 갇혀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교육받을 권리·안정적으로 수업 들을 권리·수업하실 권리를 마구 침해하더라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건 아닙니까?"

03:02:34

"성인이 되고 나면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 본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빼앗기게 되잖아요. 감옥 간다고 해서 감옥에서 때리지는 않잖아요. 감옥 자체가 이미 신체적 자유권을 박탈시키는 거고요."

03:02:49

교도소 문제 제기 — "교도소는 인권 문제가 종종 발생하잖아요. 어떤 분들은 '그렇게 잘못해서 들어간 사람들한테 밥 챙겨주고 살판 났네, 세금 아깝다' 하시고, 어떤 분들은 아무리 잘못해서 들어갔어도 지켜줘야 할 인권이 있다 하시고. 대표적으로 북유럽[ASR: 북일럽] 같은 데 가면 거의 원룸, 호텔 원룸 같은데 이게 말이 되냐, 아니면 필리핀 같은 데 가면 조그만 방에 50명씩 집어넣고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 혹시 세 분께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도소 정도면 최소한의 인권을 지키는 정도라고 보세요? 아니면 좀 더 좋아져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03:03:45

"눈도 선글라스" / 03:03:51 "옆에서 지키는 사람들이 같이 붙어 있어요?"

03:04:11

"식단 같은 거 보면 '야, 군대보다 낫다' 이런 얘기들 하기도 하잖아요."

03:05:07

"근데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생명권을 앗(았잖아요)" / 03:05:15 "그 정도 제한하는 걸로는 사람들 속이 안 풀리잖아요."

03:05:26

"예를 들면 그런 흉악범들은 완전 좁은 독방 같은 데 가둬놓고 이래야"

03:06:12

"이건 또 굉장히 큰 주제인데, 그 사람의 마지막 인권 — 생명권을 빼앗는 거는" / 03:06:20 "반대하시고. 이게 뭐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네요)" / 03:06:23 "그 사람이 타인의 생명을 아무리 많이 뺏었어도"

03:06:45

"그 사람이 얼마나 더 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사기 치던 사람, 절도한 사람도 그 안에서 비슷하게 살 거 아니에요. 죄질은 너무나 다른데도."

03:07:12

"그런 사람들은 하다못해 강제 노역이라도 매일같이 좀 시켰으면 그나마 속이 좀 (풀릴 텐데)" / 03:07:19 "그 사람들 일하나요?"

03:07:32

"그러면 노역시켜 주는 게 더 짜증나죠. 밖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것도 시켜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03:07:38

03:08:06 마무리 — "그만큼 인권을 소중히 해야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더 소중한 것들이 있으니까 이렇게들 노력을 하시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체벌 얘기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마지막이 조금 무거워지긴 했습니다만, 인권은 저도 매우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권 마찬가지, 제 인권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자칫 쉽게 생각하다 보면 타인의 인권에 대해서 '이 정도는 한 대 맞아야지' 이런 생각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조차 조심하도록"

EP.19 — AI와 인간 (2025-12-16)

[원 소제목] 정영진 (MC)
03:08:35

오늘 주제는 인간 그리고 AI. 송길영[ASR: 송기령] 박사는 AI·빅데이터가 전문 분야이니 인간과의 경계를 중요한 주제로 얘기할 것 같다.

03:09:24

안광복 박사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냐. 03:09:31 철학 과목이 원래 있었나. 03:09:47 우리 때는 사회 과목에서 철학 파트를 가르쳤던 것 같다. 03:09:55 윤리에서 많이.

03:10:00

요즘 고등학생들의 철학적 고민은 뭡니까.

03:10:23

2500년째 같은 질문을 하고 있으면 답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 못 낸다는 건 답이 없다는 얘기다.

03:10:51

오늘은 네 분의 철학자·전문가와 함께한다. 인공지능 발달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사람을 능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필연적으로 AI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차이가 아예 없어지면 인간은 무엇이고 기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최근 튜링 테스트[ASR: 튜닝 테스트]에서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03:11:37 AI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03:12:14

"의미를 찾는 거." 03:12:22 그 생각 안 하고 사는 사람도 많잖아요. 03:12:27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인간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인간이 아닌 것.

03:12:49

혹시 우리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03:14:05 답하기 매우 어려운 / 03:14:08 혹시 선생님께서는.

03:15:17

다마고치? 네. / 03:15:24 학대가 되나요 그게? / 03:15:28 밥도 안 주고 똥도 안 치워 주고.

03:18:15

그러면 지금 현재 AI를 매우 건조하게 보시는 편이고, 더 이상 AI를 사람과 다르게 볼 수 없는 시점이 곧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03:19:50

만약 아주 고지능의 AI를 탑재하고 외형도 사람과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면 그 친구는 자아를 가지면 더 이상 기계가 아닐 수 있다.

03:20:41

네 분이 보실 때 인간과 아주 고도로 발달한 AI 로봇의 경계는 뭘 기준으로 얘는 인간, 얘는 AI인가.

03:21:18

인간도 인공 관절·인공 심장·인공 장기·인공 피부를 점점 더 많이 달 텐데, 그러면 AI 로봇과 다를 부분이 일부 뇌 정도 아닐까.

03:22:21

CPU가 다르더라도 인간이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과 AI가 학습하는 과정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 — 인간도 계속 넘어지며 파인 튜닝하고, AI도 오류를 수정해 가며 지능을 만들어 나가는 것 아니냐. 03:23:01 그게 시간 문제 아니냐.

03:24:49

(추정) AI와 인간의 가장 확실한 경계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쨌든 욕망이 다 있는데, AI는 아무리 인간처럼 말하고 표현해도 욕망은 없을 것 아니냐. 욕망을 갖지 못한다면 인격을 가질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확신도 중간 — '귀속 불명' 참조)

03:30:56

(추정)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건 남이 갖고 싶어 하는 걸 나도 갖고 싶어 한다는 건데, AI가 흉내를 내서 그런 것처럼 행동할 순 있어도 그게 AI의 본질적인 욕망은 아니지 않냐.

03:31:06

(추정) 욕망은 사실 DNA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 DNA가 끊임없이 재생산해 나의 복제품을 누군가와 만나 계속 만들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이 인간에게 있는데 AI에겐 그게 필요 없다 — 그 점이 인간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했다.

03:34:07

미술·사진·소설에서 AI가 창작한 작품이 인간 작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 이것을 AI의 창작이라고 봐도 됩니까, 아니면 우리가 잘 거르지 못한 모방 작품입니까?

03:35:14

카피라이트 문제는 뒤로 하고 일단 창작품은 창작품인 거네요.

03:36:20

시간이 지나면 인간 창작물이 아닌 AI 창작물을 더 좋아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나.

03:37:18

예를 들면 사진을 AI가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 준다 — 그때 유행했다. 창작물이지만 사실 지브리 스튜디오가 만든 그림체를 그대로 따라 그려 주는 것이다. 03:37:36 다 모사하고 따라하고 '데낀' 것이지만 그래도 창작물이다.

03:37:39

예전엔 AI 그림이 차갑다거나 손발이 정확하지 않다거나 하는 구별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극복됐나. 03:37:56 여러 가지를 섞어 놓고 골라 보라 하면 사실 구별 못 할 것 같다.

03:38:21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시간이 지나면 AI가 인간보다 더 독창적일 가능성은 없나.

03:39:21

AI 관련 노동 문제 — 인간의 노동이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있고 앞으로 더 빠를 텐데, 거의 인간의 일자리가 안 남아 있는 세상이 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03:41:19

결국 일자리 총량은 비슷하게 유지될 거라고 보십니까. 03:41:28 직업 구조가 바뀐다는 얘기죠.

03:42:08

산업혁명·자동차·컴퓨터 때도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다른 쪽에서 생겨났다. AI 혁명은 이전 변화들보다 확실히 더 파괴적인 것 아닌가.

03:42:57

공장에도 요즘 사람 없다면서요. 03:43:12 어떻게 걸러내세요, 애들이 AI로 해오는지.

03:43:34

그냥 교실에서 5분 바로 시험을 보거나 대면 인터뷰하는 방법밖에 없겠다.

03:46:06

(유튜브 시청은 노동이냐 즐김이냐) "즐기고 있는 거죠." / 03:46:48 그럼 사람들은 그냥 노는 거예요? / 03:46:56 노는 걸 잘 디자인해 주는 사람 아니면 잘 노는 사람?

03:47:06

소득을 어떻게 주느냐 — 지금은 비교적 계산 가능하게 시간이나 부가가치에 따라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느냐.

03:49:43

매슬로우 5단계 —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생리적 욕구(먹고 사는 것) → 안전 욕구 → 애정·소속감 → 존경·인정 → 마지막에 자아실현. 밑이 다 해결돼야 자아실현 단계로 간다.

03:52:29

앞으로는 어쩌면 혼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질 것이다.

03:52:44

박사님 말씀대로면 10년, 20년 후에는 다들 공중목욕탕 같은 데서 철학 얘기하면서 노는 것 아니냐, 포도 따먹고.

03:54:06

마무리 — 오늘 주제가 어찌 보면 굉장히 심하고 어려웠을 수 있다. 인간과 머신·AI 문제, AI가 인간과 비슷한 대접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아직 많이 못 했지만 충분히 해봤을 법한 얘기였고, 노동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눴다. 확실한 건 인간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 물론 더 낭만적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

EP.20 — 공정 (2026-01-09)

[원 소제목] 정영진 (MC)
03:54:38

(직전 회차 클로징) "오늘 철학을 보다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 생각해 볼 만한 것들 준비해서 찾아뵙겠다. 네 분 철학자분들 고생 많으셨다."

03:54:54

오늘은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하고 본격 주제로 넘어가겠다 — 산을 오르다 노트를 하나 주웠는데 알고 보니 데스노트였다. 영화 설정대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실제로 내가 이름을 썼는데 누군가 죽었다. 데스노트라는 걸 보긴 했다. 그러면 나는 살인을 한 게 맞나?

03:55:16

"죽었어요."

03:55:19

나는 글씨는 썼는데 이 행동과 그 사람이 죽은 것 사이의 연결 고리가 없다. 내가 직접 칼을 찌르거나 목을 조른 게 아니다.

03:55:32

살인이라고 봐야 하나. 그러면 나에게 살인의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인가 — 데스노트라는 걸 보고 이름을 썼다는 건.

03:55:42

"제가 알겠죠. 아, 의도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궁금해서 그냥 한번 해 본 건데." 여튼 죽은 사람이 내가 쓴 사람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살인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안 보시죠?

03:55:55

"왜 살인이요 도대체?"

03:56:13

"끔찍하네."

03:56:19

죄책감 내가 안 느끼면 되지 않나. 이거 살인 아니죠 교수님?

03:56:25

"아 제 유일한 희망" (살인이 아니라는 답을 기대하며)

03:56:34

"그렇죠. 아유 고맙습니다." 근데 다음날 또 적었는데 또 죽었다.

03:56:38

"아 그건 살인이에요?"

03:56:50

그러면 내가 이름을 썼는데, 정확하게 죽인 다른 사람이 따로 있다. (시점은 정확히 일치했지만) 그러면 나는 살인 아니지 않나?

03:57:00

교사(教唆)라니 — 걔한테 명령한 적은 없다. 강력히 원하기만 했다.

03:57:14

"아 참 그 성경은 너무 엄격하시더라."

03:57:21

"알겠습니다. 안 쓰겠습니다." 쓰시고 싶은 경우가 있나? 저는 안 쓸 것 같다, 그래도 데스노트기 때문에.

03:57:33

오늘 본격적으로 네 분과 나눌 주제는 공정이다. 나도 헷갈린다. 아마 답은 네 분이 비슷하게 주실 것 같아 나는 어쩌면 반대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결과가 평등한 것과 기회가 평등한 것, 무엇이 더 우선인가 — 사회가 쓸 수 있는 에너지·자원을 어디에 투입할 거냐, 기회 균등에 더 투입하는 공동체와 결과 평등에 더 투입하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는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로 질문을 바꿔 드린다.

03:58:11

"그놈의 기시감" (패널의 상용구에 대한 응수) [확신도: 중]

03:59:36

그러니까 교수님의 판단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 따져 보자면 뭐가 더 우선인가?

04:00:13

참 (그렇게) 보시는 것 같다 — 공정이라는 말은 주로 약자가 손해 보지 않기 위한 절차를 얘기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대체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공정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 보여서 좀 불편하더라. [확신도: 하 — 패널 발언일 가능성 있음]

04:00:35

그러니까 공정인지 특권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확신도: 하]

04:02:22

회사 경영을 많이 해보셨으니까 여쭙는다 — 직원 A는 12시간씩 정말 열심히 헌신한다. B는 거의 농땡이 같고 두 시간밖에 일 안 하는 것 같고 맨날 어디 짱박혀 있는데 퍼포먼스가 잘 나온다. 회사 이익은 B가 더 낸다. A에게 더 많은 급여를 주나, B에게 더 많이 주나?

04:02:55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 친구에게."

04:02:57

근데 그 '더 많은 이익'이라는 것도, 보험 영업 같으면 한 사람의 퍼포먼스가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지만 펀드 매니저라면 그 회사 애널리스트들이 얼마나 잘 자료를 주느냐에 따라 퍼포먼스가 달라진다. 한 명이 단독으로 그 퍼포먼스를 낸 게 아닐 가능성이 높지 않나.

04:03:44

"아, 그걸 측정하는 것도 매우 용이해졌고."

04:03:53

학교에 계시니까 발표 수업도 많이 하실 텐데, 어떤 학생은 말이 어눌하거나 느린데 생각이 굉장히 깊고 고민의 양도 많은 게 느껴지는 친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발표 시간을 10분씩 똑같이 줘야 하는데, 이 친구에게는 12분이나 15분을 주면 훨씬 좋은 답, 전체가 생각해 볼 주제를 던진다. 그러면 이 친구에게 15분을 주고 성적도 잘 주는 게 맞나, 아니면 모두에게 10분이 동일하게 주어졌으니 10분으로 하는 게 맞나?

04:04:28

"그래요?" / 04:04:32 "이슈가요."

04:05:07

그래서 학생들의 생각은 뭔가? 학생들은 다 똑같이 10분씩 주라고 할 것 같은데. [확신도: 중]

04:05:40

그러니까 "나는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힘들게 좋은 대학 가서 겨우 회사 들어가 어느 정도 임금 받는데, 저놈은 뭔데 유튜브에서 그냥 라면 먹는데 500만 (조회) 나와서 돈을 수억씩 버냐" — 그런 이야기가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나온다.

04:06:19

뭐 신분 사회 — 점수가 높으면 신분 상승이 되는 것이고. [확신도: 하]

04:07:40

그들이 볼 때는, 똑같이 성적으로 해서 1점이라도 높은 친구가 들어가고 1점이라도 낮은 친구가 떨어지는 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근데 그게 아닌 다른 여러 (인정하기 어려운) 길로 들어오게 하는 건 내 노력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뭐라고 말씀해 주시겠나? [앞 절반은 김석 발언과 붙어 있음]

04:09:56

예전에 공항에서 비정규직·계약직이 정규직 전환되는 과정에서 크게 논란이 있었다. 먼저 정규직으로 들어간 분들은 "나는 열심히 일해 어려운 시험 통과해 겨우 정규직 됐는데 저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전환된다"는 불만, 공정 이슈로 부각됐다. 그때 그들을 설득할 논리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설득할 논리가 있나?

04:10:59

제가 대변해 보면 — "그럼 올림픽 해서 다 금메달 주지 왜 금·은·동을 놔두냐? 노력 더 많이 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낸 사람에게 그만큼의 보상을, 리워드를 주는 것 아니냐?"

04:11:19

"그러면 회사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다 똑같은 월급 받아야죠." [확신도: 중]

04:12:28

그럼 예를 들어 학교에 정당하게 시험 봐서 들어온 학생이 있고 어떤 학생은 청강생으로 들어왔다. 성적이 좋아서, 수업을 잘 따라와서 최우수 학생으로 학교 장학금도 받고 이럴 수는 없지 않나?

04:12:44

학교는 왜 안 되고 직업은 왜 되나? 회사 들어갈 때도 그들은 그만큼 더 힘든 노력과 경쟁을 통과한 사람들 아닌가.

04:14:13

혹시 직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원과, 좋은 퍼포먼스로 좋은 결과를 회사에 가져다준 사람의 급여가 한 천 배쯤 차이 나면 그건 매우 불공정한 건가? 스포츠 선수들은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호나우두 같은 선수들은 4,000배 5,000배 될 것 같다. 직장에서 그렇게 하면 그건 불공정한 겁니까?

04:16:03

"저 사람을 놓치면 우리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 04:16:06 "그 사람에게 1천억 지급하는 것도 아깝지 않다."

04:16:22

"옳다 그르다 따질 수는 없는 거고."

04:17:25

요즘 이런 약간 극단적인 주장을 하시는 분도 있다 — 정치에 아무 관심도 없고 우리 지역에 누가 후보로 나온지도 모르는 사람과, 정말 정치에 관심 많고 무엇이 더 옳은 선택인지 늘 고민하는 사람, 혹은 어마어마하게 세금을 많이 내면서 나라 발전에 더 기여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한 표씩 주는 게 맞냐?

04:17:47

"기시감 얘기 또 나오시…" / 04:17:50 "많죠?"

04:17:54

"아, 그래요? 과거에 공동체들은 어떤 답들로 대체로 해결했습니까?"

04:18:21

"구상을." (라이프니츠 계산기 구상에 대한 확인)

04:20:53

아, 끝으로 진짜 끝으로 — 요즘 판결 관련 기사 댓글에 "AI 판사 도입하자"는 분들이 되게 많다. AI 판사가 도입돼서 기존 판례를 참고해 결정을 내리면 네 분은 받아들이시겠나?

04:21:21

"아 뭐 볼 스트라이크 뭐 이거." (AI 심판 확인)

04:21:50

그렇겠다. 본인의 경험 혹은 본인이 가진 편견이 판결에 분명히 반영될 테니까.

04:22:06

"저는 그 정도 오심이면 인정할 수 있다." [확신도: 하]

04:23:16

저는 (AI 판사가) 더 공정하다고 — 상당히 많은 분들이 요즘 AI 판사를 선호하시는 것 같다. 막상 본인이 직접 판단을 안 받아 봐서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인신을 구속할 수도 있고 몇 년을 사는지 결정할 수도 있는 정말 중요한 건데, 그게 자칫 그 사람의 식후냐 식전이냐, 혹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트라우마가 있느냐, 어떤 쪽에 편견이 있느냐에 따라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결정된다면 차라리 AI에게 판단받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04:23:50

"아 그래요?" (몽테스키외가 고등법원장이었다는 말에)

04:24:00

그때도 법관에 대한 불신 같은 게 꽤 있었던 것이다.

04:24:22

변호사들도 AI를 굉장히 많이 활용하고 — 당연히 판사들도 최종 결정을 말로 뱉는 건 인간이 할지 몰라도 그 전의 결정은 상당 부분 점점 더 AI가 지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04:24:34

오늘은 공정에 관한 이슈를 다뤄봤는데, 아마 오늘 댓글이 꽤 많이 달릴 것 같다.

EP.21 — 제사·눈치·배려 (2026-01-28)

[원 소제목] 정영진 (MC)
04:24:42

(EP.20 잔여) "AI가 댓글 다는 날도 곧 올 텐데 — 이미 달고 있다. AI야 댓글 좀 예쁘게 달아주기 바란다. 다음 시간에 더 재밌는 철학 주제로 찾아뵙겠다."

04:24:57

"오늘은 겁쟁이는 가라 특집이다. 주제가 민감할 수 있으니 '앞으로도 사회생활 하는 데 뭐가 안 묻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은 지금 자리를 떠도 되고, 말하다가 잘못됐다 싶으면 바로 일어나도 된다."

04:25:14

논제 제시 — "사회적 배려를 개인에게 강제할 수 있을까, 강요할 수 있을까? 뭐가 어렵냐 싶겠지만 실제 사례로 들어가면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민감한 문제들이 있다." + "선생님부터 볼까요? 위험해서 좀 있다가… 겁쟁이들."

04:25:47

요약 — "배려하는 입장에서 의무로 받아들이는 건 좋은 일이고, 대신 배려받는 사람이 이걸 자기 권리로 생각한다면 안 된다."

04:25:57

"자, 우리 교수님" + "딱 영화 대사가 떠오르는데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04:26:38

요약 — "배려를 강제할 순 없다."

04:26:46

확인 질문 — "배려를 강제할 수는 없으나 암묵적 강요는 하라? 예를 들어 버스에서 아주 힘들어 보이는 어르신이 서 있는데 옆에 앉은 젊은 애한테 강한 눈치를 주라는 말씀이신 거잖아요."

04:27:07

"여튼 그런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작가님께선 어떻게 보십니까?"

04:28:04

"그가 뭘 필요로 하는지는 우리가 모를 수 있잖아요."

04:28:42

"끝까지 도망가시겠습니까?"

04:29:36

요약 — "무슨 말씀 하시려고 이렇게 빌드업 하나 했더니 — 배려를 그냥 알아서 하라고 놔두면 거의 안 하더라, 아주 극소수만 하고. 그러니 배려라는 걸 알려주고 사회적으로 프레셔를 줘야 습관이 되고 전체 사회에 퍼지니, 전체 이익을 위해 배려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

04:30:05

"마땅한 거는 근데 누가 정하는 거예요?"

04:31:00

도발 질문 — "요즘은 거의 안 하시는 것 같은데 제사상 차릴 때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쩌고 하잖아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옛날부터 하던 거니까 하는 건데, 지금 안 필요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면 빨리 없애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04:32:29

"아, 재밌어요."

04:33:18

쟁점 전환 — "배려 강제하면 꼭 나오는 사례. 버스·지하철 노약자 배려석, 임산부 배려석. ①아무도 안 앉아도 비워두는 게 맞다 ②사람 없을 때 앉아 있다가 사람 오면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니냐 — 이 두 인식이 온라인에서 부딪힌다.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04:33:54

"비워두는 게… 그럼 누가 봐도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앉아 있어 보이면?" → "사람들이 그냥 거기 앉는 것도 문제 있는 건 아니라고 보시는 거네요?"

04:34:46

반론 압박 —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내가 오늘 12시간 [일]했어, 나 진짜 피곤해, 나 정도면 앉을 자격 충분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면 결국 그 자리는 계속 채워질 것 아닙니까? 그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에게 존중이 없는 거라고 판단한다면, 피곤함이나 졸림 정도의 이유로는 앉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04:36:27

"일종의 사회적 강제를 하는 거네요, 방송이." / 04:36:33 "그 색깔을 아주 티나게 해 놨다."

04:37:01

관찰 질문 — "요즘은 예전보다 건물 나갈 때 문 잡고 있는 사람이 늘었다. 10년 전만 해도 뒤 안 보고 그냥 가는 분이 많았는데.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긴 건가, 아니면 그렇게 안 하는 게 무리한 행동이라는 걸 받아들여서 바뀐 건가?"

04:37:51

"대한민국 사회가 그 점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다만 이걸 스트레스로 받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 '내가 굳이 배려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인가, 나도 배려받아야 되는데'."

04:39:15

"그런 시선이 전 사회적으로 늘어나고 압력이 세지면 사회가 예쁘게 돌아가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좋은 사회인가? 그게 더 선진 사회인가?"

04:44:09

핵심 반문 — "우리가 다른 사회보다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사회라는 얘길 자주 듣는다.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적용 속도는 매우 빠를 것 같은데, 그렇게 눈치 보고 남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구성원 전체의 스트레스를 엄청 높일 것 같다. 바람직한 건 아니지 않나?"

04:45:03

"요즘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주차장엔 배려석이 당연히 있고, 여성 배려 주차 라인(핑크색), 가족 배려석까지 있다.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지면 스트레스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그냥 막 세우는 분들도 있다."

04:45:48

"공간에 따라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 CCTV 화제 — "영국이 제일 많던가요?" / "우리도 진짜 만만치 않죠" /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에서도 잘 지키지만 해외에 나가서도 잘 지킨다."

04:46:19

새 쟁점 — "연예인 기부가 아름다운 기사로 실리는데, '저 사람들은 기부도 안 하고 지들 건물 산다'는 욕을 많이 하잖나. 그게 바람직한가? 너무 압력·눈치를 주는 건 아닌가?"

04:47:09

"기부를 열심히 해 본 연예인은 이른바 까방권 같은 게 생겨서 조금 실수해도 '저 사람은 좀 봐줘' 하는 게 생기더라." + "눈치나 댓글 압력을 통해 많은 연예인이 기부하면 그것도 습이 돼서 '그 정도 사랑받는 직업이면 그 정도 기부는 일반적이야'가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지 않나? 미국 기업인들은 돈 벌어서 [재단] 짓고 기부하는 게 거의 상식처럼 가잖나."

04:47:58

농담 — "딱 정해서 공정 가격을 정해 놓는 거예요. '선생님 37,000원 청구하겠습니다. 부가세 별도입니다.'" + "지금 다 웃으시잖아요" / "'제가 얼마 드려요?' 하면 딱 영수증을 끊어 주는 거죠."

04:50:39

"어디 수도원 같은 데서 강연 부탁드립니다,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하는데 강연료는 15만 원입니다 하면 가기가 확 짜증나실 것 아니에요." / 04:50:55 "차라리 '여긴 그냥 봉사 한번 해 주세요' 하면 흔쾌히 가실 수도 있는데 '8만 원 드릴게요' 하면 기분이 나쁠 수 있지 않나?"

04:51:04

결론 — "사회적 배려를 개인에게 강제할 수 있을까? 당연히 강제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고, 대신 은근한 압력 — 마치 개구리가 [서서히] 데워지듯 은근하게 압력을 가해 전체적으로 사회의 배려가 늘어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다. 이 정도로 결론 내면 될까요?"

04:51:23

"''이라는 단어도 굉장히 흥미롭다. 처음엔 배려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도 습관이 되면 너무 당연하게 하게 된다. 여러분도 이 영상 보고 좋아요·댓글 남기는 습관을 들이면 처음엔 번거로워도 매번 누르면 습관처럼 누르지 않을까."

04:51:52

"유튜버들이 항상 마지막에 '좋아요 댓글 부탁합니다' 하는 건 너무 구차해 보인다. 그러지 말고 여러분이 알아서 좋아요 누르고 댓글 다는 게 습관이 되면 된다." + "서점 같은 데서 책도 좀 사시고, 좋은 책 나왔잖아요."

04:52:14

마무리 —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또 재밌는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호근

동양철학자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출연 9/9 · 발언 블록 105

9회차 전부에 나온 유일한 패널. 세 패널기를 관통하는 축.

대상: 유튜브 「철학을 보다」(보다 BODA) EP.13~EP.21 9회차 몰아보기(4시간 53분). 근거 파일: parts/people/전호근.md (전 회차 발언 모음, EP.19 실명 재작성본 반영). 타임스탬프는 전부 이 몰아보기 영상 기준.


0. 이 비평이 서 있는 자료의 한계 (먼저 읽어야 할 절)

이 인물은 9회차 전부 출연한 유일한 패널이다. 그런데 발언 귀속의 확실성은 회차마다 크게 다르고, 그 편차를 감춘 채로는 어떤 평가도 정직할 수 없다. 근거는 자동자막(ASR) 기반 전사이며, 화자 라벨은 호명·자기지시·주제 시그니처로 사후 복원된 것이다.

회차귀속 블록귀속 근거신뢰 등급
EP.13 테세우스의 배12자기지시 00:11:15 "안녕하세요, 전호근입니다" + 원 소제목 실명확실 (단 3블록은 파일 자체가 [추정] 표기)
EP.14 동물실험14실명 소제목 + 자기지시확실 (5블록 "확신도 중", 1블록 "확신도 낮음")
EP.15 자유의지13실명 소제목 + 01:15:38 자기지시확실
EP.16 위선28MC "교수님" 지명 + 동양철학 시그니처확실 (2블록 [추정 귀속])
EP.17 생명의 경중18MC "교수님은" 지명 + 동양철학 시그니처확실
EP.18 체벌·인권7MC의 "교수님도 …보시냐" 지명확실하나 내부 편차 큼 — 7블록 중 6블록이 파일상 (추정)
EP.19 AI와 인간6실명 호명 없음. "교수님" 호칭 + 주제 시그니처. 03:50:47만 송길영의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으로 상대적 확정추정
EP.20 공정0귀속 불가
EP.21 제사·눈치7실명 호명 없음. 04:40:51에서 안광복을 3인칭으로 부름 + 성리학·불교 준거추정

EP.20에 대한 정확한 진술: 출연은 공식 명단으로 확정이다. 그러나 전사 내부에 그를 지목할 단서(호칭·자기지시·동양 고전 인용)가 하나도 없어 발언을 단 하나도 배정하지 못했다. 이는 "말을 안 했다"는 뜻이 아니라 "자동자막에서 특정할 수 없다"는 뜻이며, 따라서 이 비평은 EP.20을 근거로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다. 공정 주제에서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이 자료로 알 수 없다.

이 한계가 비평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 — 아래 강점 절에서 그의 최고 논증으로 꼽은 03:04:42(인권의 구조적 정의)는 파일상 (추정) 귀속이다. 가장 높이 평가한 대목이 가장 확실하지 않은 대목이라는 사실을 여기 명시해 둔다. 반대로 가장 강하게 지적한 약점 중 04:34:10(어도 유비)과 04:40:51(유전자-문화 공진화)도 추정 구간(EP.21)에 있다. 칭찬과 비판이 같은 불확실성 위에 서 있으므로 한쪽만 할인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확실 구간(EP.13~17)만으로도 아래 결론 대부분이 성립하는지는 각 항목에 표시했다.


1.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현직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교양대학)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소개
학부·대학원성균관대학교 유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알라딘 저자 프로필 · 교보문고 저자정보
박사논문「16세기 조선성리학의 특징에 관한 연구」알라딘 저자 프로필
전공공맹 유학·조선 성리학. 『논어』·『맹자』·『주역』 등 동양 고전 강의교보문고 저자정보
강의 이력성균관대·가톨릭대·경기대·동국대·방송대·중앙대 등 및 고전 국역 기관알라딘 저자 프로필
기타 경력(재)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편찬실장알라딘 저자 프로필
대표 저서『한국 철학사: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한국 지성사의 거장들을 만나다』(메멘토, 2015, 896쪽). 문화일보 올해의 책, 제4회 우수편집도서상국립중앙도서관 서지 · 교보문고 · 경향신문 인터뷰(2015-10-07)
그 밖의 저서『장자강의』(동녘, 2015), 『대학강의』(동녘, 2017),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김시천 공저, 책세상, 2010), 『공자 지하철을 타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등알라딘 저자 프로필 · 한국강사신문
역서『역주 장자』 전4권 (은사 안병주 공역, 전통문화연구회, 2001~2009년경 순차 간행)알라딘 『역주 장자 1』

검증 잔여

  • 『역주 장자』 완간 연도는 자료마다 2008/2009로 갈리고 권별 간행 연도도 도서관 목록과 서점 표기가 어긋난다 — 단일 연도로 단정하지 않았다.
01:51:33

"1991년부터 시작했으니까 35년 차네요"(강의 경력)는 자기 진술이며 외부 출처로 교차검증하지 못했다.


2.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9/9 — 시리즈 전체를 관통한 유일한 패널.
  • 발언 블록 수(파일 직접 계수): 105개. EP.13 12 · EP.14 14 · EP.15 13 · EP.16 28 · EP.17 18 · EP.18 7 · EP.19 6 · EP.20 0 · EP.21 7.
  • 밀도의 편차가 크다. EP.16 한 회차가 전체의 27%를 차지하고, EP.18 이후 세 회차(7+6+0)를 합쳐도 EP.17 한 회차에 못 미친다. 이 편차가 실제 발언량 차이인지 전사 품질 차이인지는 이 자료로 분리할 수 없다.

세 패널기에서 각각 맡은 기능

  • 과학자 패널기(EP.13~15) — 비물질 좌표 공급자. 물리·신경과학으로 세팅된 문제(테세우스의 배, 뇌 이식, 결정론)에 리(理)/기(氣)(00:25:56), 제법무아·연기(00:12:23), 장자의 꿈속의 꿈(01:47:39)을 나란히 놓아 "이 문제 설정이 유일한 좌표계는 아니다"를 보여준다. 귀속 확실 구간이라 이 기능 규정은 가장 안전하다.
  • 종교인 패널기(EP.16~18) — 개념 정의 담당. 스님·신부와 나란히 앉아 위선(01:55:05), 선(01:57:48), 처벌/체벌(02:53:26), 인권(03:04:42)의 정의를 먼저 고정하고 판단으로 넘어간다. 발언 밀도가 가장 높다.
  • AI·공정 패널기(EP.19~21) — 인간 정의의 재검토자이자 규범 강제의 옹호자. EP.19에서는 인간을 규정해 온 개념 목록(호모 에티쿠스·하빌리스·루덴스)을 꺼내 AI가 그 목록을 전부 무너뜨렸다고 스스로 판정하고(03:12:51, 03:13:27), EP.21에서는 노약자석 비워두기 강제를 지지하며(04:34:31) 순치(馴致)/습(習)을 갈라낸다(04:40:38, 04:40:51). 단 이 두 회차는 추정 귀속이고, EP.20은 공백이다.

3. 논증 스타일

3-1. 개념 확정 우선 — 한자 어원을 논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확실 구간〕
00:12:09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이 되어야 비로소, 테세우스의 배 중에서 어떤 것이 테세우스의 배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다."

01:55:05

"진위(眞僞)의 위(僞)다 — 진은 진짜고 위는 가짜이니, 논리적으로 풀면 '위선'이란 말 자체에 이미 선이 아니라는 뜻이 들어가 있다."

01:55:43

"'위악'이란 말은 안 쓴다 (…) 원래 사전에는 없다. (…)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선행을 했다 하면 의심하고, 악행을 저지르면 의심하지 않는다."

마지막이 이 스타일의 최고치다. 어휘의 부재를 관찰해 그 부재가 드러내는 사회적 편향(선행만 의심받는다)을 끌어낸다. 어원 분석이 장식이 아니라 데이터로 쓰인 사례.

3-2. 범주 구분(category distinction)이 주력 무기다 〔확실+추정 양쪽〕

상대 논지를 부정하는 대신, 그 논지가 적용되는 범주를 잘라내 무력화한다.

01:15:40

"물리적인 차원하고 생물학적인 차원하고 인간 의지의 차원은 범주가 좀 다른 것 아닌가?"

02:42:03

/ 02:42:49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동물을 이용하는 것과 인간이 그냥 먹는 것, 둘 차이가 있죠." → "사자가 동물들을 잡아먹잖아요. 그걸 비윤리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죠. 그런데 사자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동물을 이용한다 그러면 비윤리적인 게 되는 거죠."

02:53:26

"그랬다 하더라도 그냥 처벌이지 체벌은 아닙니다."

03:36:42

(추정) AI 창작물: "창작물이다. 좋은 창작물이냐는 다른 문제다" — 산출물 축과 품질 축을 먼저 분리한 뒤 세 번째 축(향유 활동)을 도입한다.

04:40:38

/ 04:40:51(추정) 순치(馴致) ↔ 습(習).

3-3. 동양 고전은 "선취권 주장"의 형태로 등장한다 〔확실 구간〕
00:47:58

"그 주장도 아주 오래됐습니다. 고려 시대부터 있었어요. 이규보라는 (사람이)…" — 동물권 논의의 동아시아 선례.

01:47:39

"장자에 나온다. 그냥 꿈이 아니라 꿈속의 꿈 얘기가 나온다. (…) 인셉션과 비슷하다." — 시뮬레이션 가설의 선례.

00:12:23

"그 이야기가 바로 불교에서 제법무아·제행무상이라고 할 때의 것이다."

이 패턴이 논증인 경우와 장식인 경우가 갈린다(→ 4-3).

3-4. 서양철학사·개념사 인용의 정확도: 고전은 견고, 현대·분류는 느슨 〔확실+추정〕
02:06:31

의무론(칸트·공자·맹자·주자) vs 결과주의(묵자·벤담·밀)의 대응 배치는 정확하고 무리가 없다.

02:36:26

~02:37:36 데카르트 동물기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위계 요약은 표준적 서술에 부합한다.

00:49:24

존 쿳시의 인물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이름·논지(가죽 구두와 지갑을 가진 채식주의자의 자기모순)까지 정확히 짚는다. 대중 강연에서 흔히 뭉개지는 부분이다.

03:50:47

(추정) "매슬로우가 비판받는 것도 편의상 나누지만 사실은 이게 다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 욕구단계설의 순차성 비판은 표준적 학설 비판에 부합하고, "내가 알기로"라는 완충어로 확신도를 스스로 표시했다.

  • 반면 00:58:58 "존 버거라는 철학자가 있죠. 작가이기도 하고" — 존 버거는 통상 미술비평가·소설가로 분류되며 '철학자' 규정은 표준적이지 않다(인용한 논지 자체는 그의 실제 주제와 어긋나지 않는다).
01:52:27

"배를 만든 건 항해를 하기 위해서다 — 괴테 이야기다." 이 문구는 통상 존 A. 셰드(John A. Shedd, 1928)에게 귀속되며 괴테 귀속은 널리 퍼진 오귀속으로 알려져 있다. ASR 오류가 아니라 화자가 출처를 명시한 대목이므로 기록해 둔다.

03:12:51

(추정) "호모 하빌리스 —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다": 호모 에티쿠스·호모 루덴스는 인간 본질을 규정하는 조어형 개념어인 반면,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화석 인류의 분류학상 종명이다. 같은 층위의 "인간 정의 목록"에 나란히 놓은 것은 범주가 섞인 것으로 보인다.

3-5. 상대주의로 착지하지 않는다 〔확실 구간에서 확인됨〕

"동양에서는 이렇게 봅니다"로 판단을 미루는 습관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00:39:45

"저는 동물 실험에 반대합니다. 당연히 인간을 실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반대고요."

02:24:59

"생명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경중이 있을 수 없다,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02:49:41

(모든 체벌이 인권 침해인가) "당연히 안 되죠." — EP.18에서 유일하게 추정 표시가 없는 블록이 바로 이 입장 표명이다.

04:34:31

(추정) "그 공간은 비워두는 걸 강제하는 게 맞다고 본다."

판단 유보가 나오는 곳은 자기 전공을 대표성으로 오해받을 때뿐이다 — 02:46:00 "여러 철학에 여러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대표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저도 신부님과 비슷한 (입장입니다)." 유보한 뒤에도 결국 입장을 붙인다.


4. 강점

4-1. 입장을 먼저 밝히고, 그 입장에 불리한 사실을 스스로 꺼낸다 〔확실 구간〕

00:39:45에서 동물실험 반대를 선언한 뒤 같은 회차에서 자기 실천의 실패를 자진 공개한다 — 00:57:09 "구제역 (…) '이젠 돼지고기 절대 안 먹어야 되겠다' 하고 석 달 동안 안 먹었다가 삼겹살집 지나다가 그 냄새가 나니까 석 달 만에 무너진 거죠." 00:57:37 "(탕탕이) 아주 좋아합니다." 규범 주장자가 통상 감추는 자료를 먼저 테이블에 올리고, 이를 00:49:24 "이율배반이 아니죠. 인간의 한계입니다"로 이론화한다. 자기 논지의 반례를 본인이 관리한다.

4-2. 자기 진영에 불리한 결론을 스스로 내린다 〔EP.19·추정 구간〕

03:12:51~03:13:27이 그렇다. 인간을 규정해 온 개념 목록을 꺼내면서 호모 에티쿠스에 자기 전공의 예(禮)를 명시적으로 붙여 놓고("동양의 예(禮) 예제가 있고,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지적 체계가 있다"), 곧바로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이 모든 게 다 무너졌다"고 판정한다. 동양철학자가 동양철학의 인간 규정을 방어하지 않고 무효 선언하는 구조다. 03:14:06 "예, 답하기 정말 어려운데 오늘 이 시간에 답을 한번 찾아보죠"로 미결 상태를 인정한 채 토론을 연다. 다만 세 반박 각각의 근거는 약하다(→ 5-5).

4-3. 인권 개념의 구조적 해체 〔단, 추정 귀속〕

03:04:42 "인권은 밖으로 뭘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자유의 성격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권을 지킨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인권이 침해받지 않거든요." — "가해자 인권 vs 피해자 인권"이라는 통속적 제로섬 프레임을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 구분 하나로 해체한다. 앞선 02:58:06 "권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를 빼앗는 거죠"와 이어져 논지가 두 단계로 축적되고, 03:05:17 "저도 분노하죠. 흉악범을 … 호화롭게 살 게 아니죠"로 감정적 반발을 인정하되 개념은 지킨다.

단서: 이 세 블록은 전부 파일상 (추정) 귀속이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단단한 개념 정리로 평가하지만, 그 평가가 가장 약한 근거 위에 서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4-4. 다른 패널의 발언을 받아 재명명한다 (대화형 논증) 〔확실+추정 혼재〕
01:15:40

"기본적으로 김석 교수님 주장과 약간 비슷해요."

00:55:45

"그 사랑을 완전하게 미루기는 김석 교수님 말씀처럼 쉽지 않은 거죠."

01:03:09

"그게 김석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을 대하는 어떤 예의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04:40:51

(추정) "아까 안강복 선생님 말씀하신 건 '습'이다."

역방향 증거도 있다: 03:51:15에서 송길영이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으로 그의 03:50:47을 받는다. 호명이 일방향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실제로 논의의 결절점으로 기능했다는 뜻이고, 이 상호 호명이 EP.19 귀속 추정의 근거이기도 하다.

4-5. 상대 진영의 논리를 정확히 재구성한 뒤 반박한다 〔확실 구간〕

02:26:39~02:26:51 공리주의 비판. "더 위독한 사람에게 가는 게 아니고 회복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가는데 — 그게 공리주의의 문제점이에요. (…) 그건 일종의 전투 현장에서의 논리거든요. 빨리 치료를 해서 다시 현장으로 보내야 돼요." 트리아지의 실제 작동 원리를 정확히 기술하고 그 원리가 어떤 맥락(전장)에서 도출됐는지까지 짚은 뒤 비판한다. 허수아비를 세우지 않았다.


5. 약점·문제점

5-1. 출처 없는 수치·비율 주장이 반복된다 〔확실 구간에서 다수 확인〕
00:21:16

"보통 한 6개월 정도면 신체 세포가 완전히 바뀐다고 하는데" — 널리 유통되는 통설이나 세포 종류별 교체 주기는 크게 다르고 뉴런·심근세포 등은 대부분 교체되지 않는다는 것이 표준적 이해다. 본인이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더라"고 덧붙이지만 반론의 내용을 말하지 않고 곧장 논지를 진행한다.

02:37:36

"인간을 맨 위로 두는 쪽, 인간과 동물 모든 생명체를 거의 같이 보는 쪽 이렇게 나뉘는데 (양쪽) 수가 거의 비슷합니다." — 철학자 진영의 수적 비율을 근거 없이 단언한다. 그의 전공 영역 안에서 나온 주장인 만큼 근거 제시 부담이 더 크다.

02:42:26

"돼지 삼겹살 구워 먹는 것을 두고 윤리적으로 문제라고 (주장)하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거의 없고" — 육식 반대 진영의 규모를 "극소수"로 처리하는 근거가 없다.

02:28:48

"캐나다 같은 경우가 그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죠. 미국 같은 경우에는 (…) (캐나다는) 그냥 순서대로 기다려야 됩니다." — 캐나다에도 임상적 긴급도에 따른 우선순위가 있다는 점을 빠뜨린 채 "순서대로"로 단순화된다.

04:40:51

(추정) "진화학자들도 요즘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을 주장하더라" — 실재하는 이론이나 "요즘"은 부정확하다(1980년대에 이미 정립된 연구 프로그램이다).

5-2. 상대의 핵심 논거에 답하지 않고 동기 귀속으로 이동한 대목 〔확실 구간〕

00:41:26. "과학 기술의 발전이 동물 실험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동물들이 해방됐죠. 과거 우리는 말을 타고 다녔지 않습니까? (…) 내연기관이 발명됐으니."

말·소의 역축(役畜) 노동 해방은 사실이나, 상대가 주장하는 것은 생의학 연구에서 동물 모델의 기여다. 층위가 다르다. 그리고 반박 대신 동기 추정으로 넘어간다 —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더 빠르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게 더 작용한 게 아닌가." 논거를 반박하는 대신 상대 진영의 이익 동기를 추정하는 형태이며 그 추정에 근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00:42:22의 "시뮬레이션이라든지 컴퓨터로 대체하는 기술들이 자꾸 나오고 있고"도 대체 가능 범위에 대한 근거 없이 열려 있다.

5-3. 고전 인용이 논증의 무게를 지지 못하고, 즉석 반문에 물러난 대목 〔추정 구간〕

04:34:10 조선 왕릉의 어도(御道)를 노약자석 비워두기의 근거로 든다 — "가운데 길은 임금만 걸을 수 있다. 임금이 없어도 누구도 그 길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건 그 존재에 대한 존중이고 공간적인 존중이다." 그런데 어도의 규범력은 왕권이라는 위계에서 나오고 노약자석은 약자 배려에서 나오므로 강제의 정당화 구조가 반대다. 누군가 "[봉변] 당할까 봐 안 가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자 "아, 그럴 수도 있죠. 근데…"로 물러난다(같은 타임스탬프). 유비가 반박되었는데도 그 위에 세운 결론(04:34:31 "비워두는 걸 강제하는 게 맞다")은 수정되지 않는다.

같은 문제가 04:40:51 마무리에도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도 얘기했지만 성[리]학에서도 이야기하고 불교에서도 이야기하고 거의 똑같더라." 세 전통이 "거의 똑같다"는 등치에 논거가 없다. 이 대목의 고전 인용은 논증이 아니라 권위 나열에 가깝다.

〔단, 두 대목 모두 추정 귀속 구간이므로 다른 패널의 발언일 가능성이 남아 있다.〕

5-4. 범주 구분이 논증의 시작이 아니라 종료로 쓰이는 경우 〔확실 구간〕

01:15:40의 결정론 반박은 "범주가 좀 다른 것 아닌가?"가 결론이다. 뒷받침은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모든 사물도 생성·유지·소멸"이라는 별개 관찰뿐이며, 이는 범주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공통성의 서술이다. 이어지는 01:16:21 "스위치를 누를까 말까는 결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떤 스위치를 누를지는 (아니다)"는 결정론자가 정확히 부정하는 지점(선택 자체도 물리적 사건이다)을 재진술할 뿐 논박하지 않는다. 01:39:20 "그렇게 되면 사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는 귀결의 불쾌함을 근거로 삼는 형태로, 결정론의 참/거짓과는 독립적인 논점이다.

5-5. 전공 밖(AI·과학) 주제에서 개념의 성립 조건을 검토하지 않는다 〔EP.19·추정 구간〕

03:13:27의 3연속 반박이 구조는 깔끔하나 각 고리가 얇다.

  • 윤리: "인공지능은 아마 인간처럼 혐오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보다 오히려 더 윤리적인 경우도 있는 것 같다" — "아마", "것 같다"로 추정이며, AI의 편향·혐오 발화라는 잘 알려진 반례는 언급되지 않는다.
  • 놀이: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끼리 바둑을 두며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어 호모 루덴스도 무너졌다" — self-play를 '논다'로 등치한다.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의 규정 요소(자발성·비목적성)가 목적함수 최적화인 self-play에 성립하는지가 정확히 쟁점인데 그 검토가 없다.
  • 도구: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드론이 많으니 도구 사용에서도 인간만의 특징이 사라졌다" — 로봇·드론은 인간이 만들어 쓰는 도구이지 AI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근거가 아니다.

같은 유형이 확실 구간에도 있다. 02:37:36 데카르트 인간기계론에서 "그러다가 이제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AI 휴머노이드가 나오겠죠"로 곧장 넘어가는데 17세기 기계론과 현대 AI의 연결도, 예측의 근거도 없다. 01:09:11 "자기가 만들지 않은 생명을 마음대로 (하는 건) 저작권 위반 아닌가?"도 착상은 흥미로우나 — 저작권은 저작자 있는 창작물의 권리 체계이고 자연물에 적용되지 않는다 — 유비의 성립 조건이 검토되지 않은 채 던져진다.

5-6. 논점을 자기 유리한 축으로 옮기는 재정의 〔EP.19·추정 구간〕

03:36:42~03:39:07. "AI가 만든 작품이 창작물이냐? 창작물이다. 좋은 창작물이냐는 다른 문제다"로 산출물 층위를 양보한 뒤, "AI에게 명령을 줘서 그림을 그리게 하면 예술을 향유하는 활동은 없다 (…) 그 활동까지 포함시켜 얘기하면 AI 창작 활동은 창작이라고 할 수 없다"로 판정 기준을 산출물에서 제작자의 내적 경험으로 이동시킨다. 정당한 재정의로 읽을 수도 있으나, 그 기준을 채택할 근거는 "나는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03:39:07)라는 선호 표명뿐이다. 또한 이 기준은 프롬프트를 쓰는 인간에게도 즐거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례를 다루지 않는다.


6. 반복 패턴

패턴근거 타임스탬프확인 구간
한자 어원 → 개념 확정 → 판단 순서01:55:05 위(僞) · 01:55:43 위악 · 01:57:48 eu-/에우다이모니아 · 04:40:38 순치(馴致)확실 3 + 추정 1
자기 위반을 먼저 공개하고 "인간의 한계"로 착지00:49:24 "이율배반이 아니죠. 인간의 한계입니다" · 00:57:09 돼지고기 석 달 · 02:37:28 "완전하게 못 했다고 해서 의미 없다, 이렇게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 04:33:42 노약자석확실 3 + 추정 1
다른 패널을 이름으로 호명하고 그 발언에 개념명을 부여01:15:40 · 01:03:09 · 00:55:45 · 04:40:51확실 3 + 추정 1
A/B 범주 절단으로 상대 논지를 우회01:15:40 · 02:42:03 · 02:53:26 · 02:58:06 · 03:36:42 · 04:40:38확실 3 + 추정 3
개념 목록을 세우고 항목별로 하나씩 처리03:12:5103:13:27 호모 3종 · 01:58:03 선의 4요소 · 02:06:31 의무론/결과주의 대응표확실 2 + 추정 1
사례의 출처가 고전 아니면 본인 생활사 — 통계·실증연구는 거의 인용하지 않음 (예외: 02:49:31 "체벌을 했더니 성적이 올랐다 — 이런 연구 결과가 없습니다")고전 00:47:58·00:55:45·01:47:39 / 생활사 00:57:09·04:33:42확실 다수
동물·생명 주제에서 의례(儀禮)를 논거로 소환01:03:09 연구원 위령제 + 곰 사냥 제사 "잡혀 주셔서 고맙습니다"확실(확신도 중)

7. 없었다면 잃었을 것

  1. 문제 설정 자체가 보편이 아님을 보여주는 축. EP.13~15의 질문(테세우스의 배, 뇌 이식, 자유의지)은 전부 서양철학사가 만든 프레임이다. 00:12:23 제법무아·연기, 00:25:56 리/기, 01:47:39 장자의 대각(大覺)이 들어오면서 시청자는 "이 질문에 답이 갈리는 게 아니라 질문을 세우는 방식이 여럿"임을 본다. 다른 패널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던 기능이고, 귀속이 가장 확실한 구간에서 나온다.
  1. 대체 어휘의 공급. 순치/습, 측은지심(00:36:14, 00:55:45), 진위의 위(01:55:05) — 한국어 화자가 이미 쓰지만 정의를 모르는 단어들의 뜻을 복구시킨다. 특히 04:40:51에서 다른 패널의 관찰에 '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흩어져 있던 논의가 하나의 개념으로 묶인다.
  1. 9회 연속 출연이 만든 논의의 연속성. 00:36:46 "그때 (성선설) 토론에서 끝나지 않았나. 그때 입장 그대로다"는 회차를 넘어 자기 입장의 일관성을 검증 가능하게 만든다. 어제의 발언에 오늘 책임을 지는 유일한 참가자다.
  1. AI 회차에서 "인간 정의의 재고 목록"을 먼저 꺼내는 역할. 03:12:51~03:13:27은 토론의 출발 프레임을 세우고 그 프레임을 스스로 무너뜨려 논의를 연다. 각 반박의 근거는 얇지만(→5-5), 자기 전공의 인간 규정을 방어 대상이 아니라 검토 대상으로 내놓는 태도 자체가 이 회차의 문을 열었다.
  1. 완전주의 아닌 윤리의 모델. 00:49:24~00:57:09의 자기폭로 시퀀스는 규범을 주장하려면 먼저 성인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해제한다. 02:37:28 "완전하게 못 했다고 해서 의미 없다, 이렇게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가 그 요약이다.

8.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이 인물에 대한 어떤 평가도 EP.20을 포함하지 않는다. 출연은 확정이나 자동자막에서 화자를 특정할 수 없어 발언 귀속이 0건이다. "공정 회차에서 조용했다"고 읽으면 틀린다. 마찬가지로 EP.19·EP.21은 실명 호명 없이 주제 시그니처로 복원된 추정 귀속이므로, 그 두 회차 발언은 "이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언"으로 읽어야 한다.
  1. 고전 인용이 나오면 그 다음 문장을 보라. 논거가 붙는 경우(01:55:43 위악의 부재 → 사회적 편향 도출)와 권위 나열로 끝나는 경우(04:40:51 "아리스토텔레스도 성리학도 불교도 거의 똑같더라")가 섞여 있다. 전자는 논증이고 후자는 장식이다.
  1. 수치·비율·제도 비교는 검증 전제로 들어라. "세포가 6개월이면 다 바뀐다"(00:21:16), "양쪽 수가 거의 비슷합니다"(02:37:36), "극소수"(02:42:26), "캐나다는 그냥 순서대로"(02:28:48)는 모두 출처 없이 제시됐다.
  1. 인물·용어 분류는 한 번 확인하라. 존 버거를 "철학자"로(00:58:58), 셰드의 문구를 괴테로(01:52:27), 화석 인류 종명인 호모 하빌리스를 개념어 목록에 나란히(03:12:51) 놓는 대목이 있다. 반면 존 쿳시·엘리자베스 코스텔로(00:48:54, 00:49:24)와 매슬로우 비판(03:50:47)은 정확하다 — 일률적으로 의심할 필요는 없고 개별 확인이 필요하다.
  1. 범주 구분이 나오면 "왜 다른지"가 이어지는지 확인하라. 02:42:49(식용 vs 수단화)처럼 구분 뒤에 근거가 붙는 대목과, 01:15:40(물리/의지)처럼 구분 선언이 곧 결론인 대목이 다르다.
  1. AI·과학 주제에서는 개념의 성립 조건이 검토되는지 보라. 03:13:27의 세 반박(윤리·놀이·도구)은 형식은 정연하나 각 고리가 얇고, 01:09:11(저작권 유비), 02:37:36(기계론→AI 도약)도 같은 유형이다.
  1. ASR(자동자막) 오류를 화자의 실수로 읽지 말 것. 발언 모음에는 "정희대학교"(→경희대학교), "존쿠시"(→존 쿳시), "존버그"(→존 버거), "엘리자베트 코스톨리오"(→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존 스튜트 윌리"(→존 스튜어트 밀), "은근 지심"(→측은지심), "괴태"(→괴테), "전호건"(→전호근) 등 다수의 자막 오류가 표시돼 있다. 자막 문제이지 발언자의 오류가 아니다.
  1. "동양철학자라서 상대주의로 흐른다"는 예상을 가지고 보면 틀린다. 실측된 발언은 반대다 — 동물실험 반대(00:39:45), 체벌 전면 반대(02:49:41), 생명 경중 부정(02:24:59), 규범 강제 지지(04:34:31) 모두 명시적 입장 표명이다. 평가해야 할 것은 그 입장들의 논증 품질이지 소속 전통이 아니다.
전호근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3 — 테세우스의 배·나의 동일성 (2025-01-16)

[원 소제목] 전호근 [ASR: 전호건]
00:11:15

안녕하세요, 전호근입니다. 경희대학교[ASR: 정희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철학 이야기를 하고 있다.

00:12:02

제 생각은 거기서 좀 더 다르다.

00:12:09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이 되어야 비로소, 테세우스의 배 중에서 어떤 것이 테세우스의 배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다.

00:12:23

정프로님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이 테세우스의 배라고 이야기하면 그게 테세우스의 배 아니냐 — 모든 사람이 합의한 것이 테세우스의 배가 되는 거다. 부품이 바뀌느냐 바뀌지 않느냐는 상관없다. 그 이야기가 바로 불교에서 제법무아·제행무상이라고 할 때의 것이다 — 모든 법은 일정한 본래 모습이 없다. 그리고 하는 이야기가 인연생기(연기)다. 개념이 확정되는 것은 그 개념 자체의 의미보다는 개념을 둘러싼 외부의 조건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테세우스의 배라고 하는 게 외부의 조건이 되는 거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정체성 자체는 물질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테세우스의 배라고 인식할 때 비로소 테세우스의 배가 되는 것이다.

00:13:13

그렇다, 그런 쪽의 입장이 되는 거다.

00:14:24

[추정] 역사적으로 테세우스의 배라고 하는 건 테세우스가 해전을 펼칠 때 탔던 배 아니겠나. 그럼 부품을 다시 재조립해 똑같은 배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테세우스의 배가 될 수 없지 않을까.

00:14:46

[추정]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떤 도구를 이용해 중요한 일을 했다고 하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라는 사진작가가 있는데, 그분이 쓴 카메라는 세상에 수만 대가 존재한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사진을 촬영할 때 썼던 그 시리얼 번호에 해당하는 카메라, 그게 (진짜다). 비록 부서지고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심지어 중요 부품이 교체되었다 하더라도 그게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썼던 카메라다. 동일한 모델이 더 완전하고 새것처럼 보이는 다른 제품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썼던 것이 그것이다.

00:21:16

[추정] 이렇게 생각해 보자.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도 비슷한 경우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로, 사람의 세포도 계속 바뀌지 않나. 보통 한 6개월 정도면 신체 세포가 완전히 바뀐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더라.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요소가 변한다고 해서 그 정체성이 사라지느냐,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안 좋은 비유입니다만 — 정프로님이 어제 어디서 물건을 훔치는 범죄 행위를 했다고 치자. 수사를 해 범인을 특정해서 정프로님을 영장을 갖고 적법하게 체포하러 왔다. 그럼 정프로님이 "어제의 나를 체포하세요, 오늘의 저는 세포도 다 바뀌었으니 저 아닙니다"라고 (할 수 있겠나).

00:25:56

(이·기 설명) 기(氣)를 직접적으로 논정하지 못하고 늘 리(理)를 가지고 논쟁한다. 결국 뇌라고 하는 걸 비유하자면 리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리라고 하는 게 원리고, 기라고 하는 건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모든 것, 현상, 데이터로 환원할 수 있는 것 — 이게 전부 기가 되는 거다. 기 자체를 직접 논정하지 못하고 늘 리를 통해 논쟁한다. 따뜻하다·차갑다·빨갛다 이런 걸 결정해 주는 건 리에서 온다. (화투도) 화투의 원리와 그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것이다.

00:26:37

"정신"이란 말도 근대 용어지만 정신적인 것은 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보면 리만 남겨 놓고 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더라도 본질은 그대로 보존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뭔가 좀 이상하다. 뇌만 보존된, 또는 모든 신체의 다른 부분을 기계나 다른 물질로 대체하고 뇌만 그 상태로 보존되었을 때 그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는가 — 나는 아닌 것 같다. 우리의 뇌라는 신경망 자체가 유기체로서 우리 몸의 반응이라든지, 스포츠 할 때의 힘듦이라든지 즐거움이라든지 이런 것들과 다 연결되어 있는 건데, 그냥 뇌만 남겨 놓는다면 아까 김석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데이터 또는 기억, 이것만 남아 있는 걸 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00:36:14

(나의 정의) 두 분은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시면서 인간에 대한 답을 내놓으신 것 같다. 나도 비슷한 관점에서 — 어린아이가 물에 빠지려고 하면 냉큼 달려가서 구하려고 하는 존재다. 측은지심이다.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는 다른 문제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 존재다.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은 하지 못한 거고, 그것도 능력의 문제라고 본다 — 하려고 하는데 못 한 거다.

00:36:46

그때 (성선설) 토론에서 끝나지 않았나. 그때 입장 그대로다. 내가 못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려고 하는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EP.14 — 동물실험 (2025-01-30)

[원 소제목] 전호근 (경희대 동양철학) — 동물실험 반대
00:39:45

"그 저는 동물 실험에 반대합니다. 당연히 인간을 실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반대고요."

00:41:26

역전된 인과 — "저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동물 실험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동물들이 해방됐죠. 과거 우리는 말을 타고 다녔지 않습니까? 지금 말을 타고 다니면 동물 학대라고 할 텐데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내연기관이 발명됐으니." 동물실험을 하는 이유는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더 빠르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게 더 작용한 게 아닌가." 과학기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처럼 동물도 행복하게 해 주는 쪽으로 발전해야 한다."

00:42:22

"그건 이제 지나간 과거의 일인데… 어쩔 수 없이 말을 타고 다녔고 어쩔 수 없이 소를 이용해서 경작을 했죠. 그런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고 봅니다. 지금 소를 이용할 필요도 없고 말을 교통 수단으로 이용할 필요도 없죠. 진행자의 말씀은 현재 상황을 전제로 했을 때 아직은 유효한 건데, 신약이나 의학 실험에 많은 부분을 시뮬레이션이라든지 컴퓨터로 대체하는 기술들이 자꾸 나오고 있고." (귀속 확신도 중 — 말·소 논지의 연속성으로 판단)

00:47:58

이규보 — "그 주장도 아주 오래됐습니다. 고려 시대부터 있었어요. 이규보라는 (사람이) 문인이자 철학자이기도 하거든요. 유학자니까." 어떤 사람이 개 잡는 것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개만이 아니라 우리 몸에 기생하는 작은 이(蝨), 이 또한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쥐가 곡식을 훔치는 행위도 비난하지 않는다 — "너는 사람이 만드는 걸 훔치고 인간은 하늘이 만든 걸 훔치니 같은 처지다." 그러면서 쇠고기를 즐겨 먹었는데 "쇠고기를 끊는 시를 써요. 그러면서 쇠고기를 끊지 못하는 자신을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그런 시들이 있거든요."

00:48:41

"(사자가 소 잡아먹는 건) 비판하지 않죠. 그건 인간의 일이 아니니까. 우리는 동물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동물 중심주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도 사실은 인간 중심주의입니다."

00:48:54

존 쿳시[ASR: 존쿠시] — "최근 작품이지만 존 쿳시라는 작가의 작품에는 대화가 나와요. '당신이 채식주의자인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아니요.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거든요. 잔인함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

00:49:24

엘리자베스 코스텔로[ASR: 엘리자베트 코스톨리오] — "'당신 동물을 위해서 그렇게 하느냐' 물으니까 뭐라고 대답하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가죽 구두와 가죽 지갑을 갖고 있습니다. 동물의 껍질로 만든 거거든요.'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거죠. 이율배반이 아니죠. 인간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동물을 사랑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걸 모든 면에서 완전하게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00:55:45

맹자의 흔종(釁鐘) — 맹자가 제나라 선왕을 만났는데 밑에서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감. 왕이 "소를 데리고 어디로 가느냐" 물으니 "흔종하러 갑니다." 흔종이란 "종을 새로 만들고 나면 그 종에 균열이 있을 때 쇠피(소의 피)를 발라 가지고 틈을 메꾸는 거예요. 일종의 코팅이죠. 그럼 소리도 좋아지고." 왕이 "아주 불쌍해서 못 봐주겠다… 그만 둬라." 그러니 "그러면 흔종하지 말까요? 쇠피를 바르지 말까요?" 왕이 답하길 "양으로 바꿔." — "천왕의 한계가 딱 보이는 거죠. 그럼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느냐. (왕이) 뭐라고 하냐면 소는 (눈)앞에서 (봤고) 양은 아직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 이차적인 것이다." 어쨌든 제선왕의 측은지심[ASR: 은근 지심]이 소 한 마리를 보고 발휘됐다고 일단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 사랑을 완전하게 미루기는 김석 교수님 말씀처럼 쉽지 않은 거죠."

00:56:56

"산낙지를 왜 샤부샤부로 먹어요? 그냥 먹어야지. 탕탕이도 좋고." (01:11:35 MC가 "낙지 얘기할 때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며 지목하는 대상과 동일인으로 보이나, 그 지목에 이름은 나오지 않음 — 확신도 중)

00:57:09

구제역 — "돼지들이 막 살처분되고 수만이 그렇게 되는 걸 보고, 한 10년 전이었던 거 같아요. '이젠 돼지고기 절대 안 먹어야 되겠다' 하고 석 달 동안 안 먹었다가 삼겹살집 지나다가 그 냄새가 나니까 석 달 만에 무너진 거죠." → "예. 한계가 있는 거죠." (확신도 중)

00:57:37

"(산낙지) 못 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ㄹ게 먹진 않는데 제가 돼지고기 피하려고 했던 것만큼 강하게 피하진 않아요." / "(탕탕이) 아주 좋아합니다." (확신도 중)

00:58:58

존 버거[ASR: 존버그] — "존 버거라는 철학자가 있죠. 작가이기도 하고. (관련) 영화가 있는데 존 버거의 이야기로 채워진 내용입니다. 그 농촌 사람들은 돼지나 소를 정성스럽게 사랑하면서 키운다. 사랑을 듬뿍 쏟아서 키운다. 그리고 잡아먹는다. 이게 시골의, 농촌의 문법이란 거예요. 근데 도시 사람들은 그런 (걸 나쁘게) 바꾼다는 거예요. 도시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사랑하는데 어떻게 잡아먹어?' 이게 도시인들의 생각이라는 거죠."

01:03:09

연구자의 위령제와 곰 사냥 제사 — "저는 동물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나쁘다 이런 쪽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동물 실험을 하는 연구원들이 동물들 위령제도 지내고 이렇게 하거든요. 그게 김석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을 대하는 어떤 예의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득이하게 이렇게 하지만 그 생명에 대한 존중을 그런 방식으로 담아내는데, 고대의 사냥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재미로 하는 사냥은 비판합니다만 러시아의 부족 중에 —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데 — 이분들이 곰을 사냥해서 먹고 살더라고요. 곰을 잡고 나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기도하는 내용이 '잡혀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우습지만 굉장히 정중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도 잡혀 주세요.' 이런 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가더라고요." (귀속 확신도 중 — 의례·문화 사례 전담 패턴 + 김석 호명 방식으로 판단)

01:09:11

"근데 근본적으로 이 동물은 인간이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자기가 만들지 않은 생명을 마음대로 (하는 건) 저작권 위반 아닌가?" (확신도 낮음 — 반대 측 패널 중 1인)

EP.15 — 자유의지 vs 결정론 (2025-02-13)

[원 소제목] 전호근 (동양철학자, 경희대)
01:15:38

"제 의견을 이야기하겠습니다."

01:15:40

범주 구분 — "기본적으로 김석 교수님 주장과 약간 비슷해요. 물리적인 차원하고 생물학적인 차원하고 인간 의지의 차원은 범주가 좀 다른 것 아닌가?"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데, 그걸 두고 결정론이 맞다고 하는 건 난센스 같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모든 사물도 생성·유지·소멸 이렇게 되는 건데, 그걸 가지고 인간의 의식도 마찬가지로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범주 자체가 다르다.

01:16:12

3m 덩크슛 예시 — 생물학적 한계로 내가 3m를 뛰어올라 덩크슛을 못 한다고 해서 "그래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01:16:21

물리적 세계는 물리적 조건 하에서 결정되고 결과값을 도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는 인간이 내가 공부를 어느 쪽을 더 할 것인가, 어디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 저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정론으로 환원하는 게) 불가능한 것 아닌가. 스위치를 누를까 말까는 결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떤 스위치를 누를지는 (아니다).

01:16:48

"그렇죠.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가 없다는 거죠."

01:22:02

"예. 저도 비슷해요."

01:24:35

"그런 존재들도 있다." / 01:24:36 "있다."

01:31:04

"특히 이 결정이 굉장히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이라면 굉장히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를 하죠."

01:33:11

"또 도덕적인 것도 작용하고 있고." / 01:33:13 "좋습니다."

01:35:30

"지금도 잘 안 되는 것 같아." (정신승리)

01:39:20

인간 삶의 의미 — 그렇게 되면 사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게임 캐릭터처럼 다 짜여 있고 그때 나와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역할은 아무 의미가 없다. / 01:39:33 "인간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01:41:31

"원래 인간은 자기가 저질러 놓은 걸 신 탓으로 자꾸 돌리(려 하죠)." → MC: "아, 동양철학적인 발상."

01:47:39

장자 — 우리의 현실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상태가 아니겠느냐는 상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장자에 나온다. 그냥 꿈이 아니라 꿈속의 꿈 얘기가 나온다. 꿈을 이중으로 꾸는 것이고 인셉션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자체가 꿈인 줄 모르고, 그래서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꿈을 해몽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거기서 (깨어)나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자는 우리가 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 세계도 사실 꿈일 수 있지 않느냐, (깨어남 뒤에야) 대각(大覺), 진짜 깨달음이 온다고 얘기한다.

EP.16 — 위선·선악의 기준 (2025-10-30)

[원 소제목] 전호근 (동양철학자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01:51:33

"1991년부터 시작했으니까 35년 차네요."

01:51:43

늘 신입생들이기 때문에 늘 그 수준이다. 늘 청춘이다.

01:51:50

질문을 던지는 게 철학인데, 똑같은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다는 게 행복이다.

01:51:58

(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01:52:00

코로나 때와 (그) 전과 또 다르다.

01:52:10

(요즘 학생들은) 부(富)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 같다.

01:52:13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좀 안타깝긴 하다.

01:52:18

우정과 사랑 이런 쪽으로 쏠렸으면 좋겠다.

01:52:24

(그런 시대가) 있었다.

01:52:27

사랑이나 우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니까 자꾸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를 만든 건 항해를 하기 위해서다 — 괴테[ASR: 괴태] 이야기다. 가장 안전하게 있으려면 항구에 정박해 놓는 건데 그게 배의 존재 이유는 될 수 없다. 거침없이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그랬으면 좋겠다.

01:52:54

(요즘 정박해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데 대해) "네. 그런 거 같습니다."

01:55:05

저는 성진 스님 의견과 같다. 진위(眞僞)의 위(僞)다 — 진은 진짜고 위는 가짜이니, 논리적으로 풀면 '위선'이란 말 자체에 이미 선이 아니라는 뜻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위선은 선이 될 수가 없다.

01:55:19

단어 자체가 그렇다. 마침 "오답도 답이고 F 학점도 학점이다" 같은 것인데, 오답은 사실 틀린 답이라는 의미가 되고 F 학점은 학점을 부여하지 않은 게 F가 되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위선은 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의 행위를 위선이라고 판단할 때 그게 과연 정확한 것이냐는 달라질 수 있다.

01:55:43

'위악'이란 말은 안 쓴다 — 간혹 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원래 사전에는 없다. '하위자(下位者)로서 악행을 저지르다' 같은 뜻으로는 있지만 거짓 위(僞)를 붙여서 위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선행을 했다 하면 의심하고, 악행을 저지르면 의심하지 않는다. 그건 왜 그럴까 — 때로 감정적으로는 악보다도 위선을 더 미워하는 현상도 간혹 목격된다.

01:57:29

(MC가 "위선도 매우 선이다로 가겠다"고 하자) "그 의도적으로 위악하시는 거죠?"

01:57:48

(선은) good이라고 한다. 또는 eu-, '에우다이모니아' 할 때의 eu — 좀 어려운 개념이지만 '좋은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좋은 것이냐가 문제가 되는데, 타인을 해치지 않는 것, 타인에게 이로운 것, 그리고 나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01:58:03

해치지 않는 게 먼저 일차적인 것이다. 그리고 나누는 것, 독차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베푸는 것 — 이런 게 선에 해당한다.

02:01:57

그런데 그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주는 사람) 본인밖에 없다.

02:02:03

다만 저는 결과만 보고 "역시 훌륭하다"고 할 뿐이지 의심할 이유가 없다.

02:02:11

의도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선행은 결과로서 나에게 왔다는 것이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다 미리 의심해서 "혹시 여기다 뭐 이상한 걸 넣었나"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문제다).

02:02:26

"그렇죠. 꼬인 사람."

02:06:31

저는 그 점에서 좀 차이가 난다. 철학자들 중 의무론을 주장하는 쪽이 칸트라든지 공자나 맹자, 주자 이런 쪽이다. 이분들은 애초 의도 자체도 선해야 하고 결과도 선해야 윤리적으로 부합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견해와 상관없이 다른 의견을 가진 철학자들도 (거기까지는) 동의한다. 문제는 의도는 선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선했을 경우 어떻게 볼 것이냐인데, 동아시아에서 묵자 같은 사람은 결과가 선하면 선하다고 주장한다. 유명한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ASR: 존 스튜트 윌리] 같은 철학자들은 공리주의니까 결과가 이로우면 선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 좀 더 쉽다. 칸트나 공맹처럼 하면, 세상에 성인만 사는 게 아닌데 (평범한) 사람들도 (선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공리주의적 관점이 필요하긴 하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선행을 했다 — 그게 정치인이 표를 얻는 것이든 학생이 학점을 얻기 위한 것이든 —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기적 목적이 반드시 이타적인 것과 배치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이라면 그게 선이 아닐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02:07:39

예를 들어 빵집 주인이 열심히 이기적으로 산다. 맛있게 만드는 이유가 자기 먹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맛있게 만들어서 많이 팔려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맛있는 빵을 먹는다 — 그것도 이타적인 것 아닌가. 이타적이란 말의 반대말은 타인을 해치는 것이다. 아무리 이기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타인을 해치지 않고 타인을 이롭게 한다면 그게 선이 안 될 이유는 없다.

02:08:07

(이기적 목적의 정치인도) 그것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부정할) 이유는 없다. 나쁜 짓을 한 게 아니고, 자기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롭다. 선행을 한 사람을 뽑아야지 악행 저지른 정치인을 뽑을 순 없지 않은가.

02:16:09

[추정 귀속] "힘이 강해서 빼앗아 갔다" 이렇게 비난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빼앗아 오는 걸 정당화하긴 어렵다. 실제 우리나라에도 불교 문화재가 일본으로 갔는데, (되)찾아온 경로가 정당하지 않아서 사실 돌려줬다.

02:16:52

전쟁 중이라면 다르다. 전쟁의 특수한 상황에서라면 고지를 빼앗겼다 다시 탈환하기도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는데, 그런 특수한 조건이 아니면 상대를 비난하는 논리를 가지고 내가 그 행위를 하는 것이다.

02:17:20

"그게 이제 문명 사회가 아닙니다."

02:18:30

[추정 귀속] "그 절반 중에 본인이 들어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EP.17 — 생명의 경중 (2025-11-13)

[원 소제목] 전호근 교수 (동양철학)
02:24:59

저는 사후는 어떻게 되는지 알 도리가 없고요. 살아 있는 경우에 생명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경중이 있을 수 없다,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02:26:39

공리주의 윤리관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요, 더 위독한 사람에게 가는 게 아니고 회복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가는데 — 그게 공리주의의 문제점이에요.

02:26:51

그건 일종의 전투 현장에서의 논리거든요. 빨리 치료를 해서 다시 현장으로 보내야 돼요. 그렇지 않은 사람을 치료해 봤자 전투력에 도움이 안 되니까 (손해)로 보는 거죠. 그게 (공)리주의의 약점입니다.

02:27:12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구든 그 처지에 처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죠. 누구를 꼭 위해서라기보다는.

02:28:25

현실 속에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좀 더 빨리 치료를 받고 더 귀한 약재를 쓸 수 있죠. 하지만 생명의 경중 때문이 아니라는 거죠 — 그건 돈의 힘일 뿐인 거죠.

02:28:48

돈을 가지고 약을 살 수도 있고 공로도를 높이 평가받아서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공적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돈이 많거나 더 공을 세운 사람에게 우선권을 줄 수 없다는 거죠. 캐나다 같은 경우가 그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죠. 미국 같은 경우에는 돈이 많으면 먼저 수술을 받을 수 있지만 (캐나다는) 그냥 순서대로 기다려야 됩니다.

02:36:22

(철학은) 들어도 아주 복잡합니다. 너무 다양해요.

02:36:26

동물과 사람의 위계를 인정하는 철학자들이 있고요 — 예를 들어 근대의 데카르트는 "동물은 기계와 같다"고 얘기하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도 위계를 다 구분합니다: 인간이 있고 동물이 있고 식물이 있고, 인간이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그다음 동물, 그다음 식물. 동아시아의 유가 철학자들도 이 만물 중에 가장 (귀)한 게 인간이에요 — 완전히 인간 중심주의예요. 그런데 노장철(학), 장자 이렇게 가면 구분이 없어요.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 죽는 거나 강아지 죽는 거나 똑같아요.

02:36:56

나비 한 마리 죽는 거나 똑같아요,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니까 생명은 자연에서 나온 거지 — 인간이 지금까지 단 한 개의 생명도 못 만들었거든요. 이규보 같은 철학자들은 "모기도 똑같은 생명, 미물이지만 똑같은 생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소도 안 먹어야 되겠다"(고 하는데) 그런데 소고기를 먹긴 먹었거든요. 하지만 그걸 끊으려고 엄청 애를 써요, 스스로 맹세하고 그럽니다. 못 끊어서 괴로워하면서도 어쨌든 끊으려고 하는 거죠.

02:37:25

그렇죠, 비건 선언을 하고 그래요.

02:37:28

근데 쉽게 되지는 않죠. 완전하게 못 했다고 해서 의미 없다, 이렇게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02:37:36

근대 철학자들은 대부분이 그렇죠. 데카르트가 그렇단 말이에요 — "강아지를 발로 차면 깨갱 소리를 내는 건 종을 망치로 때리면 땡그랑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만약에 데카르트를 이렇게 때리고 "아야" 그러면 "당신이 아야 하는 건 땡그랑 소리와 같다" — 인간기계론까지 가버립니다. 그러다가 이제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AI 휴머노이드가 나오겠죠. 그렇게 해서 인간을 맨 위로 두는 쪽, 인간과 동물 모든 생명체를 거의 같이 보는 쪽 이렇게 나뉘는데 (양쪽) 수가 거의 비슷합니다.

02:42:03

근데 그 둘 차이는 구분이 되죠.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동물을 이용하는 것과 인간이 그냥 먹는 것, 둘 차이가 있죠.

02:42:14

전자가 더 안 좋은 거죠.

02:42:26

네. 돼지 삼겹살 구워 먹는 것을 두고 윤리적으로 문제라고 (주장)하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거의 없고, 돼지의 장기를 연구해서 인간의 장기로 이식하자는 데에 반대하는 쪽은 굉장히 많습니다 — 이(게) 수단화한다는 거죠.

02:42:44

먹는 것은 수단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그냥 먹는 거죠.

02:42:49

사자가 동물들을 잡아먹잖아요. 그걸 비윤리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죠. 그런데 사자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동물을 이용한다 그러면 비윤리적인 게 되는 거죠. 그 차이가 있어요.

02:46:00

(MC "교수님은") 여러 철학에 여러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대표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저도 신부님과 비슷한 (입장입니다).

EP.18 — 체벌·인권 (2025-11-27)

[원 소제목] 전호근 교수
02:49:31

(추정) "과학적 연구 결과도 없습니다. 체벌을 했더니 성적이 올랐다 — 이런 연구 결과가 없습니다."

02:49:41

"당연히 안 되죠." (MC의 "교수님도 모든 체벌은 인권 침해라고 보시냐"에 대한 답)

02:53:26

(추정) "그랬다 하더라도 그냥 처벌이지 체벌은 아닙니다." / 02:53:32 "체벌은 이미 (정의상) 신체(에 가하는 것이니까)"

02:58:06

(추정) "권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를 빼앗는 거죠."

03:04:42

(추정) "인권이라는 건 기본권의 기본권이거든요. 최소한의 인권은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하더라도 지켜져야 되는 거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러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데, 인권은 밖으로 뭘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자유의 성격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권을 지킨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인권이 침해받지 않거든요."

03:05:10

(추정) "했죠. 그건 범죄였죠. 범죄니까 처벌을 하는 거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거죠."

03:05:17

(추정)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분노하죠. 흉악범을 … 호화롭게 살 게 아니죠."

EP.19 — AI와 인간 (2025-12-16)

[원 소제목] 전호근 (동양철학자) — MC가 "교수님"으로 호명
03:12:51

인간이란 존재가 참 특이하다. 다른 존재는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데 유독 인간만 "내가 누구인가"를 고민한다. 과거에는 호모 에티쿠스 — 인간은 윤리적 존재다, 다른 동식물은 윤리적 행위를 하지 않는데 인간은 한다(동양의 예(禮) 예제가 있고,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지적 체계가 있다). 호모 하빌리스 —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다.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존재다. 이런 식으로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해 왔다.

03:13:27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이 모든 게 다 무너졌다. 인공지능은 아마 인간처럼 혐오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보다 오히려 더 윤리적인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 인공지능은 놀이를 못 한다고 했는데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끼리 바둑을 두며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어 호모 루덴스도 무너졌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드론이 많으니 도구 사용에서도 인간만의 특징이 사라졌다. 상대가 인공지능인 한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정말 어려운 질문이 돼 버렸다.

03:14:06

"예, 답하기 정말 어려운데 오늘 이 시간에 답을 한번 찾아보죠."

03:36:42

(추정) 정리를 조금 다르게 할 수 있다 — AI가 만든 작품이 창작물이냐? 창작물이다. 좋은 창작물이냐는 다른 문제다. 저급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의 예술 활동은, 예를 들어 내가 그림을 잘 못 그려도 그리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고 이게 예술 활동이다. AI에게 명령을 줘서 그림을 그리게 하면 예술을 향유하는 활동은 없다. 그 활동까지 포함시켜 얘기하면 AI 창작 활동은 창작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은 가능하다. (확신도 중간 — 김석일 가능성 있음)

03:39:07

(추정)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방법도 있고 직접 예술 창작 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감동도 있는데, 나는 예술 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감동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AI와의 차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확신도 중간)

03:50:47

그게 단계로 나눠지기보다는 — 사실 자아실현을 정의하기가 힘든 게, 소속감이나 인정도 자아실현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노동 자체도 자꾸 직업과 연관시키니까 그렇지 직업이 아닌 자기 나름대로의 일이 있다 — 목공을 한다든지 취미로 조립을 한다든지. 인간의 삶이 굉장히 복합적이기 때문에, 내가 알기로 매슬로우가 비판받는 것도 편의상 나누지만 사실은 이게 다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송길영의 03:51:15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이 이 발언을 지목 → 귀속 확정도 상대적으로 높음)

EP.20 — 공정 (2026-01-09)

[원 소제목] 전호근 (동양철학자)
  • 이 구간 전사 내부에 전호근을 지목할 단서(호칭·자기지시·동양 고전 인용)가 하나도 없다. 명단상 참석은 확정이므로, 아래 '귀속 불명'에 모아둔 발언 중 상당수가 그의 것일 가능성이 높으나 전사 근거로는 특정할 수 없다.

EP.21 — 제사·눈치·배려 (2026-01-28)

[원 소제목] 전호근 (동양철학자)
04:25:37

비대칭 원칙 (MC의 첫 지명 "선생님"에 대한 답) — "배려를 받는 입장에서 권리라고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배려하는 쪽에서 '이게 나의 의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김석과의 배분은 추정)

04:33:42

본인 실천 — "저는 조금 있으면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데 아직은 비워둔다. 그게 규칙상 꼭 맞는 건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게 마음이 편하더라." / 04:34:01 "그렇다고 해서 말리거나 [하진 않는다]" / 04:34:03 "눈치도 안 준다.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게 강제된 건 아니니까."

04:34:10

조선 왕릉 어도 — "생각해 보셔야 할 게, 조선 시대 왕릉에 가면 길이 있는데 어도(御道)가 있다. 가운데 길은 임금만 걸을 수 있다. 임금이 없어도 누구도 그 길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건 그 존재에 대한 존중이고 공간적인 존중이다." (누군가 "[봉변] 당할까 봐 안 가는 거 아니냐" 반문 → "아, 그럴 수도 있죠. 근데…")

04:34:31

비워두기 강제 지지 — "물론 그런 절차도 있다. 본인이 노약자라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젊어도 내가 아프다[면]. 그런데 그렇지 않고 내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사회 전체가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다면 그 공간은 비워두는 걸 강제하는 게 맞다고 본다."

04:39:26

경계선 — "그 강제성이 어떤 법적 제재로 이어진다든지 하는 조짐이 있다면 위험한 것이다."

04:40:38

순치 vs 습 — "근데 그건 강제다. 왜냐면 처벌이 두려워서 옳은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 처벌이 두려워 훔치지 않고, 가져가지 않고, 학원 잘 가고 — 이건 순치(馴致)되는 것이다." (+ 농담 "저희 때는 적발이 잘 안 돼서요")

04:40:51

습·유전자-문화 공진화 — "아까 안강복 선생님 말씀하신 건 '습'이다. 그런 순치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눈치를 보고… 진화학자들도 요즘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을 주장하더라. 진화라는 게 불과 몇십 년, 몇백 년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데, 몇십 년·몇백 년 사이에 일어나는 건 문화적 형태가 마치 진화하는 것처럼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얘기했지만 성[리]학에서도 이야기하고 불교에서도 이야기하고 거의 똑같더라."

  • 귀속 근거: 안광복을 3인칭으로 부르므로 안광복 아님 + 성리학·불교 준거 = 동양철학자.

김석

서양철학자 · 건국대 철학과

출연 6/9 · 발언 블록 107

과학자기와 AI·공정기 양쪽에 배치돼 서양철학 좌표를 댄다.


title: 김석 — 서양철학자 (「철학을 보다」 EP.13~21 인물 비평) type: critique tags: [boda-philosophy-relay, critique, 서양철학, 정신분석]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현직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2018~). 이전 건국대 융합인재학부(자율전공학부) 교수(2009~2017), 철학아카데미·고려대·서울시립대 강의교보문고 인물
학부·석사건국대학교 철학과교보문고 인물
박사프랑스 파리 제8대학교 철학과, 2005년. 자크 라캉의 욕망 개념 연구 (스트라스부르대학 경유)교보문고 인물
전공서양 현대철학 / 정신분석(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 개념을 통한 한국 사회 집단심리 분석문학과지성사 저자
주요 저서『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2007), 『프로이트&라캉, 무의식에로의 초대』(2010), 『자아, 영원한 이방인』(2017), 『불안, 존재의 목소리』(2022), 『마침내, 고유한 나를 만나다』(2022), 『프로이트, 꿈의 해석』교보문고 · 알라딘 저자
역서베르트랑 오질비 『라캉, 주체 개념의 형성』, 『문자라는 증서: 라캉을 읽는 한 가지 방법』교보문고 · 알라딘
학회·기관건국대 대학원 문학예술심리치료학과 학과장, 건국대 한국사회정신분석연구소 소장, 한국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이사장 및 한국프랑스철학회 회장 역임알라딘 저자
방송 이력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e 「욕망의 철학자, 라캉 읽기」 등EBS 클래스e

본인 자기소개도 이와 일치한다 — 00:00:10 "서양 현대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건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석이다."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6/9 — EP.13(테세우스의 배)·EP.14(동물실험)·EP.15(자유의지) 과학자 패널기, EP.19(AI와 인간)·EP.20(공정)·EP.21(제사·눈치) AI·분배 패널기. 종교인 패널기(EP.16~18) 미출연.
  • 발언 블록 수(파일 실측): 107개 — EP.13 29 / EP.14 18 / EP.15 35 / EP.19 7 / EP.20 13 / EP.21 5.
  • 귀속 한계(중요): EP.13~15·EP.20은 원 소제목에 실명이 붙어 있으나, EP.19·EP.21의 김석 귀속은 실명 호명이 아니라 추정에 기반한다 — 정신분석·실존 준거의 연속성과 MC의 "교수님" 호명 순번이 근거이며, 분해 담당자가 04:42:15 블록에 "송길영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진 않음"이라고 명시해 두었다. 아래에서 EP.19·21 발언을 인용하는 항목에는 [추정 귀속] 표시를 붙였고, 이 두 회차만을 근거로 하는 단정적 평가는 내리지 않는다.
  • 맡은 기능 한 줄: 과학자·데이터 전문가가 던진 경험적 주장에 서양 개념사의 좌표(아리스토텔레스–칸트–로크–메를로퐁티–싱어/레이건–롤스–프로이트/라캉)를 대어 논점의 층위를 분리하는 역할 — 결론을 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무슨 종류의 질문을 하고 있는지"를 재정의하는 사람이다.

논증 스타일

1) 개념을 먼저 세우고, 사례로 착지시킨다 (그의 최상급 무기) 00:06:11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형상과 질료 개념을 가져오고 싶다." → 00:06:27 "화학적으로 사람의 형태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건 사람이 아니다 — 형상적인 부분이 없으니까." → 00:07:16 남대문 화재 복원("석축과 기단에 해당하는 부분이 남아 있었다") → 00:18:53 복제인간 → 00:20:39 "고흐가 그린 물감과 똑같은 안료를 사용해 똑같이 그렸다 해도 고흐의 작품은 아니다." 하나의 개념쌍을 네 개의 서로 다른 사례에 연속 적용해 청중이 개념의 경계선을 스스로 그을 수 있게 한다.

2) 자기 입장을 "무엇이 아닌지"부터 잘라내고 들어간다 00:40:01 "동물과 인간이 똑같이 대우를 받아야 된다, 이건 아닙니다." / 00:49:47 "저도 이제 동물 실험을 반대하지만 그게 인간과 동물이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이런 뜻은 아니에요. 그리고 모든 종들을 편견 없이 대해야 된다, 이것도 아니고." 찬반 포맷에서 자기 진영의 극단과 먼저 거리를 두어, 상대가 쉬운 허수아비를 못 세우게 만든다.

3) 주장에 시점·조건 인덱스를 붙인다 00:43:05 "오늘날까지 이런 필연적 과정에서 2024년 현재 동물 시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이 입장을 드리는 거지 원래 동물 실험은 처음부터 금지됐어야 된다, 제가 그 입장을 얘기하는 건 아니죠." / 00:50:30 "제가 아까 24년으로 시점을 한 건, … 이렇게 충분히 대체를 점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반대하는 거지." 반사실적 도발("그럼 옛날 사람들은?")을 논점 밖으로 밀어내는 정확한 방어다.

4) 상대 주장을 반박하지 않고, 주장의 범주를 검사한다 01:30:06 리벳류 실험에 대해 "몇 가지 제한된 조건의 실험을 가지고 '원래 뇌가 다 결정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 01:32:16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과 뇌과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이 상당히 다르다 … 학문 영역이 겹치다 보니 무의식에 대해 다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 01:34:06 "'무의식은 있는데 자유의지는 없다'는 서로 모순된 진술이다." 데이터로 데이터를 치지 않고 동음이의어 분리로 친다.

5) 이분법을 거부한 뒤 그 자리에 '수위'를 놓는다 01:12:25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완전히 대립되는 것 같지만 양립 가능하기도 하다" → 01:46:54 "완전한 자유의지는 없어요. …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결정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좀 어폐가 있다." 이 습관이 가장 실용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EP.21이다 — [추정 귀속] 04:26:02 "이게 예스·노로 대답할 건 아닌 것 같고 사회적 배려에 수위가 있는 것 같다. 반드시 서로 지켜 줘야 될 것 — 예를 들어 코로나 시기에 우리가 다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 버스에서 앉아 있는데 노인이 왔으니 양보해야 하지 않나 — 이건 또 아닌 것 같다. … 강제해야 된다는 건 아니라는 것. 대원칙은." 찬반 포맷 자체를 척도로 바꿔 놓고 두 극단에 실제 사례를 하나씩 꽂는다.

6) 후반 회차에서는 정신분석 어휘가 전면 도구가 된다 [추정 귀속] EP.13~15에서 주제마다 도구를 갈아 끼우던 방식과 달리, EP.19·21에서는 결핍·욕망·억압이 단일 렌즈로 작동한다. 03:26:24 "인간이 자신의 말이나 의식을 통해 표현할 때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게 정신분석 이론의 '결핍'이다. 그건 채워지지 않는다." / 03:32:25 "타자의 욕망이라 할 때는 … 내가 타자한테 인정받겠다는 욕망이 더 강하다." / 04:42:44 "욕망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길들여지는 법도 없다."

강점

1. 학술 용어를 청중 언어로 번역하는 데 성공한 구간이 실재한다. 형상/질료는 용어를 던지고 끝내지 않고 00:06:27(화학적 사람) → 00:07:16(남대문)로 두 번 풀었다. 피터 싱어의 고통 판별 기준도 00:46:42에서 "피하는 행동을 하거나 어떤 생리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단계가 있다고 치면 그거는 고통 가능성이 있는 거죠 … 대합조개 같은 경우 이게 있느냐 보면 약간 경계선에 있는 거예요"로, 원리 → 판별법 → 경계 사례까지 완주했다.

2. 논쟁의 이해관계를 드러내 토론의 판돈을 올린다. 01:19:39 "자유의지가 진짜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이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도덕에 유리하다고 없는 자유의지를 있다고 할 수도 없다." — 자기에게 불리한 방향의 규칙을 먼저 못 박은 뒤 논증을 시작한다. 이어 01:37:33 교부철학의 악의 문제, 01:40:23 보에티우스의 전지/전능 구분으로 같은 문제의 1500년 이력을 붙인다.

3. 반례를 반례의 논리로 되받는다. 칸트 사례(01:24:02)에 "그런 사람 몇 명이나 되냐"는 수 반박이 오자 01:26:35 "숫자가 많고 적음은 의미가 없다. 비록 매달리지 못했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못한 사람도 있을 것 … 자유의지를 실현하느냐 마느냐는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이 없다." 능력 존재 주장과 실현 빈도 주장을 분리한 정확한 수읽기다.

4. 권리의 근거를 '인간과의 유사성'에서 떼어낸다 — AI 회차의 최대 기여 [추정 귀속] 03:26:55 "우리가 로봇권만 말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는 자연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했지만 요즘은 생태적 관점에서 자연도 생명이고 존중해야 한다 — 자연권도 있다. 그런 식으로 로봇권을 인정하는 것이지, 얘가 특별히 인간을 닮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AI 논의가 거의 자동으로 빠지는 "얼마나 인간 같은가" 축을 끊고, 자연권이라는 이미 존재하는 선례로 대체한다. 같은 취지가 03:18:23의 "인간과 AI가 얼마나 닮느냐가 아니라, 그건 전혀 다른 방식의 종, 인텔리전스"에도 나온다.

5. 낙관적 서사에 역사적 반례를 꽂는다 [추정 귀속] 예의·에티켓이 발달하면 사회가 나아진다는 흐름에 04:42:15 "빅토리아 여왕 시대가 에티켓이 가장 발달했던 시대다. 그때가 매독이 가장 많이 퍼졌던 시기다. 그리고 불륜도 가장 많았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그때 나왔다"로 반대 방향의 사례를 놓는다(출처 문제는 약점 2 참조). 이어 04:42:44에서 그 구조를 현재로 옮긴다 — "지금은 실패를 용납하는 사회가 아니다. CCTV에 다 찍히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 억누르고 억누르다 이 에너지가 어디로 갈까?" 주제를 예절 예법 토론에서 사회 진단으로 끌어올린 유일한 발언이다.

6. 주제별로 도구를 갈아 끼운다 (EP.13~15 한정). 테세우스의 배는 아리스토텔레스, 몸 문제는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01:31:51), 동물윤리는 싱어·레이건·칸트(00:46:42, 01:00:39, 01:04:45), 공정은 롤스(03:59:12)다. 전공(정신분석)이 전면에 나오는 곳은 EP.15의 무의식 개념 구분(01:32:16, 01:34:06)뿐이며, 거기서도 자기 학파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두 학문의 용어 충돌을 정리하는 데 쓴다. 다만 이 절제는 후반 회차에서 유지되지 않는다(약점 5 참조).

약점·문제점

1. 결정적 대목의 칸트 용어를 끝내 풀지 않고 나간다. 01:04:45에서 구성적/규제적 이념 구분에 동물윤리 결론 전체를 얹어 놓고("그 이념 자체는 옳은데" 그걸 구성적 원리로 만들어 법제화하는 건 아니라는 것), 그 두 단어의 정의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01:09:59 "그래서 이제 규제적 이념이라고 하는 거예요"로 봉인한다. 앞의 형상/질료를 두 번 풀어낸 실력을 감안하면 이건 능력 문제가 아니라 배분 문제다 — 그의 최종 결론을 지탱하는 용어가 하필 미번역 상태로 남았다.

2. 경험적 사례를 출처 없이 인용하며, 이 습관이 여섯 회차에 걸쳐 반복된다. 01:12:52(EP.20) "하버드 대학에서 실험을 했는데 — '너는 5만 달러를 받고 다른 학생들은 만 달러를 받는다' … '너는 10만 달러를 받는데 다른 사람은 20만 달러를 받는다' … 그럼 대부분이 첫 번째를 택한다." 연구자·연도·표본이 없고, 이어지는 정규직/비정규직 결론 전체가 이 한 실험에 의존한다. 00:59:51 "'야생의 예절' — 저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읽은 책에서"는 불확실성을 스스로 고지한 점은 정직하나, 그 책에서 끌어온 규범이 그의 반대 입장을 조율하는 핵심 조항으로 쓰인다. [추정 귀속] 04:42:15는 같은 습관의 가장 강한 형태다 — "가장 발달했던 시대 / 가장 많이 퍼졌던 시기 / 불륜도 가장 많았다"는 최상급 세 개를 통계 근거 없이 연달아 놓고, 그 위에 04:42:44의 사회 진단을 얹는다.

3. 검증 가능한 연도가 어긋난 대목이 있다. 04:16:58 "2001년 월가 시위처럼 99% 1%" — 99%/1% 구호를 내건 Occupy Wall Street은 2011년이다. 다만 파일 다른 곳에 [ASR: …] 오인식이 다수 표시되어 있고 "2001"과 "2011"은 음성 인식에서 흔히 갈리므로, 이 항목은 화자 오류로 단정하지 않는다 — 원본 영상 대조가 필요한 사항으로만 표시한다. (같은 이유로 01:06:18 "피니어스 게이지", 01:32:16 "벤저민 리벳", 01:34:06·04:42:15 "프로이트", 04:42:15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파일 내 오인식 표기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다.)

4. 자기 영역 밖임을 선언한 직후에 그 영역의 단정을 낸다. 00:24:07 "모르겠다, 나는 과학을 하는 입장은 아니니까" 바로 뒤에 "그걸 정보만 떼어 전혀 다른 뇌에 집어넣거나 컴퓨터에 집어넣는 건 아니라는 거다"가 온다. 00:27:25도 같은 구조다 — "과학자들한테 반박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통 속의 뇌가 진짜 가능할까 싶다." 00:41:05 "그쪽은 제 영역은 아니지만 동물 실험의 결과가 과연 인간한테 적용되는가에 대한 반론이 생각보다 많은 거 같아서. 코로나도 그렇고." 겸양 표현이 앞에 붙어 반박의 표적이 흐려지는데, 정작 뒤 문장은 상대(과학자)의 전문 영역에 대한 실질 주장이다.

5. 자기가 상대에게 적용한 증거 기준을 자기 예측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추정 귀속] EP.15에서 그는 뇌과학 측에 "몇 가지 제한된 조건의 실험을 가지고 … 일반화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01:30:06)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그런데 EP.19에서 자신은 근거 제시 없이 미래 전칭 명제를 낸다 — 03:12:32 "AI가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되지?' 하고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인간과 차이가 없어지겠지만, 나는 철학하는 입장에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03:18:23 "질적인 차원에서 인간과의 차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이 관찰되면 이 예측이 틀린 것인지의 조건이 제시되지 않아, 상대가 반박할 표적이 없다. 여기에 03:26:24의 '결핍'과 03:32:25의 '타자의 욕망'이 전제 검토 없이 판정 기준으로 투입되면서, EP.13~15에서 보였던 도구 교체(강점 6)가 후반에는 단일 렌즈로 좁아진다.

6. 압박을 받으면 근거를 더 대지 않고 입장을 재천명하거나 원저자에게 넘긴다. 00:15:59 헌 부품 재조립 배 질문에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그럴 텐데, 그래도 나는 아니라고 본다" — 상대 논리를 인정한 뒤 결론만 유지한다. 01:25:21 칸트 사례에 대한 반문에는 "아니죠. 그건 이제 칸트한테 물어보시고." 자기가 끌어온 예시의 방어 책임을 원저자에게 이관하는 형태다. 00:31:48 "나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본다", 01:31:51 "내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라 메를로퐁티가…"처럼 권위 인용으로 방어를 마치는 패턴도 함께 나타난다.

7. 양쪽을 다 부정한 뒤 남는 명제가 얇아지는 구간. 자유의지 회차의 최종 위치는 01:19:06(100% 자유의지는 환상) + 01:46:54(그렇다고 결정되어 있다는 것도 어폐) + 01:34:59("자유의지보다는 '자유'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이다. 재정립의 방향은 제시되지 않고 회차가 끝난다. [추정 귀속] EP.21의 수위론에도 같은 잔여가 남는다 — 04:26:40 "경우에 따라서는 … 강제의 의미를 어떻게 두냐의 [문제]", 04:26:59 "공공의 안전이라든지 사회적인 질서가 깨질 수 있다 — 그럴 때는 당연히." 척도를 도입한 것까지는 정확하나 눈금(어디까지가 공공 안전인가)은 끝내 그어지지 않는다.

8. 논증이 아닌 촌평이 판정처럼 놓이는 짧은 순간 [추정 귀속] 03:12:15 "내가 왜 살아야 되지?"라는 실존적 물음을 인간의 표지로 세운 직후, 그런 생각 없이 사는 사람도 많다는 지적에 03:12:24 "그럼 이제 진상이 되거든"으로 응한다. 스튜디오 웃음을 겨냥한 재담으로 읽히지만, 바로 앞 명제의 반례로 제기된 사례를 논증 없이 처리해 버리는 자리에 놓였다. 그 반례는 그의 인간/AI 구분선("의미를 찾는가")에 직접 걸리는 것이었다.

반복 패턴

  1. 개념 도입 → 극단 사례 → 경계 사례 3단 구성 (형상/질료, 싱어의 고통 기준, 칸트의 두 교수대 사례, [추정] 마스크 vs 버스 양보).
  2. "~는 아니다"를 먼저, "~이다"를 나중에 — 자기 입장의 상한을 스스로 잘라내고 시작.
  3. 위계·수위는 인정하되 이분법은 거부01:01:27 "내재적 가치에도 위계가 분명히 있는 거죠", 01:00:39 "동물을 보호해 줘야 된다는 것과 동물의 행복을 보장해 줘야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 [추정] 04:26:02 "사회적 배려에 수위가 있는 것 같다".
  4. 논쟁의 역사적 좌표를 반드시 붙인다 — 그리스 시대(01:19:39), 교부철학(01:37:33), 보에티우스·데카르트 이신론(01:40:23, 01:41:39), [추정] 빅토리아 시대(04:42:15).
  5. 몸·결핍으로의 회귀 — 정체성은 "질료적인 것이 꼭 따라 들어가야 되는 거다"(00:10:44), "몸이 어떻게 보면 몸의 기억을 갖고 있는 거다"(01:31:12)로, 인간/AI 구분은 [추정]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결핍이 인간의 특징"(03:26:55)으로 수렴한다. 두 회차기의 종착지가 같은 형태다.
  6. 미시 사례를 거시 진단으로 확장 — 하버드 실험(04:12:52) → 정규직/비정규직 감정 → 04:14:08 97년 이후 평생직장 소멸 → 04:17:20 양극화·폭동. [추정] 빅토리아 시대(04:42:15) → 04:42:44 CCTV 사회의 억압 배출구 문제.

없었다면 잃었을 것

  • 동일성 논의의 좌표축. 테세우스의 배가 "직관 배틀"로 흐르지 않고 형상/질료라는 판별 기준 위에서 진행된 것은 00:06:11의 개념 투입 덕이다. 남대문(00:07:16)·고흐(00:20:29)·복제인간(00:18:53)이 하나의 기준으로 묶인 것도 마찬가지다.
  • 무의식 개념의 동음이의 해체. 01:32:16의 뇌과학적 무의식 vs 정신분석적 무의식 구분과 01:34:06의 "무의식은 있는데 자유의지는 없다는 서로 모순된 진술"이 없었다면, 리벳 실험이 자유의지 부정의 결론으로 그대로 굳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 회차 통틀어 가장 대체 불가능한 기여다.
  • 도덕철학의 판돈 명시. 01:19:39가 자유의지 논쟁을 사변적 취미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문제"로 격상시켰다.
  • 동물윤리의 스펙트럼. 싱어(공리주의)와 레이건(주체·내재적 가치)을 나란히 놓고 01:00:39에서 "공감의 반경을 넓혀가는 노력"으로 연결한 대목은, 찬반 이분법 포맷에 중간 지대를 만들어 준 유일한 구간이다.
  • [추정 귀속] AI 논의의 축 교체. 03:18:23·03:26:55가 "AI가 얼마나 인간을 닮았나"를 "권리는 유사성이 아니라 다른 근거에서 온다(자연권 선례)"로 바꿔 놓았다. 그리고 03:11:43의 "보편적인 지식의 생산에 종사하는 게 AI … 나의 실존적인 문제와 내 삶의 의미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을까"는 AI 유용성 논쟁을 성능 축에서 의미 축으로 옮긴 발언이다.
  • [추정 귀속] 예절 토론의 사회 진단화. 04:42:44 "지금은 실패를 용납하는 사회가 아니다 … 예의를 반강제당하는 이런 사회가 썩어가지 않나"가 없었다면 EP.21은 세대별 제사·눈치 경험담으로 끝났을 공산이 크다.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인용된 학자와 개념은 이름만 남는 경우가 있다. 특히 칸트의 구성적/규제적 이념(01:04:45, 01:09:59), 알프레드 멜(01:32:16), 그리고 [추정 귀속] 라캉적 '결핍'·'타자의 욕망'(03:26:24, 03:32:25)은 정의 없이 결론을 지탱한다.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원개념을 따로 확인할 것.
  2. 경험적 사례는 출처 미제시다. 하버드 보수 비교 실험(04:12:52), '야생의 예절'(00:59:51), 보스니아 전쟁 개 식량 공수(00:50:16), 3R(00:40:42), [추정 귀속] 빅토리아 시대의 매독·불륜 최상급 주장(04:42:15)은 모두 확인 가능한 출처 없이 제시된다. 인용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이 방송만으로는 검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3. "모르겠다 / 제 영역은 아니지만"이 붙은 문장의 뒷부분을 별도로 읽어라. 00:24:07, 00:27:25, 00:41:05는 겸양 뒤에 실질 주장이 온다. 겸양은 그 주장의 근거가 아니다.
  4. 미래 예측(AI)과 개념 분석을 구분해서 들어라. 03:18:23·03:12:32의 "차이는 없어지지 않을 것 / 그건 불가능하다"는 개념 분석의 결론이 아니라 예측이며, 반증 조건이 제시되지 않는다. 같은 회차의 개념 작업(권리≠유사성)과는 신뢰도를 다르게 두는 게 안전하다.
  5. 자막·전사에는 인명 오인식이 섞여 있다. 원본 파일 기준으로 피니어스 게이지·벤저민 리벳·프로이트·지킬 박사와 하이드·2001/2011년 표기에서 인식 흔들림이 확인된다. 인명과 연도는 화면 자막이 아니라 별도 확인이 안전하다.
  6. 결론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다. 그의 산출물은 대체로 "판정"이 아니라 "이 질문은 두 개의 다른 질문이다"라는 분해다(03:59:41 "저는 이제 두 차원이 좀 다르다는 것이고"). 그 분해가 유용한지는 시청자가 어느 층위의 답을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7. 이 문서의 귀속 범위. EP.19·EP.21 발언은 실명 호명이 아닌 추정 귀속이며, 원 자료가 그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본문에서 [추정 귀속]이 붙은 항목은 화자가 김석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상태의 평가다.
김석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3 — 테세우스의 배·나의 동일성 (2025-01-16)

[원 소제목] 김석
00:00:10

서양 현대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건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석이다.

00:01:52

[추정] 지금 이야기하실 때 사용하는 개념을 생각해 보시라 — "관찰의 주체", "대상", "연구", 이게 다 철학에서 나온 얘기다.

00:02:18

[추정] 고대에는 철학이 수학도 과학도 천문학도 했는데, 오늘날의 영역으로 나눌 수는 없다. 철학이 전문화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철학은 되게 어렵다, 난해한 얘기만 한다"는 비판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과학과 철학은 똑같이 진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통한다고 생각한다.

00:03:08

[추정] 긴장이 된다.

00:06:11

두 분 말씀을 종합하면서 내 나름대로 정리하면, 결과적으로 A는 테세우스의 배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형상과 질료 개념을 가져오고 싶다.

00:06:27

하나의 실체가 있기 위해서는 질료만 있어도 안 되고 형상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화학적으로 사람의 형태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건 사람이 아니다 — 형상적인 부분이 없으니까.

00:06:42

배가 화재로 다 소실돼 버려서 상상력에 근거해 새로 만들었다면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다. 그러나 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점차적으로 바뀌고 본질적인 게 유지되며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들이 있다면 — 그것이 유지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개보수가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건 테세우스의 배다. 완전히 불타 버리고 새로 만들었다면 아무리 그리스인들이 만들었다 해도 테세우스의 배는 아니다.

00:07:16

비슷한 사례가 우리나라 남대문 화재다. 결국 복원을 했는데, 그때 고고학자·역사학자들이 논쟁한 것 중 하나가 — 남대문이 완전히 탄 게 아니라 석축과 기단에 해당하는 부분이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살려서 복원하면 이건 남대문이다. 만약 잿더미 하나 안 남게 다 타 버렸다면 완전히 복원된 남대문은 일종의 모사품이 되는 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상과 질료 둘을 나눠서 보면 안 된다, 형상은 형상대로 질료는 질료대로 같이 있을 때 온전한 실체다라고 얘기한 게 이거다.

00:07:46

완전히 바뀌었다면 재고를 해봐야 되는데, 나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한테 정(情)을 받으면.

00:09:10

[추정] 위험할 수는 있다. 명명하는 것이 다 실체라면 없는 존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건 주몽이 쓰던 화살이다" 해서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다고 주몽의 화살이 되는 건 아니다.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00:10:02

[추정] 이게 일종의 규약에 의해 의자라고 불리는 건 맞다. 하지만 거기엔 연쇄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개념은 연쇄가 있다. 이걸 의자라고 부르는 순간 이렇게 생긴 것들은 다 의자가 되고, 원래 의자라고 불렀던 건 다른 무언가로 불려야 한다. 그 연쇄 속에서 나오는, 테세우스라는 인물이 있고 배라는 우리의 구조물이 있는 거다. 그러니까 그걸 테세우스의 안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규약으로 시작된 개념의 이름이 나중에는 연쇄에 의해 아무렇게나 불릴 수는 없는 거다.

00:10:38

[추정] (고등어를 오징어라 부르면) 오징어가 되긴 한다. 근데 오징어의 내용이 바뀌는 거지, 그다음부터 오징어라고 부를 뿐이다.

00:10:44

질료적인 것이 꼭 따라 들어가야 되는 거다.

00:15:26

(헌 부품 재조립 배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형상은 질료와 분리돼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활용되고, 이렇게 명명되고, 그쪽에 딱 전시됐을 때의 과정이 다 형상적인 것에 포함된다. 그걸 누군가 쪼개서 가져가 새로 만들었다면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는 아니다. 아무리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었어도 모양이 같은 것이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형상적 의미에서 동질적인 건 아니다.

00:15:59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그럴 텐데, 그래도 나는 아니라고 본다.

00:18:53

[추정] 내가 갖다 놨다고 그게 똑같은 건 아니다. 지금 의도성도 나오고 역사성도 나왔는데 사실 이 질문과 다 연관된다. 부품을 훔쳐다 똑같이 만들어도 아니라고 하는 건, 그것을 그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한 우리의 합의가 있기 때문이고, 이게 단순히 명명은 아니라는 거다. 비슷한 질문으로, 누군가 내 세포를 떼다 나랑 똑같이 생긴 애를 복제해 만들었다 해도 걔는 내가 아니다. 나랑 거의 100% 질료적인 일체감이 있어도, 나한테는 그 역사성이 내 경험과 내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걔는 그게 없다.

00:20:29

[추정] 지평이 다른 거다. 이걸 완전히 통으로 훔쳐 갔으면 그건 그거다(고흐 것이다). 그런데 쪼개서 다시 재구성했다, 몇 가지 다른 걸 섞었다면 이건 고흐의 그림이 될 수 없다.

00:20:39

[추정] 심지어 고흐가 그린 물감과 똑같은 안료를 사용해 똑같이 그렸다 해도 고흐의 작품은 아니다.

00:24:07

모르겠다, 나는 과학을 하는 입장은 아니니까. 우리의 뇌라는 것도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은데, 뇌가 곧 정보는 아니다. 그걸 정보만 떼어 전혀 다른 뇌에 집어넣거나 컴퓨터에 집어넣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랬을 때는 설사 성공한다 해도 다른 형태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 주는 것, 아무리 트랜스휴머니즘 논쟁이 있다 해도 몸에 해당하는 것 — 사진(외양)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나의 몸이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은 유지가 돼야지, 100% 정보로 바뀐다면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00:27:25

[추정] 과학자들한테 반박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통 속의 뇌가 진짜 가능할까 싶다. 사고실험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00:28:16

내 뇌가 매우 중요한 건 사실이나, 이 친구(뇌)만 있다고 해서 이걸 나라고 할 수 있느냐는 그렇게 볼 수 없다. 그게 현대 철학과 뇌과학이 많이 논쟁이 붙는 지점인 것 같다. 뇌과학이 극단적으로 가면 뇌의 작용 자체가 나라고 하는데, 좀 더 철학적 입장에서는 전호근 교수님이 말씀하셨듯 뇌를 가능하게 해 주는 신체적인 것, 그리고 주변의 여러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세계 — 이런 것이 나지, 그냥 달랑 뇌만 있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통 속의 뇌라는 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한 거다.

00:28:57

흔히 얘기하는 식물인간의 경우에도 뇌 활동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심지어 밖의 상황이 어떤지 눈으로 감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분이 그분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없지 않나.

00:29:37

[추정] 다른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느끼는 당혹 — 저 사람이 누구인가, 여러 속성이 달라졌을 때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다. "다른 사람"이라는 건 일종의 레토릭으로, 다른 사람처럼 느낀다는 의미이지 그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00:30:12

이건 조금 다르다. 뇌가 바뀌어서 몸과 어떻게 연결되느냐가 다를 것이다. 정보적 차원에서의 뇌가 아니라 체험의 근거로서, 지각의 토대로서의 뇌라고 한다면 머리가 완전히 바뀌면 바뀌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근데 현실적으로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00:31:12

그렇다면 나는 매우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트라우마 같은 걸 보면 결국 기억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몸의 문제이기도 하다. 몸이 어떻게 보면 몸의 기억을 갖고 있는 거다.

00:31:48

나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본다.

00:31:51

절차 기억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경험의 근거로서 몸이 갖는 것, 이건 단순히 뇌 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라 메를로퐁티가 『지각의 현상학』에서 주장한 게 그거다 — 내 몸은 살이면서 몸이면서 동시에 지각인 것이다.

00:33:29

그걸 (현대)철학에서 현상학적 경험이라고 한다. 우리의 주관이라는 게 단순히 어떤 인지나 정보로만 환원되지 않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정신 병리 같은 걸 치료할 때도 산책이나 운동이나 여러 가지를 권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최종적으로 뇌의 변화도 가져오고 뇌가 또 몸에 역으로 작용하고 — 이런 과정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자꾸 통 속의 뇌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거다.

00:34:17

[추정] 조금 추상적일 수도 있는데 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살려고 하는 의지도 있고 뭔가 작용하려고 하는 의지도 있고, 단순히 동물적인 존재가 아닌 것은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의지적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욕망일 수도 있고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 철학적으로 보면 우울증은 의지를 다 잃어버리고 더 이상 살 의미를 못 느꼈을 때다. 빅터 프랭클이 로고테라피에서 그걸 주장한다 — 치료의 근본은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주는 거다. 의미는 개인에게는 의지로 나타난다. 아무리 죽을 상황이라도 의지가 있으면 이겨내지만, 사지가 멀쩡해도 의지적인 게 훼손되면 더 이상 그 사람은 좀비같이 되는 거다 — 살아 있는 시체.

EP.14 — 동물실험 (2025-01-30)

[원 소제목] 김석 (건국대 철학) — 동물실험 반대
00:38:53

"사회자가 명확한 걸 원하니까 저는 이제 반대입니다." (MC의 "사람이 죽는 게 낫겠다" 도발엔 "아니, 그 얘기는 아니죠.")

00:40:01

반대 이유 — 피터 싱어처럼 육식을 전혀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동물과 인간이 똑같이 대우를 받아야 된다, 이건 아닙니다." 다만 동물실험의 역사나 실제 장면을 보면 "동물이라는 걸 거의 이렇게 도구로서 가정을 하게 되는데", 반려동물을 보면 감정을 느끼고 고통과 쾌락도 느끼고 친밀한 반응도 있으므로 "그거를 실험의 대상으로 한다는 그 생각이랑 반대를 하는 거죠."

00:40:42

현행 동물실험의 이유 인정 — "신약이나 뭐 새로운 것들이 나올 실험을 해야 되는데 사람에 대한 실험이 금지돼 있으니까." 과학계도 줄여 나가는 추세이며 3R(리플레이스먼트, 리덕션…)이 있다.

00:41:05

"그쪽은 제 영역은 아니지만 동물 실험의 결과가 과연 인간한테 적용되는가에 대한 반론이 생각보다 많은 거 같아서. 코로나도 그렇고. 그래서 사실은 무엇을 위한 실험인가에 대한 의문을 좀 갖게 되는 거죠."

00:43:05

"가정은 의미가 없죠. 왜냐면 사실은 사람에 대한 실험도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상당히 제약 발전에 기여한 것도 있고." 따라서 "오늘날까지 이런 필연적 과정에서 2024년 현재 동물 시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이 입장을 드리는 거지 원래 동물 실험은 처음부터 금지됐어야 된다, 제가 그 입장을 얘기하는 건 아니죠."

00:46:31

인간중심주의 인정 + 객관화 시도 — "인간 중심(적)인 건 맞는데 철학자들이 그런 문제를 조금 더 객관화하기 위해서 어느 동물선까지를 (구분하려 한다). 먹을 수 있는 존재인가라고 하는 (기준)."

00:46:42

피터 싱어의 기준 — 먹는다는 것은 실험할 수도 있는 것. 어떤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피하는 행동을 하거나 어떤 생리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단계가 있다고 치면 그거는 고통 가능성이 있는 거죠." 인간은 당연히 있고 "쭉쭉 내려와서 예를 들어 대합조개 같은 경우 이게 있느냐 보면 약간 경계선에 있는 거예요. 생리학적으로 분석을 하는 거예요. 여긴 과학적인 연구가 개입되는 거죠… 그러면 그거는 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의 논리는 그거예요."

00:49:47

"입장이 비슷한데 저도 이제 동물 실험을 반대하지만 그게 인간과 동물이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이런 뜻은 아니에요. 그리고 모든 종들을 편견 없이 대해야 된다, 이것도 아니고." 사고실험을 극단화하면 "동물을 구하는 경우와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있으면 당연히 사람을 구하지 동물을 구하지 않는다."

00:50:16

보스니아 전쟁 때 프랑스 여배우가 개들 식량을 공수해 난리가 난 적이 있다 — "사람도 죽어 가는데 개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입장을 옹호하는 건 아니고."

00:50:30

"제가 아까 24년으로 시점을 한 건, 물론 아직은 생물학이나 과학 기술이 완벽하지 않지만 이렇게 충분히 대체를 점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반대하는 거지, 모든 동물 실험이 다 잘못돼 있다고 (하는 건) 아니다."

00:59:51

'야생의 예절' — 저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읽은 책에서, 야생의 예절이란 "무조건 동물을 안 죽이고 그러는 게 아니라 동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잡아먹는 거는 괜찮다"는 것. "재미로 죽인다든지 과잉 학살을 한다든지 이거는 아닌데, 동물들을 대우해 주면서 먹는 거는 전혀 윤리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01:00:17

재미로 하는 사냥은 "동물을 도구처럼 대하는 거죠. 동물의 방식을 존중하는데 우리도 먹을 게 있어야 되니까 동물을 죽여야 된다, 이거는 괜찮다."

01:00:39

톰 레이건과 공감의 반경 — "종차별주의는 아니지만 사실은 같은 존재라고 그래도 위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적 입장만 얘기했지만 "톰 레이건 같이 주체로서 동물들을 바라보면 충분히 그들을 존중할 이유가 있어요." 다만 그것이 모든 동물이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뜻은 아니며 "동물을 보호해 줘야 된다는 것과 동물의 행복을 보장해 줘야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 그리고 "장대(익) 교수님의 책에서 공감의 반경이라는 개념이… 인간 사회에 대한 이야긴데 그 개념이 동물에 대해서도 확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감을 느끼는 그 바운더리를 딱 어디로 선을 그을 게 아니라 그 반경을 넓혀가는 노력을 하기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01:01:27

"이렇게 정한 다음에 꼬마 선충 오케이, 강아지 노 그렇게 하지 말고, 회피와 고통 이전의 동물들은 다 각각의 가치. 레이건식으로면 내재적 가치가 있는데 내재적 가치에도 위계가 분명히 있는 거죠."

01:04:45

칸트의 구성적/규제적 이념 — 제사 같은 의식도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어떤 도구로서는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예의란 극단적 제사만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동물들을 죽이지 않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지 않는 이런 걸 다 포함하는" 것이며, 이를 표방하는 사회와 "어차피 이렇게 죽이나 저렇게 죽이나 똑같은데" 하고 지나가는 사회는 다르다. "칸트식으로 얘기하면 동물도 우리와 똑같은 어떤 존재니까 존중해 줘야 된다라는 그 이념 자체는 옳은데", 그걸 구성적 (원리)로 만들어 법제화하고 "너는 이렇게 해야 되고, 동물실험 반대한다면서 소고기는 먹을 수가 있나" 이렇게 하는 건 아니라는 것. "그 원칙(을 규제적 이념으로 두는) 게 사회 진보에는 굉장히 필요한 거고 결과적으로 동물들한테도 중요하다."

01:06:18

동물실험 없이 이룬 의학 진보 — "사람에 대한 뭐 많은 발견도 수술이라든지 어떤 사고를 당한 (환자를) 처리하는 데서 나온 것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예: 피니어스 게이지[ASR: 니어스 게이지] — 쇠막대기[ASR: 세모궁둥이]가 관통해 "전두엽이 완전히 망가졌는데 그걸 토대로 해서 인간의 전두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하는 연구가 굉장히 많이 나왔거든요.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발전을 한 거지 모든 상황을 실험을 통해서 하는 건 아니니까."

01:09:59

"그래서 이제 규제적 이념이라고 하는 거예요."

01:11:28

"분명한 거는 저는 이제 동물 실험을 반대하지만 고기를 먹지 말란다고 (하는 건 아니다)."

EP.15 — 자유의지 vs 결정론 (2025-02-13)

[원 소제목] 김석 (서양철학자, 건국대)
01:12:25

오프닝 입장 —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완전히 대립되는 것 같지만 양립 가능하기도 하다. 나는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결정론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특히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결정론을 따른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영역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01:12:46

"그거는 우리가 거스를 수가 없죠. 예를 들어 제가 100년 안에 죽을 것이다, 이런 걸 어떻게 거스르겠어요?" 인간의 실존을 포괄하는 여러 조건들 — 생명체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 자연의 여러 법칙들은 내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01:19:06

자유의지를 자꾸 통제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내가 뭔가를 통제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순수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의 자유의지는 사실 없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모든 영향을 받고, 내부에서도 뭔가가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내가 결정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지막에 숙고하고 판단해 보고 가끔은 결정을 뒤집으려 하는 이런 것들을 얘기해야지, 100% 자유의지가 있다는 건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얘기고 환상이다.

01:19:39

도덕철학적 함의 — 자유의지가 진짜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이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도덕에 유리하다고 없는 자유의지를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철학자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게, 양립 불가능하고 결정론이 맞고 자유의지는 없다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모든 도덕철학의 근거가 흔들린다. 이 맥락은 오늘날 제기된 게 아니라 그리스 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게 결정돼 있으면 덕을 얘기하고 인간에 대해 성찰할 것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그걸 이어받은 중세에서도 창조론과 인간의 죄가 양립 불가능하다 — 이미 다 예정되어 있는데 왜 인간에게는 죄라고 하느냐. 그러니 이건 사변적 관심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필요한 문제로, 인간의 선택이 어디까지 주어질 수 있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01:21:11

"그건 이제 반사행동이죠. 반사행동. 의사결정을 하는 게 아니고, 생존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뭔가를 피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

01:22:00

"그건 진화학적인 관점인데,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행동이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01:23:22

거기서 반사행동·피하는 행동을 넘어서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딜레마 같은 상황을 만들어 준다.

01:23:38

"제3자, 나랑 상관없는 아이가 있어도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얘를 살릴 수 있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거죠."

01:24:02

칸트의 두 사례 — "그게 지금 정프로님이 당연한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칸트가 이미 그 예를 들었어요." ① 바깥에 교수대가 있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이 여인과 동침하면 너는 교수대에 걸린다 — 그러면 아무도 안 한다, 자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② 네 친구가 있는 데를 밀고하면 살고 밀고하지 않으면 너는 매달린다 — 그러면 매달릴 사람들이 있다. 칸트는 도덕이 얼마나 자유의지로부터 나오는가를 이 예시로 얘기한다. 모든 사람이 그런다는 건 아니다.

01:24:36

"그런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영향이 있다라고 하는 게 자유의지의 되게 핵심인 거죠."

01:25:21

"아니죠. 그건 이제 칸트한테 물어보시고."

01:26:33

"그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 01:26:35 숫자가 많고 적음은 의미가 없다. 비록 매달리지 못했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실현하느냐 마느냐는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이 없다.

01:30:06

리벳류 실험에 대한 반박 — 이런 실험이 굉장히 많고, 현대 뇌과학에서 그런 메커니즘을 많이 탐구한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것들이 결정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무의식은 심리적인 것이라기보다 생리적 작용이다. 사실은 반론이라기보다 인간의 선택은 그렇게 단순하게 내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측·우측을 고른다든지 가위바위보를 낸다든지 하는 선택에서는 뇌의 메커니즘이 그렇게 작용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가위바위보가 아니다 — 뒤집고 또 생각하고 뒤집고 또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가도 다시 번복하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제한된 조건의 실험을 가지고 "원래 뇌가 다 결정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01:32:04

~01:32:12 "지극히 깔끔하게 정리를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 '무의식'이란 말이 상당히 좀 마음에 안 들어요."

01:32:16

무의식 개념 분리 —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과 뇌과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이 상당히 다르다. 뇌과학의 것은 말 그대로 나도 모르는 생리적인 것, 특히 뇌의 자율적인 작용이 결정하는 것을 무의식이라 부른다(그래서 『굿바이 프로이트』 같은 책도 있다). 반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건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것들이고, 사회적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게 무의식이지 타고난 기제 자체가 무의식은 아니다. 벤저민 리벳[ASR: 벤자민 니벳] 같은 실험은 뇌과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에 훨씬 가까운데, 학문 영역이 겹치다 보니 무의식에 대해 다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현대 정신분석이나 철학에서 얘기하는 무의식은 더 넓은 의미이고, 미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멜 같은 사람이 얘기하는 건 의식적인 것도 있고 몸의 작용도 있고 다 포함한 총체적인 과정이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01:33:44

환공포증 답변 — 환공포에 대한 처방도 다 다르다. 인지치료가 그런 걸 한다 —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자꾸 설명해 주고 그 자극에 노출시킴으로써 점점 극복하게 한다. / 01:33:57 생리적으로 얽혀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 의지가 아니라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것들이다.

01:34:06

"원래 프로이트[ASR: 프로젝트]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만든 건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서였거든요." 무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생리적 현상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의식'이란 말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무의식은 있는데 자유의지는 없다"는 서로 모순된 진술이다. 무의식이 있는 것처럼, 그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 자유의지도 있고 의식도 있는 것이다.

01:34:57

"자유의지가 있다고 그걸 다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01:34:59

인정과 재정립 — 나에게 안 좋은 습관처럼 통제하고 싶은데 아무리 의지를 발휘해도 안 되는 것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아니고, 자유의지보다는 '자유'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의식에 대해서도 프로이트는 "내가 모르는 진실"이라 했다 — 무언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긴 하지만 이걸 단순히 뇌의 작용이나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처럼 얘기하면 안 된다.

01:37:33

교부철학 — 고대 교부철학에서 인간의 죄를 그런 식으로 묻는다. 신은 다 볼 수 있고 창세 전에 전지성·전능성이 있으니, 신이 만든 세계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선악과를 왜 먹어야 하지. 그럼 원래 선악과를 먹게 되어 있는 걸 신이 알고도 만들었다는 얘기가 되고, 그럼 아담은 죄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을 논증하는 것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었다.

01:39:33

반박 — 인간이 의지를 갖는다는 게 그런 것들(생리적 조건)을 거스른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선택을 놓고 늘 고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 사이코패스나 심신미약이라 해도 마냥 관용할 수 없는 게, 그래도 이 사람들이 "이 행동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래놓고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원래 성향이 그렇다 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정확히 로크가 "결정론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도덕적 책임을 그 사람한테 물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01:40:10

"저는 믿죠.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인." / 01:40:15 전지전능의 의미가 문제인데, 신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01:40:23

보에티우스 — 전지와 전능을 동의어처럼 쓰는데, 로마 시대 보에티우스가 이미 예견했듯 신은 모든 걸 보는 전지한 존재지만 그건 과거·미래를 한 번에 우리와 다르게 보는 초월적 존재라는 뜻이지, 그때그때 개입하는 존재는 아니다. 신의 전지성이 인간의 선택권과 양립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는 논쟁은 이미 있었다.

01:40:46

만약 신에 의해 내가 지금 물 마시는 것까지 결정돼 있다면, 나는 도덕이나 종교나 내 삶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전혀 할 수가 없다.

01:41:13

"신이 안다는 것과 신이 그것에 개입해서 먹게 한다는 건 다른 것이다. 먹게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이 먹을 걸 알고 있는 것이다."

01:41:56

"신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이,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신한테 있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 대해서도 신에게 똑같이 책임이 있는 게 된다.

01:41:39

이신론 — 계획하지 않아도 철학에서는 이신론이라 해서 신의 설계대로 됐지만 개입하지 않는다는 걸 데카르트도 이미 얘기했다. 신이 개입하다 보면 굉장히 모순된 것들이 생긴다 — 두 나라가 전쟁하는데 똑같은 신이면 누구 편을 들어줄 것인가 같은 문제가 벌어진다.

01:45:08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증거를 가지고 논증하겠어요? 다만 반대로 가져가는 것 — '난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01:45:22

우리의 선택은 지나놓고 보면 어떤 원인이 있었지만 당시엔 모르는 것이고 다 불투명하다. 그래서 인간에게 의지가 되게 중요한 것 같다 — 이쪽을 선택할 것인가 저쪽을 선택할 것인가. 실험심리학이나 뇌과학의 뇌파 측정만으로 인간의 고차원적인 결정을 다 설명하는 건 굉장히 문제가 있다.

01:45:46

극단적 실험 반례 — 리벳 실험처럼 왼쪽을 누를지 오른쪽을 누를지 결정하는데 왼쪽을 누르면 네 자식이 좋고 오른쪽을 누르면 네 배우자가 좋다면 어떻게 할래? 그렇게 쉽게 좌우를 결정 못 하고 계속 딜레마를 겪을 것이다.

01:46:54

"그래서 아까 저도 서두에 말씀드린 게 완전한 자유의지는 없어요. 사실 뭔가가 작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결정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좀 어폐가 있다."

01:48:18

지젝 — 시뮬레이션 하니까 슬라보예 지젝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가 떠오른다.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파란약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서 나오는 핵심 논지 중 하나가 인간의 삶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컴퓨터적인 설계에서는 오차 하나 없이 다 설계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가다가 뭔가가 작용해서 뒤엉켜지는 것이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

01:48:45

그렇게 뒤엉키는 것들이 결국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것이지, 어떤 슈퍼컴퓨터가 나온다고 해서 10년 후·20년 후를 정확히 예측하고 터미네이터처럼 뭔가를 설계할 수 있을까 —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01:49:28

"근데 저는 그 오류라는 게 우리 삶의 모습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오류 자체가."

01:49:35

"그런 가능성도 있죠. 가끔 오류 같은 애들이 있거든요." / 01:49:41 "뭔 이해할 수가 없는 애들." / 01:49:44 "스미스 요원은 인간을 오류라고 보는 거죠."

EP.19 — AI와 인간 (2025-12-16)

[원 소제목] 김석 (서양철학자) — 실존·정신분석 준거
03:11:43

아까 안광복 선생님께서 의미를 깊이 파고든다고 하셨는데, 거기서 '의미'는 일반적 의미가 아니라 나한테 주어지는 의미다. 보통 고유성이라 불리는 그 의미에 있어서는 인공지능은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지식의 생산에 종사하는 게 AI라서 유력한 동료이자 조수 노릇은 아주 잘할 것 같은데, 나의 실존적인 문제와 내 삶의 의미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을까 — 그게 기계와 우리의 차이가 아닐까.

03:12:15

"내가 왜 살아야 되지? 왜 나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되고." / 03:12:24 (그 생각 안 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는 말에) "그럼 이제 진상이 되거든."

03:12:32

만약 AI가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되지?" 하고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인간과 차이가 없어지겠지만, 나는 철학하는 입장에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살아야 되고 왜 인간을 위해 이 일을 해야 되지?" — 그러면 걔도 인간이 되는 것이냐.

03:18:23

AI를 어떻게 대우하냐는 태도는 굉장히 논란이 많다. 동물권처럼 로봇권 얘기도 나오고, 얘네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할지 얘기가 된다. 점점 넓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질적인 차원에서 인간과의 차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과 AI가 얼마나 닮느냐가 아니라, 그건 전혀 다른 방식의 종, 인텔리전스다. 우리가 사고하고 느끼는 것과 AI가 사고하는 건 다르므로 누가 더 우월하냐, 완전히 우리를 대체할 수 있냐는 아니다. 언젠가 로봇과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런 에피소드가 "AI가 인간이 되었다"는 건 아니다.

03:26:24

한계성이기도 하고, 또 인간이 자신의 말이나 의식을 통해 표현할 때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게 정신분석 이론의 '결핍'이다. 그건 채워지지 않는다. 만약 AI가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갖는다면 결국 무한을 지향하게 되고 유한성과 무한을 고민하게 되니 거의 인간과 같아지겠지만, 인간의 인지 방식과 유사해진다는 것만으로 AI가 언젠가 인간과 차이가 없어질 것이라는 건 아니라고 본다.

03:26:55

로봇권도, 우리가 로봇권만 말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는 자연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했지만 요즘은 생태적 관점에서 자연도 생명이고 존중해야 한다 — 자연권도 있다. 그런 식으로 로봇권을 인정하는 것이지, 얘가 특별히 인간을 닮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결핍이 인간의 특징이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니, 실존주의가 말하는 인간의 고통도 그런 것이다.

03:32:25

욕망이 본능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 —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성욕이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게 그런 이유다. 그런데 보통 타자의 욕망이라 할 때는 남의 욕망을 질투하고 갖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타자한테 인정받겠다는 욕망이 더 강하다. 두 가지가 다 있고, 내 욕망이 타자의 욕망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다. AI에 적용해서 그게 자부심이나 삶의 이유가 되면 거의 인간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EP.20 — 공정 (2026-01-09)

[원 소제목] 김석 (서양철학자)
03:59:12

결과의 평등이라기보다 이제 롤스가 말했듯이 최소 수혜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 — 이건 공정보다는 복지나 공동체적 차원에서 얘기되는 것 같고, 기회 균등은 오늘날 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결과보다는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게 "왜 저 사람은 혜택을 받아서 저 학교를 들어가고, 왜 저 자리에 들어가고" 이런 것들이지,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를 가지고 많이 따지는 것 같지는 않다.

03:59:41

저는 이제 두 차원이 좀 다르다는 것이고, 결과의 공정은 사실 사회 복지에 관계된 거니까 좀 다르게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앞의 기회의 균등은 정말 그게 공정함일까 —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우리 사회에서 특히 지금 젊은 세대가 공정함을 굉장히 부르짖는데 보면 그것도 또 자기들 입장에서 하는 경향이 많다. 예를 들어 의대 관련 이런 걸 보면 사회 전체 차원의 공정함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보느냐 안 보느냐"의 문제로 변질된다.

04:00:29

그런 사람도 얘기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 "능력이 높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왜 그러냐" 이런 식. [확신도: 중]

04:06:23

우리는 지나치게 서열화 돼 있다. 예전 양반 이런 건 아니지만 오늘날은 사회적 계층이나 돈에 따라 서열화 돼 있고, 기회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공정함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게 딱 어떤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그게 다 보장이 되는 시스템이다. 그 뒤에 경쟁을 해서 또 보여 주는 게 아니라 — 고시라는 게 전형적인 형태다. 그러다 보니 아까 송대표님이 말씀하셨듯이 자기가 퍼포먼스를 내서 하는 것도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개인들이 시도해 보거나 기존 시스템을 벗어나는 걸 해 볼 수 있는데, 기존 시스템들은 어느 정도에 도달한 사람한테는 어느 정도를 꼭 보장해 주려고 한다 — 명문대 같은 게 그런 방식이다. 그래서 공정 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제한된 기회로 부여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나.

04:07:11

공대 (입시) 같은 데 있어서 소위 명문대라는 학교의 학생들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나 (지역)할당 등으로 들어온 학생들에 대해 굉장히 적개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저도 듣긴 했다.

04:12:09

근데 박사님(송길영) 말씀하신 건 효율 중심의 이야기인데, 효율로 보더라도 이제 그게 바뀔 때가 된 것 같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쪽은 정규직 집단으로 보호를 받고, 똑같은 일을 하고 혹시 더 나은 성취를 거두어도 비정규직 쪽은 늘 신분이 불안하다. 이게 정당하냐고 물었을 때 답하기가 쉽지 않다.

04:12:40

"그런 예가 없죠. 직업군하고는 다르죠." / 04:12:43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04:12:52

그와 관련된 재미난 실험이 생각나는데, 대우를 잘해 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실험을 했는데 — "너는 5만 달러를 받고 다른 학생들은 만 달러를 받는다"가 첫 번째, "너는 10만 달러를 받는데 다른 사람은 20만 달러를 받는다"가 두 번째. 그럼 대부분이 첫 번째를 택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망이란 게 절대적인 만족이 아니라 얘가 나랑 비교해서 어떤 대우를 받나이고, 이런 것들이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쟁 사회에서는 굉장히 심하게 나타난다. 내가 정규직이고 이 사람이 비정규직인데 정규직으로 올라오는 게 나한테 손해는 없더라도 싫은 것이다. 그게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 그렇다 보니 과정의 공정함에 지나칠 정도로 매달리는 것 같다. 근데 그 과정의 공정함이 정말 배려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냐가 아니라 뭔가 소수를 잘 뽑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돌아가냐의 문제다. 앞으로 개인이 과거처럼 평가되지 않고 경량화 사회에서 더 가속화된다면 공정함의 기준이 또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04:14:08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97년 이후로 너무나 불안정해졌다 — 평생 직장 개념이 없어져 버렸다.

04:16:58

근데 미국도 보면 2001년 월가 시위처럼 99% 1% 이런 것들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 같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더구나 AI로 전문화되면 정말 엄청난 고소득자와 정말 형편없는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 — 우리 사회도 미국도 극단화되는 경향과 연관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니까 사회 자체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04:17:20

양극화가 심해지면 폭동이 날 수도 있고 굉장히 불만이 많아진다.

04:21:08

저는 경우에 따라서 못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 왜냐면 장발장법인가 이런 경우들도 충분히 있을 수가 있기 때문에.

04:24:03

근데 아마 앞으로 AI를 사법 체제에서도 많이 활용하지 않을까. 근데 그래도 정말 마지막은 인간이 하는 걸 다 원할 것 같다.

EP.21 — 제사·눈치·배려 (2026-01-28)

[원 소제목] 김석 (서양철학자)
04:26:02

수위론 + 코로나 마스크 (MC의 "우리 교수님" 지명에 대한 답)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이런 거네요. 그러니까 이게 예스·노로 대답할 건 아닌 것 같고 사회적 배려에 수위가 있는 것 같다. 반드시 서로 지켜 줘야 될 것 — 예를 들어 코로나 시기에 우리가 다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물론 법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마스크를 안 쓰면 안 좋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외국에서도 놀랄 정도로 다 마스크를 썼다. 그런 것과, 버스에서 앉아 있는데 노인이 왔으니 양보해야 하지 않나 — 이건 또 아닌 것 같다. 배려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강제해야 된다는 건 아니라는 것. 대원칙은."

04:26:40

"예.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 그러니까 강제의 의미를 어떻게 두냐의 [문제]. 예, 아무래도 코로나처럼."

04:26:59

(MC의 '눈치 주라는 말이냐'에 대한 부정) "아니죠. 그럴 때는 그냥 개인한테 맡겨 두는 거고, 공공의 안전이라든지 사회적인 질서가 깨질 수 있다 — 그럴 때는 당연히 [강제가 간다]."

04:42:15

프로이트·빅토리아 시대 — "진[화론]이 놓치는 게 하나 있다. 프로이트[ASR: 프로이드] 얘긴데, 빅토리아 여왕 시대가 에티켓이 가장 발달했던 시대다. 그때가 매독이 가장 많이 퍼졌던 시기다. 그리고 불륜도 가장 많았다. 그때 소설 보면 다 불륜 얘기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ASR: 치킬 박사와 하이디]도 그때 나왔다. 그러니 예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일탈]도 많을 수 있다." (이어지는 주고받기 — "자기가 이제" / "억눌린 욕망" / "억눌린 욕망이 어디선가 터지는데" / "[왜곡되게] 나타나겠죠")

04:42:44

억압의 출구 걱정 — "전 약간 걱정되는 게 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소하느냐? 욕망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길들여지는 법도 없다. 그러니 이걸 건강한 배출[구]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실패를 용납하는 사회가 아니다. CCTV에 다 찍히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끝난다]. 억누르고 억누르다 이 에너지가 어디로 갈까? 사회가 안전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얘기하며 탈출구를 열었던 것처럼, 예의를 반강제당하는 이런 사회가 썩어가지 않나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귀속 근거: 프로이트·정신분석 준거의 연속 블록 = 서양철학 슬롯. (송길영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진 않음)

김범준

물리학자 · 성균관대 물리학과

출연 3/9 · 발언 블록 47

"철학의 로망을 가진 통계물리학자"로 자기 위치를 선언하고 들어온 외부인.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생년1967년위키백과
학력서울대 물리학과 학사·석사·박사 (1986 입학, 통계물리학 전공; 박사는 초전도 배열 이론)위키백과 · 나무위키
경력스웨덴 우메오대 → 아주대 →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2005.09~)위키백과
학회한국복잡계학회(KACS) 회장 (2015.11~2016.11)위키백과
전공통계물리학·복잡계물리학 (상전이, 임계현상, 비선형 동역학, 때맞음)위키백과 · KIAS HORIZON
주요 저작『세상물정의 물리학』, 『관계의 과학』, 『전산물리학』(공저), 『범준에 물리다』, 『과학을 보다』 시리즈교보문고 · 예스24 · 예스24 『과학을 보다』
수상용봉상(2006, 한국물리학회 · 40세 이하 통계물리학자) ·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2015, 『세상물정의 물리학』)위키백과
미디어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2016) → 유튜브 《보다 BODA》 「과학을 보다」 출연(2023~), 개인 채널 《범준에 물리다》(2023.09~)나무위키

즉, 「철학을 보다」에서 그는 자매 시리즈에서 이미 검증된 진행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이 시리즈의 주제에는 외부인이라는 이중 위치에 있다. 이 문서는 그가 스스로 선언한 계약 — "철학의 로망을 갖고 있는 통계 물리학자, 전문 철학자는 전혀 아니다"(00:00:23, 00:00:43) — 안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를 평가한다.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EP.13(테세우스의 배·나의 동일성) · EP.14(동물실험) · EP.15(자유의지 vs 결정론). EP.16 이후 불출연.
  • 발언 블록 수(원본 파일 직접 집계): 총 47 — EP.13 15, EP.14 4, EP.15 28. 분포가 지극히 불균등하다. 전체의 60%가 EP.15 한 회차에 몰려 있고, EP.14에서는 4블록으로 사실상 침묵에 가깝다. 5인 패널 중 발언량이 적은 축이라는 총평은 맞지만, 더 정확한 기술은 "고르게 적다"가 아니라 "주제에 따라 극단적으로 켜지고 꺼진다"이다. 켜지는 조건은 명확하다 — 물리학이 그 주제에 대해 할 말을 가지고 있을 때다.
  • 맡은 기능 한 줄: 철학 개념이 물리학 용어와 충돌할 때 그 용어의 정확한 정의를 되돌려주고, 동시에 물리학이 답할 수 없는 지점의 경계를 명시하는 사람.

논증 스타일

1. 개념을 쪼개서 논쟁의 혼선을 제거한다 (구별-우선 전략) 그의 최고 밀도 발언은 주장이 아니라 분류다. 01:43:05 "물리학자들이 명확히 구별하고 싶어하는 게 인과율 / 결정론 / 예측가능성이다. 결정이 되어 있다고 해서 꼭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결정론과 예측가능성을 다르게 다루고 있고…" 그리고 01:13:19에서 이미 "예측가능성과는 조금 다르다"로 같은 칼을 댔다. 동물실험 회차에서도 같은 동작을 한다 — 00:45:39 "초파리 같은 걸 상대로 실험을 하는 거하고 인간과 거의 비슷한 침팬지나 영장류… 상당히 의미가 다를 것 같아서."

2. 물리학 개념으로 철학 문제를 재정의한다 —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성공 사례는 00:16:02의 구성 환원주의다. "이런 걸 물리학에서는 구성 환원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심지어 물리학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을 다 모아놨다가 그걸 갖고 나를 다시 조립해서 만들었다고 해서 나냐 하면, 그건 아닌 거다." 여기서는 물리학 개념이 논증의 전제와 결론을 모두 제공한다. 실패에 가까운 사례는 00:04:43이다. "수학적으로 얘기하면 부품을 100이라고 치면 100 중에 20%가 바뀌었다, 30%가 바뀌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정량 표기를 붙였지만 몇 %에서 동일성이 끊기는지에 대한 기준은 제시되지 않는다. 문제를 푼 게 아니라 문제를 숫자로 다시 쓴 것이다.

3. 자기 전문성의 경계를 발언 앞에 붙인다 (선언적 면책) 00:00:43 "전문 철학자는 전혀 아닌데", 00:01:58 "관찰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같은 건 물리학보다는 철학의 영역이다", 00:45:39 "물론 저는 이제 생물학자가 아니다 보니까", 01:45:03 "물리학자 입장에서는 그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생각을 못 하겠어요". 이 표지는 습관 수준으로 반복된다.

4. 결론을 인식론적 불가지로 착지시킨다 01:37:04 "나중에 돌이켜 '내가 이때 A가 아니라 B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현실에 한 번도 구현되지 않은 가능성일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결정론도 증명할 수 없고 비결정론도 증명할 수 없다." 그의 가장 강한 발언들은 "이렇다"가 아니라 "이건 알 수 없다"의 형태를 취한다. 01:36:27 "게임 오버 이렇게 된 다음에 재구성한 거죠… 원래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던 거라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 거죠"도 같은 구조 — 상대 논증의 사후성(post-hoc)을 지적해 무력화한다.

5. 학계 총의를 화자로 세운다 01:13:34 "물리학자들은 세간의 이원론적 사고와 다르다", 01:44:10 "인간의 자유의지와 양자역학적 세계관을 너무 강하게 연결하려는 일부 물리학자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그건 좀 심하다고 본다". 1인칭 주장과 학계 대변이 같은 문장 안에서 자주 섞인다.

강점

1. 이 회차의 용어 혼선을 혼자 정리했다 — 인과율/결정론/예측가능성 3분법 01:43:05~01:43:29. 자유의지 논쟁의 대부분은 "정해져 있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합의 없이 진행된다. 그가 던진 "인과율은 여전히 성립한다. 하지만 그게 결정론적 인과율이 아니고… 확률론적 인과율", 그리고 01:43:51의 비유 — 비 올 확률을 정확히 안다는 것과 비가 올지 안다는 것은 다르다 — 는 토론 전체에서 가장 재사용 가치가 높은 도구다. 비유가 논증을 대체한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된 구별을 전달한 사례라는 점에서 논증 스타일 §2의 실패 사례와 성격이 다르다.

2. 자기 분야의 권위를 남용하지 않도록 스스로 브레이크를 건다 01:44:10 "물리학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정도의 논리다 — '자유의지의 존재를 거부했던 뉴턴의 고전역학에 따른 결정론적 인과율은 자연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 여기까지예요." 01:44:42 "뉴턴의 고전역학적 결정론은 약간 좀 이상하다, 정도까지가 사실 (한계)." 양자역학→자유의지 도약은 대중 강연에서 가장 흔한 물리학 오용인데, 그는 그 도약을 자기가 하기 전에 차단한다. 물리학자가 철학 토론에 들어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 중 하나다.

3. 자기 진영의 소박한 기대를 자기 손으로 깬다 00:16:02 "심지어 물리학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환원주의 반박, 01:47:19의 시뮬레이션 오해 교정 —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무조건 결정론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인데 사실 안 그렇다. 요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는 랜덤 넘버… '시뮬레이션 우주'라고 해서 결정론적인 거라고 할 수는 절대로 없다." 둘 다 과학 편에 서서 이득을 보는 논변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방향이다.

4. 회차의 질문에 실제로 답을 낸다 EP.13은 "나는 무엇인가"로 끝나는데, 그의 00:35:01 "구성 요소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패턴이다. 구성 요소가 없다면 내가 없지만, 나를 구성 요소로 환원할 순 없다"는 회피 없이 한 문장으로 착지한다. 통계물리·복잡계 전공에서 곧장 도출되는 정의이면서, 앞서 자기가 편 환원주의 반박(00:16:02)과도 정합적이다.

약점·문제점

1. EP.14에서 겸양이 기여를 실제로 잘라먹었다 — 4블록 중 논변은 0개 00:39:43 "OX로 한다면 찬성입니다. 찬성"으로 입장을 밝힌 뒤, 그 찬성의 근거를 끝까지 제시하지 않는다. 남은 3블록 중 01:08:45(원숭이는 비싸서)와 01:10:34(중성자 가속기로 동물실험 최소화)는 정보 제공이지 찬성 논변의 논거로 조직되지 않았고, 00:45:39에서 던진 "초파리 vs 영장류" 축은 이 논쟁에서 가장 유용한 구분인데도 "저는 이제 생물학자가 아니다 보니까 어떤 기준으로 동물들을 분리하고 실험에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는데"라는 자기 봉인으로 시작해 그 축을 스스로 전개하지 않는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생물학 지식이 아니라 경계 설정 논변이었고, 그건 그가 EP.15에서 실제로 잘하는 종류의 작업이었다.

2. EP.13 초반의 큰 선언을 방어하지 않는다 00:03:14 "그럼요, 과학은 21세기의 철학이다" + 00:03:17 "철학자분들이 고민해서 풀지 못했던 것들을 과학을 좀 첨가하면서 풀어낼 수도 있고… 철학자분들 바짝 긴장하시기 바란다." 톤은 농담이지만 명제는 크다. 그런데 이후 EP.13 어디에서도 "과학이 철학의 미해결 문제를 실제로 푼 사례"는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실제로 한 일은 반대 방향 — 00:01:58 "관찰의 주체라는 건 뭔가 같은 건 물리학보다는 철학의 영역"이라며 물리학의 관할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선언과 실연이 어긋난 채로 남았다.

3. 결정론 논쟁의 자기 입장이 중간에 흔들렸고, 정리해서 제시되지 않았다 01:13:54 "자유의지가 물리학의 결정론과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 01:14:51 "그게 엄밀한 의미에서 맞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도 우주의 한 부분인 이상 그 결정론을 피할 수 없다" → 01:17:08 "제가 오해받으면 안 되는 게 결정론을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에요" → 최종 01:37:04 "결정론도 증명할 수 없고 비결정론도 증명할 수 없다". 궤적 자체는 정직한 사고 과정이지만, 01:17:08에서 해명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앞선 진술이 혼선을 만들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처음 한 말은 이런 뜻이었고 지금은 여기에 있다"는 재정리는 끝내 없었다.

4. 정량화가 논증으로 전환되지 않는 구간이 있다 00:04:43의 20%·30% 표기(§논증 스타일 2), 그리고 00:07:56 "정확히 물리학적으로 얘기하면 테세우스의 배라고 명명하는 그 순간만 테세우스의 배다. 나머지는 계속 물질 조성이 다 바뀌니까." 이 주장은 강력해 보이지만, 실은 동일성 문제에 답한 게 아니라 동일성 개념을 폐기한 것이다. 그 차이 — "지속하는 동일성은 없다"는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지 물리학이 판정해 준 사실이 아니라는 점 — 이 구분되지 않은 채 "정확히 물리학적으로"라는 수식과 함께 제시된다. 그가 다른 곳에서 그토록 조심하는 권위 사용이 여기서는 느슨하다.

5. "물리학자들은"이라는 대변 화법의 비대칭 01:13:34, 01:43:05, 01:44:10, 01:44:53(호킹 언급) 등. 1인칭 주장을 학계 총의로 감싸면 반론하는 쪽은 개인이 아니라 분야 전체와 논쟁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다만 그가 01:44:10에서 "일부 물리학자들 / 대부분의 물리학자들"로 내부 이견을 명시하고, 01:42:51 "양자역학 이후에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가 사실 궁금하긴 해요"처럼 자신도 미확정임을 드러내므로, 이는 남용이라기보다 관리되지 않은 습관 수준이다.

공정을 위한 반대 증거 — 그는 반론에 물러서지 않는다: 자유의지 옹호 사례가 나오자 01:21:50 "근데 그런 조상님들은 다 아이를 못 낳거든요", 01:22:30 "너보다 더 오래 존재하게 될 너의 DNA를 갖고 있는… 그 친구를 보존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러니 그건 너의 생존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따른 것이지 너의 자유의지냐고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리벳 실험이 결정론 근거로 쓰이자 01:29:02 "이걸 왜 자꾸 결정론으로 얘기하는지 모르겠는 게, 자유의지의 발생 시점과 내가 자유의지를 행사했다는 걸 인식하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로 정면 반박한다. 따라서 발언량이 적은 것은 반론 회피가 아니다. EP.15 데이터가 그것을 반증한다. 문제는 회피가 아니라 EP.14처럼 물리학 카드가 없는 주제에서 논변 모드로 전환하지 않는 것이다.

반복 패턴

  1. 자기 위치 표지 → 발언: "전문 철학자는 전혀 아닌데"(00:00:43), "생물학자가 아니다 보니까"(00:45:39), "물리학자 입장에서는"(01:45:03).
  2. 구별 짓기로 진입: 결정론 vs 예측가능성(01:13:19), 인과율 3분(01:43:05), 초파리 vs 영장류(00:45:39), 발생 시점 vs 인식 시점(01:29:02).
  3. 경계선 명시로 퇴장: "사실 여기까지예요"(01:44:10), "정도까지가 사실"(01:44:42), "물리학보다는 철학의 영역"(01:01:58 구간).
  4. 불가지 착지: 01:37:04, 01:45:03, 01:17:23 "그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할 수가 없다".
  5. 다른 사람의 전제를 먼저 드러내고 시작: 00:07:56 "두 분이 뭘 전제하고 계시냐면", 01:47:19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 중 하나가".
  6. 자기 진영에 불리한 정정 제공: 00:16:02, 01:47:19, 01:44:10.

없었다면 잃었을 것

  • EP.15가 뉴턴에서 멈췄을 것이다. 01:17:55 "저는 뉴턴의 세계관으로부터 우리가 한 발 더 나갔으니까 좀 더 뉴턴 이후의 세계까지 얘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는 그 회차의 층위를 올린 유일한 요청이고, 01:43:29의 확률론적 인과율은 그 요청에 대한 답을 자기가 채운 것이다. 이 입력이 없었다면 토론은 라플라스의 악마 수준의 결정론만 상대하다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 물리학 이름을 빌린 유사논증에 대한 브레이크. 01:44:10의 "그건 좀 심하다", 01:47:19의 시뮬레이션 오해 교정은 물리학자만이 신뢰성 있게 걸 수 있는 제동이다. 비물리학자가 같은 말을 했다면 논쟁이 됐을 것이 그가 말했기에 정정으로 수용된다.
  • 환원주의를 자기 손으로 부수는 장면. 00:16:02이 없었다면 EP.13은 "과학=환원주의 vs 철학=전체론" 구도로 굳었을 것이다. 그 구도를 깬 것이 물리학자 본인이었다는 점이 그 회차 논의의 질을 결정했다.
  • 회차 질문에 대한 명료한 후보 답안. 00:35:01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패턴".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물리학자들은 ~라고 본다"는 문헌 인용이 아니라 그의 요약이다 (01:13:34, 01:43:05, 01:44:10). 학계 총의처럼 들리지만 출처가 제시된 적은 없다. 관심 있으면 결정론/인과율/예측가능성 구분을 표준 교재에서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낫다.
  2. 원숭이 가격 "몇억"(01:08:45)은 동료 교수와의 사담 전언이다. 그 자신이 "제가 언제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라고 출처를 밝혔고 확정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 인용해서 쓸 값이 아니다.
  3. 가위바위보 로봇 "100판 하면 100판 다 진다"(01:29:19)의 출처는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수준의 회상이다. 실제 실험(도쿄대 Janken 로봇 계열)의 조건·성공률은 직접 확인이 필요하다.
  4. 01:10:34의 가속기 설명은 원문에 ASR 손상(방사광→"방사관")이 있고 시설명도 축약돼 있다. 화자의 오류로 읽지 말고, 시설·용도는 별도 확인 대상으로 두라.
  5. 01:43:51의 확률 수치("51.7898…%")는 ASR로 손상된 값이며 비유용 임의 숫자다. 의미는 "확률을 정확히 아는 것과 결과를 아는 것은 다르다"에 있지 숫자에 있지 않다.
  6. 00:07:56의 "명명하는 그 순간만 테세우스의 배다"를 물리학이 판정한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 것. 이는 동일성 개념 자체를 기각하는 철학적 입장이며, "정확히 물리학적으로"라는 수식이 붙어 있어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7. 그의 발언량이 EP.14에서 급감한 것을 "신중함"으로도 "준비 부족"으로도 단정하지 말 것. 파일이 보여주는 사실은 하나다 — 물리학이 할 말을 가진 주제에서는 28블록을 쏟고(EP.15), 그렇지 않은 주제에서는 4블록에 그친다(EP.14). 그 회차의 그의 찬성 입장은 근거 없이 남아 있으므로, EP.14에서 그의 "찬성"을 논거 있는 입장으로 인용하지 말라.
김범준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3 — 테세우스의 배·나의 동일성 (2025-01-16)

[원 소제목] 김범준
00:00:23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이다. 철학의 로망을 갖고 있는 통계물리학자인데 '철학을 보다'에 놀러와서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살살 잘 부탁드린다.

00:00:43

전문 철학자는 전혀 아닌데 철학책 읽는 건 좋아했다. 물리학자가 철학을 보는 관점을 한 철학자 책에서 재밌는 표현으로 봤다 — 참고로 물리학자들은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운다. 윌리엄 제임스라는 철학자가 "철학은 명료하게 사유하려는 특별히 완고한 노력이다", 그리고 "철학은 사유의 극한에서 형성되는 행위다"라고 했다. 아주 멋진 이야기인데, 생각해 보니 물리학도 그런 면에서는 철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명료하게 사유하려는 노력, 그리고 어떤 사유의 경계에서 성립하는 학문 — 철학과 물리학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기지(旣知)와 아직 모르는 미지(未知)의 경계에서 철학이라는 활동이 벌어지듯 물리학도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00:01:44

[추정] 꼭 사람을 연구하는 건 아니고, 사람이라기보다도 대상과 보는 사람이 있을 때 관찰의 주체를 더 연구하는 게 철학인 것 같다.

00:01:58

사실 물리학자들은 그 개념 자체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진 않는다. "관찰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관찰의 주체라는 건 뭔가" 같은 건 물리학보다는 철학의 영역이다.

00:03:14

[추정] 그럼요, 과학은 21세기의 철학이다.

00:03:17

[추정] 어찌 보면 꽤나 오래된 문제일 수 있지만, 여기서 철학자분들이 고민해서 풀지 못했던 것들을 과학을 좀 첨가하면서 풀어낼 수도 있고, 또 나 같은 외부인이 들어와서 새로운 시각을 드릴 수도 있다. 철학자분들 바짝 긴장하시기 바란다.

00:04:43

부품을 바꾸는 과정이 한 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서서히라면 — 테세우스의 배라고 정체성을 부여할 정도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걸 이야기한다면, 부품이 결국 모두 바뀌어도 나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본다). 판자가 떨어졌다, 돛이 바뀌었다 여러 가지가 바뀔 것이다. 수학적으로 얘기하면 부품을 100이라고 치면 100 중에 20%가 바뀌었다, 30%가 바뀌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00:07:56

(1500년 흐르면 소멸될 것이다.) 두 분이 뭘 전제하고 계시냐면 — 사실 정확히 물리학적으로 얘기하면 테세우스의 배라고 명명하는 그 순간만 테세우스의 배다. 나머지는 계속 물질 조성이 다 바뀌니까. 그 순간에 해당되는 물리적 속성을 전부 다 기술할 수 있으면 그것만이 테세우스의 배고 나머지는 다 바뀐 거다.

00:09:26

[추정] 나는 여기서 여러분과 생각이 좀 다른데, "근거"라는 게 뭘까. 과학자의 입장에서, 그걸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르든 슬리퍼라고 부르든, 명명과 인식의 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근거다).

00:16:02

물리학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 물리학에서는 구성 환원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 요소들로 과연 환원할 수 있느냐, 환원한 다음에 그걸 다시 모았다고 해서 원래 우리가 보았던 그 물체와 같은 건가. 심지어 물리학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는 나나 장대익 교수님이나 우리 모두 다 원자로 구성돼 있고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을 다 모아놨다가 그걸 갖고 나를 다시 조립해서 만들었다고 해서 나냐 하면, 그건 아닌 거다.

00:18:10

[추정] 장대익 교수님이 얘기하는 역사성이라는 게 사실 구성 요소에만 있는 건 아니다. 구성 요소의 관계에도 역사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에 정영진 프로님이 조립했을 때의 역사성까지 생각하면, 그걸 다 흩었다가 다시 모았다고 해서 정영진의 (작품은 아니다).

00:23:25

[추정]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뇌 이식이란 없다, 그건 몸 이식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00:23:44

[추정] 그게 <트랜센던스> 같은 영화의 주제다. 만약 그런 관계나 역사성까지 다 포함한 정도의 정보를 다 복제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나다. 우리 뇌에 저장된 과거의 경험이든 기억이든 과거의 감정의 느낌이든, 모든 어떤 것도 생략 없이 완벽하게 복제를 한 무언가가 있다면.

00:30:33

[추정] 통 속의 뇌 이야기할 때 잠깐 떠오른 게, 어쩌면 우리 두개골을 통이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이미 통 속의 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야기하는 통 속의 뇌처럼 외부와 단절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뇌가 느끼는 내 몸은 결국 몸과 내 뇌를 연결하는 신경에 의해 전달되는 거다. 뇌는 딱 그 안에 있고 내 몸이 느끼는 모든 것들은 화학 신호, 전기 신호, 화학 물질 이런 것 아닌가. 그것만 아주 정교하게 지금 인간처럼 해 줄 수 있다면 우리 뇌가 느끼는 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00:35:01

(나의 정의) 구성 요소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패턴이다. 그러니까 구성 요소가 없다면 내가 없지만, 나를 구성 요소로 환원할 순 없다.

EP.14 — 동물실험 (2025-01-30)

[원 소제목]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 — 동물실험 찬성
00:39:43

"OX로 한다면 찬성입니다. 찬성."

00:45:39

"물론 저는 이제 생물학자가 아니다 보니까 어떤 기준으로 동물들을 분리하고 실험에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초파리 같은 걸 상대로 실험을 하는 거하고 인간과 거의 비슷한 침팬지나 영장류 이런 애들을 데리고 실험을 하는 거는 상당히 (포함하는) 의미가 다를 것 같아서. 근데 우리가 '동물 실험 반대' 그러면 보통 그런 종류를 많이 떠올리지 초파리 같은 이런 걸 떠올리진 (않는다)."

01:08:45

원숭이는 비싸서 — "저희 학교 그 생물학과 교수님을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데) 신경생(리) 이쪽에 연구하시거든요. 근데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해요. 그래서 제가 언제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왜 쥐를 가지고 (하)냐, 원숭이 가지고 보통 많이 하지 않냐?' 그랬더니 한마디로 '원숭이는 너무 비싸서.' 엄청 비싸. 몇억? 딱 그게 대답이었어요. 그래서 '아 그렇구나, 싸니까.'" (확신도 중)

01:10:34

가속기 기반 신약 개발 — "중성자 가속기 뭐 그런 설비를 이용해서 신약을 개발하는데 동물 실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 "그 포스텍 공대의 방사광[ASR: 방사관] 거기라고. 예. 그 여러 분야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EP.15 — 자유의지 vs 결정론 (2025-02-13)

[원 소제목] 김범준 (물리학자, 성균관대)
01:13:03

물리학의 결정론 정의 — 어떤 물리 시스템을 구성하는 물리적 변수들의 값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파악하고 있을 때 미래에도 정확한 값을 알아낼 수 있는지.

01:13:19

예측가능성과는 조금 다르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결정되어 있음의 기준은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미시적인 정보가 현재의 정보로부터 결정되어 있느냐다. 인간의 의식 같은 것이 기준이 아니다.

01:13:34

물리학자들은 세간의 이원론적 사고와 다르다 — 인간의 사고·정신이 물리적 세계와 별도의 레이어로 구별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라, 물리학의 결정론은 굉장히 강한 의미의 결정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01:13:54

"물리학의 결정론의 입장에서 자유의지가 물리학의 결정론과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01:14:06

(모든 요소를 알면 뒤가 다 정해진다는 요약에) "그게,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01:14:51

반문 — 피할 수 있다는 것도 결국 주어진 물리적 환경 안에서만 가능한 것 아닌가. 물리학의 결정론은 나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들의 미래 상태가 딱 하나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고, 그게 엄밀한 의미에서 맞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도 우주의 한 부분인 이상 그 결정론을 피할 수 없다.

01:17:08

"제가 오해받으면 안 되는 게 결정론을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에요. 그런데 뉴턴의 고전역학의 엄밀한 결정론의 입장에선 이미 정해져 있어요." 오른쪽 갈지 왼쪽 갈지도, 제가 지금 이 질문을 할지 안 할지도.

01:17:23

뉴턴의 『프린키피아』 제목이 Principia Mathematica(수학적 원리)이니, 그 입장대로면 뉴턴 본인이 그 책을 쓸 것도 정해져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할 수가 없다 — 매 순간 가능한 여러 미래로 뻗는 가지 중 우리는 항상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지나고 나서 그 선택이 결정되어 있었던 건지 뉴턴이 자유의지로 결정한 건지를 세상에서 벌어진 일만으로는 알 수 없다.

01:17:55

"저는 뉴턴의 세계관으로부터 우리가 한 발 더 나갔으니까 좀 더 뉴턴 이후의 세계까지 얘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01:21:22

반론 —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할 때도 선택지의 가짓수가 무한대로 허락되는 건 아니다. 주어진 행동 규칙 혹은 자연법칙 안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제가 지금 의자에서 갑자기 1m 위로 날아오르겠다"고 아무리 자유의지로 생각해도 할 수 없다.

01:21:50

"근데 그런 조상님들은 다 아이를 못 낳거든요."

01:22:30

DNA 반박 — 방금 말한 사례(아이를 위해 견딤)는 어쩌면 너보다 더 오래 존재하게 될 너의 DNA를 갖고 있는, 네 DNA를 후대에 전해줄 그 친구를 보존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러니 그건 너의 생존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따른 것이지 너의 자유의지냐고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01:23:44

~01:23:57 "행동의 옵션들이 있는데 그 옵션들은 모든 게 허용되는 건 아니고요. 이 상황에서 갈 수 있는 몇 가지 옵션이 있는데 그중에 내가 선택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게 자유의지인 것 같아요." / 01:23:59 "어쩔 수 없이 이건 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건 자유의지가 없다는 뜻이고요."

01:29:19

가위바위보 로봇 소개 — 리벳 실험 말고 비슷한 실험이 있는데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가위바위보를 하는 로봇을 만들었는데 항상 이긴다. 사람의 뇌 위에서 시그널로 이 사람이 무엇을 낼 것이라는 정보를 로봇이 캐치한 다음 그걸 이기는 걸 내기 때문에 100판 하면 100판 다 진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다음엔 가위를 내야지"라고 의식하는 것보다 더 전에 이 사람이 다음에 가위를 낼 거라는 신호가 먼저 발생한다.

01:29:02

(리벳 실험에 대한 반론) 이걸 왜 자꾸 결정론으로 얘기하는지 모르겠는 게, 자유의지의 발생 시점과 내가 자유의지를 행사했다는 걸 인식하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

01:35:32

~01:35:44 "영하 10도에서 계속 있는데 '나는 따뜻해' 아무리 정신 승리를 해도 죽어요." 의지로 행동을 바꿔 상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범위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이다.

01:36:27

~01:36:35 "게임 오버 이렇게 된 다음에 재구성한 거죠… 재구성해서 원래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던 거라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 거죠."

01:37:04

"근데 알 수 없다는 거죠." 매 순간 여러 선택지 중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길로만 계속 진행한다. 나중에 돌이켜 "내가 이때 A가 아니라 B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현실에 한 번도 구현되지 않은 가능성일 뿐이다. 현실에서 밟은 건 한 선택밖에 없었다. 지난 다음에 돌이켜 봤을 때 또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시간의 경로로는 파악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결정론도 증명할 수 없고 비결정론도 증명할 수 없다.

01:42:51

"양자역학 이후에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가 사실 궁금하긴 해요." / 01:42:56 아까 강하게 얘기했던 건 뉴턴의 고전역학적·결정론적 세계관이었다.

01:43:05

3분법 — 물리학자들이 명확히 구별하고 싶어하는 게 인과율 / 결정론 / 예측가능성이다. 결정이 되어 있다고 해서 꼭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결정론과 예측가능성을 다르게 다루고 있고, 인과율 중에는 결정론적 인과율이 있는데 이건 원인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매개가 딱 하나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그게 뉴턴의 고전역학이다.

01:43:29

양자역학이 알려준 것 — 인과율은 여전히 성립한다. 하지만 그게 결정론적 인과율이 아니고 좀 약한 형태의 인과율, 이런 걸 확률론적 인과율이라 부를 수 있다. 매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하나로 주어진 게 아니라 확률로만 주어지는데, 확률 자체는 정확히 안다.

01:43:51

비유 — 내일 아침 비가 올 확률이 "51.7898…%"[ASR 수치 손상]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해서 그건 확률을 정확히 아는 것이지, 내일 아침 비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확률을 정확히 알려주지만 비가 올지 안 올지를 명확히 알려주지는 않는다.

01:44:10

물리학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정도의 논리다 — "자유의지의 존재를 거부했던 뉴턴의 고전역학에 따른 결정론적 인과율은 자연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 여기까지예요." 인간의 자유의지와 양자역학적 세계관을 너무 강하게 연결하려는 일부 물리학자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그건 좀 심하다고 본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이 (그 선을) 넘어가는 건 굉장히 두렵다.

01:44:42

"뉴턴의 고전역학적 결정론은 약간 좀 이상하다, 정도까지가 사실 (한계)."

01:44:53

스티븐 호킹의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기계다"는 뉴턴의 고전역학적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01:45:03

"물리학자 입장에서는 그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생각을 못 하겠어요."

01:47:19

시뮬레이션 가설 오해 지적 —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 중 하나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무조건 결정론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인데 사실 안 그렇다. 요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는 랜덤 넘버, 즉 무작위적인 요소를 넣어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할 수 있으니, "시뮬레이션 우주"라고 해서 결정론적인 거라고 할 수는 절대로 없다.

01:48:43

"그렇다고 (해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장대익

과학철학자 · 진화학자 · 가천대

출연 3/9 · 발언 블록 72

동물실험 찬성 측 최전선. 경험 데이터로 규범 논쟁을 끊는 역할.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현직가천대학교 스타트업칼리지(가천코코네스쿨) 초대 학장 · 석좌교수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프로필
학부KAIST 기계공학 학사알라딘 저자 프로필
대학원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박사 — 박사논문 주제는 이보디보(Evo-Devo)의 역사와 철학알라딘 저자 프로필 · 개인 홈페이지
해외 수학런던정경대(LSE) 과학철학센터·다윈세미나(생물철학·진화심리학), 교토대(침팬지 인지·행동), 터프츠대 인지연구소(대니얼 데닛 지도, 마음의 구조와 진화)알라딘 저자 프로필
전직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약 10여 년), 한국인지과학회 회장, 터프츠대 인지연구소 연구원교보문고 저자 프로필 · 나무위키
수상2010 제11회 대한민국과학문화상교보문고 저자 프로필
대표 저서『공감의 반경』(바다출판사, 2022; 개정증보판 2025), 『사회성이 고민입니다』(휴머니스트, 2019), 『울트라 소셜』(휴머니스트, 2017), 『다윈의 정원』(바다출판사, 2017), 『다윈의 식탁』(김영사 2008 → 바다출판사 2014), 역서 다윈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9)예스24 저자 페이지 · 공감의 반경 상품 페이지
최근작『상상하는 인간, 진화하는 AI』(태재대학교출판문화원)알라딘 저자 프로필

영상 안 자기소개(00:00:17 "과학으로 철학을 보는 과학철학자 장대익이다. 가천대 석좌교수로 있다")는 위 공개 이력과 일치한다.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EP.13(테세우스의 배·동일성) · EP.14(동물실험, 찬성 측) · EP.15(자유의지 vs 결정론)
  • 발언 블록 수: 72개 (EP.13 = 20 · EP.14 = 30 · EP.15 = 22)
  • 맡은 기능 한 줄: 철학자들의 개념 논쟁에 경험 연구(진화·뇌과학·실험실 실무)를 밀어넣어 논점을 "무엇이 옳은가"에서 "실제로 무엇이 그러한가"로 계속 되돌리는 사람 — 그리고 EP.14에서는 그 방식으로 소수파(찬성) 입장을 혼자 지탱하는 사람.

논증 스타일

1. 범위 재정의로 O/X 자체를 흔든다. 동물실험 찬반이라는 규범 질문을 받자마자 "동물이란 무엇인가"라는 분류학적 사실 문제로 옮긴다. 00:39:20 "동물의 종수가 현재 아마도 거의 200만 종이 되거든요. (…) 반대하고자 하는 건 그 200만 종의 극히 일부분이에요." 00:43:30 "몇 밀리미터 정도 되는 그 꼬마 선충에 대한 실험도 금지하진 않으실 거 아니에요." 도덕 논쟁의 분모를 바꿔 자기 답을 다수 쪽으로 만든다.

2. 상대 논리의 일관성을 압박하는 귀류. 00:47:37 "영장류를 비롯한 고등 동물… 그런 동물 실험을 반대하면 같은 논리로 꼬마 선충에 대한 실험도 반대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상대의 도덕적 고지 자체를 무효화한다 — 00:45:57 "어디까지 실험을 허락할까도 결국 그냥 인간 중심주의죠."

3. 자기 전제를 먼저 라벨링하고 시작한다. 00:44:44 "저는 인간 중심주의입니다." 00:54:47 "저는 생태주의자는 아니에요." 00:52:07 "저 이제 진화학자니까." 숨은 전제를 상대가 파내게 두지 않고 본인이 먼저 테이블에 올린다. 토론 효율은 올라가지만, 4번 항목처럼 라벨이 논거를 대신하는 순간도 생긴다.

4. 과학 편을 들되 과학의 실패 사례를 자기 입으로 꺼낸다. 01:06:56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어요. (…) 동물실험 다 통과했어요. 그래서 먹였는데 기형아가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00:54:03 "HIV 같은 경우가 우리는 걸리면 문제가 되지만 원숭이들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곧바로 논점을 분리해 봉합한다 — 01:07:38 "동물 실험의 결과가 사람에게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런 사례가 있으니까 동물 실험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또 다르죠." 즉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과학을 방어한다. 이것이 그의 과학철학자로서의 위치다: 과학 외부의 비판자가 아니라 과학 내부의 조건부 변호인.

5. 규범 문제를 기원·기능 설명으로 번역한다. 01:18:17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믿음은 진화한 것 같다. (…) 하지만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완전히 다른 물음이다." 00:35:41 "한편으로는 유전자 기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밈(meme) 기계라고 얘기할 수 있다." 00:52:07 "잡식성이 돼서 단백질을 많이 흡수하게 돼서 뇌도 커지고 인간이 된 거거든요." 진화적 재서술은 그의 기본 도구다.

강점

1. 뭉개진 질문을 두 개로 쪼개는 능력이 이 시리즈에서 가장 높다. 01:18:17의 "자유의지가 있느냐"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분리는 EP.15 전체가 그 위에서 굴러간 축이다. 01:07:38의 "적용 안 됨 ≠ 불필요"도 같은 종류다. 반대측 논거를 반박하는 대신 그 논거가 실제로 무엇을 증명하는지 범위를 재는 방식이라 논의를 앞으로 민다.

2. 자기 진영에 불리한 증거를 상대가 꺼내기 전에 자기가 꺼낸다. 01:06:56 탈리도마이드, 00:54:03 종간 외삽 실패, 01:06:56 "동물 실험이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 아직은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지만 충분하진 않은 거죠." 승리보다 정확성을 우선하는 표시이며, 이 회차가 진영전으로 굳지 않은 데 실질적으로 기여한다.

3. 반대측이 원하는 출구를 스스로 지도로 그려준다. 01:10:16 오가노이드(인공 장기), 01:10:50 "시뮬레이션도 동물 모델이 없이는, 축적된 데이터가 없이는 불가능하고요. (…) AI는 저는 굉장히 신의 한 수일 수 있다. 동물 실험과 관련해서." 찬성 측이면서 대체 기술의 조건과 병목을 가장 구체적으로 말한다.

4. 상대 발언을 인계해 쌓는다. 00:48:52 "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전호근의 "동물 보호도 인간중심주의" 논지에 동의) → 00:55:04 "전호(근) 교수님이 말씀하신 거도 비슷한데"로 흑인 노예제 유비를 이어받아 자기 논변으로 확장. 반박형이 아니라 축적형 토론을 한다.

약점·문제점

1. 인용하는 수치와 연구의 출처를 거의 밝히지 않는다. 이 파일에서 가장 반복적인 결함이다. 00:39:20 "거의 200만 종", 00:32:56 "실제로 저글링을 6개월만 해도 회백질이 달라진다", 01:01:45 "공감의 중요한 요소가 ①얼마나 우리랑 유사하냐 ②얼마나 우리가 친밀하냐 ③얼마나 상호(작용)을 많이 했냐. 이거예요. 세 가지 조건이에요.", 01:38:02 "대부분 편도체에 문제가 있다" — 어느 것도 연구자·논문·연도가 붙지 않는다. 가장 문제적인 건 00:50:08 "아니에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개를 구합니다."로, "최근 연구"라는 말 한 마디가 상대 주장을 뒤집는 논거 전체를 대신한다. 시청자에게 검증 경로가 없다.

2. 사실에서 규범으로 넘어가는 이음매가 같은 회차 안에서 자기모순을 만든다. 00:52:07 "잡식성이 돼서 (…) 뇌가 커지고 이성이라는 걸 작동하고 (…) 저는 이게 이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해요." — 진화사적 사실에서 규범적 상찬으로 이동한다. 더 뚜렷한 건 00:53:28 "근데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다. 그러면 지금은 이걸 금지할 순 없는 거 아니냐." 여기서 '현재의 관행'이 곧 '금지 불가'의 근거로 쓰인다. 그런데 불과 2분 뒤 00:55:04에서 그는 정반대를 말한다 — "흑인 노(예)를 (…) 당시에는 착한 기독교인들조차도 '이거는 죄악이다'라는 생각을 별로 안 했단 말이에요. 근데 나중에 보면서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잘못된 것'이고." 관행은 정당성의 근거가 아니라는 논지다. 동일 세션 안에서 관행의 규범적 지위가 뒤집히고, 이 긴장은 해소되지 않은 채 지나간다.

3. 200만 종 논변이 상대의 핵심 반론에 겨냥되어 있지 않다. 반대측이 문제 삼는 것은 '동물 일반'이 아니라 '고통 감수성을 가진 개체'인데, 00:39:20·00:43:30은 분모를 동물 전체로 잡아 찬성 라벨을 정당화한다. 정작 그 자신이 00:44:06에서 그은 선 — "정서적 교감이 가능하고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경험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는 동물. 그런 동물이라면 궁극적으로는 중단하는 게 맞아요" — 은 반대측이 그은 선과 실질적으로 거의 겹친다. 본인도 00:39:09에서 "생각이 그렇게 다를 거 같진 않은데요"라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200만 종 논거는 실질 쟁점을 좁히기보다 O/X 라벨을 방어하는 데 쓰인 셈이고, 그만큼 회차의 논쟁 밀도를 낮춘다. 00:47:37의 일관성 압박도 같은 문제를 안는다 — 상대에게 '선충까지 반대하라'를 요구하지만, 그 요구는 그 자신이 승인한 선(00:44:06)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4. 과학철학자인데 과학의 방법론적 한계를 자기 논변에 반영하지 않는다. 한계를 언급하는 장면은 여러 번 있으나 매번 01:07:38의 논점 분리로 즉시 봉합되어 "그래도 필요하다"로 되돌아온다. 가장 아까운 지점은 01:08:00이다 — 쥐 모델에 대해 "이런 경험들이 너무나도 많이 누적되어 있어서 (…) 일단 그게 확립되니까 다른 데로 벗어나긴 어렵고요." 이건 모델생물 선택이 최적성이 아니라 경로의존성의 산물이라는 자기 진술이고, 동물실험의 인식론적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대단히 강한 재료다. 그런데 그대로 지나가고 자기 찬성 논변에 반영되지 않는다. 과학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그 한계를 자기 결론에 되먹이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철학자 역할로 앉은 자리에서는 가장 큰 미달이다.

5. 상대 진영의 살아있는 반론을 '시대 이전의 통찰'로 서열화한다. EP.13 체화인지 논쟁에서 00:32:09 "나는 그게 뇌과학이 되게 발달하기 이전의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중요성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다." 체화인지는 현행 인지과학 내부의 진행 중인 논쟁인데, 반박 대신 시간순 서열로 처리했다. 이는 그 자신이 불과 5분 전 00:27:36에 세운 기준 — "그게 나쁜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로 해서는 안 되고, 진짜 뇌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 — 을 자기 주장에는 덜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다.

반복 패턴

  • 규범 질문 → 사실 질문으로 번역 → 사실 위에서 결론. 도덕 논쟁을 분류(00:39:20)·기원(00:52:07)·기능(01:18:17) 문제로 옮긴 뒤 그 위에서 답한다. 강점(논의 전진)과 약점(is-ought 미끄러짐)이 같은 습관에서 나온다.
  • 자기 진영 약점 선제 공개 → 논점 분리로 봉합. 01:06:5601:07:38, 00:54:03 → "그래서 임상 실험도 필요한 거죠". 정직하되 결론은 흔들리지 않는 구조.
  • 수치는 풍부하고 출처는 없다. 위 약점 1이 세 회차에 고르게 분포한다.
  • 전제 라벨링 후 그 라벨로 방어. "인간 중심주의입니다"(00:44:44) · "생태주의자는 아니에요"(00:54:47) · "진화학자니까"(00:52:07).
  • 팀 프레이밍을 시작부터 건다. 00:02:59 "훨씬 더 어드밴스드할 것이다", 00:03:10 "이 철학의 구멍들을 저희가 잘 찾아낸다" — 토론 전에 우열 구도를 선언한다.

없었다면 잃었을 것

  • 실험실의 실물. 모델생물이 왜 쥐로 굳었는지(01:08:00), 오가노이드가 무엇인지(01:10:16), 임상 1·2·3상이 동물실험 뒤에 어떻게 붙는지(01:06:56), 왜 하필 토끼 눈에 마스카라를 바르는지(01:02:33 "토끼가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깜빡깜빡을 적게 하기 때문에") — 이 구체를 공급한 사람은 그뿐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EP.14는 잔인함에 대한 정서 교환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 경험적 반증 후보를 테이블에 올린 것. 01:28:06 리벳 실험 소개("400ms 이전에, 준비전위라고 하는데, 이미 그쪽 방향으로 신경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EP.15를 개념 정의 논쟁에서 벗어나게 만든 유일한 경험적 입력이다. 게다가 그는 01:18:02에서 자기 입장이 아닌 극단적 결정론을 대신 변호하겠다고 선언하고(악마의 변호인) 그 실험을 꺼낸다 — 자기 결론에 불리한 자료를 자기가 도입한 것이다.
  • 찬성 측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사실 자체. 2:2 구도에서 그가 빠졌다면 동물실험 회차는 만장일치 반대의 확인 절차가 됐을 것이다.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찬성"이라는 라벨만 떼어 인용하면 그의 실제 입장과 어긋난다. 00:39:09에서 그는 "이 질문이 단순한 OX 문제로 이해한다면 찬성"이라는 조건부로 답했고, 00:44:06에서는 고통·미래예측 능력이 있는 동물 실험을 "궁극적으로는 중단하는 게 맞아요"라고 말한다. 조건절과 유보를 함께 읽어라.
  2. 그가 던지는 수치·연구는 대부분 출처 없이 나온다. "200만 종"(00:39:20),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개를 구합니다"(00:50:08), 저글링·회백질(00:32:56), 공감의 3요소(01:01:45), 사이코패스 편도체(01:38:02) — 인상적일수록 원 연구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공감의 3요소는 그의 저서 『공감의 반경』의 논지와 겹치지만 영상 안에서 출처가 명시되지 않는다.
  3. "그러니까"가 나오는 지점에서 사실과 규범을 손으로 나눠 읽어라. 00:52:07(잡식 → 이성의 발현)과 00:53:28(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 금지 불가)이 대표 구간이다. 같은 회차 00:55:04(노예제 관행은 틀렸다)와 나란히 놓고 보면 긴장이 드러난다.
  4. EP.13의 뇌 중심 주장은 그가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재채점하라. 00:27:36에서 그는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정하자고 했다. 00:32:09("뇌과학 발달 이전의 통찰")에는 그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5. 자막(ASR) 오류가 섞여 있다. "탕물 철학"(00:16:35)은 생물철학, "리처드 리베"(01:28:06)는 벤저민 리벳, "가천대 서터 칼리제"(00:00:17)는 가천대 석좌교수다. 명칭 오류를 화자의 지식 결함으로 읽지 마라.
  6. 00:37:36의 마무리 발언은 MC 정영진과 화자 혼선 가능성이 표시되어 있다. 인용 시 원본 영상 확인이 필요하다.
장대익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3 — 테세우스의 배·나의 동일성 (2025-01-16)

[원 소제목] 장대익 [ASR: 장대]
00:00:17

과학으로 철학을 보는 과학철학자 장대익이다. 가천대 석좌교수로 있다. [ASR: "가천대 서터 칼리제 있습니다"]

00:02:34

[추정] 과학이 발전하는 단계에서 지금은 science라고 얘기하지만, 옛날에는 philosophy — 자연철학이라고 해서 철학의 한 분야였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이 하는 일, 생물학자들이 하는 일을 다 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분기하게 돼 지금의 제도권화된 물리학·화학·생물학으로 분화됐다.

00:02:59

오늘은 김범준 교수님과 내가 왔으니, 이전에 하셨던 '철학을 보다'보다 훨씬 더 어드밴스드할 것이다.

00:03:10

이분들이 어떤 얘기를 하실까. 이 철학의 구멍들을 저희가 잘 찾아낸다.

00:05:12

[추정] 100% 바뀌면 완전히 다른 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거보다 더 배의 본질이 무엇이냐, 그 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냐, 이 부분이 바뀌었다면 그 배가 아니라고 하는 그 본질적인 부분이 무엇이냐를 본다. 아까 아디다스 슬리퍼 얘기하셨는데, 아디다스에서 마크는 남아 있어야 된다 — 다른 거 다 바꿔도 슬리퍼의 본질은 아디다스의 그 상표라는 거다. 여기서도 다 바뀌니까 나는 다른 배라고 생각하는데, 점진적으로 바뀔 때 본질적인 속성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같은 배다.

00:05:51

[추정] 예를 들어 아우디를 타고 다니는데 겉을 다 바꾸고 에어컨도 다 바꿨다. 근데 아우디의 엔진은 그대로다. 그러면 그건 아우디다, 내가 보기에는.

00:10:46

[추정] 나도 오늘 굉장히 비슷한데, 절충주의적일 수 있지만 — 슬리퍼로 예를 들면 슬리퍼의 윗부분과 마크만 떼다 운동화에 붙인다고 슬리퍼가 되는 건 아니다. 이건 아디다스 운동화 내지는 혼종일 수는 있다.

00:16:35

(헌 부품 재조립 배에 대해) 생물철학[ASR: 탕물 철학]에서는 이걸 자연종(natural kind)이라는 개념으로 얘기한다. 금속, 예컨대 철이라고 하는 것은 1억 년 전의 철이나 지금 있는 철이나 똑같다 — 원자 구성이 똑같다. 그건 역사와 상관없다. 그런데 인간, 모든 동물들, 그다음에 우리가 만든 인공물이라 하더라도, 그 인공물의 구성적 요인만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건 historical entity(역사적 존재자)가 된다. 역사적 존재자는 갖고 있는 속성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그 역사에서 그 현장의 의미 때문에 명명을 하는 것이다. 테세우스의 배를 구성으로만 따진다면 — 여기 들어가는 철이 얼마고 목재의 구성 요소가 얼마고 — 그건 유지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의미로 부여한 것이라면 유지될 수 없다.

00:19:30

[추정] 일란성 쌍둥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유전적으로는 동등한데 같은 개체로 얘기하지 않는다. 쌍둥이한테 "너희들은 같아"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개성을 가진 두 존재로 인정하는 거다.

00:22:19

[추정] <공각기동대> 같은 데 보면 그게 사이보그다. 뇌의 일부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기계화해 일종의 대체 가능한 몸을 만드는 세계를 그린다. 아마 지금 우리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그게 포스트휴먼의 한 흐름이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그렇게 오래 살기 때문이다.

00:22:37

[추정] 신장 이식은 받으려면 되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인공 장기처럼 잘 된다면 마다할 사람이 없다. 근데 마다할 만한 장기가 하나 있다. 그게 뇌다. 다 이식받는 걸 좋아하는데 제일 꺼려지는 게 뇌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뇌에서 모든 의사결정이 일어나니까. 예를 들어 치매에 걸리면 뇌 해마가 쪼그라들어서 이 사람이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됐다고 한다 — 사람에게 있어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게 뇌다. 뇌를 보존한 상태에서 다른 부분을 잘 조화롭게 갈아끼운다면 그건 여전히 그 사람일 수 있다.

00:25:39

[추정] 아까 내가 본질적 속성이라는 표현을 쓴 게, 부분들이 있지만 다 똑같진 않다는 거다. 우리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뀌었을 때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얘기해야 되지 않나. 동양철학에서도 이(理)와 기(氣)가 같이 작용하는 게 그런 원리 아닌가.

00:27:36

"뇌 중심주의 아니냐"는 표현은 맞는 표현이다. 그게 나쁜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로 해서는 안 되고, 진짜 뇌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하진 않지만 유전자 주변의 환경에 비해 월등하게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체도, 사실 뇌가 진화한 건 운동 때문에 진화한 거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고 동물은 움직인다. go냐 stop이냐를 결정하는 그 과정에서 신경계가 진화했는데 그걸 하나의 센트럴로 모은 거다. 그러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파트인 건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00:29:11

[추정]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주 기본적인 (뇌간) 쪽만 계시고 나머지 대뇌 활동은 거의 안 돼서 인식 같은 걸 다 못 하는 상황이 있는데, 이분들도 역시 그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나. 치매가 대표적인 것 같다 — 그동안 관계했던 그런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너무 다른 성격이 나오기 때문에.

00:31:24

[추정] 근데 사실 현대 뇌과학에서는 몸의 기억이라는 게 결국 뇌에 구현된다고 본다. 최종적으로 뇌에서 처리하지만 그게 뇌에 온전히 속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의미가 있고, 몸이 갖고 있는 몸 자체의 기억도 있다. 기억을 다 잃어버렸는데도 여전히 옛날처럼 무의식적으로 어떤 습관을 보인다든지 할 때, 뇌과학에서는 그건 기억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 절차 기억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결국.

00:32:09

[추정] 근데 나는 그게 뇌과학이 되게 발달하기 이전의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뇌과학을 더 들어가다 보면 결국 뇌에서 일어난 작용에 불과한 건 아니지만 더 복잡하다. 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되면, 몸이 없었을 때는 절대 할 수 없는 걸 할 수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 이제는 그것 자체가 일종의 상식이 됐다. 몸의 중요성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다.

00:32:56

[추정] 뇌가 유지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저글링을 6개월만 해도 회백질이 달라진다, 뇌 상태가 달라진다. 그걸 또 그만두면 회백질 두께가 얇아진다. 그러니까 운동이 다 뇌에 쌓이고 뇌에 기록되는 거다.

00:33:12

[추정] 보통 우리는 "공부는 어렸을 때 하는 거야"라는 신화를 갖고 있다. 근데 요즘 중년들에 대한 뇌과학을 해 보니 뇌 가소성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 플라스틱하게 유연하다는 거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뭔가를 하면,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면 뇌 구조도 변한다는 연구들이 많다.

00:35:41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하나는 뇌가 하는 일이 마음인데 그 마음은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진화의 산물이 태어나서 쭉 자라면서 수많은 정보들과 지식들을 인풋으로 받아 결국 나를 만들어내는 거다. 한편으로는 유전자 기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밈(meme) 기계라고 얘기할 수 있다. 밈이라는 것은 지식의 세계를 얘기한다고 했을 때, 유전자 기계이면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많은 지식들을 인풋으로 받아 그것에 영향을 받는 존재다.

00:37:36

[추정] 나와 김범준 교수님이 과학에서 놀러왔는데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 이 발화 안에 "함께 해주신 우리 철학자 또 과학자분들 감사하다"는 MC성 인사가 붙어 있어 화자가 MC 정영진과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저와 우리 김범(준) 교수님"이라는 1인칭 근거만 장대익을 가리킨다.

EP.14 — 동물실험 (2025-01-30)

[원 소제목] 장대익 (진화학자) — 동물실험 찬성
00:39:09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이 그렇게 다를 거 같진 않은데요. 이 질문이 단순한 OX 문제로 이해한다면 찬성입니다."

00:39:20

200만 종 논거 — "동물의 종수가 현재 아마도 거의 200만 종이 되거든요. 그중에 많은 분들이 오늘 이야기하실 이런 동물에 대한 동물 (실)험을 반대하고자 하는 건 그 200만 종의 극히 일부분이에요. 일반적으로 동물 그러면 눈을 감고 아무 데나 찍으면 사실은 실험이 가능한 동물이 거의 (다)라서 저는 찬성."

00:43:30

정서적 교감의 범위 — "동물이라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따라서도 (관)점이 좀 바뀌어야 될 거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가 어떤 정서적인 교감을 느끼는 동물은 극소수예요. 근데 현재 실험실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동물 실험 중에는 개·고양이·원숭이가 아니라 예를 들어 예쁜 꼬마 선충 같은 작은 선충도 엄연한 동물이거든요. 몇 밀리미터 정도 되는 그 꼬마 선충에 대한 실험도 금지하진 않으실 거 아니에요."

00:44:06

유전자 중복 — "예쁜 꼬마 선충이든 초파리든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인간하고 상당히 많이 중복돼요. 동물 실험의 결과로 우리 인간의 어떤 건강과 안(녕)에 도움이 될 결과가 얼마든지 가능해요." 다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의 실험은 허락하고 어느 정도부터는 하지 말아야 할까" — 예를 들어 "(무리와) 정서적 교감이 가능하고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경험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는 동물. 그런 동물이라면 궁극적으로는 중단하는 게 맞아요."

00:44:44

"사람을 위해서. 저는 인간 중심주의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결국은 중단해야 되는 게 맞지만, 현재는 미니 장기라든가 시뮬레이션으로 현재 진행되는 모든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준은 아직은 안 돼요."

00:45:57

선 긋기 자체가 인간중심주의 — "그럼 어디에서 선을 그을까라는 게 사실 생각해 보시면 인간이 잣대예요. 인간을 기준으로 해서 동물 실험을 허락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도 인간 중심주의인데, 결국 '동물이 인간의 건강과 안녕에 의해서 실험에 사용되는 것은 반대한다'라는 것도 마치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서 동물의 일반적인 권(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 실험을 허락할까도 결국 그냥 인간 중심주의죠."

00:47:15

고통의 주관성 — "고통이라는 거는 어쩔 수 없이 개체의 주관적인 경험이거든요. 제3자는 그 개체가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를 주관적인 관점에서 결코 느낄 수 없어요. 그러다 보면 바깥에서 보여지는 회피 반응만을 고통이 있느냐 없느냐에 판단해서 이용한다면 — 꼬마 선충도 회피해요."

00:47:37

일관성 논변 — "실은 논리적으로는 영장류를 비롯한 고등 동물… 그런 동물 실험을 반대하면 같은 논리로 꼬마 선충에 대한 실험도 반대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00:48:52

"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동물 보호도 인간중심주의라는 전호근 논지에 동의)

00:50:08

"아니에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개를 구합니다. 자기 개(를 구한다)."

00:51:33

제인 구달 일화 — "제가 대학원 시절에 제인 구달 선생님, 아시죠? 침팬지 연구의 대모. 제인 구달 선생님을 일주일간 한국에 모시고 다닌 적이 있어요. 이분이 채식주의자인데, 저는 당연히 (침팬)지 연구하시고 환경에 대해서 너무 많은 얘기를 하시니까 그게 체화돼서 그렇게 되신 줄 알았어요. 식사할 때 되게 힘들어요. 여쭤봤어요. '채식주의가 어떻게 되셨어요?' 그랬더니 '피터 싱어 책을 읽고 생각을 고쳐 먹었어요.' 야생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피터 싱어의 책을 읽고 '이 사람 말이 (맞)다. 고통의 감수성이 있는 동물의 경우에 최소한으로 우리가 그걸 해야 된다.'"

00:52:07

잡식 → 뇌 → 이성의 도약 — "저 이제 진화학자니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잡(식)이에요. 채식주의자 아니고요, 동물만 먹는 애들도 아니고요, 잡식이에요. 처음엔 채식을 했겠지만 잡식성이 돼서 단백질을 많이 흡수하게 돼서 뇌도 커지고 인간이 된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뇌가 커지고 이성이라는 걸 작동하고 고통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고 다른 동물에도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이 순간에 우리가 도약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대로 살아도 되나?' 이게 피터 싱어의 책이에요.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고통을 느끼는 애들은 되도록 먹지 않아도 되니까 먹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보자.' 저는 이게 이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해요."

00:52:55

외계인 사고실험 — "외계인이 와 가지고 대화를 해요. '인간 되게 맛있어. 생으로 먹는 게 최고야'라고 하는데, 인간 대표가 나가서 '우리를 왜 먹습니까? 우리 맛없어요.' '맛있으니까 먹지.' '아, 우리는 고통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면 우리는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요.' '아 그래, 몰랐는데.' 그리고 안 먹어보려고 해요. 그랬더니 이 인간이 소고기를 먹는 거예요. '야, 소는 그럼 고통 못 느끼냐?' 그랬더니 '아, 소도 고통을 느끼죠.' 그러면 '어, 그래. (이리) 와. 맛있게 먹어봐.'"

00:53:28

스피시즘 —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스피시즘이라고 하죠. 종(우)월주의. 이건 이상향이에요. 우리가 인간이 다음 단계로 진화를 한다면 그 동물의 고통도 우리 고통처럼 느낄 수 있겠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다. 그러면 지금은 이걸 금지할 순 없는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확신도 중)

00:54:03

백신 사례와 종간 차이 — "백신 같은 연구가 대부분이요. 백신 연구에서 어떤 거는 우리가 영장류니까 침(팬)지나 원숭이한테 투여를 해서 그들의 반응을 보는데, 사실 HIV 같은 경우가 우리는 걸리면 문제가 되지만 원숭이들은 아니잖아요. 비슷한 영장류라 하더라도 사실은 다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에요. 쥐보다는 영장류가, 왜냐 가까우니까 — 가까울수록 더 잘 들어맞는다는 가설은 틀린 가설은 아니지만 정확히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임상 실험도 필요한 거죠. 임상 실험, 즉 사람에 대한 실험을 하기 전에 최소한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동물 실험이 일어나는 건데,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애들이나 감정을 느끼는 것 같은 친구들한테는 좀 많이 미안한 거죠."

00:54:47

생태주의와의 선긋기 — "저는 생태주의자는 아니에요. '모든 종이 똑같은 권리를 갖고 우리도 자연의 일부니까 그런 전체론적인 맥락에서 다 같이 공생해야 된다' 이거보다는, 저도 토론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는 어쩔 수 없이 인간 중심주의자인데, 그런다고 그래서 인간만을 위한 것들이 나오는 건 아닌 거고."

00:55:04

역사의 발전 과정 — "전호(근) 교수님이 말씀하신 거도 비슷한데, 왜 그럼 동물들도 존중해야 되냐? 그게 어떻게 보면 역사의 발전 과정인 거죠. 흑인 노(예)를 대상으로 그들을 가축처럼 (취)급하고 죽이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 당시에는 착한 기독교인들조차도 '이거는 죄악이다'라는 생각을 별로 안 했단 말이에요. 근데 나중에 보면서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잘못된 것'이고. 그렇지만 여전히 종적 우월주의가 있어요. 같은 인간 내에서도 인종주의라든지 이런 게 있고. 그러니까 현재 단계에서 우리가 하나의 발전으로 나아가는 거는 가급적이면 고통이 없는 세상, 조화를 이루는 세상. 근데 그것이 모든 종을 똑같이 대우한다라는 (것으로) 해석되는 건 아닌 거 같고."

01:00:24

개체수 조절 사냥 — "근데 개체(수)들이 많아서 사실은 사냥을 장려하기도 하거든요. 그 생태계에서 너무 동물들이 (많)으니까 어쨌든 사냥하는 사람 있으니까 재미로 사냥하게끔 한 다음에 개체수를 줄이는 그런 방법도 쓰거든요."

01:01:45

공감의 3요소 — "대체로 그냥 우리가 많이 보는 동물들에 그나마 조금 더 공감하거나 우리랑 많이 닮은 동물 (에 공감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공감의 중요한 요소가 ①얼마나 우리랑 유사하냐 ②얼마나 우리가 친밀하냐 ③얼마나 상호(작용)을 많이 했냐. 이거예요. 세 가지 조건이에요. 그걸로 치면 어떤 사람은 거북이일 수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자동차일 수도 있어요. 그게 대상이 꼭 동물일 필요가 없는 거죠."

01:02:18

파블로프의 개 — "침샘이 나오는 걸 확인해야 되니까 턱에 구멍을 뚫고 침샘을 연결해 가지고 그거를 정확하게 측정을 해야 되잖아요. 침 나오는 거를 그냥 이렇게 받을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의학적인 수술을 한 거예요."

01:02:33

토끼 마스카라 시험 — "그런 걸로 치면 잔인하죠. 사실 우리가 못 봐서 그렇지 의학적인 혹은 의료적인 진보를 위해서 하는 실험들은 다 대체로 그런 게 많습니다. 토끼 눈에 화장품 마스카라 많이 하잖아요. 왜냐면 토끼가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깜빡깜빡을 적게 하기 때문에 영향을 제일 잘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토끼가 엄청 (희생)됐잖아요. 그래서 화장품사들 중에서 '토끼(로) 이런 실험을 하지 않는다'라고 얘기를 해야지만 화장품이 팔리는 그런 시대까지 온 거죠. 그거에 대한 인식이 더 늘어난 건데 우리의 본능은 바뀌지 않았죠. 우리의 인식이 바뀐 거죠."

01:04:25

"동물 입장에서 죽일 때, 도축할 때 되도록 짧게 — 고통에 집중을 하면 무슨 예의 이런 거는 되게 상징적인 행동이고, 고통을 짧게 해서 가장 단기간(만)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게 동물의 복지를 위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많이 있어요." (확신도 중)

01:06:48

"전쟁 같은 게 의학 발전에 가장 중요한 기간이거든요. 인간의 임상 실험을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01:06:56

탈리도마이드 — "동물의 경우에도 제가 알기로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어요. 이거는 임신 초기 입덧을 줄여주는 약, 동물실험 다 통과했어요. 그래서 먹였는데 기형아가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거는 초창기여서 그렇긴 한데, 요즘은 동물 실험을 끝났다고 해서 바로 승인해 주진 않습니다. 당연히 임상실험 1상, 2상, 3상까지 다 가서 인간에게 어떤 해가 있는지를 다 본 다음에 하는 건데, 동물 실험이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꼭 필요하냐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아직은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지만 충분하진 않은 거죠. 이걸로 약이 그냥 나오지 않는 거니까요."

01:07:38

논점 분리 — "그럼요. 근데 여기서 논점이, 동물 실험의 결과가 사람에게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그런 사례가 있으니까 동물 실험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또 (다르)죠."

01:08:00

모델 생물로서의 쥐 — "생물학에서 그거를 모델 생물이라고 부르는데요, 사실 몇 종류 없거든요. 쥐, 보통 마우스라고 하는데 마우스 같은 경우엔 이런 경험들이 너무나도 많이 누적되어 있어서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체계가 완전히 구축이 되어 있고, 얼마든지 유전자 변형이 가능하고, 무균 환경에서 태어나서 자라게 하는 기술 그런 것들이 워낙 발전돼 있어서 일단 그게 확립되니까 다른 데로 벗어나긴 어렵고요. 또 (생애가) 짧아요. 크기도 작고."

01:09:07

"근데 이제 그 쥐(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사람의 두뇌의 과정을 연구하는 거니까." (확신도 중)

01:10:16

오가노이드 — "그러니까 인공 장기라고 하는데요. 사람이랑 어떤 동물의 장기를 아주 작은 규모에서 세포 배양을 통해서 만들어낸 (것)."

01:10:50

시뮬레이션과 AI — "그쪽 기술이 발전하고 있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게 이제 시뮬레이션이죠. 근데 시뮬레이션도 동물 모델이 없이는, 축적된 데이터가 없이는 불가능하고요. 지금 AI가 신약 같은 것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많이 찾아 주기 때문에 사실은 획기적으로 동물 실험들을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생긴 거 같아요. 데이터를 집어넣어서 AI가 해 봤을 때 신약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되게 좁혀 주기 때문에, 여기서 실험을 다 해 봐야 '아 여기는 안 돼, 안 돼, 안 돼' 제거했던 것들을 굉장히 줄여 줄 수 있죠. AI는 저는 굉장히 신의 한 수일 수 있다. 동물 실험과 관련해서."

01:10:02

"근데 정프로님이 하시고자 하는 포인트도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이거를 일종의 PC주의처럼 자기 자신의 어떤 도덕적 우월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좀 (하는 경우)." / "두 분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확신도 중)

EP.15 — 자유의지 vs 결정론 (2025-02-13)

[원 소제목] 장대익 (과학철학자, 가천대)
01:14:11

오프닝 입장 — "저는 결정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근데 만약에 결정론이 맞는다 하더라도 자유의지가 불가능하냐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1:14:33

"단절은 아니고 레벨이 다른 것 같은데요." 물리적인 것들이 다 인과적으로 결정된다 하더라도, 자유의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자유의지를 "어떤 행위를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내가 피할 수 있느냐"로 정의한다면, 피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

01:15:10

"그게 이제 초유물론적인 입장인 것 같아서 —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물론 칸트의 입장을 그대로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칸트 같은 경우는 자연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해서…"

01:15:33

"아니 그건 아닌데, 오늘 우리가 그 얘기를 해 보면 될 것 같아요. 결정론과 자유의지에서."

01:18:02

악마의 변호인 선언 — "이렇게 이야기하는 취지는 과학의 입장이 아니라, 가장 폭넓은 극단적인 결정론의 입장이라면 자유의지가 양립하기 어렵다는 걸 얘기하실 분(을 대신해서)이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얘기를 해보고 싶다."

01:18:17

진화적 해석 —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얘기다. 진화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믿음은 진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 의사결정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내가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판단에 책임을 지게 만들고, 인과적 사슬에서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명확히 하기 때문에 그 믿음 자체는 생존에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완전히 다른 물음이다.

01:18:50

"당연하죠. 왜냐면 자유의지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특정 시공간에 있는 게 아니거든요. '내놔라' 하면 내놓을 수 없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실체도 아니고, 자유의지가 어디 있는지 좌표를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01:25:26

"저는 있다고 봐요. 어쨌든 그 상황에서도 자기 목숨을 걸고." / 01:25:33 "여러 가지 동기가 있겠죠. 도덕적 동기."

01:25:48

반박 — 그것(사회적 압력·교육)이 존재한다고 해서 자유의지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마다 환경과 자라온 교육 방식, 문화적 차이가 다 있지만 어떤 사람은 A라는 행동을, 어떤 사람은 B라는 행동을,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는 등 의사결정에 차이가 있다. 영향을 주는 요소는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요소들이 있으면 무조건 이런 결정을 피할 수 없이 한다면 자유의지가 없는 것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01:26:43

"자유의지가 있는 거죠. 자유의지를 실현하느냐 마느냐는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이 없어요." / 01:26:53 "실현하는 사람은 매달리는 거고,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01:26:58

아이히만/쉰들러 대비 — 수용소에서 아이히만[ASR: 아이만] 같은 사람이 공무원처럼 스위치를 눌렀다, 나는 일상에서 하던 대로 했다는 식의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처럼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나 다르게 행동할래"라고 의사결정을 하는 건 다르다.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는 순간 처벌이든 칭찬이든 할 수가 없다.

01:27:25

"칭찬할 수도 없고요. 우리가 의사결정을 이렇게 해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다는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처벌이나 칭찬조차 할 수가 없다는 거죠."

01:28:06

리벳 실험 소개 —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진화했고 그건 맞다. 그런데 자유의지가 진짜로 존재하는가에 의심을 사게끔 만드는 실험들이 있었다. 벤저민 리벳[ASR: 리처드 리베]이라는 신경과학자가 손을 움직이려 할 때 "네가 어느 시점인지를 얘기해"라고 하고, 실제로 그 의지가 어느 시점에 작동했고 행위가 어느 시점에 작동했는지를 정밀하게 쟀다. 놀랍게도 "내가 이걸 꼼지락할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400ms 이전에, 준비전위라고 하는데, 이미 그쪽 방향으로 신경이 작동하고 있었다. 즉 "이렇게 꼼지락할 거야"라고 하기 0.4초 전에 이미 신경은 결정돼 있었다. 리벳 실험이란 의식한 다음에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고, 결정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의식이 따라 나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결정론이 맞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01:29:17

"그게 대표적인 반론이에요. 이 리벳 실험에 (대한)."

01:36:37

"어차피 앞날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 이 말씀에 동의하는데,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게 게임을 만들었다면 그건 결정론이다. 그게 아니라 각 의사결정의 노드마다 두 개 이상의 길이 존재한다면(무한도 아니고, 다른 판으로 넘어가는 건 또 다른 얘기고), 그 두 개 이상의 선택지에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자유의지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01:38:02

사이코패스 — 꼭 신학적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사이코패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원인은 모르지만 대부분 편도체에 문제가 있다 — 감정을 컨트롤하는 부분이다. 신경학적으로 편도체 손상이나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되게 둔감해지고 그런 행동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럼 사이코패스의 잔인한 행위들을 우리가 어떻게 처벌할 수 있냐는 것이다.

01:38:52

"근데 현대 형법 체계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어요." / 01:38:58 심신미약이라고 돼 있다. 그 극단적 케이스가 "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뇌가 푸시를 했건 강압이건 이 사람의 의지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는 형법에서 처벌할 수가 없다.

01:39:10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 거예요, 이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했을 때는."

01:39:17

"처벌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자유의지가 도덕론적으로만 얘기된 게 아니라는 맥락)

01:46:01

우회 논증 — "직접 증명하기 어려울 때는 거꾸로 접근을 해 보죠. '자유'라는 말을 빼면 '의지'가 있다 — 이걸 인정합니까, 부정합니까?" / 01:46:12 "그럼 자유의지도 있는 거죠? 부자유 의지가 있는데 자유의지가 없겠습니까?"

01:46:21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유의지는 물리적 실체나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있다고 좌표를 찍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조건 자체가 자유로우면 자유의지가 있다, 이렇게 보는 거죠." 게임 같은 통제된 상황에서는 자유의지가 제한되지만, 통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선택이든 가능하니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01:48:58

매트릭스 논변 — 네오처럼 시뮬레이션 세계 안에서 밖으로 나갔던 사람만이 그게 시뮬레이션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 그러려면 에러가 발생해야 한다. 실제 세계에 패턴이 있는 에러가 나와야 하고 그 에러를 찾아서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게 있을까. 통 속의 두뇌처럼, 데카르트의 악마처럼 기만된 세계를 살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오류를 어느 정도는 발견해야 하는데 우리 세계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증거는) 그렇지는 않지 않나.

성진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 성관사 주지

출연 3/9 · 발언 블록 108

종교인기의 무게중심. 패널 중 최다 발언.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출생1970년생 (부산 연고)나무위키 성진(승려)
출가1993년, 백양사 무지월성(無地月星) 스님을 은사로 출가법보신문 「채문기의 천강에서 달을 보다」
학력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학사나무위키 · 법보신문
병역공군 군종장교(대위 전역)나무위키
수행 이력장수 성관사 대각선원·백양사 운문선원 안거 정진법보신문
현직대한불교조계종 남양주 성관사 주지불광미디어 인터뷰
종단 직책조계종 국제교류위원(제8기, 2020 위촉)·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군종특별교구 부교구장(역임)·포교원 포교국장·어린이청소년전법단 단장불교닷컴 · 나무위키
종교간 대화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위원장가톨릭신문
만남중창단2022년 결성, 4대 종단 성직자 4인 — 성진 스님(조계종)·김진 목사(개신교)·하성용 신부(천주교)·박세웅 교무(원불교)세계일보 · 뉴스1
저서『성진 스님의 행복공양간』(2018, 푸르름), 『내 걱정 어디서 왔을까』(2022, 마음의숲),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2023, 불광출판사, 공저), 『절 마당에 앉아』(2025, 김영사)교보문고 저자 페이지 · 예스24 작가파일
방송BBS 「성진스님의 행복공양간」, BTN 「세상IN」, KBS 「역사저널 그날」, MBC 라디오 「여성시대」 고정, SBS 「돌싱포맨」 등나무위키
Tensions
  • 성관사의 소재지: 법보신문·불광미디어·영상 본인 소개(01:50:27 "남양주 성관사에서 머물고 있는")는 모두 남양주로 일치한다. 나무위키 본문 개요만 "전북 장수군 성관사"로 적혀 있어 자체 표제부와도 어긋난다 — 1차 출처(본인 발언 + 언론 인터뷰) 쪽을 채택하고, 장수 성관사는 안거 정진처로 별개 기재.
  • 출가 연도: 언론은 1993년, 영상에서는 01:51:03 "한 30년 조금 넘었고요" + 01:51:06 "22살에" — 1970년생 기준 만 22세는 1992~93년으로 대체로 정합. 결정적 불일치 아님.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EP.16(위선·선악) · EP.17(생명의 경중) · EP.18(체벌·인권)
  • 발언 블록 수(원본 파일 직접 계수): 108개 — EP.16 49 / EP.17 33 / EP.18 26. MC를 제외하고 이 패널기 최다.
  • 맡은 기능 한 줄: 세속의 딜레마 질문을 받아 불교 교학의 격자(방편·업·육도·불살생)로 재기술한 뒤, "경중을 재지 말라"는 형태로 딜레마의 전제 자체를 무효화하는 역할. 이 패널기의 논의 프레임을 실질적으로 정하는 무게중심.

논증 스타일

1. 개념을 한자 자원(字源)으로 먼저 고정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01:53:33 "위(僞)는 거짓 위 자인데, 이를 선으로 놓고 볼 수가 없다." 02:01:00에서도 "한자의 베풀 선(善) 자"로 되돌아간다. 정의를 어원에 정박시켜 논쟁의 출발선을 자기 쪽 격자에 옮겨놓는 수법. 빠르고 선명하지만, 어원은 개념의 현대적 외연에 대한 논증이 아니다.

2. 선을 "악의 부정"으로 재정의하는 뒤집기. 01:58:28 "열 가지 악 앞에 불(不) 자를 붙인 것이다. 살생이 악이면 선은 불살생, 투도가 악이면 불투도." → 01:58:55 "가만히 있으면 선이에요." 그리고 곧바로 01:58:56에서 무기업(無記業)을 도입해 스스로 이 명제를 제한한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선까지는 아니고"). 대담한 뒤집기와 즉각적 자기 단서 달기가 한 호흡에 붙어 있는 게 그의 전형이다.

3. 딜레마를 푸는 대신, 딜레마를 만든 저울을 치운다. EP.17 전체가 이 수법이다. 02:29:00 "우리의 필요한 선택을 생명의 경중의 무게로 가는 순간부터는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 02:31:52 "내가 누구를 건질 수 있냐에 따라서 해야죠. … 그거를 (사유)하고 분별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니까." 트롤리형 질문에 "누구를 고르는가"로 답하지 않고 "고르는 행위의 기준을 생명 가치에 두지 말라"로 답한다.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층위를 바꿔서 답하는 것에 가깝다 — 다만 청중이 원했던 답은 종종 남지 않는다.

4. 설화·역사 사례를 논증의 하중 지점에 놓는다. 02:08:40 임진왜란 승병과 서산대사, "호랑이 앞의 어머니" 비유, 그리고 결정적으로 02:14:16 "종교적으로는 정리가 끝났죠. 악이야." — 예화를 정당화로 쓰지 않고 예화를 든 뒤 곧바로 자기 교리 기준으로 그 예화를 유죄 판정한다. 02:32:08 정반왕–석가모니 문답("나는 그때 평온하고 싶다") 역시 답 대신 태도를 제시하는 같은 구조.

5. 사후 결과와 의도의 변화를 시간축으로 추적한다. 02:04:45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생각하고, 행동을 한 뒤에 생각하라" → 02:06:10 "나중에 이 사람의 의도조차 점점 좋아진다면 그때부터 선으로 받아들인다" → 02:06:29 "(첫 번째 행동은) 선이 아니에요." 판정을 유보하지 않고, 시점별로 서로 다른 판정을 내리는 다층 평가. 이 패널기에서 가장 정교한 논증 구간이다.


강점

1. 극단 사례를 실제 수행 경험으로 착지시킨다 — 관념이 아니라 신체로. 모기 논쟁에서 그는 원칙을 낭독하지 않고 자기 실패를 먼저 말한다. 02:22:32 "그냥 풀 베다가 모기가 물면 때리죠 — 자율(자동) 반응인 것 같(아요)." 그다음 조건부로 지켜지는 지점을 구분한다. 02:22:37 "참선할 때는 … 그때는 극한을 참습니다." 그리고 자기 원칙의 최대 부하 지점까지 스스로 밀어붙인다. 02:23:11 "꼬리 쪽에 약간 줄무늬가 있어. 얘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 이런 애도 그냥 봐줘요." 교리를 방어하는 대신 교리가 실제로 어디까지 작동하는지 실측을 제출한다.

2. 자기 종단의 관행을 비판 대상으로 먼저 꺼내고, 그 정당화 기준을 명시한다. EP.18에서 죽비를 방어하되 방어 논리를 검증 가능한 조건으로 좁힌다. 02:48:44 "소리만 커요. 죽비가 가운데가 비어 있어요." 02:48:53 "동의하지 않으면 안 맞습니다." 02:50:42 3천배도 "내 다리로 하는 거잖아. 남이 기계에 묶어서 시키는 게 아니잖아요"로 자율성 기준을 세운다. 종교 관행을 성역화하지 않고 세속의 체벌 기준(동의·목적·신체 침해)과 같은 자로 재는 태도.

3. 자기 방어 논리가 다른 사례에 유리하게 쓰이려 하자 스스로 차단한다. 죽비를 "동의"로 방어한 그가, 학생 집단의 동의로 체벌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국면에서 02:58:16 "아무리 열 명이 동의했다고 해도 '쪼그려 앉기 10분을 하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02:58:36 "그거는 동의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로 못 박는다. 자기가 방금 쓴 원리의 남용 가능성을 직접 봉쇄하는 것은 토론에서 드문 자기 규율이다.

4. 원칙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체 수단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02:56:15 벌점 제도, 02:58:16 별실 모니터 수강, 03:01:39 상담·정서 교육. 그리고 대체 수단의 한계를 자기가 먼저 인정한다. 03:01:39 "이 노력이 모든 걸 방지할 수 없어요. 그러나 체벌이란 선택으로 가지 말고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우리 사회가 쏟아서라도." 원칙론자가 흔히 빠지는 "그럼 어떡하냐"의 공백을 메운다.


약점·문제점

1. 교리 명제를 전제로 밝히지 않고 결론으로 바로 투입한다 — 특히 세속 청중이 공유하지 않는 우주론을. 02:38:07 "불교에서는 육도라고 해서 인간계가 있고 축생계가 있고 하늘(천상계)이 있고 지옥이 있고" → 02:38:45 "거북이로 태어나서 100년 살 것이냐, 그 집 강아지로 태어나서라도 나는 같이 있고 싶다는 애착이라고 보거든요." 육도윤회는 이 자리의 공유 전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증 없이, 반려동물 지위 논의의 근거로 그대로 사용한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본다"는 기술과 "따라서 그렇게 봐야 한다"는 규범 사이의 다리가 놓이지 않은 채 결론으로 넘어간다. 02:25:11 "지옥에 있어도 불성이라고 하는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도 같은 구조 — 불성이라는 형이상학적 명제가 "생명의 경중을 논할 수 없다"는 실천 결론의 유일한 지지대로 쓰인다.

2. "분별하지 말라"가 질문을 무효화해 토론을 닫는 순간이 있다. 02:31:52 "그거를 (사유)하고 분별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니까." 02:34:16 "(비교하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거." 이 구도의 진짜 문제는 소방·의료·재난 배분처럼 분별이 직무인 사람들이다. 그 자신 02:29:00에서 "응급실 기준 원칙이 도착 순서가 아니잖아요"라고 트리아지를 언급하지만, 트리아지가 이미 생존 가능성이라는 저울을 쓴다는 사실은 다루지 않은 채 "급함으로 가는 거잖아요"로 넘어간다. 02:27:35 "기준은 생명의 가치 기준보다는 '우리 공동체에 누가 더 이득일 거냐'로 선택하더라도, 생명의 가치의 경중에 의해서 정해졌다고 보셔선 안 된다"는 대목은 특히 취약하다 — 선택의 결과는 동일한데 서술만 바꾸는 것이 왜 도덕적 차이를 만드는지가 논증되지 않는다. 이것이 진지한 입장(행위자의 마음 오염을 막는다)일 수는 있으나, 그 논증이 이 자리에서 제시되지는 않았다.

3. 역사 주장을 검증 가능한 형태로 내놓지 않고, 강한 인과 서술로 확장한다. 02:30:31 "브라만교라고 해서 카스트 제도가 있었고 그 속에서 (선언)했거든요. 불교가 주창한 것은 '인간의 가치는 나의 행위로 정해지지 피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아'" → "승가에 들어가는 순간 계급이 사라져요" → "이름을 못 부르게 합니다. 그게 불명(법명)의 근원이라고 하거든요." 초기 경전의 평등 선언과 승가 내 서열이 법랍(法臘) 기준이라는 점은 근거 있는 진술이지만, 법명 제도의 기원을 카스트 은폐 목적으로 확정 귀속하는 부분은 학계에서 단일하게 확립된 설명이 아니다("~라고 하거든요"라는 완충이 붙어 있긴 하다). 02:30:31 "그런 노력들은 종교가 기본적으로 시작했다고 봐야죠"는 반증 사례(불교권 사회의 신분 질서 존속, 사찰 노비, 일본 불교의 부라쿠민 관련 역사)를 언급하지 않은 채 종교 일반으로 확장된다. 나치 서술 02:29:44는 반대로 상당히 정확하다 — T4 계획에 해당하는 내용을 "같은 아리아인이라 하더라도 정신 지체가 있거나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라고 짚고, 규모 비교도 "유태인이나 집시만큼 많이 죽지는 않았지만"으로 스스로 보정한다. 즉 그의 역사 인용은 정확도가 균일하지 않고, 자기 종교사에 유리한 방향에서 검증 밀도가 낮아진다.

4. 불교 내부의 다른 해석·반론을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108개 발언 블록 어디에도 "이에 대해 다른 종파/논사는 이렇게 본다"는 대목이 없다. 그는 일관되게 "불교는 ~이다"라고 단수형으로 말한다 — 02:25:11 "불교는 생전이든 사후든 경중의 문제를 보지 않습니다", 02:39:40 "불교는 (복제동물도) 똑같은 가치로 인정합니다". 대승·상좌부, 한국 선불교와 티베트 전통, 응용윤리에서 갈리는 지점들이 전부 하나의 목소리로 압축된다. 특히 02:39:40의 복제동물 판정은 어떤 전거에 기반한 것인지 제시되지 않는데, 그 자신이 02:43:35에서 "사람의 장기(이식) 논쟁은 경전에도 없었고 현대·근대에 생겼으니 공론화하는 데까지 아직 안 간 거"라고 인정한 바로 그 공백 영역이다. 경전 공백을 인정한 영역에서 단정적 판정이 나오는 비대칭이 남는다.

5. 방편(方便) 개념이 반증 불가능한 형태로 열려 있다. 01:53:38 "방편에는 선이 악으로 흐를 수도 있고 악이 선으로 흐를 수도 있는 약간의 여지가 있다", 01:56:27 역행보살 — 정반대 행위로 가르침을 준다. 그는 01:56:55 "(그것이 본인의 진짜가 되면) 그러면 보살이 안 되는 거죠"로 한계선을 긋지만, 이 판정은 행위자의 내심에 의존하므로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악행도 사후에 "방편이었다"로 재서술될 여지가 열린다. 그 자신이 01:21:12대 발언 02:21:15 "자꾸 정당성 — 나쁜 행위를, 나쁜 걸 하고 싶으려고 하면"에서 이 위험을 감지하고 있으나, 감지와 방어 장치는 다르다. 방편의 오남용을 걸러낼 공개적 기준은 끝내 제시되지 않는다.


반복 패턴

  • "경중을 재지 말라 → 그러나 선택은 해야 한다 → 선택의 기준을 생명 가치 밖에 둬라" 3단 구조. 02:27:35 · 02:29:28 · 02:33:37 · 02:34:51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반복된다. 결론이 같아도 매번 다른 사례(응급실·화재·임산부·차량 스티커)로 다시 착지시키는 것은 미덕이지만, 원리 자체는 재검증되지 않고 재사용된다.
  • "~하는 순간부터 위험해진다" 슬리퍼리 슬로프 형식. 02:14:46 "이 마음이 이미 난 순간부터는 다른 상황에 부딪치면 또 훔치는 선택을 할 것이다", 02:29:28 "생명의 무게가 저울에 올라가는 순간부터는", 03:00:52 "그게 선을 넘는 순간부터는 그다음 선". 히틀러 사례(02:29:44)나 체벌사(03:00:52)처럼 역사적 실증이 붙는 경우엔 강하지만, 개인 심리(02:14:46)에 적용될 땐 경험적 근거 없이 단정된다.
  • 자기 답변에 즉시 단서를 붙이는 습관. 01:58:55 "가만히 있으면 선이에요" → 01:58:56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선까지는 아니고". 02:03:24 선한 의도의 알레르기 사례로 자기 원칙을 스스로 반박하고 "지혜까지 붙어야 한다"로 보강. 이 self-correction 빈도가 높은 것은 이 패널의 다른 누구보다 두드러진다.
  • 화제를 자기 수행 현장의 1인칭으로 되돌리기. 모기(02:22:37), 죽비(02:23:32), 교도소 법회(03:03:32). 추상 논쟁이 길어지면 반드시 자기가 몸으로 겪은 장면을 투입한다.

없었다면 잃었을 것

첫째, "이건 우리 기준으로도 악이다"라는 자기 진영 유죄 판정. 02:14:16 "종교적으로는 정리가 끝났죠. 악이야" — 승병이라는, 한국 불교가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사건에 대해 교리적 유죄를 명시하고 02:08:40에서 "우리는 살생의 과보를 질 것이다"라는 당대의 자각까지 복원해 온다. 종교인 패널이 자기 전통의 영웅 서사를 방어 대신 심판 대상으로 내놓는 장면은 이 패널기에서 그가 유일하게 제공한 것이다.

둘째, 딜레마 논의를 "정답 찾기"에서 "생존자의 죄책 관리"로 옮긴 시각. 02:33:54 "'제가 어쩌다 보니까 한 명 살렸는데 두 명이 죽었어요' (하면) … '괜찮아,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걸 했어'라고 종교가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거든(요)." 02:34:51에서 그는 이 논의의 목적 자체를 재정의한다 — 딜레마의 정답을 정하는 게 아니라 딜레마에 빠진 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철학 패널만 있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층위다.

셋째, 체벌 논의의 경계선을 신체에서 정신까지 확장한 진술. 02:59:40 "정신적(위해)도 (가면) 안 되죠", 03:00:01 "'너는 지각생이야' 이렇게 명찰을 달게 해. … 신체라고 하는 것과 정신적인 영역에서 벌로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03:03:32 교도소 법회 실견에서 계호 인력의 복면·선글라스를 관찰하고 03:04:15 "신체의 자유의 박탈이 얼마나 큰 형벌이 될 수 있냐를 보면 알아요"로 잇는 대목은, 인권 논의를 관념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들어가 본 공간에서 끌어온 드문 증언이다.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불교는 ~이다"를 들을 때는 "어느 불교인가"를 속으로 채워 넣어라. 그는 108개 발언 내내 불교를 단수로 말했고 내부 이견을 소개하지 않았다. 이는 방송 포맷상 자연스러운 압축일 수 있으나, 시청자에게는 "불교의 공식 입장"으로 오독될 소지가 있다. 특히 복제동물(02:39:40)·장기이식(02:43:35) 같은 현대 쟁점은 그 자신이 "경전에도 없었고"라고 인정한 영역이다.
  1. "경중을 재지 말라"는 개인 윤리 지침이지 공공 배분 정책이 아니다. 02:29:00에서 그가 든 응급실 트리아지는 실제로는 생존 가능성·긴급도라는 저울을 쓴다. 이 조언은 "현장에서 한 명만 구한 사람을 탓하지 말라"(강력한 통찰)에는 잘 맞지만, 백신 배분·장기 이식 대기자 순위 같은 제도 설계 문제에 그대로 옮기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가 다룬 층위와 정책 층위를 분리해서 들어라.
  1. 육도·불성·업(業)이 근거로 등장하는 대목은 결론 이전에 전제 점검이 필요하다. 02:25:11, 02:38:07, 02:38:45가 그렇다. 이 전제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청자에게 그 결론(생명 경중 불가, 반려동물의 위상)은 아직 논증되지 않은 상태다. 결론 자체는 세속 논거로도 지지될 수 있으나, 그 세속 논거는 이 자리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1. 역사 주장은 정확도가 균일하지 않다. 나치 T4 관련 서술(02:29:44)은 규모 보정까지 포함해 정확한 반면, 카스트·법명 기원 서술(02:30:31)은 학계 정설이 아닌 부분을 포함하고 반증 사례를 다루지 않는다. 자기 전통에 유리한 방향의 역사 주장일수록 별도 확인을 권한다.
  1. "방편"이 등장하면 검증 기준을 물어라. 01:53:38·01:56:27의 방편·역행보살 개념은 행위자의 내심에 판정을 맡기므로 외부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 자신도 02:21:15에서 오남용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 이 개념이 특정 행위의 사후 정당화로 쓰이는 것을 볼 때는, 정당화하는 쪽이 아니라 그 기준을 공개할 수 있는지를 보라.
  1. 이 패널기의 프레임은 그가 정했다. 발언량 최다(108블록)이자, EP.17은 사실상 그의 "경중 불가" 명제를 축으로 진행된다. 다른 패널의 반론이 얼마나 충분히 부딪쳤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그의 주장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대조군이다.
성진 스님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6 — 위선·선악의 기준 (2025-10-30)

[원 소제목] 성진 스님 (남양주 성관사)
01:50:27

"남양주 성관사에서 머물고 있는 성진 스님입니다. 반갑습니다."

01:51:03

출가한 지 "한 30년 조금 넘었고요."

01:51:06

"22살에 [출가]했어."

01:51:12

그 당시에는 산 쪽이 훨씬 멋있다고 생각했다.

01:51:16

깊은 산이 아니어도 세상 사람 머무는 데는 — 몸은 가도 마음은 결국 똑같구나 (밖이나 안이나 같다).

01:51:22

"세상이 그냥 다 극락이고 보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다" 부처다.

01:53:29

"한마디로 위선을 선으로 하는 순간 난리가 날 거다."

01:53:33

위(僞)는 거짓 위 자인데, 이를 선으로 놓고 볼 수가 없다.

01:53:38

그래도 한편으로 틀어서 보면 불교에는 '방편'이 있다. 방편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보통은 선이면 선이 나오고 악이면 악이 나와야 하는데 방편에는 선이 악으로 흐를 수도 있고 악이 선으로 흐를 수도 있는 약간의 여지가 있다.

01:56:23

불교에 '역행보살'이라는 분이 계신다.

01:56:27

도를 행해야 하는데 정반대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아 저렇게 하면 되지 않겠구나"를 알려주는 것.

01:56:36

보살은 원래 선의 결정체인데 (역행보살이라는) 이런 이름을 붙여서 보여주고 말한다.

01:56:44

대신 목적은 가르침을 주는 목적이다.

01:56:55

(가르치려 악행을 보이다 그것이 본인의 진짜가 되는 경우엔) "그러면 보살이 안 되는 거죠."

01:56:59

모순적 언어지만 이걸 왜 얘기했느냐 — 결국 불교는 내가 어떻게 깨닫느냐가 핵심이다. 누군가를 깨닫게 하는 방편을 무엇으로 들 것인가: 선으로 들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잘못된 행위의 모습을 보고 깨달을 수도 있다. 그 면에서도 나에게 가르침이 된다면 이건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측면이다.

01:58:16

교수님께서 말한 아리스토텔레스[ASR: 아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ASR: 이웃 다리모니아] 같은 윤리적 선, good — 서양은 거의 윤리성으로 가는데 불교는 약간 다르다. "악을 하지 않는 것."

01:58:28

'열 가지 선'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열 가지 악 앞에 불(不) 자를 붙인 것이다. 살생이 악이면 선은 불살생, 투도(훔치는 것)가 악이면 불투도. 열 가지 악에 불(不)을 붙여서 선의 영역을 확정하니 불교는 (선의) 정의가 훨씬 강하다 — 악을 멈추는 것으로 딱 정의한다.

01:58:55

"가만히 있으면 선이에요."

01:58:56

불교에서 보는 선은 마음의 영역과 행위의 영역까지 포함해야 하고, 인과 즉 원인과 결과의 영역까지 포함해서 까르마라고 한다 — 선업과 악업, 그리고 무기업이 있다. 숨 쉬는 것은 선도 악도 없고 선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무 의미 없는 행위로 본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선인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선까지는 아니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02:00:50

"대가를 왜 받지 않으시려고 하는지요?"

02:01:00

한자의 베풀 선(善) 자 — 내가 베푼다는 개념을 나의 이득이 있느냐 없느냐로 볼 것인지는 더 이야기해봐야 한다. 내가 이득이 없어야 선이냐고 논하려면 '나의 이득이 없다'는 관념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불교에서 볼 때는 '이건 내가 이득을 안 보는 거야'라는 관념이 생겨 버리면 이미 내 마음 안에서는 '내가 너를 도와'로 가는 순간, 돕는다는 관념 속에서 아상(我相) — "난 널 도왔어"가 생길 수 있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02:03:24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 차이는 불교엔 심판의 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준이 의도·행위·원인·결과까지 다 연결되고, 최소한 우리가 정해 놓은 악행("훔쳐서 주지 마")을 하지 않는 것을 우리 스스로 지킬 선으로 놓고, 악행을 하지 않는 범위 안의 행위에 대해서는 많이 열어 준다. 악만 멈추게 하는 게 우선 가장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이 나온다. 다만 알레르기가 있는 걸 모르고 (목마를까 봐) 선한 마음으로 줬는데 그 사람이 먹고 목이 부어 실려 간다면 — 지혜 없는 행동이다. 우리가 말한 적극적 선으로 가려면 지혜까지 붙어야 한다. 지혜 없는 행위는 의도가 선하더라도 타인에게 아픔과 고통을 낳을 수 있으므로 다르게 본다.

02:04:45

그 정치인이 정기적은 아니어도 꾸준히 그 일을 하고 있다면 진짜 선이다. 선거철에만 한다면 위선이다. 불교에 내려오는 말이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생각하고, 행동을 한 뒤에 생각하라"이다. 시작이 좋아도 과정에서 나빠질 수 있고 과정이 나빴는데 결과가 좋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처음 의도가 이기적(당선되려고)이었지만 남들이 볼 때 좋은 행위를 했고, (선거에서) 떨어진다면 계속 나쁜 의도로 살아가겠지만, 지나가던 누군가가 "차라리 정치인도 저건 좀 해야지", "나도 한번 해볼래, 좋은 것 같아" 하고 나온다면 그건 이 사람의 의도성과는 별개다 — 새로운 인연으로 만들어져 결과가 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붙으면 좋고 떨어지면 나쁘다는 의도의 욕심을 못 버리므로 결과에 의해 계속 바뀌고, 붙으면 "내가 잘했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욕심으로 시작했기에 마음 안에서는 탐욕이 계속된다. 나쁜 의도(점수 잘 받으려고)로 시작했는데 해보니 감동이 오고 "뭐가 찌릿해, 돌아가면서 다음 날 또 오고 싶어" 하면 그때는 의도가 바뀌어 버린다.

02:06:10

결과를 봤을 때 꽤 좋아진 결과가 나오고 나중에 이 사람의 의도조차 점점 좋아진다면 그때부터 선으로 받아들인다.

02:06:29

(첫 번째 행동은) "선이 아니에요. 아니죠."

02:08:40

지금 하신 질문이 예전 임진(왜란) 당시 승병이 일어날 때 나왔던 논쟁이다. 살생을 하면 안 되는데 승병이 일어난다 — 서산[ASR: 서산 명] 대사가 승병을 꾸릴 때 교리적으로 완벽히 위배된다. 그때 나오는 설명이: 어머니가 산속을 아이를 업고 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나면 결국 어머니는 아이를 지키려 살생의 마음으로 싸운다. "그때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는 나가는 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생의 과보를 질 것이다." 그래서 승병으로 나가기 전에 "나는 자비의 법인 계율을 더 이상 전수하지 않겠다, 나는 끊겠다"고 하고, 몇 명의 스님들은 금강산[ASR: 건강산]으로 보내 "너희들은 전란이 끝날 때까지 내려오지 말라, 모든 전란이 끝난 뒤에 내려와서 자비의 계율을 전수하라"고 했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우리는 이 인과를 받을 사람은 남아 있는다, 분명히 살생의 과보를 질 거야, 그러나 백성이란 자식을 살리기 위해 호랑이 앞의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는 나갈 뿐"이라고 마음을 먹는다. 실제로 나중에 보면 왜군과 함께 위령제를 지낸다. 세상에는 이렇게 딱 가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 생에 살생의 과보로 엄청 고생할까? 지옥에 떨어질 거야. 그렇지만 지금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이 마음을, 너희는 (알라) 하지만 과보는 있어."

02:14:16

"종교적으로는 정리가 끝났죠. 악이야."

02:14:22

악행을 알지만 행한 것뿐이다. 백성이 자식이니까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분명히 불교의 종교적 입장에서 행위가 악한 악이다. 그 곡식을 먹어 나는 살았지만 곡식이 반으로 줄면서 저쪽 나라 누군가는 죽을 것 아닌가. 내가 살았으니까 선이라고 하면 (안 된다).

02:14:46

(그 동네가 풍년이어도) 그것은 이미 불투도(不偸盜), 도둑질하지 말라이다. 그 행위를 하는 순간 그 마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딱 요것만 하고 안 할 수 있어"라고 하겠지만, 이 마음이 이미 난 순간부터는 다른 상황에 부딪치면 또 훔치는 선택을 할 것이다.

02:15:08

(상대가 훔쳐온 곡식이어도) 안 된다. 옆 사람이 도둑질해서 이걸 (가졌)다고 나도 다시 도둑질을 해야 되느냐 — 그 자체가 어리석음이다.

02:15:20

(우리 마을 것도 뺏겼다면) "못 지켰잖아요."

02:15:23

찾아오는데 폭력을 쓰고 훔치는 행위를 해서 가져 버린다면 저쪽도 다시 그걸 일으킬 것이다.

02:15:30

종교적으로는 그때 다 (금)했다.

02:15:49

우리가 항상 말하는 대로, 서로가 이로움을 잃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나의 이로움만을 가지고 행위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다 선의 가치로 정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공동체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데 그 지혜가 부족하니 훔치는 걸로 한 것이다. "그래서 제가 말한 선은 지혜가 없으면 안 된다."

02:16:22

[추정 귀속] 이쪽으로 넘어간 것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증명할 길이 없는데 있긴 있었다. 그런데 이리로 넘어온 경로를 보니 누군가가 훔쳐 와서 제자리로, 그 절로 왔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거 우리가 도난당한 거다"라고 해 버리니 결국 돌려줬다.

02:16:44

"방법도 선해야" 한다.

02:17:22

어리석음의 세상 속에서 인간이 하나씩 지혜가 생기니 "같이 죽는구나, 이거 안 되겠다" 했다. 싸우지는 말고 같이 나눠서 네가 많은 걸 나한테 주고 내가 많은 걸 너한테 주고 — 그래서 결국 무역이 생겨난 것 아닐까.

02:18:02

(타노스는) "전제가 이미 잘못됐죠. 그게 왜 좋은 의도냐?"

02:18:08

자기가 생각할 때 이게 지속 가능한 것이고, 이걸 해결하는 법으로 '반을 죽일래'를 선택한 것 아닌가. 그걸 우리가 이야기할 때는 이 의도 자체가 이미 선하지 않은 것이다.

02:18:24

"그 어리석은 (사회적) 선택이죠."

02:18:34

(본인이 절반에 포함되어도)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내가 죽으면서 너도 죽자, 그럼 우리는 행복해지는 거다"라고 할 수 있다.

02:19:17

자신의 생명이든 어떤 생명이든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순간부터는 못 할 게 없어진다. 자연스러운 희생 속에서도 찾아야 할 다른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안 한다 — 눈에 너무 보이니까. 그래서 인류가 수많은 전쟁을 했다. 기본적으로 행위에서 어떠한 목적을 가지더라도 나를 해하고 남을 해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는 것 자체를 어리석다고 한다.

02:19:55

스스로가 악한 마음으로 하지 않느냐. 표현할 때 불교에서 이게 악구(惡口), 나쁜 말을 쓰면 업을 지은 것이다. 같은 표현을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데 "나 기분 나빠"라는 의도성이 있으면 그걸 정확하게 악구라고 한다.

02:20:12

(악플 쓰며 슈퍼챗 5만 원) 제작 입장에서는 "그래도 다행이다" 하겠지만, 모든 것은 악으로 선을 덮을 수 없다.

02:20:37

대신 표현은 나쁜 말로 하지 않아야 된다고 되어 있다. 언어라는 게 행위에 대한 결과까지도 종교적으로는 생각해야 된다고 (규정)해 놓은 것이다.

02:20:58

"제발 이제 관점 그렇게 가라. 예. 나쁜 짓 안 하는 걸로 가자."

02:21:12

그건 나쁜 짓을 하고 싶을 때 자꾸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02:21:15

자꾸 정당성 — 나쁜 행위를, 나쁜 걸 하고 싶으려고 하면.

02:21:22

아마 '위선도 선이냐'라는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선을 어렵게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니고 악을 하지 않는 쪽으로 자꾸 우리가 생각을 가져가는 것을 크게 선함으로 그냥 정리해 주고 싶은 것이지, 말씀하신 대로 "이게 선입니까?" 하면 이 사회는 더 힘들어진다.

EP.17 — 생명의 경중 (2025-11-13)

[원 소제목] 성진 스님
02:22:32

그냥 풀 베다가 모기가 물면 때리죠 — 자율(자동) 반응인 것 같(아요).

02:22:37

그럼 뭐 이게 내가 때린지도 몰라요. (모기가) 딱 오니까 이렇게 딱 치죠. 근데 예불할 때, 참선할 때는 정말 눈앞에서 — 참선할 때 손을 (모아) 있는데 손끝에 물릴 때가 제일 아프거든요. 근데 이게 눈에 보여요. 얘가 물고 있는 게 (보인다). 바로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제가 의식을 하는 순간 그 행위가 바로 시선 속에 다 있기 때문에 바로 보여. 그때는 극한을 참습니다. 모기를 가만 놔두잖아요 — 빨다가 못 날아갈 때도 있어요.

02:23:06

그죠? / 02:23:07 얘가 나중에 살짝 떨어져서 이렇게 기어가고.

02:23:11

어리석하다 보니까 — 근데 모기를 잘 보니까 꼬리 쪽에 약간 줄무늬가 있어. 얘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저 (모기), 이런 모기거든요. 이런 애도 그냥 봐줘요.

02:23:28

네, 이거 참선할 때 움직이면 바로 (제지)합니다.

02:23:32

보통 8시간이 기본이니까, 졸면 벽에 (기대)다가 죽비로 신호를 줘요. "너 졸았어" — "나 안 졸았어"라고 버티면 안 때립니다.

02:23:42

(졸음이) 축( 처지)거든요. (졸음이) 왔다 그러면 합장을 합니다 — "나를 경(책)해 줘, 나 좀 깨워 줘". 이게 사이가 안 좋으면 그냥 (막) 때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자기가 동의를 해야 됩니다.

02:25:11

불교는 생전이든 사후든 경중의 문제를 보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어도 불성이라고 하는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나 사후나 다 경중의 논(의)를 할 수 없다. 모두가 가치는 있다.

02:27:35

보통의 상황에서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운영되고 있죠. 근데 말씀하신 건 극단적인 상황이니까,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보통의 상황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거니까 있을 수 있잖아요 — "너의 생명이 가볍고 이 생명이 중요하다"가 되어선 안 된다. 선택은 해야 되니까 기준을 뭘로 할래? 기준은 생명의 가치 기준보다는 "우리 공동체에 누가 더 이득일 거냐"로 선택하더라도, 생명의 가치의 경중에 의해서 정해졌다고 보셔선 안 된다. 이건 그냥 우리 사회가 필요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 이렇게 가야지, "네가 (덜) 생명이 소중한 거야"라고 가는 순간부터는 매우 위험하다.

02:28:21

예, 이걸 만약 그렇게 가버리면 엄청난 재앙[ASR: 태양]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02:29:00

(공적 선택 시) 기다려야 되는 거죠, 순서를. 우리가 응급실 기준 원칙이 도착 순서가 아니잖아요. 근데 그 위급함은 생명의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급함으로 가는 거잖아요. 우리의 필요한 선택을 생명의 경중의 무게로 가는 순간부터는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다 소중하다"는 데서 전제를 놓고 봐라라고 하는 거죠.

02:29:28

생명의 무게가 저울에 올라가는 순간부터는 굉장히 인류가 아주 힘들어지는 상황이 온다. 인간이 가진 능력이나 기능, 공로 이런 걸 기준으로 구분해서 생명이 무겁고 가볍다 나누게 되면 인류의 숫자가 급속히 아마 줄어들 겁니다.

02:29:44

히틀러[ASR: 신러]가 그렇잖아요 — 게르만 민족이 우월해. 우리는 지금 생명의 경중으로 가는데 자칫 잘못하면 민족 우월로 갈 수도 있고 다양하게 번질 수 있다. 그리고 민족 안에서도 우열로 가는 게, 히틀러가 유태인이나 집시(를 죽인 것)도 물론 있었지만 같은 아리아인이라 하더라도 정신 지체가 있거나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더 순수한 혈통을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 유태인이나 집시만큼 많이 죽지는 않았지만 많이 죽은 건 사실이잖아요. 똑같은 거죠. 필요성에 의해서 사람에 대한 경중을 정하게 되면, 반대로 하면 필요성이 없어지면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02:30:31

불교 같은 경우는 지금 따지면 2500년으로 가는 거죠. 그때 선언한 게 그거니까 — 브라만교라고 해서 카스트 제도가 있었고 그 속에서 (선언)했거든요. 불교가 주창한 것은 "인간의 가치는 나의 행위로 정해지지 피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아". 선한 행위라는 가치의 존중을, 혈(통)이 누구냐에 의해서 사람의 귀하고 천함으로 나눠선 안 된다고 선언해 버리죠. 심지어 승가(승단)를 만든 이유가 — 들어가는 순간 계급이 사라져요. 아무 계급 없이 그냥 누가 먼저 들어왔냐에 따라 선배가 되고 후배가 되는데, 그래도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는 성과 이름을 보면 신분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 이름을 못 부르게 합니다. 그게 불명(법명)의 근원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노력들은 종교가 기본적으로 시작했다고 봐야죠.

02:31:50

내가 건질 수 있는 사람.

02:31:52

내가 누구를 건질 수 있냐에 따라서 해야죠. 화재가 나더라도 내 손에 잡혀서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어요. 그거를 (사유)하고 분별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니까.

02:32:03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는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뛰어들어라.

02:32:08

예, 즉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 이 질문을 (한 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이 "야, 너 왜 나가냐? 내가 다 해 줄게. 왕자 하면 다 할 수 있잖아, 원하는 게 뭐야?" 할 때 (부처님이) 딱 던진 한 가지 질문입니다 — 만약에 길을 가다가 아버지가 빠지셨고 도둑이 빠졌어요. 저는 그럼 누굴 구해야 될까? 아버지가 당연히 (먼저겠지만) — 그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답)이 "나는 그때 평온하고 싶다".

02:32:32

아버지냐 도둑이냐를 선택하지 않고, 그냥 나는 그때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것이다 — 그 마음을 갖고 싶다(는 겁니다).

02:33:37

이미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자칫하면 생명을 나누는 식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임산부의 가치, 하나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어요. 우리 사회로 보니까 임산부는 두 명이(라고 하)지만,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데 이미 사망할 수도 있고.

02:33:54

그죠. 모든 것 속에서 생명(의 경중)을 딱 (재)면 딜레마 존에 빠지는 순간 결국 그 모든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어쩌다 보니까 한 명 살렸는데 두 명이 죽었어요" (하면) 이야기합니다 — "괜찮아,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걸 했어. 그 한 명의 생명과 두 명의 생명의 가치를 경중할 순 없어"라고 종교가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거든(요).

02:34:16

(비교하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거.

02:34:51

주제가 중요한 게, 사실 우리는 그런 딜레마에 언제든지 처할 수 있거든요. 화재 현장, 자동차 사고 났을 때 차에 보면 나오잖아요 — "이 차에는 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저 아이 먼저 구해 주세요". 물론 그분은 요구를 했겠지만, 결국은 내가 지금 바로 누구든 한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쪽을 선택할 때 (죄책의) 짐을 주지 않는 거야. 자꾸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어떤 상황에서 하나의 생명을 선택했다고 해서 "넌 왜 그 사람 안 살렸어?"라는 경중(의 추궁)이 되지 않게. 생명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하기 시작하면 우리 모두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논의를 통해 "생명이 굉장히 더 소중해"라는 말을 계속 던져 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그런 상황에 있을 때 그 딜레마 존에 빠져들지 않게 해 줘야 돼요. 나도 살 수 있고 그 생명도 살 수 있는 선택, 그걸 하게 해 주기 위해서 사실 이런 논쟁이 필요한 거예요.

02:35:56

불교는 좀 복잡해지고요.

02:38:07

불교는 (인간을) 중생, 거듭 태어나는 존재들(로 보고) — 중생 안에는 열 가지와 12가지 (분류)가 나오고 그 안에는 진짜 고전에서 보는 빗자루 도깨비까지도 들어가 있어요. 그만큼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없어요. 불교에서는 육도라고 해서 인간계가 있고 축생계가 있고 하늘(천상계)이 있고 지옥이 있고 — 세상을 아예 이렇게 나눠 보잖아요. 그중에서 인간계와 유일하게 시공간을 같이 누리는 다른 세계가 있어요. 그게 축생계. 그래서 인간과 축생은 —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할 때, 인간과 같이 있고 싶을 때 태어난 세상이 축생(계).

02:38:45

아니, 그게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는 그 욕망이잖아요. 거북이로 태어나서 100년 살 것이냐, 그 집 강아지로 태어나서라도 나는 같이 있고 싶다는 애착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우리 집에 온 강아지를 어느 날 복날인가 잡아(먹는다). 생명의 모습이 다르겠지만 나와의 깊고 낮음의 인연은 인간과 똑같을 수도 있어. 그래서 못 하게 하죠. 얼마 전에 반려동물을 호적에 올려 달라고 (요구)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불교는 이런 거예요 — 살아있는 생명에 대해서 경중을 자꾸 따지는 순간부터는 누군가 한 생명을 해(쳐)야 하는 문제가 너무 가벼워질 수 있어. 인간 입장에서는 인간이 높은 것뿐이지. 그렇지만 인간도 오류투성이고 반려동물보다도 인간이 더 못한 짓을 행한다고 (다들) 이야기하잖아요. 불교는 기본적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경중에 대한 무게가 훨씬 크죠.

02:39:40

불교는 (복제동물도) 똑같은 가치로 인정합니다.

02:43:21

이 논쟁은 자칫하면 "그러면 간을 떼고 잡아먹으면 돼" 이렇게 갈 수도 있어요.

02:43:35

단지 사람의 장기(이식) 논쟁은 경전에도 없었고 현대·근대에 생겼으니 공론화하는 데까지 아직 안 간 거지. 이건 저도 지켜보고 있다가 — 누군가가 "간을 떼내고 잡아먹으면 이거 (문제를) 벗어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번지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냐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그 방법을 동원하는 거니까. 저번 시간에 (얘기한) 인간의 의도, 선한 의도냐 — 이게 의도성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 고찰을 다시 해야 되지만, 불교 입장에서 볼 때는 "인간이 이 모든 기준이(고) 결국은 인간 생명이 훨씬 중요하니까 다른 걸 수단(화)하는 거에 너무 민감하지 말자"로 비칠 수 있는 요소는 아닐까.

02:44:20

그런 거죠.

02:44:32

그거는 뭘 괜찮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다수가 그 시대에서 통용될 때 옳은 건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자연에서 겪는 문제들 보면, 그것들은 다 전혀 죄의식이 없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 보니까 "와 이거 우리가 죽겠구나" 하니까 하지 말자, 환경 보호하자라고 나오잖아요.

02:44:50

여기서 좀 더 가면 — 계란은 그나마 하나씩이죠. 알탕 한번 끓여 봐요, 도대체 몇 만 마리의 생명을 (쓰는 건지).

02:45:18

그렇죠, 그렇죠. 제가 (보기에) 이게 왜, 우리 사회들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대화를 깊이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냐면) — 해왔던 걸 다시 논의를 꺼내면 힘들어지니까 "이미 해 온 건 그냥 지나가자, 새로 할 것만 논의하자" 하니까, 지금 (진행자)가 말한 것처럼 새로 할 걸 고민하다 보니 "과거에 한 건 뭐야?"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는 거죠.

EP.18 — 체벌·인권 (2025-11-27)

[원 소제목] 성진 스님
02:48:44

죽비 — "날 깨워 주지, 깨우는 수단으로. 실제 그건 소리만 커요. 죽비가 가운데가 비어 있어요. 깨우는 목적을 내가 원해(서 받는 것). 원하지 않으면 안 하거든요."

02:48:53

"맞는 사람이 '나는 괜찮아, 죽비 하지 않아도 난 괜찮아' 하면 — 동의하지 않으면 안 맞습니다."

02:50:42

3천배 반박 — "절 하는 데 강제는 없어요. 내가 안 하면 그만인 거지. 그거를 내 다리로 하는 거잖아. 남이 기계에 묶어서 시키는 게 아니잖아요."

02:50:50

"자발적. 만약에 역기 선수가 운동할 때 50kg 들어요. 이걸 체벌이야? 이건 아니잖아요. 불교에서 하는 것은 정확하게 내가 이걸 통해서 얻고자 하는 수행의 목표를 선택하는 것이지, 이것이 고통을 주려고 한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02:51:07

"그거는 우리 운동할 때 다리가 아프지만 건강에 좋고 오히려 근육을 기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 감각은 와도 내가 그 정의 자체를 '나는 고통받고 있어, 체벌 받고 있어' 이렇게 하진 않잖아요."

02:53:40

(추정 — MC를 "정님"으로 호칭) "'공부 안 해.' '너 왜 안 하냐?' '엄마 공부하기 싫어.' 그랬을 때 부모의 선택이 있다는 거죠. '네 인생이니까 하지 마' 하는 것과, 대신 이거를 정님 말대로 '자 그럼 학교 못 간다' — 이 연계를 붙이는 순간 이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

02:53:53

(추정) "처벌이라는 것도 수위가 있잖아. 예전에 오줌 싸면 문밖에 세웠던 시절 있었거든요. 어떻게 세우냐면 정말 벗기고 세웠어. 학교 가는데 제 친구가 정말 바가지로 자기 중요 부위 가리면서 뒤돌아서 있는 장면이 있었어요."

02:54:27

(추정) "그렇죠. 단어가 그래요. 어떤 식으로든 '벌'이란 명목으로 신체에 무엇인가 한다는 소리잖아요."

02:55:27

(추정) "필요악이라고 표현을 하겠지만, 벌을 했는데 신체적으로 위해라고 하는 체벌로 가서는 되지 않는다는 거죠."

02:55:42

(추정) "아니요. 그래도 안 됩니다."

02:56:15

(추정) "스스로 오리걸음한 애가 어디 있어요? '야, 너네 빨리 오리걸음 저 앞에 100m까지 가.' 교육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시키는 수단적 목표가 아니잖아요. 과거에는 목적 지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수단 자체가 모두 정당화됐던 게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간 거고요. 내가 늦었어요 — 그건 스스로의 손해가 큰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보통 벌점이라고 해요. 벌점이 많아졌을 때 받는 손해가 어떤 거야, 이런 것을 정해 주죠. 이런 부분을 왜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줄여 나갈까? 과거엔 너무나 당연했지만 그런 부분들이 우리가 사용한 교육의 목표에도 맞지 않다는 걸 다 알게 된 거잖아요. 오리걸음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오리걸음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누가 오리걸음을 시키겠어요? '넌 지각했으니 오리걸음이야'라는 게 성립되면 그건 체벌로 가버린다는 거죠. 신체, 몸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02:57:46

(추정) "그 집단적인 그냥 체벌일 뿐이에요." / 02:57:49 "집단이 정한 기준에 누군가를 신체적으로 벌하는 거잖아요.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02:57:58

(추정)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를 하잖아요. 반에서 수업을 중단하고 (그 학생을) 빼잖아요."

02:58:16

(추정) "그 친구를 늦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방에서 모니터를 켜서 듣게 하는 손해는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친구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벌이라는 걸 신체로 갈래'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아무리 열 명이 동의했다고 해도 '쪼그려 앉기 10분을 하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 02:58:36 "그거는 동의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02:58:54

(추정) "성립하지 않습니다. 지각을 하면, 또는 수업을 방해하면 그런 불이익이 온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불이익을 주고자 하는 자가 아니잖아요. 함께 사는 데 있어서 누군가가 그 규율에 어긋났을 때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규율을 정하지만, 그 규율의 방법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신체적으로 고통을 가함으로써 이 문제를 수정하겠다는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정의를 하자는 거죠."

02:59:24

(추정)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하는 거죠. 이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우리 스스로가 최소한으로 정하는 거죠. 어떤 식으로든 최소한의 기율로 잡지 않으면 이 주관적 손상에서 누군가는 엄청난 피해를 갈 수 있습니다."

02:59:40

(추정) "정신적(위해)도 (가면) 안 되죠. 모퉁이 자리에 앉혀 놓고 검정색 원통으로 둘러놔요." / 02:59:49 "제가 이제 정신적인 것도 포함이 된다(고 한 것)" / 02:59:55 "정신적인 것도 예를 들어서 계속 욕을 한다든지 묶어 놓는다든지 하면 체벌이죠."

03:00:01

(추정) "'너는 지각생이야' 이렇게 명찰[ASR: 명표]을 달게 해.신체라고 하는 것과 정신적인 영역에서 벌로 하지 말라는 거예요." / 03:00:12 "벌을 주지 말라는 거예요." / 03:00:13 "벌이라고 하는 걸로 신체와 정신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걸로 선택하지 말라.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떠들고 게임하고 하니까 '너 교장실에 가 있어' — 어떤 아이가 '난 싫은데 왜 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선에서 이 부분을 체벌로 볼 것이냐 이런 논의를 하잖아요. 그 기준을 설정할 때 최소한이라도 물리적 기준, 정신적 기준을 굉장히 타이트하게 잡아 놓고 그다음에 공동체가 허용되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인식시킨 선에서 하는 것이지. 이제 이렇게 많이 발전했죠."

03:00:52

(추정) "이미 우리 사회는 그 병폐[ASR: 병패]를 너무 겪었죠. 체벌이 목적에 의해 인정되었을 때 그것이 가져오는 엄청난 병폐들. 작은 것 같지만 부모가 자식이 잘못했을 때 '몇 대 때리면 어때'라고 하지만, 그게 선을 넘는 순간부터는 그다음 선, 그 아이가 받는 충격 — 이런 것이 이미 확인되고 검증되다 보니 기본적으로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이라도 충격을 줄 수 있는 부분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거죠."

03:01:39

(추정) "우리 사회는 노력을 합니다. 그 친구들을 모아놓고 상담을 합니다. 이 아이의 이런 부분을 정서적으로 풀어 주려고 하는 특별한 교육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 노력이 모든 걸 방지할 수 없어요. 그러나 체벌이란 선택으로 가지 말고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우리 사회가 쏟아서라도 다른 방향을 찾으려고 해야 된다는 거죠."

03:02:18

(추정) "아니죠. 그거는 제가 볼 때, 지금 우리 사회가 체벌이라고 하는 것을 (선택지에) 넣어 버리지는 말자는 거죠. 다른 복잡한 방법을 고민하고 찾더라도 이건 제외하고 찾아보자는 것이지,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자거나 마음대로 하게 둡시다가 아니다."

03:03:32

교도소 실견 — "저 이제 교도소에 가보면 죄에 따라서 [ASR: CRPT]라고, 살인범이나 중범죄자는 양옆에 (계호 인력이) 앉아 있습니다. 선글라스 끼고 검은색으로 돼 있습니다. 복면 다 (하고요)." / 03:03:47 "내가 누군지 알면 안 되니까 수용자하고 떨어져 있습니다." / 03:03:53 "옆에 있어요. 이렇게 딱 끼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게 한 사람의 자유권을 박탈할 때 어느 선에서 할 건지 참 많은 고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법회는 들어오긴 하지만 범죄 이력이 살인이나 중범죄인 경우는 그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체적인 억압은 있다는 거죠."

03:04:15

"아, 그렇지 않아요. 가서 보면 신체의 자유의 박탈이 얼마나 큰 형벌이 될 수 있냐를 보면 알아요."

03:05:33

(추정)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가능하면 최소한의 보장은 해주자. 사실 우리 사회로 다시 들어온다는 전제가 없다 하더라도, (수용을) 시킬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 하더라도 그때까지의 대우, 인간의 대우는 해줘야 된다 이거죠. 그걸 짐승처럼 다루거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03:06:26

(추정) "우리 사회는 적어도 다른 방법으로 우리 사회에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고 그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고 전 봅니다. 그 사람이 감옥에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우리 사회가 너무 힘든 일이지만" / 03:06:40 "잘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 03:06:41 "우리 정님께서 하루만 갔다 오시(면)" / 03:06:44 "잘 산다라고 볼 수 없다."

03:06:53

(추정) "어느 정도로 괴롭혀야, 벌을 가해야 이 사람이 벌 받은 거냐 — 이건 이미 정해진 바도 없고 그때그때 사회가 그냥 이렇게 해(정하는 거고). 공동체적으로 어느 선을 정하지만 누구를 위해(危害)하고자 만들어진 건 아니니까요. 우리 스스로 '인간은 인간을 짐승으로 대하지 말자'라고 하는 최소한의 선에서 보는 거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하성용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출연 3/9 · 발언 블록 43

패널 최소 발언량. 짧게 끊어 교리 좌표를 찍는 역할.

ASR 자막은 이름을 "하송용"으로 오기한다. 정확한 표기는 하성용(河成鏞), 세례명 유스티노. 본 문서는 종교 교리의 참·거짓을 다루지 않는다. 평가 대상은 공개 토론에서의 논증 수행뿐이다.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성명 / 세례명하성용(河成鏞) 유스티노 · Rev. Justin Ha Sung Yong한국 천주교 주소록(CBCK)
소속 교구천주교 서울대교구 (현소속·원소속 동일), 소임 구분 = 특수사목CBCK 주소록
사제 서품일2009-06-26CBCK 주소록
현직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부국장 ·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CBCK 주소록
겸직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 성빈첸시오아바오로회 한국이사회 담당 사제CBCK 주소록
인사 이력하계동 부주임 → 사회사목국 부국장 겸 정평위 위원장(2020) → 정평위 위원장가톨릭평화신문/가톨릭신문 사제인사
대외 활동'만남중창단'(개신교 김진 목사·불교 성진 스님·원불교 박세웅 교무·천주교 하성용 신부) — 2022년 결성, 2022-12-22 서리풀아트홀 첫 공연가톨릭신문 특집
방송·강연MBC '일타강사' 등 출연 / 2024-12 장성군 '21세기장성아카데미' 성진 스님과 공동 강연(주제: 공감)남도방송
저서『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교보문고 저자 프로필
사실 충돌 (Tension) — 서품 연차
  • 영상 01:50:59: "사제된 지는 18년 됐고요. [ASR: 교청 → 교구청]이라고 하는 곳에서 근무한 지는 6년 됐습니다."
  • 공식 기록: 서품 2009-06-26. EP.16 공개일(2025-10-30) 기준이면 약 16년 4개월.
  • 판정: 본인 발언과 공식 기록이 2년 어긋난다. 다만 이것을 화자의 오류로 단정하지 않는다 — 구술 어림수이거나 ASR 수치 오인식(16↔18)일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고, 원음 대조 없이 가릴 수 없다. 연차가 필요한 인용에는 CBCK 공식 서품일을 쓰라.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EP.16(위선·선악의 기준) · EP.17(생명의 경중) · EP.18(체벌·인권) — 3회 전부
  • 발언 블록 수(원본 파일 직접 집계): 총 43 (타임스탬프 46개)
  • EP.16 = 21 · EP.17 = 13 · EP.18 = 9
화자EP.16EP.17EP.183회 합계
정영진 (진행)886444196
성진 스님493326108
전호근2818753
하성용 신부2113943

→ 게스트 3인 중 최소 지분이 맞다(성진의 40%, 전호근의 81%). 단 단순 서열은 아니다 — EP.18만 놓고 보면 전호근(7) < 하성용(9) 으로 역전된다. 즉 "가장 적다"는 EP.16·17에서 벌어진 격차의 산물이다.

분포가 총량보다 더 말해준다. EP.18에서 그의 9개 블록은 전부 02:51:22~02:53:26, 약 2분 4초 구간에 몰려 있다. 그 앞뒤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EP.16도 마찬가지로 5개 덩어리(01:54대 / 01:59~02:02 / 02:10~02:13 / 02:18~02:20)로만 등장한다. 흩뿌려진 참여가 아니라 호출·응답형 버스트다.

또한 43블록의 상당수(대략 3분의 1, 예: 01:55:03 "그렇죠. 종종 있다" · 02:26:04 "그렇죠. 하느님이 하는 거죠" · 02:36:21 "그렇죠, 네, 일단은" · 02:51:56 "그런 거는 체벌에 들어가진 않아요")가 한 문장 이하의 동의·확인 토큰이다. 실질 논증을 담은 블록은 30개 내외로 줄어든다.

맡은 기능 한 줄: 불교(성진)와 동양철학(전호근)이 깔아놓은 판 위에, 서구 규범 전통의 개념 장비(의로움 / 정당방위 비례성 / 사전 고지된 규칙)를 필요한 순간에만 꺼내 얹는 참조점 역할 — 판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판정 기준을 대는 사람.


논증 스타일

1.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라고 이야기한다" — 인용 프레임으로 1인칭과 교리를 분리

가장 두드러진 문법이다. 01:54:06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위선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01:59:25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선을 착함·좋음이라 할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의로움'을…", 02:02:58 "그리스도 교회의 선행 기준은…", 02:13:34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효과: 청중이 어디까지가 교회 입장이고 어디부터가 이 사람 말인지 구분할 수 있다. 종교인 패널이 자기 견해를 종교 전체의 권위로 포장하는 흔한 실패를 구조적으로 피한다. 단 이 프레임이 일관되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약점 3).

2. 정의(定義) 교체 → 조건 제시 → 사례 대입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용어부터 갈아끼운다. 01:59:25 "선 = 의로움 / 악 = 선에 대한 결핍" — 통념(선=착함)을 밀어내고 다른 축을 세운다. 그리고 이 회차 그의 최고 압축 문장이 곧바로 따라온다:

02:00:22 "좋은 것은 어쩌면 아무 선택을 안 해도 좋을 수 있지만, 의로움은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의로워질 수 있다."

같은 구조가 안중근 판정에도 적용된다. 02:10:04에서 조건 3개(①정당방위 성립 ②사적 복수 아닐 것 ③무고한 피해 없을 것)를 먼저 세우고 사례를 대입한다. 02:12:00에서는 비례성 기준을 명시한다 — "총으로만 전쟁을 하는데 … 핵폭탄을 떨어뜨리면 … 그건 과한 것이다. 상대방은 칼인데 나는 기관총이면."

3. 사목·생활 디테일로 추상을 착지시킨다 (그의 최대 실질 기여)

교리 명제 하나를 던지고 끝내지 않고, 검증 가능한 사례를 붙인다.

02:02:58

선행의 자기기만: "필리핀에 옷을 보낸다면 오리털 잠바를 보낼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 하면서 오리털 잠바나 긴팔 옷만 계속 낸다, 심지어 … 10년쯤 지난 것이다."

02:51:27

사제 양성 현장: "천주교 사제를 하면 보통 '술을 잘 먹는다' 하잖아요. 술 전혀 못 먹는 분도 있어요. … '너도 강제로 먹어' —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둬요."

02:41:18

도살 윤리: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도살할 수 있는 가치는 지켜야 된다는 거지 … 참수하듯이 한 번 베는데 안 죽으면 그냥 또 베면 되지, 이런 식으로 한다면 안 된다."

빈도로 보면 사목 현장 경험을 근거로 쓰는 비중은 오히려 낮다. 43블록 중 명시적 현장 근거는 02:51:27·02:51:44 정도이고, 나머지는 교리·개념 진술과 가공된 예화(오리털 잠바, 만 마리 소)다. 20년 가까운 사목 이력에 비하면 현장 데이터의 투입이 적다.

4. 판단 주체를 제3자로 이전하는 종결 구조

02:02:26 "그리스도교에서 선행에 대한 판단은 나나 상대방이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하느님이 하시는 거라고 한다." → 02:25:50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고, 판단하는 게 맞다고 확신해서도 안 된다." → 02:26:04 "그렇죠. 하느님이 하는 거죠." 이 이동은 그의 관용론(누구도 최종 판정을 못 한다)의 논리적 엔진이면서, 동시에 세속 청중 앞에서 논의를 닫는 장치이기도 하다(→ 약점 1).

5. 단문 종결 — "안 되는 거죠"

결론을 짧게 못 박는다. 02:40:25 "사람에게 이식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돼지, 그거는 안 되는 거죠." 02:41:54 "가치 있는 일일 순 있는데 전적인 수단이 되면 안 된다는 거죠." 02:51:22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하는 모든 건 다 안 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효과는 양면이다. 방송 매체에서 인용 가능한 한 줄을 만들어내지만, 그 한 줄을 지지하는 논증이 앞에 한두 문장뿐이라 반박당했을 때 물러설 여유가 없다.


강점

1. 자기 진영의 과오를 자기 입으로 먼저 꺼낸다

제국주의·선교 문제에서 방어로 들어가지 않고 사과 기록을 스스로 제시한다. 02:11:09 "제국주의 하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2000년 대희년을 시작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사과를 했다." 02:11:26 "기본적으로 교황이라는 사람은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 예수님이 잘못했다고 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게 되게 쇼킹한 사건이었던 건…" 그리고 결론을 피해자 쪽에 놓는다: "설령 (선교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건 그들(현지인)의 잘못은 아닌 걸로." 종교 간 대담에서 가장 사기 방어적이 되기 쉬운 지점을, 자기가 먼저 열었다.

2. 자기 논변의 약점을 스스로 붙여놓는다

02:13:34 신정론(2차대전과 신의 부재) 대목에서 답을 내놓은 직후 이렇게 덧붙인다: "물론 이게 누군가에게는 책임 회피일 수도 있고 사후적인 얘기라 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자기 답이 어떤 반론에 취약한지 정확히 지목한 뒤 그 위에 답을 놓는 태도는, 이 패널기 전체에서 드문 메타 규율이다.

3. 위계 문제를 자기 조직에 그대로 적용한다

체벌·동의 논의에서 나온 이 문장은, 위계 조직에 평생 소속된 사람이 하기 어려운 말이다.

02:52:37 "그래서 문제인 거죠. … 위계가 설정된 상태에서의 동의는 사실상 진정한 동의가 어려워요."

여기에 이탈 가능성(exit option)을 근거로 자기 조직의 강제성을 반박하는 대응도 붙는다: 02:51:44 "성직 길 자체가 언제든지 나 스스로 나가는 거예요." 자기에게 불리한 원칙을 세워놓고 자기 조직이 그 원칙을 통과함을 별도 근거로 보이는 2단 구성이다.

4. 체벌 논의를 '규칙의 투명성' 축으로 재정의해 판을 전진시켰다

02:51:57 "다섯 개만 알려주고 다섯 개는 비밀로 해 놓은 다음에, 알려 준 거 말고 (숨긴) 다섯 개에 걸렸으니까 '너 걸렸으니까 나가' 이렇게 하면 그거는 잘못된 거죠. 근데 다 오픈되어 있고 … 다 오픈된 걸 내가 어겼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 못 있는다는 걸 수용하게 되는 거죠." → 02:52:56 "(계율의) 선을 정할 때,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그걸 체벌의 기준이라 부르지는 않죠." "때리느냐 마느냐"에 머물던 논의를 절차적 공정(사전 고지·예측 가능성) 으로 옮겼다. 발언 9개로 판의 좌표를 바꾼 구간이며, 지분 대비 밀도가 가장 높다.


약점·문제점

1. 판단 주체를 신에게 넘기는 답이 세속 청중 앞에서 논의를 닫는다

02:02:26 "판단은 … 어쨌든 하느님이 하시는 거라고 한다", 02:02:58 "나는 좋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 보시기에 그건 아니라고 하면 선행이라 말할 수 없다", 02:26:04 "그렇죠. 하느님이 하는 거죠." 신앙 내부에서 이 답은 완결적이다. 문제는 이것이 공개 토론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다 — 그 기준이 왜 다른 기준(당사자 판단, 결과, 사회적 합의)보다 나은지,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청중이 어떻게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리가 놓이지 않는다. 특히 02:02:58의 오리털 잠바 사례는 세속적으로도 충분히 논증 가능한 결론(수혜자의 실제 필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인데, 그 논증을 세우는 대신 최종 심급을 신에게 넘기며 끝낸다. 세속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었을 대목에서 스스로 검증 불가능 지대로 이동한 셈이다.

2. 이 패널기 최대 논쟁 지점(인간 생명의 특권)을 논증 없이 선언으로 통과시킨다

02:36:00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 이게 보편적인 가치잖아요. 근데 그리스도교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람의 생명이 가장 존엄하고 가장 소중하다'." → 02:36:09 "사람이랑 동물을 선택해야 된다면 무조건 사람 — 만(마리)에 소가 있어도." → 02:36:13 "네, 그죠. 한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왜 인간 생명이 질적으로 다른지에 대한 근거가 한 줄도 없다. 그리고 그 뒤 논의가 이어지는데도 그는 방어하지 않는다 — 02:36:21 "그렇죠, 네, 일단은"으로 물러난 뒤 약 4분간 사라졌다가 02:40:17에 다른 주제(이종 이식)로 복귀한다. 이 회차에서 가장 반박을 부르는 주장을 던지고, 그 반박을 받지 않았다.

3. 이종 이식 금지와 식용 허용 사이의 구분선을 세우지 못한다 — 자기 기준의 내적 충돌
02:40:25

"사람에게 이식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돼지, 그거는 안 되는 거죠."

02:40:30

"계속 그걸 이식만 하기 위해서 키우고 이식만 하고 버리는 건 안 되는 거죠." (단, 같은 문장에서 연구 목적 동물 이용은 "당연히 필요" 라고 허용한다)

02:41:18

"예를 들어서 식용으로 키워서 먹는데 무분별한 학살은 안 된다는 거죠."

세 경우 모두 "인간의 목적을 위해서만 사육되고 소비되는 동물"이다. 그런데 이식은 금지, 연구는 허용, 식용은 허용이다. 그가 제시한 유일한 잣대는 02:41:54 "전적인 수단이 되면 안 된다"와 02:45:56 "도구로 사용해서 안 된다 — 물론 먹긴 하지만"인데, "물론 먹긴 하지만"은 예외를 승인할 뿐 그 예외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식이 식용보다 더 전적인 수단화인 이유가 끝내 제시되지 않은 채 결론만 세 갈래로 갈렸다. 생명윤리는 이 패널에서 그가 가장 권위를 갖는 영역인데, 그 영역에서 가장 헐거운 구획이 나왔다.

4. 원폭 대목에서 자기가 5분 전에 세운 비례성 기준을 자기 사례에 적용하지 않고, 인용 프레임도 벗는다

02:12:00에서 그는 스스로 이렇게 못 박았다 — "총으로만 전쟁을 하는데 전쟁이 안 끝난다고 핵폭탄을 떨어뜨리면 … 그건 과한 것이다." 그런데 30여 초 뒤 히로시마·나가사키를 다룰 때는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02:12:42

"일본은 지는 게 분명함에도 전혀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원폭이 투하된 것이고, 그 원폭이 투하됐던 것에 대한 교훈이 있기 때문에 그 이후 인류가 섣불리 원폭을 못 터트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02:13:19

"만약 그 체험이 안 됐다면 그 후에 누구라도 핵폭탄을 발사하는 버튼을 더 쉽게 눌렀을 것이다."

두 층위의 문제가 겹친다. (a) 기준의 자기적용 실패 — 비례성 위반의 교과서적 예시로 자신이 든 무기를, 곧바로 결과론적 효용(항복 유도·억지 학습)으로 정당화한다. (b) 프레임 이탈 — 앞뒤의 다른 규범 판정과 달리 이 대목에는 "그리스도 교회에서는"이라는 인용 표시가 없다. 파일상 인용 프레임은 02:11:26(교황 사과)에서 끊겼다가 02:13:34("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한다")에서야 복귀한다. 즉 02:12:42~02:13:19교회 공식 입장이 아니라 본인 서술로 나가는데, 그 전환이 청중에게 고지되지 않는다. 앞서 강점 1로 꼽은 바로 그 분리 규율이 가장 논쟁적인 대목에서 무너진 것이다. 시청자는 이 구간을 "천주교의 입장"으로 오해할 위험이 크다.

5. 판정의 근거가 된 사실 전제를 확인 없이 단정형으로 놓았다

02:10:04 "그런데 안중근은 명확하게 이토만 죽였고 그 일로 어떤 사람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안중근에 대해 … 신앙의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스스로 세운 3조건 중 ③(무고한 피해 없음)이 이 사실 전제에 통째로 얹혀 있다. 그러나 기록은 다르다 — 1909-10-26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이토의 얼굴을 확신하지 못해 주변 인물에게도 발사했고, 가와카미 도시히코(하얼빈 총영사)·모리 야스지로(궁내대신 비서관)·다나카 세이지로(만철 이사) 3명이 관통상을 입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 심문 기록에도 "공작 이외의 사람에게 부상시킨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신문관의 질문이 남아 있다. 지적의 핵심은 안중근 평가가 아니다 — 그가 만든 조건 구조 자체는 훌륭한데, 그 구조에 넣을 사실을 검증하지 않아 결론이 자기 기준 위에서 흔들린다는 점이다. 조건형 논증의 강점은 사실 입력의 정확도에 비례한다.

6. 작은 지분은 절제인가, 밀린 것인가 — 둘 다이되 구간이 다르다
  • 절제로 읽히는 구간: EP.18 02:51:22~02:53:26. 9개 발언 중 다수가 한두 문장인데도 논의 축을 절차적 공정으로 옮겼다(강점 4). 여기서 적게 말한 것은 손실이 아니다.
  • 밀린 것으로 읽히는 구간: EP.17 02:36:09~02:36:21. 가장 강한 주장("무조건 사람")을 던지고 "그렇죠, 네, 일단은"으로 접은 뒤 약 4분 이탈. EP.16 02:20:29도 같은 형태다 — 표현의 자유 논의에서 "그 소수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를 끝으로 그의 EP.16 발언이 종료된다. 반론 교환이 시작될 자리에서 발화가 멈춘다.
  • 구조적 사실: EP.18에서 그의 발언은 전체 회차 중 약 2분 구간에만 존재한다. 사제 양성 규율이라는 그가 유일한 전문가인 주제가 나왔을 때만 등장한다. 자기 주제를 여는 발화(질문 던지기, 다른 패널 주장에 대한 반론 제기)가 파일 전체에서 거의 없다 — 호출되면 답하고, 호출이 끝나면 사라지는 패턴이다. 이것이 총량 43(성진 108의 40%)의 실체다.
7. 하나의 발언에 두 층위가 섞여 검증 난이도가 올라간다

02:18:46(자율성 존중)과 02:20:17~02:20:29(표현의 자유와 소수 의견)는 교회 교리 진술인지 본인 사회적 견해인지 표시가 없다.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위 때문에 청중은 이를 교회 입장으로 받기 쉽다. 위 4의 (b)와 같은 계열의 문제이며, 그가 다른 데서 잘하는 분리 규율이 논쟁적일수록 느슨해지는 경향이 관찰된다.


반복 패턴

패턴대표 타임스탬프기능 / 부작용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라고 이야기한다" 인용 프레임01:54:06 01:59:25 02:02:58 02:13:34교리와 사견 분리 / 논쟁 구간(02:12:42~02:13:19)에서 예고 없이 벗겨짐
정의 교체 → 조건 나열 → 사례 대입01:59:2502:00:22, 02:10:0402:12:00판정 가능한 틀 제공 / 입력 사실을 검증 안 함(02:10:04)
최종 판단권을 제3자(하느님)로 이전02:02:26 02:25:50 02:26:04관용론의 엔진 / 세속 청중에게는 논의 종결
극단 사례로 경계선 긋기02:02:58(오리털 잠바) 02:36:09(만 마리 소) 02:41:18(참수하듯 도살)직관적 이해 / 중간 지대(이식 vs 식용)를 못 다룸
단문 결론 "안 되는 거죠 / 잘못되죠"02:40:25 02:41:54 02:51:22 02:53:26인용 가능한 한 줄 / 논증 여백이 없어 반박 시 후퇴 불가
강한 주장 직후 짧은 동의로 접고 이탈02:36:21 02:20:29— / 반론 교환이 시작될 자리에서 발화 종료
자기 진영에 불리한 사실 선제 제시02:11:09 02:11:26 02:52:37신뢰 확보 — 이 패턴은 예외 없이 일관됨

없었다면 잃었을 것

  1. 서구 규범 전통의 개념 장비. 그가 빠지면 이 3회차는 불교(성진)와 동양철학(전호근)의 프레임만 남는다. "선 = 의로움, 악 = 선의 결핍"(01:59:25)과 "의로움은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의로워질 수 있다"(02:00:22)는 다른 두 화자의 어휘로는 나오지 않았을 구분이다.
  2. 폭력을 판정하는 조건 틀. 정당방위 성립 요건과 비례성(02:10:04, 02:12:00, 02:12:17 "여기는 칼·창밖에 없는데 저기는 기관총이 있다")은 안중근·제국주의·전쟁 논의를 감상에서 판정으로 옮겼다. 그 틀의 적용에는 결함이 있었지만(약점 4·5), 틀 자체를 가져온 사람이 그였다.
  3. 위계 조직 내부자가 위계의 동의 문제를 자기 입으로 말하는 장면. 02:52:37. 외부 비판자가 하면 흔한 말이고, 사제가 하면 증언이 된다.
  4. 종교가 공개 방송에서 자기 과오를 인정하는 장면. 02:11:26의 요한 바오로 2세 사과 소개. 종교 간 대담이 상호 예찬으로 흐르는 것을 막은 몇 안 되는 지점이다.
  5. 체벌 논의의 좌표 이동. 02:51:57~02:52:56이 없었다면 EP.18은 "때리는 게 나쁘냐"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자막의 "하송용"은 ASR 오류다. 정확한 이름은 하성용(유스티노). 화자의 실수가 아니다.
  2. "그리스도 교회에서는"이 붙었는지 확인하며 들어라. 이 표시가 있는 대목은 교회 입장 전달이고, 없는 대목(대표적으로 02:12:42~02:13:19 원폭 논의)은 본인 서술이다. 그 구간을 "천주교의 입장"으로 인용하지 마라.
  3. 01:50:59의 "사제된 지 18년"은 공식 기록(2009-06-26 서품)과 어긋난다. 연차를 인용해야 한다면 CBCK 주소록을 쓰라.
  4. 02:10:04의 사실 전제("어떤 사람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기록과 다르다. 하얼빈 의거에서 일본 측 수행원 3명이 관통상을 입었다. 그의 판정 논리를 따라갈 때 이 입력값을 교체해서 다시 계산해 보라 — 결론이 유지되는지가 논증의 강도를 보여준다.
  5. "하느님이 판단한다"류의 답이 나오면, 거기서 논증이 아니라 논의가 종료됐다는 신호로 읽어라. 신앙 내부에서는 완결이지만, 그 자리의 세속 청중은 검증할 방법을 받지 못한다.
  6. 생명윤리 대목(02:36~02:45)은 결론만 취하지 마라. 이식 금지·연구 허용·식용 허용의 구분선이 방송 안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가톨릭 생명윤리의 실제 논변을 확인하려면 교회 공식 문헌을 별도로 보라.
  7. 발언량이 적다는 사실을 "입장이 약하다"로 읽지 마라. 총 43블록 중 EP.18의 9블록은 약 2분 만에 논의 축을 바꿨다. 반대로 EP.17 02:36대처럼 강한 주장을 던지고 방어하지 않고 빠진 구간도 있다. 구간별로 다르게 채점해야 한다.
  8. 개인 방송 발언을 교회 교도권으로 일반화하지 마라. 그는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지만, 토크쇼 발언은 교회 문헌이 아니다.

집계 기준: parts/people/하성용_신부.md 원본 불릿 43개(타임스탬프 46개) 직접 카운트. 비교군은 동일 디렉터리의 EP.16~18 섹션 불릿 수 집계.

하성용 신부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6 — 위선·선악의 기준 (2025-10-30)

[원 소제목] 하성용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01:50:31

"[ASR: 현조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에서 근무하고 있는 [ASR: 하송용] 신부입니다."

01:50:59

"사제된 지는 18년 됐고요. 교청이라고 하는 곳에서 근무한 지는 6년 됐습니다."

01:54:06

위선 자체가 진짜 선은 아니지만, 위선도 선은 될 수 있다고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이야기한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다. 과정 또는 생각·마음이 선하지 않았어도 어떻게 하다 보니 선하게 얻어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어떤 사람들은 선하다고 해주는 칭찬과 기쁨에 빠지게 되면 그다음에는 마음을 고쳐먹고 선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위선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위선이라 하더라도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01:54:44

예를 들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눈치를 볼 수도 있다. 이 네 명을 만나기 전 밖에 있을 때는 나쁜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오니 분위기가 너무 좋고 좋은 분들이 많아서 나쁜 짓을 안 했다 — 가만히 있으면 이분들 덕분에 얻어걸려서 선이 되는 경우도 있다.

01:55:03

(위선도 선인 경우가) "그렇죠. 종종 있다."

01:59:25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선을 착함·좋음이라 할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의로움'을 선이라고 한다. 선의 표상 같은 분이 하느님 또는 예수님, 그리스도다. 그러면 악은 뭐냐 — 선에 대한 결핍이 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추고 있는 건 나쁜 건 아니지만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뭐든지 어떤 식으로든 하고 있어야 한다. 아까 스님이 말씀하신 걷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 같은 경우는 걸으면서도 좋은 생각을 하거나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냥 멍때리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 자체를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굳이 그 시간에 멍때리고 걷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뭘 할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거나 기도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기)원을 하거나 희생을 하는 걸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02:00:15

그것이 그리스도교에 비추어 말하는 선이다.

02:00:22

왜냐하면 좋은 것은 어쩌면 아무 선택을 안 해도 좋을 수 있지만, 의로움은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의로워질 수 있다.

02:02:26

그리스도교에서 선행에 대한 판단은 나나 상대방이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하느님이 하시는 거라고 한다(제3자이긴 하다). 예를 들어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뭔가를 사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내 것 중에 필요 없는 것을 선행을 가장해서 주는 사람이 있다. 사서 주는 사람은 누가 봐도 선인데, 내가 가진 것 중 필요 없고 버리려면 돈 드는 것을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주면서 선행했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다.

02:02:58

(당근마켓은) 거래라도 되는 건데 그게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 옷을 보낸다면 오리털 잠바를 보낼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필리핀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 옷을 기부해야겠다" 하면서 오리털 잠바나 긴팔 옷만 계속 낸다, 심지어 살 때는 옛날엔 비쌌지만 10년쯤 지난 것이다 — 그걸 과연 선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회의 선행 기준은, 나는 좋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 보시기에 그건 아니라고 하면 선행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02:10:04

불교는 살생이 안 되듯이 저희는 살인이 안 된다. 안중근이 과연 살인자냐 나라를 위해 희생한 거룩한 사람이냐를 봤을 때 결론은 — 정당방위는 교회에서도 인정이 된다, 그리고 그 정당방위가 사적인 복수는 아니어야 한다. 안중근이 쏘다 보니 옆에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다든지, 폭탄을 던졌는데 조준을 잘못해 이토[ASR: 이등 방문] 말고 다른 사람이 많이 죽었다면 의로운 행위를 한 사람이라 인정하기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안중근은 명확하게 이토[ASR: 2등 방]만 죽였고 그 일로 어떤 사람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안중근에 대해 하느님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한 신앙의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02:11:09

그거는 차원이 좀 다른 게, 제국주의 하에서는 일방적인 학살이다. 물론 전쟁을 꼭 대등한 나라끼리 하는 건 아니지만, 제국주의 하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2000년 대희년을 시작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ASR: 요한 바르세] 교황이 사과를 했다.

02:11:26

몇백 년 지났다. 기본적으로 교황이라는 사람은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 예수님이 잘못했다고 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게 되게 쇼킹한 사건이었던 건, 2000년 대희년을 시작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지난 2천 년간 교회의 이름으로 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했던 다섯 가지 과오에 대해 잘못했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령 (선교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건 그들(현지인)의 잘못은 아닌 걸로 (본다).

02:12:00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에서 그게 정당방위가 되려면 과하면 안 된다. 총으로만 전쟁을 하는데 전쟁이 안 끝난다고 핵폭탄을 떨어뜨리면 전쟁은 끝나겠지만, 총으로 하는 전쟁에서 그건 과한 것이다. 정당방위가 되려면 — 상대방은 칼인데 나는 기관총이면 (안 된다).

02:12:17

제국주의가 대표적이다. 여기는 칼·창밖에 없는데 저기는 기관총이 있다. 수천 명이 있어도 기관총 하나만 있으면 수천 명이 죽는 건 금방이다. 누가 공격을 했든 간에 정당방위의 차원에 들어갈 순 없다고 이야기한다.

02:12:42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있고 일본이 있는데, 독일은 패색이 짙어졌을 때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 군부에서 물론 저항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기들이 이길 순 없다는 것을 알았고 어쨌든 이걸 끝내기 위한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다면, 일본은 지는 게 분명함에도 전혀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원폭이 투하된 것이고, 그 원폭이 투하됐던 것에 대한 교훈이 있기 때문에 그 이후 인류가 섣불리 원폭을 못 터트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02:13:19

교훈을 목적으로 떨어뜨리진 않았지만, 원자폭탄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체험한 적이 있다. 만약 그 체험이 안 됐다면 그 후에 누구라도 핵폭탄을 발사하는 버튼을 더 쉽게 눌렀을 것이다.

02:13:34

변명일 수는 있지만, 2차 세계대전 때 "이런 끔찍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데 과연 하느님은 뭐 하는 거냐, 하느님이 정말 있는 거냐"에 대한 논쟁이 굉장히 심했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악의 반대편에는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선을 행하기 위한 방편 중에 선한 의지로 동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이게 누군가에게는 책임 회피일 수도 있고 사후적인 얘기라 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02:18:46

[추정 귀속] 선의 구성 요소 중 하나는 각 개체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착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 넌 앞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이 사람이 선을 행할 가능성은 있는 것 아닌가.

02:20:17

표현은 자유인데 아무 표현이나 다 하는 게 자유는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표현을 했을 때 그걸 보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면 그게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02:20:29

(공감 500개가 달리면) 그건 맞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굳이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하는 게 소수라 하더라도 그 소수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EP.17 — 생명의 경중 (2025-11-13)

[원 소제목] 하성용 신부
02:24:23

없죠.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경중이 없고요, 죽은 사람에게는 생명의 경중이 있다는 게 그리스도적인 가르침인 거죠. 저희가 사후 세계를 얘기할 때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는 건 살아 있을 때의 행위에 따라서 — 좋은 사람은 천국, 나쁜 사람은 지옥. 그건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난 거니까 그런 거고, 살아 있는 사람한테는 그 사람이 지금 교황이라 하더라도, 지금 범죄자라 하더라도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거기에 경중이 있다고 선언하거나 심판하면 안 된다는 거죠.

02:25:50

그렇죠, 저희는 그렇죠.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고, 판단하는 게 맞다고 확신해서도 안 된다. 지금의 모습이 계속 지속될 거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거(죠).

02:26:04

그렇죠. 하느님이 하는 거죠, 저희 그리스도(교는).

02:36:00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소중하다 — 이게 보편적인 가치잖아요. 근데 그리스도교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람의 생명이 가장 존엄하고 가장 소중하다".

02:36:09

그렇죠. 사람이랑 동물을 선택해야 된다면 무조건 사람 — 만(마리)에 소가 있어도.

02:36:13

네, 그죠. 한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 02:36:21 그렇죠, 네, 일단은.

02:40:17

예. 단지 이걸 만들기 위해서 또 다른 생명을 이용하려고 할 때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히 하죠 — 돼지(의 장기)를 사람한테 이식해요, 그 문제예요.

02:40:25

사람에게 이식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돼지, 그거는 안 되는 거죠.

02:40:30

예, 계속 그걸 이식만 하기 위해서 키우고 이식만 하고 버리는 건 안 되는 거죠. 연구를 하기 위해서 사람을 가지고 연구할 수는 없잖아요 — 사람 췌장을 가지고 연구할 수 없고 사람 간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없으니까, 사람하고 최대 유사성을 가지는 원숭이든지 쥐든지 돼지든 이걸 연구해서 "이런 병에 대해서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할 때는 당연히 그게 필요하지만, 사람에게 이식을 하기 위해서 돼지들을 계속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거죠.

02:41:02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는 거지 동물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의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보존하기 위해서 "너는 무조건 죽어야 된다" — 이런 개념은 아니라는 거죠.

02:41:18

예를 들어서 식용으로 키워서 먹는데 무분별한 학살은 안 된다는 거죠. 식용으로 먹기 위해 키워진 거니까 "너는 그냥 무조건 죽어도 된다"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소나 돼지를 도살할 때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도살할 수 있는 가치는 지켜야 된다는 거지, "어차피 죽을 거고 네가 나보다 생명이 낮으니까" — 예를 들어 (아무렇게나) 참수하듯이 한 번 베는데 안 죽으면 그냥 또 베면 되지, 이런 식으로 한다면 안 된다는 거죠.

02:41:54

가치 있는 일일 순 있는데 전적인 수단이 되면 안 된다는 거죠, 이 자체가.

02:45:56

도구로 사용해서 안 된다 — 물론 먹긴 하지만.

EP.18 — 체벌·인권 (2025-11-27)

[원 소제목] 하성용 신부
02:51:22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하는 모든 건 다 안 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02:51:27

"예. 천주교 사제를 하면 보통 '술을 잘 먹는다' 하잖아요. 술 전혀 못 먹는 분도 있어요. 근데 예를 들어서 '너는 술을 못 먹으니까 우리가 너를 술 잘 먹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문화는 다 술 먹는 사람들이니까 너도 강제로 먹어' —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둬요."

02:51:44

"그렇죠. 성직 길 자체가 언제든지 나 스스로 나가는 거예요."

02:51:54

"안 되는 거죠, 그러면" / 02:51:56 "그런 거는 체벌에 들어가진 않아요."

02:51:57

(추정) 사전 고지 논변 — "그건 미리 고지가 된 거니까. 예를 들어서 다섯 개만 알려주고 다섯 개는 비밀로 해 놓은 다음에, 알려 준 거 말고 (숨긴) 다섯 개에 걸렸으니까 '너 걸렸으니까 나가' 이렇게 하면 그거는 잘못된 거죠. 근데 다 오픈되어 있고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어쨌든 사람이니까 — 욕망이었든 부족함이었든 실수였든 — 자기가 그걸 하게 됐을 때는 다 오픈된 걸 내가 어겼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 못 있는다는 걸 수용하게 되는 거죠."

02:52:28

(추정) "그건 왜 체벌이요? 미리 정한 규율이고 다 오픈했고"

02:52:37

(추정) "그래서 문제인 거죠. 오늘도 이야기했지만 위계가 설정된 상태에서의 동의는 사실상 진정한 동의가 어려워요."

02:52:56

(추정) "이거는 이렇게 봐야죠. (계율의) 선을 정할 때,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그걸 체벌의 기준이라 부르지는 않죠."

02:53:12

(추정) "아무 상관이 없죠. 다섯 시간 공부하는 것과 안 하는 것과 '학교를 그만둬라, 때려쳐라' 이것과는 상관이 없죠. 내가 집에서 공부 안 하는 것하고 학교 생활을 연결시킬 순간부터 이건 이미" / 02:53:26 "잘못되죠."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 · 마인드마이너

출연 3/9 · 발언 블록 81

AI·공정기의 비철학 패널. 외부 데이터 인용 빈도가 가장 높다.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자칭 직함'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 빅데이터로 시대의 마음을 캐는 사람나무위키, 사이드프로젝트 인터뷰
학위고려대 전산과학과 학사·석사, 동 대학원 컴퓨터학 박사 (박사논문: 「소셜 데이터 마이닝을 통한 인터 카테고리 브랜드 맵의 생성」) — 컴퓨터공학 박사 맞음위키백과
前 직다음소프트 CSO·부사장 → 사명 변경 후 바이브컴퍼니 부사장, 2023-12-31 퇴직위키백과, 나무위키
현직(공개 프로필 기준)한국데이터마이닝학회 부회장, 고려대 미디어학부 겸임교수, 스마일게이트 퓨처랩 재단 이사나무위키
주요 저작『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2012), 『상상하지 말라』(2015), 『그냥 하지 말라』(2021),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2023) / 『시대예보: 호명사회』(2024) /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리디 작가 페이지, 이코노미조선 인터뷰

ASR 주의: 자막이 이름을 송결령/송기령/성기령으로, 책 제목을 「시대해 보라」로, 자칭을 「마이닝 마이너스」(04:27:34)로 훼손했다. 아래 비평에서 이런 표기 오류는 화자의 실수로 계산하지 않는다.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EP.19(AI와 인간) · EP.20(공정) · EP.21(제사·눈치·배려)
  • 발언 블록 수(발언 모음 파일 직접 카운트): 총 81 (EP.19 = 40, EP.20 = 24, EP.21 = 17)
  • 맡은 기능 한 줄: 철학자들이 개념으로 다루는 명제에 "지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의 시간·수량 좌표를 대는 역할 — 이 패널기에서 유일하게 비(非)철학 전공이며, 그 대가로 논의를 관측 가능하게 낮추는 동시에 규범 질문을 트렌드 질문으로 갈아끼우는 압력을 함께 넣는다.

논증 스타일

1) 사례 고정 — 추상 명제를 관측 가능한 물건으로 끌어내린다. AI에 자아가 있냐는 논의에서 그는 정의 논쟁 대신 다마고치와 아이보를 꺼낸다. 03:15:59 "다마고치가… 사망하면 원래는 리셋하면 되는데 아이들은 그걸 묻어 달라고 한다", 03:16:15 "소니가… 만든 강아지 로봇 아이보의 경우 장례식을 치러 준다… 따져 보면 그 자체보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의 문제다." 존재론 질문을 인식·사회적 사실의 질문으로 옮기는 수법이다.

2) 데이터/연구 인용으로 규범 논쟁을 우회한다. '공정' 회차의 핵심 질문(분배 정의)에 그는 규범적 답 대신 채용 시장 추세를 놓는다. 04:08:29 "스탠포드 리서치인데 22년부터 25년까지… 25살 언더 친구들을 새롭게 뽑겠다는 직업의 크기가 13%가 줄었다… 이미 저 포스트에 학력이 빠지고 있는 중." 즉 "무엇이 공정한가"에 "선발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로 답한다.

3) 트렌드 관찰 → 당위로의 전환. 04:01:16 "선발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 '공채 23기' 같은 게 없어지는 것이다… 이 얘기가 시간 지나면 좀 더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보인다." 관찰(is)이 예측(will)을 거쳐 안심시키는 규범적 결론(그러니 이 문제는 침식될 것이다, 04:09:26)으로 이어진다.

4) 메커니즘 재기술 — '해야 한다'를 인센티브 구조로 바꿔 말한다. 배려 논쟁에서 그는 옳고 그름 대신 규칙화의 부작용을 설명한다. 04:28:16 "이렇게 만들어진 게 규칙화되는 순간부터 의무가 된다… 처음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따뜻하게 줬는데… 오히려 호의가 아니다." 04:49:45 보상의 역설("적당히 큰 돈 주는 건 의미가 없다")도 같은 구조다.

5) 동의 후 확장 — 상대를 반박하지 않고 자기 프레임을 얹는다. 03:17:24 "자유권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부분은 정확히 동의한다" → 곧바로 반려동물 사육 두수·저출생 데이터로 넘어가 자기 관찰로 화제를 옮긴다. 충돌 없이 프레임을 교체하는 방식이라 반론이 걸리지 않는다.

인용한 외부 근거의 정확도

인용타임스탬프검증 결과근거 URL
"스탠포드 리서치, 22~25년 사이 25살 언더 채용 13% 감소"04:08:29대체로 정확. Brynjolfsson·Chandar·Chen, "Canaries in the Coal Mine?"(Stanford Digital Economy Lab, ADP 급여 데이터). 22–25세, AI 노출 상위 직군에서 13% 상대적 고용 감소. 단 ①"직업의 크기(채용 공고 수)"가 아니라 고용 수준의 상대적 감소이고 ②구글 이코노미스트·Apollo(금리·과잉채용 설명) 등 반론이 진행 중인데 그 상태가 고지되지 않았다.Stanford DEL · TIME · Fortune
니콜라 테슬라 1935년 "21세기 로봇은 노예 노동의 자리를 대신"03:47:31출처·연도 정확. Liberty 1935-02-09 「A Machine to End War」(Tesla, as told to G. S. Viereck). "In the twenty-first century the robot will take the place which slave labor occupied in ancient civilization" 확인. 다만 ①이 글은 대필/구술 기고이고 ②같은 글에 "2100년엔 우생학이 보편화될 것"이라는 대형 오예측이 함께 있는데, 그 맥락 없이 적중 예언으로만 인용된다. 뒷문장의 '숭고한 이상'은 국역본 문장으로 보이며 원문에서 대응어를 확인하지 못했다.Tesla Universe 원문 · PBS 재수록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 — "대학 나온 사람 안 뽑겠다", "본인이 학교를 만들었다", 역사·종교, 4개월03:51:41부분 정확, 두 군데 과장. 실재하는 것은 Meritocracy Fellowship: 고졸 대상, 4개월, 월 $5,400, 서구사·리더십·종교 세미나(링컨·처칠·더글러스, 게티스버그 견학) 포함 — 여기까지는 맞다. 그러나 ①팔란티어는 대졸 채용을 중단하지 않았다(대안 트랙 신설이지 "대학 나온 사람 안 뽑겠다"가 아니다) ②"학교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사내 유급 펠로우십이다. '패러시틱' 표현은 확인하지 못했고, 카프의 실제 표현은 "indoctrination", "rule followers"다.Fortune · Entrepreneur
"안드레 카파시가 숙제 잡아내는 AI를 만들었더니 낙서하는 AI가 들어가서 못 잡더라"03:43:17결론은 맞고 주체·경로가 틀렸다. Karpathy는 학교 이사회 발언에서 "AI 사용은 절대 탐지할 수 없다, 전부", "모든 detector는 원리상 실패한다"고 말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그가 탐지 AI를 만든 적은 없다. 발단은 구글 Nano Banana Pro가 시험지 이미지 위에 손글씨·낙서·도표까지 흉내 내며 문제를 풀어버린 사례다. 즉 '탐지기 vs 낙서봇'의 대결 구도는 실제 사건과 다르다.Karpathy X 원문 · The Decoder
"가석방 판정이 식사 전과 후가 달랐다는 스터디"04:21:56연구는 실재하나 재현·방법론 논쟁이 큰 사례. Danziger·Levav·Avnaim-Pesso, PNAS 2011 (이스라엘 판사 8인, 1,042건; 휴식 직후 ~65% → 세션 말 0% 근접). 그러나 Weinshall-Margel & Shapard(PNAS 2011)는 사건 순서가 무작위가 아님(교도소 단위 배치, 변호인 없는 수감자가 뒤로 배치)을 지적했고, Glöckner(2016)는 효과 크기가 크게 과대추정됐다고 본다. 그가 이 사례를 인간 판단의 주관성 증거로 든 대목에서 논쟁 상태가 고지되지 않았다.PNAS 원논문 · 반론 · Glöckner 2016
"1,000억원대를 지불하기 시작… 지금 3,000억까지 갔다. 한 분한테. 20대다"04:15:5604:16:09자릿수·연령 정합. Meta가 24세 연구자 Matt Deitke에게 4년 약 $250M(≈3,4xx억원, 첫해 $100M) 패키지를 제시해 영입(NYT 보도). "1,000억원대" 역시 첫해 규모와 정합. 다만 4년 총액·주식 중심이라는 조건이 빠져 연봉으로 오독될 여지가 있다.Yahoo Finance · Matt Deitke — Wikipedia
"작년까지 LLM의 IQ가 100이 안 됐는데 올해 140 가까워졌다"03:39:42확인 불가 — 본 리뷰에서 별도 검색을 수행하지 않았다. 판정 유보 사유: 어떤 IQ 검사(멘사형 규준 검사인지, 어느 트래커인지)인지 발화에 명시되지 않아 검증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다. 검증하려면 최소한 측정 도구명이 필요하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 (연공서열 연구)04:14:35확인 불가 — 미검색. 자막이 이미 "허강대학교/이천수"로 훼손된 구간이라, 소속 표기의 오차가 발화 단계에서 생긴 것인지 ASR에서 생긴 것인지 분리할 수 없다. 규율상 화자 실수로 판정하지 않는다.

검증 분포: 6건 실검증 중 — 정확 1(테슬라 출처), 대체로 정확·조건 누락 2(스탠포드 13%, Meta 3,000억), 부분 정확·과장 1(팔란티어), 주체 오류 1(카파시), 논쟁 상태 미고지 1(가석방). 확인 불가 2(IQ 140, 이철승 소속).

강점

1) 논의를 반증 가능한 높이로 내린다. 03:22:40 "스페셜 퍼포스로 된 경우를 그냥 AI라 부르고… 일반 지능은 AGI라 부르는데 그런 경우는 아직 엔진이 없다… '자전거 타는 거야' 하고 목적을 주면… 이 엔진을 가지고 '책을 읽어라'는 불가능하다." 이어 03:23:03 "굉장히 논쟁적이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의식 논쟁이 은유로 흐르지 않게 붙잡는 유일한 발언대다.

2) 자기 전공의 경계를 스스로 표시한다. 03:16:38 "나는 전공이 컴퓨터라 (AI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공학자들은 되게 건조하게 바라본다"고 자기 편향을 선언한 뒤, 03:22:05 "CPU가 바뀐다, 이때부터 복잡해진다"로 자기 입장이 깨지는 경계 사례를 자기 손으로 만든다. 단정과 유보를 같은 문단에 놓는 드문 구성이다.

3) 규범 논쟁에 메커니즘을 넣어 실질적으로 기여한다. 04:28:16 "규칙화되는 순간부터 의무가 된다… 어둡고 무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는 순간부터 오히려 호의가 아니다", 04:44:38 "한 사람이 '나는 좀 더 많은 배려를 하고 싶어요'라고 주장해서 규칙이 되는 순간부터… 되게 무거운 사회가 된다." 이것은 데이터 보고가 아니라 규범 설계에 대한 논증이며, 철학자 패널과 같은 층위에서 성립한다.

4) 자기 논지의 반대편 비용을 스스로 제시한다. 04:40:07에서 "CCTV가 보고 있다… 시스템이 조밀하면 일탈이 어려워진다"고 한국의 질서를 설명한 직후, 04:42:44에서 "욕망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예의를 반강제당하는 이런 사회가 썩어가지 않나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자기 관찰의 그늘을 스스로 연다.

약점·문제점

1) is → will → ought 미끄러짐이 반복되고, 반증 조건을 걸지 않는다. 04:01:16 "선발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희망이 보인다" → 04:09:26 "각자가 다른 형태의 꿈을 꾸게 되면 경쟁이 안 된다" → 04:11:21 "탈조직이 보인다… 이런 형태의 생산 시스템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근거는 "조직도가 없고 워크플로만 있는 회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초기 사례 관찰인데, 결론은 조직 원리 전반의 무효화다. "몇 년 안에 무엇이 관측되면 내 예보가 틀린 것인가"에 해당하는 문장이 81개 블록 어디에도 없다.

2) 규범 질문에 트렌드 예측으로 답한다. '공정' 회차의 질문은 "무엇이 정당한 분배인가"인데, 그의 주된 답은 "선발 자체가 사라지는 중"(04:01:43)과 "학력이 채용에서 빠지는 중"(04:08:29)이다. 04:19:56에서 "공정은 절댓값이 아니라 설명 가능성"이라는 규범적 답을 한 번 내놓지만, 곧 04:24:11 "그게 익스플레이너블 AI라고… 더 깊은 기술을 쓰자는 얘기"로 기술 문제로 회수한다. 정당화 기준의 문제가 도구 성능 문제로 치환된다.

3) 수치의 출처·표본·논쟁 상태를 밝히지 않는다. 04:08:29는 "스탠포드 리서치"라고만 하고 저자(Brynjolfsson 등)도, 데이터 출처(ADP 급여 대장)도, "상대적 감소"라는 성격도, 진행 중인 반론도 말하지 않는다. 04:21:56 가석방 연구는 재현 논쟁의 대표 사례인데 "스터디가 있었다"로만 제시된다. 03:39:42 "IQ 140"은 측정 도구조차 명시되지 않아 청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인용의 사실성보다 인용의 검증 가능성이 약한 것이 이 패널에서의 그의 주된 결함이다.

4) 단정의 강도가 일관되지 않다. 03:37:48 "(AI 그림의 구별점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올해부터… 구분할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는 전칭·시점 단정이고, 03:21:29 "자아는 성립될 수 없고 여기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라"는 의식의 판정 기준이라는 미해결 철학 문제를 공학 전공 권위로 조기 종결한다. 반면 같은 회차 03:23:03에서는 "아직은 아니다"로 신중하다. 같은 주제에서 강도가 흔들리면 청자는 어느 쪽이 그의 실제 확신인지 판별할 수 없다.

5) 자기 저작의 프레임이 세 주제 전부에 얹힌다. '경량 문명'이 AI(03:52:34 "AI 동료의 도움을 갖고 인간은 혼자인 상태"), 공정(04:01:16, 04:11:21 "경량 문명에선… 막스 베버식 조직이 지금도 유효할 것인가"), 제사·예절(04:32:30 "한국 사회가 지금 갑자기 바뀌었다")에 모두 적용된다. 프레임의 설명력이 넓은 것은 강점이지만, 어떤 관찰도 프레임을 반박하지 않는 상태가 되면 그것은 예보가 아니라 해석 틀이다. 이 구분이 영상 안에서 표시되지 않는다. (저술·강연 활동 자체는 결함이 아니다. 문제는 프레임의 반증 조건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복 패턴

  • "흥미로운 건 / 재밌는 건" → 관찰 사례 → 현상 명명 → 미래 시제 종결. 03:32:55, 03:40:56, 04:01:16, 04:08:29, 04:14:35, 04:38:27가 모두 같은 4단 구조다.
  • 정면 반박을 하지 않는다. 상대 주장을 "정확히 동의한다"(03:17:24) / "말씀하신 것처럼"(03:43:39, 04:16:26)으로 받은 뒤 자기 데이터로 화제를 옮긴다. 마찰이 없어 토론이 매끄럽지만, 그만큼 그의 주장이 반대 압력을 받은 구간이 거의 없다.
  • 주장의 하중을 인물·기관 이름으로 지탱한다. 테슬라(03:47:31), 아담 스미스(03:40:23), 막스 베버(03:51:15, 04:11:21), 카파시(03:43:17), 알렉스 카프(03:51:41), 짐멜(04:41:20), 프로이트(04:42:44), 이철승(04:14:35). 이름은 논거의 무게를 올리지만, 위 검증표대로 인용 정확도는 항목마다 편차가 크다.
  • 미래를 걱정으로 열고 안심으로 닫는다. 고용 붕괴 우려(03:40:23) → "일은 만들어질 것"(03:40:56, 03:41:23) → "다만 전환기의 코스트"로 마무리. 이 3단은 EP.19에서 최소 두 번 반복된다.

없었다면 잃었을 것

철학 전공자 네 명만 있었다면 이 세 회차는 개념 분석으로 완결됐을 것이다. 그가 있어서 들어온 것은 좌표다: AI 능력의 현재 위치(03:22:40 AGI 엔진 부재), 노동시장의 실측치(04:08:29), 인재 가격의 자릿수(04:16:09), 한국인의 매너가 실제로 변한 지점(04:38:05 "버스에서… 앉을 때까지 출발을 좀 더 여유 있게 기다려 주시는 게 늘고 있다"), 그리고 배려가 규칙이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의 메커니즘(04:28:16).

반대로 손실도 분명하다. 그의 존재는 규범 질문("무엇이 공정한가", "왜 배려해야 하는가")을 추세 질문("무엇이 사라지는 중인가")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비철학자여서 생긴 결함이 아니라, 관찰 데이터를 다루는 직능이 규범 토론에 들어올 때 구조적으로 생기는 편향이다. 그 편향을 상쇄하는 것은 같은 자리의 철학자 패널의 몫이고, 실제로 그 상쇄가 일어난 구간(04:19:56 설명 가능성, 04:44:38 규칙 증식 경계)에서 이 방송의 밀도가 가장 높다.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인용은 대체로 실재하지만 조건이 잘려 있다. 스탠포드 13%(04:08:29)는 실존 연구이나 "상대적 감소 + 반론 진행 중"이고, 테슬라 1935년 예언(03:47:31)은 우생학 오예측이 병기된 대필 기고문이며, 가석방 연구(04:21:56)는 재현 논쟁의 대표 사례다. 숫자를 들었으면 원논문 이름까지 확인하고 인용하라.
  2. 명백한 사실 오류가 하나 있다. 03:43:17 "카파시가 숙제 잡아내는 AI를 만들었다"는 틀렸다. Karpathy는 탐지기를 만든 적이 없고, 발단은 구글 Nano Banana Pro가 시험지 이미지 위에 필기까지 흉내 내 문제를 푼 사건이다. 결론("탐지 불가")만 맞다.
  3. 팔란티어 사례(03:51:41)를 "대기업이 대졸 채용을 끊는 중"으로 옮기지 마라. 실제는 고졸 대상 4개월 유급 펠로우십의 신설이고, 대졸 채용은 계속된다.
  4. 미래 시제 문장은 예보이지 관측이 아니다. "선발이 끝나가고 있다", "탈조직", "경쟁이 안 된다"는 초기 사례에 기반한 전망이며, 영상 안에 틀렸음을 확인할 조건이 제시되지 않는다. 진로·조직 판단에 그대로 대입하기 전에 자기 업계의 실제 채용 공고를 직접 보라.
  5. 강한 단정과 유보가 같은 회차에 공존한다. 03:37:48("완전히 없어졌습니다")와 03:23:03("아직은 아니다")를 같은 확신도로 듣지 마라.
  6. ASR 오류를 그의 실수로 세지 마라. '마이닝 마이너스'(04:27:34), '안드레 카파스', '게우르그 진멜', '이천수', '허강대학교', '시대해 보라'는 모두 자막 훼손이다.
송길영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9 — AI와 인간 (2025-12-16)

[원 소제목]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마인드마이너, 전공 컴퓨터)
03:08:25

자기소개 — 데이터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캐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은 시대의 마음을 캐고 싶다는 당찬 생각을 「시대예보」[ASR: 시대해 보라] 책으로 내고 있다.

03:08:56

지금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는 "도구가 아니라 너의 동료야"다. 보통은 사람에게 부탁하고 사람이 도구를 써서 결과를 내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인데, AI에게는 설명을 잘해 줘야 그 친구가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에이전트 시스템이라고 해서 특정한 일을 맡길 수 있게 됐다. 누군가 내 일을 해 주니 편하지만 어느 순간 "그러면 나중에 난 사라지는 거 아닌가"라는 공포를 느끼면서 얘기가 더 점화되고 있다.

03:15:59

다마고치 얘기에 연결된 것 — 다마고치가 일정 기간 관리를 못 받아 사망하면 원래는 리셋하면 되는데 아이들은 그걸 묻어 달라고 한다. 그 친구는 죽었으니 새로운 친구를 살지언정 이 친구를 리셋하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매출이 늘었다는 얘기가 있다.

03:16:15

소니가 일본에서 만든 강아지 로봇 아이보의 경우 장례식을 치러 준다. 그다음 장기 기증에 대한 것도 유저들 간에 약속하는 방식이 있고, 절에서 실제로 장례식을 지내는 모습이 지금도 연출되고 있다. 따져 보면 그 자체보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의 문제다. 실존이라기보다 우리 인식 체계 안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의 여부다.

03:16:38

나는 전공이 컴퓨터라 (AI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일단 유기체가 아니고, 만들어내는 과정도 인간이 관여했기 때문에 일종의 피조물이다. 그래서 근원적으로 여기에 의식이나 자아에 대한 부분을 공학자들은 되게 건조하게 바라본다.

03:16:52

다만 이슈는 우리가 기능적으로 서로를 대할 때가 있다는 것 — 오늘 같은 경우에도 MC와 네 명의 패널이 왔는데, 자아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인 인간이지만 오늘 역할로 보면 MC가 주시는 단어에 반응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그런 상대적 형태·기대에 한정한다면 그런 관계성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인격도 자아도 의식도 없지만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는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03:17:24

자유권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부분은 정확히 동의한다. 최근에 강아지·고양이한테 "우리 아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동물권이 많이 올라갔다. 그러다 보니 최근 사육 두수가 급격히 늘지 않는데, 이유가 그에 대한 부담 때문에 두수 늘리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03:17:43

우리가 저출생에서 힘들어 하는 것과 똑같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지원 기대가 예전보다 높아지니 오히려 꺼려서 늘지 않는다. 그런 변화는 충분히 만들어지고 있다.

03:21:29

생각하기 이전 단계에서 감각을 센싱하고 호르몬에 의해 대사하고 신경을 움직이고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 자체가 내 안에 자아로 축적될 만큼의 정보 흐름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AI 모델은 우리가 했던 행위를 모사해 통계적으로 학습한 결과가 나오도록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를 가진 게 아니라 우리 행위를 모사한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방식으로 보면 모사한 결과의 총합이니 자아는 성립될 수 없고 여기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라는 것.

03:22:05

다만 이슈는 사이보그다. 일부를 붙이고 센트럴 파트가 사람인 경우에는 자아가 있는 인간이 증강된 것이므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옳다. CPU가 바뀐다, 이때부터 복잡해진다. 아직 그런 형태까지는 기술 발전이 안 됐다.

03:22:40

스페셜 퍼포스(특수 목적)로 된 경우를 그냥 AI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일반 지능은 AGI라 부르는데 그런 경우는 아직 엔진이 없다. "자전거 타는 거야" 하고 목적을 주면 이를 기반으로 움직여 타는 건 가능한데, 이 엔진을 가지고 "책을 읽어라"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쉽게 보고 아무거나, 굉장히 낮은 에너지로 적응할 수 있다 — 이건 아직까지는 인간이다.

03:23:03

(시간 문제 아니냐는 물음에) 굉장히 논쟁적이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03:32:55

흥미로운 게, 내가 처음 했던 일은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남긴 글을 잔뜩 분석하는 일이었다. 여기엔 유행과 트렌드가 존재한다. 새 신조어가 올라갔다 떨어지고, 예전에 안 쓰던 단어가 갑자기 쓰일 때 사람들이 동조하는 현상이 있다. 옆 친구와 비슷해 보이고 싶고 좀 달라 보이고 싶지만 그것도 범위 안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03:33:19

우리 종은 무리를 지어 살았기 때문에 상대의 기색을 살피고 배려하지 않으면 축출된다. 거의 모든 종교가 항상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재밌는 건 AI가 그런 정보를 가져와서 러닝을 했다는 것 — 중첩되는 부분들의 평균값을 되게 사랑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엔가 우리 종의 아주 기본적인 네이처, '같이 가고 싶다'는 네이처를 AI가 가지고 있는 상태다.

03:33:49

재밌게도 인식은 전부 다 주관적인데 '간주관(함께 공유하는 주관)'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전엔 커먼센스, 상식이라 불렀는데 심지어 변화한다. 결국 주관적이지만 우리는 집합적인 주관을 가지고 있는 종이었고 AI는 그걸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03:34:48

예술 쪽에서는 "예술은 예술가가 하는 게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동어반복 같지만 나름 의미가 있다 — 그 안에 들어 있는 복잡한 해석의 층이라는 게 그 업을 하신 분들 사이에 공감으로 존재한다.

03:35:03

그쪽 바닥에서 인정하는 것만 현대 미술이라 하면 "AI가 하는 건 현대 미술이 아니다"라고 쉽게 답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다.

03:36:28

(AI 창작물을 더 좋아하는 시대가 올 수 있냐는 물음에) 충분히 그렇다. 기계는 사람을 바꾼다. 어떤 도구를 쓰냐에 따라 인간의 성향이 바뀐다. 자동차를 쓰면서 몸이 거기 적응하듯, AI를 계속 보다 보면 그 패턴대로 된 걸 좋아할 수밖에 없다.

03:37:48

(AI 그림의 차가움·부정확한 손발 같은 구별점이 극복됐냐는 물음에)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올해부터." AI가 그렸다는 걸 숨기면 "구분할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03:38:05

지금은 기술적인 부분을 현대미술에서 적게 본다 — 유명한 예술대학의 경우 기교를 안 보는 경우가 되게 많다. 그 생각을 보는 것이고, 제작 방법은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쓰는 게 활성화됐기 때문에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그것을 만들어 내기까지 과정에서의 숙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03:38:29

(AI가 더 독창적일 가능성) 시도할 수는 있는데, 그걸 결정하고 의미를 깊은 층위로 부여하는 작업은 인간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 아닌 경우 우리가 가치를 안 부여할 확률도 높다 — 예술 활동이 꼭 가치의 문제가 아닐지라도 공감이 안 되기 때문이다.

03:39:42

올해부터다. 작년까지 LLM 서비스로 만들었던 친구들의 IQ가 100이 안 됐는데 올해 140 가까워졌다.

03:39:52

그러면 그 친구한테 기대고 싶어진다. 이유가 걔가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한테 뭘 부탁하면 바로 나오는 단어가 "왜요?"다. 굉장히 부담스럽다. 조직이 일을 부탁할 수 있는 구조라도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니 회식도 하고 여러 방식을 쓴다. 그런데 AI는 감정 소비가 없다 — 새벽에도 시킬 수 있고 밤에도 가능하고 주말에 3교대도 가능하니 손이 안 갈 수 없다. 지금 하는 일 자체가 많이 넘어갈 것 같은 게 첫 번째다.

03:40:23

두 번째는 협업의 문제아담 스미스가 "일을 쪼개자"고 했다. 혼자 담당은 힘드니 쪼개서 교육 부담도 줄이고 반복할 수 있으니 빨라진다는 것. 그런데 분업의 가장 취약한 점은 개인이 하는 일이 줄어들고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숙련자로 가더라도 대체 가능성을 안 볼 수 없다. 그런 일들부터 치고 들어오면 조직이 단출해지고 전체 고용의 총량이 준다. 우리가 두려운 건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많이 줄어들면 어떡하지다.

03:40:56

흥미로운 건 일은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 — 틱톡커, 유튜버는 없던 직업이었다. 다만 전환기의 코스트가 있다. 대량 고용으로 크게 고용하다가 "각자 알아서 하세요"라고 던지면 어떤 분은 자리를 찾지만 어떤 분들은 힘들다.

03:41:23

새롭게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 네일 아티스트, 스트리머 같은 직업은 없던 것이다. 옛날엔 한국에 농업 종사자가 엄청 많았는데 지금은 농업이 굉장히 적고 공업·서비스로 많이 갔다. 그쪽도 줄어들면 또 뭔가 만들 것이다. 그냥 있을 순 없다. 거기다 의미를 또 부여할 것이다.

03:41:43

그전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힘들 것 같은 게, 지금 AI 쪽의 대체는 화이트칼라, 고학력 화이트칼라에 정확하게 포커싱됐기 때문에 예전보다 전환 코스트가 많이 든다. 이분들이 지금 일하는 방식의 깊이와 그에 따른 사회적 보상이 크기 때문에, 전환했을 때 그만큼을 새로 올리려면 시간도 노력도 필요한데 그걸 동시에 하려니 어렵다.

03:42:25

(이전 혁명들보다 파괴적이냐) 일단 기간이 짧다. 예전엔 보통 10년, 20년 걸렸다 — 월드와이드웹이 나온 게 95년쯤이고 인터넷 혁명도 10년, 15년 걸렸다. 지금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는 게 1번이다.

03:42:39

또 하나 — 유통 혁명이면 물류를 바꿔 전자상거래로 가는 특정 산업의 일이었다. 지금은 전 범위에, 책상 위에서 하는 건 거의 다 된다. 사무직부터 의사결정하는 논리적 사고까지, 심지어 피지컬 AI는 현장까지 가니 거의 모든 분야에 한꺼번에 온 건 이게 처음이다. 그래서 지금 너무 놀라고 있는 것이다.

03:42:59

(공장에 사람 없다면서요) 계속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장만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리포트를 점점 못 내준다 — AI한테 부탁해서 받아오니까.

03:43:17

AI 석학 중에 안드레 카파시[ASR: 안드레 카파스]가 최근에 한 것 — 숙제하는 걸 잡아내는 AI를 만들었더니 여기다 다시 낙서하는 AI가 들어갔다. 그러니 패턴을 볼 수가 없다. 그림 그린 것 같은 걸 집어 넣으니 결론은 "못 잡는다"였다.

03:43:39

말씀하신 것처럼 면접이 뜰 확률이 높다. 기업도 써 오신 글을 믿을 수 없으니, 실제로 만나서 "쓰신 글의 두 번째 문단 세 번째 줄"을 예전 구두 시험처럼 확인할 것이다. 그러면 소수만 봐야 하니 정말 잘 준비해 와야 하는 게 1번이다.

03:43:58

두 번째 단점 — 내향적인(I) 사람이 불리하다. 본인이 썼는데도 의심받는 분들이 있다. 능력을 분명히 가졌는데도 표현을 조금 못 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03:47:18

드라마 「블랙미러」를 보면 사이클을 타서 전기를 만들고, 그만큼 기여한 걸 코인으로 주고 그걸로 콘텐츠를 보는 식으로 사케스틱(냉소적)하게 얘기하는 것들이 나온다.

03:47:31

이번에 책을 쓸 때 참조했던 표현을 읽어 드리겠다 — "21세기 로봇은 모든 문명에서 노예 노동이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 마침내 인류는 속박에서 해방되어 더욱 숭고한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니콜라 테슬라, 1935년. 지금 딱 90년 됐다. 앞으로 노동은 로봇이 하고 노예 제도에서 했던 노동과 같은 대체가 전부 나올 거니 보라는 얘기다. 그다음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숭고한 이상이 무엇일지를 탐색하는 것이다.

03:48:03

그런데 노동과 자기실현이 딱 잘라지는 건 아니다. 물론 직업적 이유가 있지만, 박찬욱[ASR: 박찬옥] 감독 영화에서도 보듯 "이게 내가 사는 이유야" 할 수 있고, 텃밭을 가꾸는 것도 소득을 내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기본 목적은 내가 즐거우니까다. 그러면 어디까지를 노동이고 어디까지를 여가로 볼 것인가.

03:51:15

흥미로운 게 교수님 말씀처럼 소속에 대한 부분이 생산과 연결돼 있었다. 막스 베버[ASR: 막스배버]의 관료제 시스템이 지금까지 대량생산 자본주의를 만들었는데 이게 깊어졌다. 지금은 전 세계에 100만 명 다니는 회사가 있고, 그러면 조직 안이 하나의 유니버스가 된다. 지금 이슈는 생산을 개인이 할 만큼 분화되기 시작했다는 것 — 그러면 조직에서 함께 있던 게 즐거운 일이었는지, 사실은 괴로운 일인데 참았는지가 막 나오기 시작한다.

03:51:41

또 한 가지, 근대·현대 교육을 얘기할 때 대량생산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력을 만드는 것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번에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대학 나온 사람을 안 뽑겠다고 했다. 지금 대학 시스템이 예전 방식이고, AI가 있는 세상에는 더 독립적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하니 본인이 학교를 만들었다. 거기서 역사·종교를 가르치고 과정이 4개월이다. 4개월이면 가르칠 수 있냐 하니 기존 대학 시스템이 상당히 '패러시틱(기생적)'한 형태라고, 오래 길게 늘여서 만든 게 나쁜 것이고 본인은 코어만 가르치고 즉시 할 수 있으니 좋다고 했다. 지금 전체 조직의 크기가 경감되면서 기존 가치관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03:52:34

AI 동료의 도움을 갖고 인간은 혼자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함께 무엇이든 같이 하던 집단에서의 위계와 서열이 굉장히 중요했다.

03:53:48

사회적으로는 크루나 동호회가 엄청 활성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스포츠를 해도 직장 내 축구 동호회처럼 함께 뛰어야 했는데, 이제는 수평적으로 서로 닉네임 부르면서 잠시 모이는 모임이 뜨는 걸 보면 확실히 소속감에 대한 이슈가 나오고 있다.

EP.20 — 공정 (2026-01-09)

[원 소제목]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
04:00:38

채널이 왜 페이지뷰가 잘 나오는지 알겠다 — 논쟁적이고 관심 많이 가지는 키워드를 정말 잘 뽑으신다. 이 이슈의 출발은 희소재의 분배 이슈다. 결국 선발, 그만큼의 평가에 대해 공정성이 지금 굉장히 많이 올라오고 있다.

04:00:56

흥미로운 건, 결과의 평등을 만들려면 지원과 관리라는 시스템이 들어가야 하고 이게 굉장히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지원으로 맞춰 나가면 (동)기가 사라진다 — 내가 더 발전하려는 그런 기운이 위축되면 전체 사회의 프로덕티비티가 낮아진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검증이 된 것이다.

04:01:16

재밌는 건 최근 '경량 문명'이라는 얘기를 드렸는데, 지원 시스템이 가상화되기 시작했다 — 이제는 더 적은 에너지로 더 돌볼 수 있게 됐다. 또 한 가지는 선발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 '공채 23기' 같은 게 없어지는 것이다. 각자 서사를 만들어 본인을 입증하면 역량만으로 들어오는 분들이 늘었다. 그러면 지금처럼 한 곳(자리)을 놓고 열심히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이 얘기가 시간 지나면 좀 더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보인다.

04:01:43

유명한 얘긴데, 옛날에는 "무한도전 좋아해요, 저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하면 답이 "국·영·수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하라"였다. 언론사 입사가 '언론고시'라 불렸고 방송사별로 뽑는 인원이 한 자릿수였다. 학력도 엄청 보고 외국어·논술·면접까지 있어서 어려웠다. 근데 지금은 유튜브에 올리면 된다 — 페이지뷰가 많이 나오면 미스터비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처럼 '통과의례'라지만 너무 가혹했던 선발이 사라지는 중이다. 그러면 지금의 공정함에 대한 잣대가 대부분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평가받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게 얼마만큼 유효할까에 대한 것들이 떠오른다.

04:02:44

입장이 다른데, "몇 시에 왔니 몇 시에 갔니" 그런 (기준의) 급여는 위험한 것이다. 전체 조직에 규율을 (세우는) 일반이라면 무조건 (성과 기준).

04:03:19

그게 바로 지금 JTBC에서 하는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의 플롯이다 — "너 혼자 한 게 아니야, 우리가 같이 한 거지." 팬데믹 때 일단 그게 많이 분류가 끝났고(개인 기기가 나왔으니까 재택 근무하면서), 두 번째는 지금 AI로 증강되면서 서포팅 시스템이 가상화되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팀으로 움직이던 게 이제는 서비스와 묶여 혼자 가는 걸로 가기 시작했다. 아주 빠르게 개인별 퍼포먼스로 가기 시작했다.

04:03:47

그렇다. 사람의 숫자가 줄고, 한 명에게 주어진 업무의 처음과 끝에 대한 산정이 좀 더 쉬워지는 중이다.

04:05:12

몇 년 전에 (스스로 유명하다고 믿는) 학교 학생이 에브리타임에 "인터넷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 돈 많이 버는 거 싫어요"를 올렸다. "우리는 계속 공부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저분들은 (교육)과 무관하게 수입이 높으니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댓글이 정말 엄청났다. 익명 게시판이니까 한 생각이지만, 그 생각이 나오도록 우리가 사회적으로 그분을 계속 만들었다는 게 되게 크리피한 것이다. [확신도: 중]

04:05:57

표면화된 것이다. 이렇게 꼭 공부가 아니어도 성공하는 게 있으면 그게 바람직하다, 기회 균등이고 참 좋다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왜 그래야 되는데"로 보는 경우도 꽤 있다. 안에 너무 많은 문제가 들어 있다 — 평가를 계속 수평(단일 척도)으로 받아왔다는 것도 문제고, 직업적 다양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고, 그걸 환원시켜 물질주의로 간 것도 문제라 설명하기 어렵다. [확신도: 중]

04:07:41

이미 미국에서도 메리토크라시에 대한 이슈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내가 현재 가진 자산이나 거기 따르는 지원이라는 게 혼자 이루어진 게 아니고 주변의 수많은 사람으로 얻어진 것이고 심지어 운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고마워하지 않으면 정말 오만한 사람을 만들고 사회적 갈등을 만든다. 그래서 그 부분은 충분히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확신도: 중]

04:08:29

흥미로운 건 최근 한국도 미국도 전 세계가 신입사원을 안 뽑으려 한다. 스탠포드 리서치인데 22년부터 25년까지 한 3년 사이에 25살 언더 친구들을 새롭게 뽑겠다는 직업의 크기가 13%가 줄었다. 이제 학력을 기반으로 조직에 들어오는 건 어려울 것 같고, 본인이 뭔가 성취해서 들어오는 경우는 늘 것 같다. 이미 저 포스트(채용 공고)에 학력이 빠지고 있는 중이고 주로 역량을 보는 걸로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포텐셜(잠재력)이었는데 이제는 역량으로 움직이고 있다.

04:09:06

예전에는 공채 시험에서 "자기 소개해 보세요" 하면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이런 게 나왔다 — 업무와 무관하다. "그냥 잘 자라왔어요", "인자하신 부모님", "전 성실해요" 이런 얘기들이었는데 지금은 면접이 업무다. 그 업무를 모르면 못 들어오고, 거꾸로 업무를 할 줄 알면 학력이 안 중요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벌) 서열에 대한 부분들이 완화될 수 있다.

04:09:26

지금 보고 있는 건 —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서 역량을 갖추면 조직에 들어올 것이고, 그럼 지금처럼 정해진 수직적·서열적 형태의 평가는 덜 할 것 같고, 더 나아가 각자가 다른 형태의 꿈을 꾸게 되면 경쟁이 안 된다. 우리가 가진 재주가 몇백만 개인데 그중 몇 과목으로 정해진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지 의심은 있었으나 대안이 없어 살아왔다. 이제는 아닌 방향으로 갈 것 같아 이 문제도 조금씩 침식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04:11:21

지금 그 얘기가 경량 문명에선 어떻게 얘기되고 있냐면, 수직적 하이어라키로 만들어진 막스 베버식 조직이 지금도 유효할 것인가로 점화되기 시작했다. 최근에 조직도가 없고 워크플로만 있는 회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특정 직위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것이고, 이합집산으로 모이기도 하고 리소스처럼 태스크로 나뉘어 있어 각자 태스크가 다르다. 그 태스크의 결과로 본인이 성취를 했고 그걸 들고 또 다른 데로 나간다 — "여기서 이런 경험을 했으니 포트폴리오가 있고 저는 다시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식으로 탈조직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안전한 곳과 불안한 곳, 안전한 곳에서도 불안한 분들, 이런 식으로 계속 계층화됐는데 이런 형태의 생산 시스템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중이다. 지금 과도기를 보고 있는 것 같다.

04:13:51

개인이 예전보다 오래 산다. 예전에는 종신 고용·평생 직장이었으니 안정성 있는 회사에 들어가 일정한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도 내 인생을 잘 보냈다고 믿었다. 근데 지금은 조직은 짧아지고 개인은 오래 살기 시작했다 — 환갑 때 그만둬도 남은 시간이 50년이다.

04:14:35

지금 문화권 대비 그런 변화 인식의 차이가 굉장히 치열하게 나는 게 일본 경영진과 미국 경영진이다. 일본은 사장님도 얼마 못 받는다. 근데 미국은 그렇지 않고 100배 넘게 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 부분은 얼마만큼 개인주의냐 집단주의냐에 대한 것도 있고, 심지어 한국은 관계주의라 그래서 더 강하다고 얘기한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연공서열성이 높다 — 고려[ASR: 허강]대학교 사회학과 이철승[ASR: 이천수] 교수님이 쓰신 책들이 있는데 한국의 연공서열성은 매우 높다. 그러다 보니 「서울자가 김부장」이 나오는 것이다. 다 연결돼 있는 게 "부장님은 저보다 세 배를 더 받으시네, 근데 그분이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계신가"에 대한 의심이나 약간 백안시하는 부분이 올라가고 있다. 교수님 책을 읽어 보면 "좀 낮춰야 돼" 이런 얘기도 하신다. 여러 문화적인 코드가 같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 장유유서도 들어 있고.

04:15:56

극단적으로 지금 미국의 AI 기업들은 1,000억원대를 지금 막 지불하기 시작했다. 지금 급한 것이다, 빨리 뛰어야 되는데. / 04:16:05 "예, 정말 망할 수도 있어요." / 04:16:09 지금 3,000억까지 갔다. 한 분한테. 20대다, 그분. 아까 얘기했던 프로 선수들의 몸값처럼 올라갔다. 결국에는 얼마만큼 급하냐의 문제, 역학이다. 규칙이 (정하는) 게 아니라 정말 죽고 사는 문제에 걸리면 얼마라도 내야 되는 것이고, "당신이 꼭 필요하진 않은데" 이렇게 나오면 규칙을 따라가는 형태로 가는 것이다.

04:16:26

노동 시장의 이중화는 말씀하신 것처럼 97년이었다. 그때 콜센터 분들도 전부 정규직이었고 지점에서 운전해 주신 분들도 정규직이었는데, 그때 '비주력 업무'라고 해서 많은 분들을 이중화시켰다. 그다음부터 한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처우 차이가 커지는 바람에 학력주의가 더 커졌다는 스터디들이 있다. 마음속에 그만큼의 분배에 차등을 둔 것이다. 이걸 없애려면 각자가 본인의 기여를 (산)정하고 그만큼 시장에서 교환받는 구조를 가져야지, 그렇지 않고 법인이 대신하는 경우에는 계속 유지될 수 없는 구조다.

04:18:33

(라이프니츠 계산기 질문에 대한 답) 올바름 윤리 더하기 미래에 대한 시제도 있다. 어떤 정책 결정을 할 때 지금 우리에게는 유리한데 다음 세대에게는 안 좋은 것들도 있다. 최근 나온 단어 중에 '기후 불안'이 있는데, 기후가 안 좋아졌는데 불안하다는 것이다. 근데 그걸 나이 드신 분에게 대보면 "왜 불안해?" 하시고, 심지어 "기후 변화 같은 건 당연한 일이야" 하는 분들도 계신다. 근데 청소년들은 실제로 멘탈 (문제)이 생겨 병원에 가시는 분도 있다 — 그들에게는 그게 현실이다, 나중까지 살아 있어야 되는 거니까. 이분들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뭔 얘기" 이렇게 생각하신다. 재밌는 건 아이가 있는 부모는 걱정하신다, 우리 아이 때문에. 생각의 범주나 거기 따르는 본인의 태도가 참 주관적이구나를 알게 됐다. 그럼 우리가 미래의 일을 우리 생각으로 합의할 수 있을까 — 여기에 대해서는 좀 겸손해진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04:19:56

인간은 생각이 깊고 항상 억울해하는 종이다. 질투도 많다. 그래서 지금 공정에 대한 부분은 절댓값이 아니라 설명 가능성이다 — 납득할 수 있냐는 것이다. / 04:20:05 또 그 전제는, 그가 논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지성이 있어야 한다. 계속 공부하고 설명하고 이걸 통해서 합의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04:20:26

근데 아마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시스템도 결과를 똑같게 만들려는 시도는 더 이상 안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공정함이라는 화두가 사라지진 않을 텐데, 이 내용을 어떻게 바꿔서 할 수 있느냐다. 지금은 합의가 어렵지만 자꾸 터져 나오는 것 자체는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 이걸 제도로 해결하려고 하면 절대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04:21:56

스터디 중에 그거 있었다 — 가석방 판정을 내릴 때 식사를 하시기 전과 후가 달랐다는 스터디가 있다. 사람이란 게 주관적인 기분이나 느낌에 좌우된다.

04:22:08

근데 그걸 넘어서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부분들은 어렵다. 증강된 사람이 하게 될 것이다 — 지금도 이미 툴을 쓰고 있다. 내 가이드라인을 주고 그만큼의 도움을 얻어 내가 좀 더 현명해지기 위한 도구로 쓸 것이지. 우리가 상대가 사람이길 바라는 업이 있다 — 스님, 목사님 이런 분들, 판사님 같은 경우에도 그걸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기능, 믿음이라는 신뢰 때문에 계속해서 (사람에게) 의지하게 될 것이다.

04:24:11

그게 설명성 때문에 '익스플레이너블 AI'라고, 지금의 방식이 아닌 것들을 더 부과하려고 하고 있다. 블랙박스일 때는 정말 납득할 수가 없으니까, 여기는 좀 더 깊은 기술을 쓰자는 얘기가 되고 있는 중이다.

EP.21 — 제사·눈치·배려 (2026-01-28)

[원 소제목]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
04:27:11

데이터로 본 배려의 기원 — "제가 데이터를 계속 봤는데 사람들이 남긴 흔적은 사람들 마음의 조각들이더라. 합쳐 보면 전체 집단적 형태의 합의를 볼 수 있다. 왜 하는지 고민해 봤다. 처음엔 상업적 효과였다 — 어떤 물건을 좋아할지 알고 싶었으니까. 나중에 알게 된 건 '아, 우리 종(種)이 상대 마음에 신경을 쓰는구나'."

04:27:34

"눈치가 있으면 미리 행동할 수 있고 [사이가] 좋아진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 비위도 맞추고 때에 따라 사랑도 하고 — 출발은 배려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아서, 그다음에 제가 이걸 '마이닝 마이너스'[ASR — '마인드 마이너'로 추정]라고 정의해 봤다. 배려에 대해서 2015년쯤에 썼던 책들이 좀 있다."

04:27:52

배려의 정의 — "그 출발은 '그가 뭘 요구하기 전에 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 배려가 된다."

04:28:06

"그래서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만큼 그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선물이 굉장히 좋은 이유는 그가 원하는 걸 주기 때문이지 내가 주고 싶은 걸 주는 게 아니다. 결국 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04:28:16

의무화 반대 —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게 규칙화되는 순간부터 의무가 된다는 것이다. 의무가 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처음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따뜻하게 줬는데, 어둡고 무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는 순간부터 오히려 호의가 아니다. 또 한 가지는 이게 늘어난다 — 그러면 내 삶에서 해야 할 일들이 중첩되고, 그 사회는 너무 경직된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지 않을까."

04:32:30

급변하는 한국 + 예절 전쟁 — "오늘 얘기가 예절, 규칙, 문화, 사회적 상규가 다 섞여 있는데 한국 사회가 지금 갑자기 바뀌었다. 팬데믹도 있었고 AI도 오고 있고 GDP가 올라간 것도 있고, 더 큰 건 저출생도 있다. 그러다 보니 세대 간 갈등이 이상한 곳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카톡으로 청첩장을 주는 게 옳은가?' — 종이를 들고 와야지 하는 분, 최소한 문자로는 줘야지 하는 분, 카톡도 된다는 분이 다 다른 얘기를 한다. 그분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는데 우리가 보기엔 이상하다."

04:33:03

"이런 일들이 여러 층위로 나오면서 예절·[표현] 형식에 대한 정말 치열한 전쟁 같은 게 일어나고 있다. 의미는 있었을 텐데,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에 시간차가 있고 멀미가 있구나 하고 느끼는 중이다."

04:36:00

AI 계산 제안 + 임산부석 관찰 — "AI한테 물어보면서 서로 꺼내 놓고 계산을 시켜 보면 어떨까. 지하철 임산부석이 대체로 비어 있다. 우리가 [알아서] 했다기보다는 계속 안내 방송이 나온다 — '지하철 노약자석은 비워두세요.' 사실은 그게 되게 크게 역할을 한다고 본다. 만약 '그냥 알아서들 하세요' 하면, 인지적 배려를 해서 '임산부한테는 양보해야겠다' 할 수 있는 사람보다 피곤하면 그냥 잠깐 가서 앉는 [사람이 많을 것]."

04:38:05

한국인의 여유 증가 — "우리 [매너]가 아름다워지고 있다. 제가 가장 차이를 느끼는 건 버스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카드 찍고 들어가 앉을 때까지 출발을 좀 더 여유 있게 기다려 주시는 게 늘고 있다. 예전엔 버스에서 밀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타기 힘드니까. 지하철도 푸시해 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진 안 한다.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준비 태세가 여유로워지고 있다."

04:38:27

플랫폼 상호평가 — "또 한 가지는 최근 긱 이코노미 플랫폼들이 상호 평가를 한다. '이 손님 어땠어요?' 평가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기사님 어땠어요?'도 평가할 수 있다. 어느 순간엔가 '그분한테도 [별점] 잘 주세요' 하는 경우도 있고, 박사님(=안광복) 말씀처럼 습이 생기는 게 반복되고 어느 순간 그 문화를 접하면 선해진다. 상호간의 시스템이나 플랫폼이 그런 선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04:40:07

시스템이 조밀하면 일탈이 어렵다 — "한국은 길거리에 현찰이 떨어져 있어도 안 줍는다. CCTV가 보고 있다. 점유물 이탈이 돼 버린다. 마찬가지로 스타벅스에서도 [물건] 놓고 나온다. 그만큼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나도 모르게 배우게 된다. 저희 학교 다닐 때 껄렁껄렁한 친구들은 학교 중간에 나가고 책상은 감추고 그랬는데, 요즘은 학원에 안 가면 엄마한테 문자가 간다. 다 찍으니까 그때 얘기했던 '땡땡이'라는 단어를 안 쓰더라. 시스템이 조밀하면 일탈이 어려워지는 것도 있다."

04:41:20

서울병·짐멜 — "최근 한국이 전 세계에서 오고 싶은 곳으로 알려지는 중이다. 중국 분들이 '서울병'이라고, 서울에 갔다 돌아가면 그렇게 생각난다는 밈들이 올라온다. 다들 얘기하는 게 안전함, 깨끗함, 매너다. 한국이라는 곳이 상당히 선진화된 도시인 것 같다. 게오르그 짐멜[ASR: 게우르그 진멜]이라는 독일 철학자가 모더니티를 얘기하며 재미난 예를 드는데, 보통 시골 사람들이 더 순박하고 정이 많을 것 같지만 안 그렇다는 것이다. 도시가 더 예의 바르다. 도시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필요로 하니까. 시골에서는 친하다 보면 선을 넘어 한밤중에도 온다든지 한다. 그러니 습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 또 다른 형태가 되고, 저는 그게 인간 진화에서는 필연적인 것 같다." (짐멜 대목만 김석일 가능성 있으나 전환 표지 없음)

04:44:38

규칙 증식 경계 — "일단 이 논의가 된다는 게 되게 아름다운 사회다. 그 정도로 섬세하게 배려하는 국가는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로 참 따뜻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부분은 좋다. 다만 그 규칙이 늘어날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규칙을 만들 때마다 여러 사람이 합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 사람이 '나는 좀 더 많은 배려를 하고 싶어요'라고 주장해서 규칙이 되는 순간부터 규칙이 우리 일상을 감싸게 되니 되게 무거운 사회가 된다."

04:49:45

보상의 역설 — "예전에 인터넷에 댓글을 달아 답을 주는 행위 같은 건 선의다. 그런데 그걸 돈을 주면 [동기가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스터디가 있었다. 막상 적당히 큰 돈 주는 건 의미가 없다. 아예 많은 돈을 주든지 아예 적게 줘야 그만큼 기여에 대해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걸 보인 적이 있다. … 규칙으로는 의무를 한 것이니 내 선의가 제거된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04:50:16

"일관된 것 같지 않다. 저희가 학교 다닐 때는 학과 일이나 교수님들이 있으면 가서 무조건 도와야 되는 게 당연했는데 요즘은 안 그렇다. 학생들도 당연히 일당을 받는 걸로 생각한다."

04:52:04

"압력을 너무 강하게… 지금 제가 너무 눈치를 많이 주고 있습니까?" → 04:52:12 (자기 책이 언급되자)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안광복

철학교사 · 중동고 · 철학 박사

출연 3/9 · 발언 블록 66

패널 중 유일한 현직 교사. 교실을 1차 자료로 쓸 수 있는 인물.

프로필 (검증)

항목내용출처
출생1970년, 서울교보문고 저자 페이지
학부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교보문고
박사서강대 대학원, 논문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교보문고 · 예스24 저자
재직1996년부터 중동고등학교 철학교사 (2026년 기준 30년차)교보문고 · 다음뉴스 인터뷰(2026-04-17)
희소성국내 고교 철학교사 30명 남짓 (임용고시에 철학 과목 선발이 없음)나무위키
저술공저 제외 25권.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열일곱 살의 인생론』, 『철학의 진리나무』, 『인생고수』, 『철학, 역사를 만나다』, 『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영상 설명란 명시)교보문고 · 다음뉴스 · 교보 도서페이지
활동신문·잡지 대중 철학 기고, 강연알라딘 저자

주의: 본 영상의 ASR 자막은 EP.21 이름표를 "안강복"으로 오기한다. 화자 실수가 아니라 자막 오류다. 발언 중 인명도 다수 오기된다(아시모프→"아이시모프", 라캉→"락강", 울리히 벡→"울리백", J.S. 밀→"JS 미리", 몽테스키외→"몽태스키", 송길영→"성기령"). 이 글에서 화자의 사실 정확도를 평가할 때 ASR 오기는 계산에서 제외했다.

이 영상에서의 위치

  • 출연 회차: EP.19(AI와 인간, 2025-12-16) · EP.20(공정, 2026-01-09) · EP.21(제사·눈치·배려, 2026-01-28)
  • 발언 블록 수: 66 (EP.19 = 41, EP.20 = 9, EP.21 = 16)
  • 맡은 기능: 패널의 유일한 현직 교육 현장 실무자 — 추상 쟁점이 나올 때마다 (a) 철학사에서 같은 구조의 선례를 꺼내 "이미 있었던 논쟁"으로 재프레이밍하고 (b) 교실·학교 제도라는 1차 관찰 데이터를 증거로 투입한다.

논증 스타일

1) "기시감" 프레임 — 신규 쟁점을 역사적 선례로 강제 환원 그의 최다 빈출 동작이다. 6회 반복: 03:23:07 "다 흥미로운데 약간 기시감이 있다… 100년 전에 '백인은 흑인하고 뭐가 달라?'가 심각한 문제였다. 논리적 맹점이 똑같을 것 같다" / 03:35:20 / 03:44:18 / 03:58:09 "이것도 기시감이 좀." / 04:17:47 "기시감도 있죠… 영원히 반복되는 문제다." / 04:22:32 "기시감이 오는데,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그 계산식이 있다." 새 기술 쟁점의 흥분을 낮추는 냉각 장치로 기능한다.

2) 철학사 인물을 쟁점의 좌표로 사용 개념 자체보다 구분(distinction)을 제공하는 데 쓴다. 03:48:25 한나 아렌트의 labor/work/action 3단계로 "노동"이라는 뭉친 단어를 쪼개고, 03:53:14 독일어 빌둥(교양)/아우스빌둥(직업교육)으로 교육 논쟁의 축을 갈라주며, 04:39:30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이고 순자는 생각을 통해"로 예(禮)의 두 계보를 분리한다. 04:28:44의 정서적 공감 대 인지적 공감 구분도 같은 동작이다.

3) 교실을 실측 데이터로 투입 패널 중 그만 가능한 수다. 04:04:33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라는 게 있다… 학교에서 저항은 만만치 않다 — 이게 너무 힘든 일이다" — 결과 평등 논쟁을 실제 시행 중인 제도로 착지시킨다. 04:29:18 "제가 1년에 약 300명의 학생을 가르친다면 [그런 아이는] 딱 세 명 정도 있다" / 04:31:54 "요새 학교의 리추얼이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옛날처럼 애국 조회 안 한다" / 04:15:22 "정규직을 뽑을 때는 의외로 능력이 2순위가 되더라비정규직을 뽑을 땐 진짜 능력만 본다."

4) 자기 신상을 사례로 노출 03:29:06 기자가 "AI한테 안광복 선생님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를 뽑아왔습니다"라 한 경험 → 03:29:40 "'내가 두 달 뒤에 죽어도 모르겠구나' — 내가 안광복인 것처럼 인터넷에서 다 답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04:38:50 지하철 문 닫힐 때 뛰어 탄 뒤 "아주머니 한 분이 저를 굉장히 안 좋게 쳐다보시는데 그게 저녁 내내 마음에 걸리더라" — 자기 부끄러움을 사회적 강제 이론의 증거로 제출한다. 04:47:42 부조금 스트레스도 같은 방식.

5) 시한 붙은 예측을 걸어둔다 03:12:11 "이 질문 자체가 2, 3년 뒤면 의미가 없어질 것" / 03:15:11 "2, 3년 내에 법 인격을 AI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올 것" / 03:46:33 "5년, 10년 돼서 … 자연스럽게 '인간은 노동을 안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 반증 가능한 형태로 내놓는다.

강점

1) 이 패널의 유일한 현장 1차 데이터원. 04:04:25~04:04:33은 이 회차에서 가장 값진 기여다. 공정 논쟁이 "기회 평등 대 결과 평등"이라는 추상 대립에 머물던 자리에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라는 실재하는 학교 제도를 올려놓고, 자기 진영의 비용까지 함께 공개한다 — "물론 나도 그렇지만 학교에서 저항은 만만치 않다." 자기 입장의 실행 난도를 스스로 밝히는 태도다.

2) 자기 표본의 한계를 명시한다. 04:29:18에서 300명 중 3명이라는 관찰을 던진 직후 스스로 "통계치는 정확하지 않다"고 붙인다. 인상 통계에 수치의 권위를 입히지 않으려는 방어 동작으로, 토론 패널에서 드물다.

3) 통설의 오독을 원전으로 정정한다. 03:50:06 "옛날 사람들이 매슬로를 오해하는 게 '반드시 아래가 채워져야 위로 올라간다' — 매슬로는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다. 인간에게 5단계 욕구가 있는데 무엇이 '주된' 욕구냐의 문제다." 대중 통용본이 아니라 원전 독해를 근거로 삼는 사례다.

4) 상대의 질문을 자기 답으로 덮지 않고 되던진다. 04:17:58 라이프니츠의 계산기 구상을 소개한 뒤 "이건 한번 송박사님한테 여쭤 보고 싶다… 어떻게 생각하시나"로 공을 넘긴다. 04:29:57·04:39:30에서는 동양 사상 영역을 "전호[근] 교[수님] [영역]", "전호 교수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이라며 자기 관할 밖임을 명시한다.

약점·문제점

1) "기시감"은 논증이 아니라 논증의 생략이다. 03:23:07에서 100년 전 인종주의 논쟁과 AI 인격 논쟁을 나란히 놓고 "논리적 맹점이 똑같을 것 같다"로 끝낸다. 두 논쟁의 구조가 같다는 것 — 즉 "AI에게 감각·이해관계·고통이 있는가"라는 사실 문제가 "흑인에게 그것이 있는가"와 같은 층위인가 — 는 입증되지 않는다. 유비의 성립 여부가 정확히 쟁점인데, 유비 제시가 곧 결론 취급을 받는다. 6회 반복되면서 이 패턴은 새 쟁점의 고유성을 검토하지 않고 봉인하는 효과를 낸다.

2) 검증 가능한 사실 주장에 부정확이 섞인다. 03:44:29 "200년 전(≈고대 그리스 사회)의 문제가 자꾸 재현된다" — 고대 그리스는 2,400여 년 전이다(03:31:00에서 제국주의 담론을 가리켜 쓴 "200년 전"과 시대 지시가 혼선된다). 같은 블록의 "중세 시대 왕들은 글자(활자)를 몰랐다"도 일화적 사례(샤를마뉴 등)를 통칙으로 일반화한 형태다. 03:31:28 커즈와일 인용 — "2030년경이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다고 예상했고 지금 이미 실현되고 있다" — 는 예측 연도와 "이미 실현" 판정을 모두 근거 없이 확정한다. 특히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이 회차 전체가 다투는 쟁점 자체를 결론으로 앞당겨 쓴 것이다.

3) 표본 한계를 인정한 직후 그 관찰 위에 규범 결론을 세운다. 04:29:18에서 "통계치는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 지 13초 뒤 04:29:31 "그래서 배려가 사회공학적으로는 강제될 필요는 있을 것 같다"로 넘어간다. 자기 학교 학생 관찰(정서적 공감형은 300명 중 3명뿐이다)에서 사회 전체의 강제 설계로 곧장 도약하는데, 그 사이 단계 — 이 분포가 학교 밖에서도 성립하는가, 성립한들 강제가 해법인가 — 가 비어 있다. 자기가 명시한 한계가 결론을 제약하지 못한 셈이다.

4) 숨은 기능론이 반증 불가능한 형태로 제시된다. 04:31:23 "표면적으로 '없어도 돼, 불필요해' 보여도 심지어 홍동백서 같은 것까지도 그 안에 숨겨진 이유가 있다." 이 주장은 어떤 관습에 대해서도 "아직 이유를 못 찾았을 뿐"으로 방어된다 — 폐기해도 되는 관습을 식별할 기준이 없다. 04:31:54에서 제사의 서열 확인 기능을 설명하지만, 그 기능이 존속의 근거인지 관찰된 부작용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5) 정면 반론 대신 "인간도 그렇다"로 평준화한다. 상대가 "AI의 흉내는 본질적 욕망이 아니지 않냐"고 묻자 03:31:00 "인간도 그렇다는 거죠", 지브리 스타일 모방 지적에는 03:37:30 "인간도 그런 짓을 하죠". 상대가 세운 구분(본질적 욕망 대 모사, 창작 대 표절)을 검토하지 않고 인간 쪽 사례를 붙여 무효화하는 형태다. 수사적으로 강하지만 상대가 물은 구분 기준은 답을 못 받은 채 남는다.

6) 자기가 연 논점을 시간 이유로 스스로 닫는다. 04:17:58 "그 논의를 하기엔 너무 긴데"라며 라이프니츠 논점을 열자마자 다른 패널에게 이양한다. 정리와 진행을 배려하는 습관이지만, 그가 제기한 쟁점(AI의 정량적 공정 판정)이 그의 손에서 전개되지 못한 채 이동한다.

반복 패턴

  • "기시감" 6회(03:23:07, 03:35:20, 03:44:18, 03:58:09, 04:17:47, 04:22:32) — 사실상 그의 서명.
  • [철학사 인물] + [현재 쟁점] 접합: 헤겔(03:14:38), 아시모프(03:19:26), 커즈와일(03:24:15·03:31:28), 라캉(03:29:53), 매슬로(03:45:01·03:50:06), 울리히 벡(03:45:48), 아렌트(03:48:25), 아리스토텔레스(03:49:17·04:37:22), 니체(03:52:52), 에피쿠로스(04:04:11 부근 03:58:11), 라이프니츠(04:17:58), 벤담(04:22:32), 몽테스키외(04:23:48), J.S. 밀(04:35:16), 맹자·순자(04:39:30).
  • 교실 → 사회 확장: 04:04:33, 04:15:22, 04:28:44, 04:31:54 — 관찰 단위는 학교, 결론 단위는 사회.
  • 자기 노출로 이론 검증: 03:29:06, 04:38:50, 04:47:42.
  • 경계 표시: 동양 사상은 04:29:57·04:39:30에서 전호근에게, 데이터는 04:17:58에서 송길영에게 넘긴다.

없었다면 잃었을 것

  1. 교실이라는 실측 현장. 공정·배려·리추얼 논쟁이 셋 다 학교에서 매일 실행 중인 제도라는 사실 — 최소 성취 수준 보장(04:04:33), 사라지는 애국 조회(04:31:54), 학종 인성 평가(04:28:44) — 은 그가 없으면 이 패널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 대학 연구자도 데이터 분석가도 접근하지 못하는 층위다.
  2. 논쟁 어휘의 정돈. labor/work/action(03:48:25), 빌둥/아우스빌둥(03:53:14), 정서적/인지적 공감(04:28:44), 맹자/순자(04:39:30) — 뭉쳐 있던 단어를 갈라 토론이 같은 것을 놓고 다투게 만든다.
  3. 신기술 흥분의 냉각. "기시감" 프레임은 과잉 적용되지만, AI 논쟁이 전례 없는 사건이라는 전제를 매번 흔든다는 점에서는 패널에 필요한 저항력이었다.
  4. 자기 자신을 표본으로 내놓는 태도. 03:29:40 "내가 두 달 뒤에 죽어도 모르겠구나"는 AI 정체성 논쟁을 추상에서 신상 위험으로 끌어내린, 이 회차에서 가장 구체적인 한 문장이다.

시청자를 위한 주의사항

  1. "기시감"이 나오면 그 뒤를 확인하라. 유비가 제시된 것과 유비가 성립함이 논증된 것은 다르다. 특히 03:23:07(인종주의↔AI 인격)과 03:44:29(고대 노예제↔AI 노동)에서, 두 사례가 어느 지점에서 같고 어느 지점에서 다른지는 말해지지 않는다.
  2. 인용된 원전 주장은 직접 확인하라. 커즈와일의 예측 연도(03:31:28), 매슬로 원전 해석(03:45:01·03:50:06), 울리히 벡의 시민노동 논의(03:45:48)는 모두 요약 전달이며 원문 대조 없이 인용된다. 인물 이름은 출처 표시이지 검증이 아니다.
  3. 연도·시대 수치를 그대로 받지 마라. 03:44:29의 "200년 전"은 고대 그리스를 가리키며 실제와 어긋난다.
  4. "300명 중 3명"류 인상 통계는 화자 본인이 부정확하다고 밝힌 값이다(04:29:18). 그 위에 세워진 04:29:31의 강제 배려 주장도 같은 강도로만 받아들이면 된다.
  5. ASR 자막의 인명 표기를 신뢰하지 마라. 화자 이름부터 "안강복"으로 틀리고, 아시모프·라캉·울리히 벡·J.S. 밀·몽테스키외·송길영이 모두 오기된다. 자막의 오기를 화자의 지식 오류로 오독하지 말 것.
안광복의 전 회차 발언 스크립트 펼치기

EP.19 — AI와 인간 (2025-12-16)

[원 소제목]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
03:08:18

자기소개 — 안광복. 중동고등학교 철학 교사이며,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글을 쓰고 있다.

03:09:30

"예. 철학 교사입니다." (MC가 고등학생에게 철학을 가르치느냐고 묻자)

03:09:38

방송 나올 때마다 첫 질문이 항상 이것이다 — 전국에 고등학교가 1800여 곳 있는데 철학 교사는 30명 정도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철학 교사를 만날 일이 없다.

03:09:56

요즘은 '생활과 윤리', '사회와 윤리' 같은 윤리 과목 안에서 다뤄진다.

03:10:00

요즘 고교생의 철학적 고민은 다 비슷하다 —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지?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어? 왜 이렇게 세상은 악으로 가득해?" 이 물음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나온다.

03:10:20

그 질문과 대답을 지금 현재화(현실화)하는 것이 철학의 일이다.

03:10:29

자연과학은 정답이 있어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인문학은 '의미'라는 우물을 파는 일이다. 우물은 파도 파도 물이 나온다. 삶에는 정답이 없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볼 때 새로운 의미가 계속 드러나는 묘미가 있다.

03:12:11

이 질문(AI와 인간의 차이) 자체가 2, 3년 뒤면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이발사 피가로가 귀족에게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거 말고 당신이 나보다 나은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따진다. AI도 "인간으로 태어난 것밖에 나보다 나은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충분히 물을 수 있고 우리는 답을 줄 수 없다.

03:14:38

법적으로 법인이 인격을 보유하듯 AI에도 인격을 부여할 날이 멀지 않았다. 철학적으로도 말이 되는데, 헤겔의 역사 발전 도식이 있다 — 인류 시작 때는 왕 한 사람만 자유로웠고, 그다음 귀족, 일반 백성, 노예까지 자유가 확대됐다. 지금은 동물권, 자연 보호까지 왔으니 그다음은 AI다.

03:15:11

10여 년 전 출판사에 이 주제를 얘기했을 때 편집자가 굉장히 황당해했다. 다마고치 — 밥 주고 노는 기계 장난감인데, 아이들이 그것을 학교에서 학대하는 모습을 봤다. 밥을 안 주면 기계 속에서 애가 울고 있는데 밥도 안 주고 똥도 안 치워 준다. 아무리 기계라도 그 행동이 옳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해 아동용 도서로 내자고 했더니 "이게 말이 됩니까" 했다. 지금 가족용 로봇을 꿀밤 때리고 학대하는 것과 똑같다. 현실로 닥친 문제이므로 2, 3년 내에 법 인격을 AI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올 것이다.

03:19:08

대부분 동의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다마고치나 동물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 어디까지나 동물을 대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AI는 다를 수 있다.

03:19:26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ASR: 아이시모프] 소설이 「바이센테니얼 맨」[ASR: 아이토니얼 맨/아이센터니 면]으로 영화화됐고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다. 감명 깊게 봤다. 로봇이 자유를 달라고 하자 재판부는 "자유는 인간만이 누리는 것"이라 했는데, 그는 "자유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를 원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03:20:02

나는 "AI는 AI, 인간은 인간"이라는 자명한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구분하기 어렵다고 구분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지금 추세면 정말 구분하기 어려운 시점이 온다. 소설처럼 자유를 달라 주장하고 재산권도 갖게 되고, 나중에는 "인간은 죽는데 너는 안 죽으니 너는 인간이라 할 수 없어"라고 하니까 죽음까지 선택하는 내용이다. 결국 AI의 정체성은 안 흔들려도 인간의 정체성이 크게 위협받는다.

03:23:07

다 흥미로운데 약간 기시감이 있다. 이 논쟁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 100년 전에 "백인은 흑인하고 뭐가 달라? 우리가 왜 쟤네보다 존엄해? 노예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가 뭐가 있냐?"가 심각한 문제였다. 논리적 맹점이 똑같을 것 같다.

03:23:25

제자 중에 외과 의사가 있다. 응급실에서 그 친구가 대처하는 모습을 봤는데 피가 철철 흐르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소리를 지르건 말건 다 처치를 하더라.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니 "치료실에서는 그냥 몸으로 봐요.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AI도 그렇다 — AI는 기계가 맞고 인간과 다른 존재이지만, 관계성의 맥락 안에 들어와 같이 활동할 때는 AI도 똑같은 인격으로 봐 줘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생길 것이다. 지금도 AI에게 부탁한다, 잘 설명해 준다고 하듯이 인간의 동반자로 대해 줘야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03:24:15

또 하나 재밌는 것 — 지금의 AI가 인간을 모사한다는 얘기는 기독교 성경 얘기와 똑같다.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고, 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도 할 수 있다. 기계를 인간이 만들었다면 기계도 충분히 인간적인 속성을 띤다. 내 얘기가 아니라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얘기다. 그래서 지금 논의하는 'AI가 인간과 다르냐 같으냐'는 100년 뒤에 보면 약간 인권 침해적 소지가 있다.

03:29:06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올해 초 재밌는 경험을 했다. 젊은 기자가 인터뷰를 왔는데 질문지를 보여주며 "AI한테 안광복 선생님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를 뽑아왔습니다"라고 했다. 경악한 건,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내가 어떻게 답변할지까지 AI에게 물어보고 그걸로 초안을 잡아왔다는 것이다. 굉장히 당황했다. 거의 투사(投射)한다.

03:29:40

"저를 학습하고 온 거죠." → 그다음 든 생각이 "내가 두 달 뒤에 죽어도 모르겠구나" — 내가 안광복인 것처럼 인터넷에서 다 답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03:29:53

라캉[ASR: 락강]을 러프하게 말하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렇다면 AI도 어떤 형태로든 나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 철학자는 기본적으로 영혼과 초월을 꿈꿀 수밖에 없는데, 그 친구가 나를 욕망하고 있다면 분명히 초월을 꿈꿀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난 또 다른 세계로 간다"며 초월을 얘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03:31:00

(AI의 흉내는 본질적 욕망이 아니지 않냐는 물음에) "인간도 그렇다는 거죠." 한 200년 전에 "저 미개인들은 우리하고 똑같은 걸 하는 척할 뿐이지 고귀한 우리 존재하고는 달라"라고 한 것과 다른 맥락일까?

03:31:28

"정확히 보셨는데요." 그 관점(욕망=DNA)대로라면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진화되고 나아진 존재다. 커즈와일 책 — 10년 넘은 책인데 이미 2030년경이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다고 예상했고 지금 이미 실현되고 있다. 그다음은 진화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끼리 진화한다는 것이다.

03:31:51

나는 서양 고대 철학을 전공했는데, 서양 고대철학의 가장 큰 화두는 욕망의 극복이다. 번뇌에서 벗어나기, 결핍을 참을 수 있는 것. 그런데 AI는 욕망을 참을 수 있는 기제가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존재다. 우리는 몸을 갖고 있어 수많은 욕망에 휘둘리며 판단을 흐리는데 기계는 잘못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내가 욕망을 갖고 있어서 너보다 고귀해"라고 하면 걔는 거꾸로 "너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보다 못해"라고 할 것이다.

03:34:39

(추정) "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창작 능력은 AI가 흉내낼 수 없다 그랬는데 이미 깨졌죠. 구별이 안 되잖아요." (확신도 낮음 — '귀속 불명' 참조)

03:35:20

이것도 또 기시감이 든다. 이미 다 있었던 논쟁이다 — 러시아 황제는 농노들이 다 농사를 지어도 자기는 정원에서 따로 농사를 짓는다. 황제가 경작한 농산물과 농부의 농산물에 차이는 없는데 황제가 취미로 경작한 농산물은 가치가 있다.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로, "AI가 잘 그려줘서 예뻐"라고는 해도 어떤 작품을 돈 주고 비싸게 살 거냐 하면 아마 AI는 아닐 것이다.

03:35:57

이세돌과 알파고가 싸워 알파고가 압도적으로 이겼고 이세돌은 은퇴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세돌의 바둑을 그리워하지 AI 바둑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는다. 프로 기사들이 연습만 할 뿐이다. AI가 예술품인 건 맞지만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한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편향이 있어서 그 문제는 굉장히 쿨할 것 같다.

03:37:30

(지브리 스타일 모방에 대해) "인간도 그런 짓을 하죠. 좋은 창작물은 아니지만 창작물이죠."

03:44:18

앞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건 너무 잘 보이는데 생겨날 건 전혀 안 보이는 느낌이라, 이것도 또 기시감이 든다.

03:44:29

200년 전(≈고대 그리스 사회)의 문제가 자꾸 재현된다. 고대 사회에서 일은 노예가 하고 자유인은 일하지 않는다. 자유인은 자유인다운 삶을 누린다. 지금 AI가 모든 걸 다 하고 정신적 노동까지 한다. 로마 시대에는 지식인도 노예였다 — 에픽테토스는 노예 철학자였고 사무직도 다 노예였다. 중세 시대 왕들은 글자(활자)를 몰랐다.

03:45:01

철학이 한 30년쯤 앞서서 시대를 예견한다.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존재의 심리학」에서 얘기한 욕구 5단계설에서 자아실현이 최상위 단계라 하면서도, 원전을 보면 자아실현의 욕구를 매슬로우가 설명하지 못한다. 사례만 든다 — 예수가 자아실현자, 석가모니가 자아실현자, 아브라함. "그게 뭐예요"라고 물으면 물음표다. 인류가 한 번도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03:45:34

노동의 시대에서 어떻게 먹고살까를 생각하다 비로소 벗어나 자아실현에 해당하게 됐는데 살아온 관성이 남아 있어, 상당 부분 해결됐는데도 여전히 일자리 문제를 고민한다.

03:45:48

철학이 30년 앞선다는 것 — 기본소득제 개념보다 먼저 나온 게 '시민노동' 개념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ASR: 울리백]의 「위험사회론」에 나온다. 지금 유튜브를 보는 시청자는 노동을 하는 것인가 즐기는 것인가? 울리히 벡은 거꾸로 "지금 노동하고 계신 것"이라 한다 — 보는 것으로 조회수를 올려 주고 빅데이터를 준다. SNS 쓰는 것도 우리는 활동이라 보지만 그것도 노동이다. 이는 소득을 주기 위한 논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03:46:33

기본소득제 얘기가 4, 5년 전에는 "날로 먹자는 얘기 아니냐" 했다가 상식이 되는 것처럼, 앞으로 5년, 10년 돼서 생산력이 더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인간은 노동을 안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가 올 수 있다.

03:46:50

노는 게 핵심이다. "어떻게 놀 거냐?" 미래 일자리가 있다면 그 문제일 것이다. 뭐 하고 놀 건데?

03:46:59

(노는 걸 디자인해 주는 사람 vs 잘 노는 사람) 둘 다 노동의 개념이 될 것이다. "어우, 잘 노네, 멋진 사람." 그리고 노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최고의 소득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03:48:25

그게 교육의 문제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한다는 걸 공리처럼, 진리처럼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다. 한나 아렌트가 세 단계로 나눈다 — labor(라버):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 그 위가 work(워크): 예술 활동처럼 그 자체로 즐거운 일 / 그다음 action(액션): 공동체를 위해 고귀한 것으로 나아가는 행위.

03:48:53

왜 교육의 문제냐면, 학교 성적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국영수인데 이건 삶의 도구다. 도구 교과도 있지만 가치 교과도 있다 — 삶을 그 자체로 참여하고 느끼게 하는 것, 가장 대표적인 게 예체능이다. 체육은 그 자체로 즐거운 활동이고 음악도 즐거운데 이게 한쪽으로 밀려 있다.

03:49:17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스콜레의 학문'이라 한다 — 먹고 살 게 충분하고 할 게 없을 때 하는 것. 고귀한 게 뭔지 고민해야 하는데 매슬로우도 똑같다. 자기 욕망을 탐색하다 당황한 것이다. 인간이 고귀해져야 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 라틴어로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노동의 패러다임에 너무 사로잡혀 인류가 진보해야 하는데 그걸 자꾸 놓치고 있다.

03:50:06

옛날 사람들이 매슬로를 오해하는 게 "반드시 아래가 채워져야 위로 올라간다" — 매슬로는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다. 인간에게 5단계 욕구가 있는데 무엇이 '주된' 욕구냐의 문제다. 예전엔 먹고사는 문제가 주된 욕구였다 —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는 피난민이셨기 때문에 늘 "지붕 있고 쌀 있으면 불평하지 마"라고 하셨다. 생리적 욕구가 전부였으니까.

03:50:28

지금은 생리적 욕구는 채워졌고 소속감의 욕구 때문에 고민하지만 이것도 AI가 상당 부분 채워줄 것이다(내 말을 들어주고). 인정 욕구는 "나다운 삶이 중요해, 남 신경 쓰지 마" 하는 문화가 있다. 그다음에는 공허해진 자기를 채워 줄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인류가 고민한 적이 없다.

03:52:52

고대 그리스가 그랬는데, 재밌는 건 그 시대 사람들이 행복했냐 하면 아니다. 그게 문제다. 니체가 뼈 때리는 얘기"궁핍은 하류층을 때리고 권태는 상류층을 때린다." 삶은 여전히 괴롭다. 그래서 우리 같은 철학자들이 고민하는 게 생존력을 갖는 것이다. 풍요로워도 철학이 필요하고 궁핍해도 철학이 필요하다.

03:53:14

아까 송길영[ASR: 성기령] 박사님이 프랑스에서 역사·인문학을 가르친다고 하신 게 재밌다. 그분이 사업가 마인드가 분명히 있다고 느끼는 게 — 독일어로 빌둥(Bildung)아우스빌둥(Ausbildung)이 있다. 빌둥은 그냥 교육, 우리말로 교양이고 아우스빌둥은 직업 교육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직업 교육을 얘기하는데 인간적인 삶을 배웠던 건 빌둥이다. 삶을 누리려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문화적 체험을 해야 하는데, 프랑스에서 역사 같은 걸 가르치는 데는 시장이 그쪽에 있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 하는 심증이 든다.

EP.20 — 공정 (2026-01-09)

[원 소제목] 안광복 (철학교사)
03:58:09

"이것도 기시감이 좀." [상용구]

03:58:11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가 그렇게 얘기했다 — "욕구는 채워도 탐욕은 채울 방법이 없다." 등 따시고 배부른 수준까지는 채울 수 있는데, 더 좋은 걸 먹고 더 나은 걸 누리고 싶은 욕망은 그 이상, 그 이상을 바란다. 지금의 문명 단계로 봤을 때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자기네들이 먹고 살 만하다고 느꼈던 시기가 있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도 욕구의 상한선을 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결과 평등이라는 게 "요 정도면 됐어" — 그 이상 누려봐야 사실 부자들의 결말이 거의 다 비슷하다.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스토리는 거의 없고 허무·우울증, 거의 그 스토리다. 거기까지 안 가고 사회적으로 컨센서스가 "여기까지만 벌면 됐어요"라고 하는 결과의 (제한), 그걸 공정으로 보는 것이다. "열심히 살았으니 명예를 누리고 그치십시오." 요게 새로운, 기회 평등보다는 결과 쪽에 방점을 둔 사회 설계 방법이 아닌가. 결과의 평등을 이제는 내세울 시점이 됐다. [확신도: 중]

04:04:25

"굉장히 핫한 주제를 잘 건드리셨어요." / 04:04:28 근데 전 소름이 돋는데, 중고등학교에서 그 핵심을 이루는 문제다.

04:04:33

그게 왜 그러냐면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라는 게 있다. 고등학교에 딱 오면 일정한 학생이 일정 수준까지는 다 도달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우열을 가르는 게 중요하다고 봤지만 지금 교육의 패러다임이 약간 바뀐 게 있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학교에서 저항은 만만치 않다 — 이게 너무 힘든 일이다. 우리는 경쟁을 해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의 2단계에서는 이 수준까지는 맞춰야 하지 않냐, 그게 더 공정하다고 보는 흐름이 분명히 있다.

04:15:22

저도 공감을 하는 게, 저도 올해로 직장생활 30년 차인데 조직에 이런 논리가 있다 — 저희 학교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정규직을 뽑을 때는 의외로 능력이 2순위가 되더라 — 사람하고 잘 어울려, 인간성 좋아. 그런데 비정규직을 뽑을 땐 진짜 능력만 본다. 오래 갈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성, 임시직으로 쓸 사람은 능력 — 이런 잣대가 있는 것 같다. 근데 아까 송박사님 말씀처럼 조직의 수명이 짧아진다면 그 공정성의 개념도 바뀔 것 같다 — 인성 중심의 이런 것들은 해체되고 능력으로만 공정성을 가리는 분위기가 강해질 것 같다.

04:17:47

"기시감도 있죠." / 04:17:51 이 논의도 많이 있었다. 영원히 반복되는 문제다.

04:17:58

그 논의를 하기엔 너무 긴데, 이건 한번 송박사님한테 여쭤 보고 싶다. 라이프니츠가 (전자) 계산기를 처음 만든 사람이다 — 물론 만들지는 못하고 구상만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산수 계산이 아니다. 사람들이 논쟁이 붙으면 A라는 사람의 주장을 계산기에 넣고 B라는 사람의 (주장을) 넣고 "자, 계산해 보세요, 누가 옳은지" 하면 정답을 내는 기계다. 그런 기계로 구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는 굉장히 황당한 얘기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나. 어떻게 생각하시나 — 이 공정이라는 문제, 한 표를 주냐 여러 표를 주냐를 AI가 계산해서 정량적으로 평가해 주는 것이다.

04:22:32

기시감이 오는데,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그 계산식이 있다. 이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게 굉장히 심플한데, 어느 쪽이 쾌락을 많이 주고 고통을 줄이는지 총량을 계산하면 판단이 딱 떨어진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이게 강도가 어느 정도 되냐, 지속성이 얼마냐, 사회적인 영향이 얼마냐 하는데 벤담은 그걸 구상만 하고 실현을 못 했다 — 너무 많은 변수가 있으니까. 지금 AI가 상당히 많은 정보로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면, 벤담의 사고(틀)를 판사가 하게끔 구현한다면 AI 판사가 얘기하는 것도 철학적 기반 하에서 받아들일 수 있고, 또 한 가지 맨 마지막에 인간적인 묘미까지 둔다면 AI 판사 얘기도 받아들이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04:23:48

몽테스키외[ASR: 몽태스키]가 고등법원장이었다. / 04:23:50 "내 안에 나만의 법정이 있다. (그러면) 세속의 법정에 갈 일이 없다. 내 안의 법정을 내가 지키지 못하면 저런 세속의 판사에게 나를 맡기게 된다"고 했다. / 04:24:03 "있었죠." (당대 법관 불신 확인)

EP.21 — 제사·눈치·배려 (2026-01-28)

[원 소제목] 안광복 (철학교사 박사)
04:28:44

인성 두 부류론 — "학생종합전형에서 인성적 요소가 중요한데, 학생을 보면 두 부류가 있다. ①정말 착해서 누굴 보든 선한 마음으로 돕고 싶은 아이 ②인지적 공감을 잘하는 아이 — 돕고 싶어도 '도우면 안 돼', 딱 감정을 절제한다. '그건 내 일(none of my business)이 아니고 네가 하는 게 맞아.' 그리고 싫어도 인지적 공감을 한다, '이건 내가 해야 돼'."

04:29:08

"딱 보는 순간 '쟤는 진짜 대통령감이다' 싶은 아이들은 인지적 공감을 잘하는 애들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이 배려다."

04:29:18

수치 — "제가 1년에 약 300명의 학생을 가르친다면 [그런 아이는] 딱 세 명 정도 있다. 통계치는 정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생은 '정해져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 배려해라."

04:29:31

핵심 주장 — "그래서 배려가 사회공학적으로는 강제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04:29:57

"그게 이제 전호[근] 교[수님] [영역]이지만, 동양에서 예(禮) 개념이다. 싫건 좋건 마땅한 때에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한 일을 해라 — 그게 예다."

04:30:06

프로네시스(식견) — "프로네시스, 식견이라는 개념이 있다. 예를 들면 며느리인데 시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다. 마음을 줄 필요는 없다. 그래도 며느리로서의 역할은 예를 다해서 해라. 거기까지가 예의 강제 조항이다. 임금이면 마음에 안 들어도 예를 해라 — 강제 조항이 사회적으로 있는 것이다."

04:30:25

"어떻게 정했나? 제가 봤을 때는 사회 관습적으로 이런 걸 했을 때 공동체가 좋아졌다는 경험치가 쌓여 식견이 — 식견은 쌓인 지혜란 뜻 — 만들어진 게 아닌가. 전통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규칙을 얘기하는데 그건 법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게 공동체에 가장 맞으니 사회가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강요로 못 느끼고 관습처럼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강제는 필요하지만, 안 하면 처벌받는 분위기를 만들면 그건 사실상 강제다." (뒷부분 '전통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규칙' 대목은 전호근일 가능성도 있음 — 전환 표지 없음)

04:31:23

보수주의 정의 + 숨은 기능론 — "과거부터 했으니 이유가 있겠지 하고 하는 것보다는… 보수주의 전통은 [기계에] 하나 고장 나면 그 부분만 고치라는 게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다. 왜냐면 AI로 완벽한 인간의 육체를 만들 수 있더라도 놓치는 건 그 안의 미생물, 우리가 모르는 여러 역학이다. 표면적으로 '없어도 돼, 불필요해' 보여도 심지어 홍동백서 같은 것까지도 그 안에 숨겨진 이유가 있다."

04:31:54

학교 리추얼 + 제사의 기능 — "저는 그걸 언제 느끼냐면 요새 학교의 리추얼이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옛날처럼 애국 조회 안 한다. 그런데 제사를 보면 가족 공동체에서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자기가 성공해도 형부터 절을 해야 한다. 어머니 입장에선 형제간 [서열]을 확인하는 것이다. 제사상 앞에 앉아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홍동백서 같은 불필요해 보이는 의례가 '사회 공동체가 이런 거야'를 확인시키는 사회적 기능이 있지 않나." (제사 해설 후반부는 동양철학자 전호근일 가능성 있음. 다만 '학교 리추얼·애국 조회' 자기 준거는 안광복 확정)

04:35:16

J.S. 밀 위해 원칙 — "윤리학자들의 논의가 너무 많다. JS 밀[ASR: JS 미리]이라는 윤리학자가 '타인 위해의 원칙'을 얘기한다. 우리가 사는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안 되면 해도 된다. 그런데 그건 개인이 판단할 수 있다. 딱 봐서 내가 저 자리에 앉아도 주변에 불편한 사람이 없으면 허용된다(본인이 아픈 경우). 그런데 불편한 사람이 주변에 많은데 굳이 앉는다 — 이건 사회적 합의에 대한 공격이고 피해가 될 수 있으니 하면 안 된다."

04:35:49

"다리 아픈 사람, 머리 아픈 사람, 허리 아픈 사람 셋이 지금 한 자리를 보고 서로 눈치 게임을 하고 있다. 누가 앉아야 할지 결정할 때는 하여튼 본인이 제일 피곤하다고 생각하면 거기 앉으면 된다."

04:36:29

정적 강화·수치심 — "안내 방송도 나오고, 그 자리에 앉으면 시선이 되게 따갑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긍정적인 강화, 정적 강화를 해서 '양보해라, 여기 앉으면 넌 비난받을 것이다'라는 심리를 은연중에 [작동시키는] 것이고, 저는 그게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도덕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공동체가 수치심을 자극해서 방지하는 것이다. '너 이거 어기면 매 몇 대 맞아' — 이건 법이다. 그런데 안 그래도 지켜지는 건 나름의 관행을 만들고 공동체가 수치심이란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04:37:22

습(習) — "그게 교육에서 보는 '습'이다. 학습할 때의 습. 좋은 습이 쌓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습이 쌓이면 나쁜 사람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이 그거다 — 우리는 정의롭게 행동하면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게 하면서 절제 있게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선진국이란 좋은 습이 퍼져 있어서 그 습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이 발언이 04:40:51 "아까 안강복 선생님 말씀하신 거는 습이라고 하는 거예요"의 지시 대상 — 본 회차 화자 식별의 기준점.
04:38:50

자기 경험 — "선한 영향력도 있지만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한번 급해서 뛰어가 지하철 문 닫히려는데 탄 적이 있다.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저를 굉장히 안 좋게 쳐다보시는데 그게 저녁 내내 마음에 걸리더라. 그럼 다시는 그런 행동을 안 하게 된다. 그런 게 제가 말하는 일종의 사회적 압력이고 강제다. '너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안 좋은 시선으로 쳐다보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04:39:30

맹자 vs 순자 — "법적 제재는 없지만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도 그렇게 행복한 건 아닌 것 같다. 전호 교수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동양의 대표적인 맹자와 순자를 비교하면 예를 순자가 더 많이 쓴다. 서로 예에 대한 시각이 다른데,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이고 순자는 생각을 통해 '이런 걸 하면 안 되겠다' — 제도·사회적 압력·도덕이 다 들어간다. 순자를 나중에 법가 제자들이 발전시키지만, 사회를 통제하겠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을 사회적 분위기를 통해 교육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 귀속 근거: 04:29:57과 동일한 "전호근 교수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3인칭 양보 패턴. (김석일 가능성도 배제 불가)
04:47:42

부조금 스트레스 — "솔직히 제가 평범한 교사라 일상에 스트레스가 많지 않은데 부조할 때 스트레스 받는다. 축의금·조의금. '이거 도대체 얼마를 해야 돼?' 안 친한데 5만 원, 10만 원, 친하니까 20만 원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거 어떠세요?"


원본 링크 · 인용

원본 링크 · 인용

이 문서의 모든 타임스탬프는 몰아보기 영상 기준이다. 각 회차 원본에서 확인하려면 아래 링크의 원본 시각으로 환산해야 한다(몰아보기 시작 시각을 빼면 된다).

팩트체크에 사용한 외부 출처는 각 판정 항목에, 인물 프로필의 출처는 각 인물 카드의 프로필 표에 개별 링크로 달려 있다.


기타 — 방법과 한계

이 문서가 만들어진 방법

  1. 전사: 원본 영상의 YouTube 자동생성 한국어 자막(ASR)을 받아 9,167줄·170,146자로 정리했다. 사람이 만든 자막은 제공되지 않는다.
  2. 회차 분리: 설명란 타임라인의 주제 블록 경계와 회차 인사말(오프닝·엔딩)을 기준으로 9개 구간으로 잘랐다. 각 구간을 플레이리스트의 원본 회차와 길이·주제로 대조해 EP.13~EP.21로 확정했다.
  3. 화자 귀속: 각 회차 공식 설명란의 출연자 명단을 정본으로 두고, 발언 단위 귀속은 자막 내부 증거(자기소개, 3인칭 호명, 1인칭 전공 언급, 자기 발언 재참조, 주제 시그니처)로만 판정했다. 근거가 없으면 배정하지 않고 '귀속 불명'으로 남겼다.
  4. 비평: 인물별로 독립 작업했고, 모든 지적에 타임스탬프와 실제 발언 인용을 요구했다.
  5. 팩트체크: 검증 가능한 사실 주장만 골라 외부 출처와 대조했다. 규범적·철학적 주장은 참·거짓 판정 대상이 아니므로 제외했다.

알아야 할 한계


원본 영상 © 보다 BODA. 이 문서는 원본을 대체하지 않는다 — 회차별 논의 구조와 화자별 논증을 분석한 2차 저작물이며, 인용은 논평 목적에 필요한 범위로 한정했다. 전체 발언과 뉘앙스는 원본 영상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